삼천일백서른일곱 번째
노인네 소리를 들어도 싸다
시시각각 세상이 변합니다. 과거에는 그 변하는 세상을 미리 읽어 남보다 앞서가려는 욕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런 욕심은커녕 시대 변화에 맞추어 가기도 어렵습니다. 우리 세대가 상상했던 세상보다도 훨씬 빠르고 다양하게 등장하는 고도의 기술들이 우리를 당혹하게 합니다. 누구나 손에 없으면 불안해할 정도로 하나씩 가지고 있는 핸드폰 사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알지 못합니다. 연락을 주고받고 사진을 찍을 수 있으면 그만입니다. 그런데 그 외에도 많은 기능이 있지만 쓸 줄 모릅니다. 그런 세상에 적응하려면 해탈해야 합니다. 해탈은 대개 불교에서 쓰는 용어지만, 굴레나 얽매임에서 벗어나는 것, 그게 해탈입니다. 내가 알고 있던 것, 내가 지식이라고 믿었던 것들에게서 해탈해야 합니다. 모교에서 제공하는 컴퓨터실을 이용해 선후배가 모여 인터넷을 비롯한 최신 기술들을 익히는 모임이 있었습니다. 몇 번 나갔는데 내게 무슨 소용이 있을까 싶어 그만두었었습니다. 변화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기회를 놓친 겁니다. 지속적으로 찾아오는 변화에 가치를 찾지 못한 겁니다. 가치를 알지 못하면 손에 들고도 사용할 줄 모르고 배우려 하지도 않습니다. 비싼 돈을 주고 샀으면서도 그 기능을 썩히고 있는 겁니다. 게으른 탓도 있을 겁니다. 우리는 미래를 두려워합니다. 불확실성과 모호성 때문입니다. 그 두려움을 거두려 하지 않으니 ‘노인네’라는 말을 들어도 쌉니다. ‘노인네’라는 말은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뜻을 가졌습니다. 기분 나쁘지만, 그냥 삽니다. 어쩌다 명인이나 달인들의 이야기를 TV를 통해 보고 듣습니다. 그들이 그 경지에까지 오게 된 것은 실패를 ‘실패’로 여기지 않고 ‘경험’으로 여긴다는 걸 알았습니다. 낯선 땅에 여행하듯이 말입니다. 내게 그 용기가 부족한 모양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