엉겅퀴꽃 (외 1편)
한 상 권
수업 시간 갑자기 화장실 가겠단다.
처음에는 한두 번 그냥 보내다가
어느 순간부터는 삼행시를 짓기로 했다.
기본 운자는 화장실, 가끔은 실장화로 뒤집는다.
급하다고 딴은 후두두 달려 나오는 녀석 봐라,
오늘 운자는 너의 이름 석 자를 거는 거다.
조건은 단 하나, 주변에 작은 울림을 주는 것!
급하냐, 그렇다면 이번엔 김소월이다.
다음은 김수영, 그 다음은 김춘수, 신경림,
앞 시간 다른 아이 감성과 다를 바 없는데?
오 그렇다면, 학교종 라일락 그리움 첫맘때!
느닷없는 운자의 변화에 망설일 때
그렇지, 간절함이 부족하다면 할 수 없지.
제 자리로 돌아가 승화시키는 거다.
그러면 한쪽은 환호성, 급한 쪽은 몸을 비튼다.
그러나 그 순간 정말로 이마에 송긍송글
간절함이 맺힌 녀석에겐 연습장을 쥐어준다.
너는 곧장 세상 밖 화장실로 달려 나가
지금 이 순간을 한 편의 짧은 시로 옮겨와!
복도로 조르르 미끄러져가는 녀석들아
삶은 무엇이든 간절함이 있어야 통과하는 게임
오늘은 침묵이 동이다, 쏟아 내라
그러면 오늘 하루, 엉겅퀴꽃들이
엉킨 너희들 둥근 밑을 탐할지 몰라.
자작나무의 전언
하루 종일
쏟아지는 빗소리
듣지 못하고,
빗소리 아래
꽃 피는 소리 듣지 못하고,
발아래 곡직을 넓히는 바람소리
듣지 못하고,
오늘도 흔들리는 어딘가
생사의 결을 바꾸듯
흔들리는 나무를 듣지 못하고,
흔들림에 대한 어떤 항변도 없이
그렇게 흔들리고 있는 거죠, 당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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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상권 : 1993년 문화일보 신춘문예 「숨은그림찾기 2」 당선으로 작품 활동 시작,
시집으로 단디가 있음.
ㅡ 「시인정신」 2015년 가을호
첫댓글 엉겅퀴꽃, 시 좋아요. 화장실은 배설의 장소이니 글쓰는 행위와도 연결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