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 이야기
고기 집은 소란스러웠다. 손님들 모두 한국말로 얘기하는데 무슨 소리인지 하나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바로 옆의 식탁에서 얘기하는데도 그저 소음으로만 들릴 뿐이다.
연말이 가기 전에 모이자며 만난 우리도 큰 소리로 얘기해야만 했다. 시장기가 가실만 할 때 친구들에게 물었다. “내년에 무슨 좋은 계획이 있냐?” 옆에 앉았던 친구가 말했다. “아, 내년에 좋은 계획이라......, 정말 심각하게 생각해보지 않았네.”
앞에 앉은 친구를 쳐다보자 친구는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잘 먹고 잘 살아야지.” “그래? 그럼 어떻게 사는 게 잘 먹고 잘사는 거냐?”
1905년, 잘 먹고 잘살기 위해 1,033명의 조선인이 멕시코 유카탄 반도의 '애니깽' 농장으로 떠났다. 일본인과 영국인 브로커들이 멕시코에서 열심히 일하면 큰돈을 벌어 금의환향할 수 있다고 설득하여 순진한 조선인들은 노예계약서나 다름없는 노동계약서에 서명을 하고 '일포드호'라는 영국배를 타고 바다를 건넜다. 그들은 거칠고 위험한 용설란 농장에서 목숨을 걸고 일해야 했다. 돈을 벌기는커녕 계약금조차 지불할 길이 없는 열악한 노동조건 속에 간신히 계약기간 4년을 마쳤을 때 한일합방의 소식이 들려왔다. 망해버린 대한제국은 그들을 돌볼 여력이 없었고 그들은 만리타국에 그대로 뼈를 묻어야 했다.
'애니깽'으로 불리는 멕시코 한인 1세대의 후손들은 현재 3만여 명에 이르며 멕시코, 쿠바, 과테말라에 퍼져 살고 있다. KBS는 '한국인의 밥상' 150회 특집으로 이들 '애니깽' 후손들의 밥상을 소개했다. 이들은 3, 4대로 내려가면서 이름은 물론, 현지인들과 결혼으로 섞이기도 하면서 외모조차 남미인처럼 변해버렸다. 호세, 마리아 등의 이름을 가진 그들이 선조들로부터 물려받은 것은 한국의 밥이었다. 한국말은 전혀 못하면서도 '김치', '잡채', '미역국' 같은 음식 이름은 알고 있었다.
배추나 무가 없어서 양배추나 수박 속으로 마늘과 고춧가루를 버무려 김치를 담가먹고, 밀가루반죽을 밀어 닭 삶은 국물에 칼국수 비슷하게 끓여 먹는 등 그들은 아버지와 어머니 조국의 밥을 아직도 먹고 있었다. 형태와 맛이 바뀌어 버렸지만 얼이 살아있는 한국의 밥을 먹으며 한국어와 한국문화를 배우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말하고 있었다.
이 '한국인의 밥상' 150회 특집의 부제는 '밥이 조국이다'였다. 조국을 떠나온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프로였다. 미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로서는 먼 시대, 먼 나라 일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밥'이라는 개념을 곱씹어본다면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는 것을 깨달을 것이다.
사람은 밥을 먹지 않고 살 수 없다. 밥을 먹기 위해서는 밥을 벌기 위해 일해야 한다. 우리도 결국은 밥을 먹기 위해, 혹은 더 나은 밥을 먹기 위해 바다를 건너온 것이 아닌가. 우리의 삶은 밥을 먹기 위한, 그 밥을 벌기 위한 노력의 연속인 것이다. 그리고 그 밥벌이는 힘들고 고달프다.
소설가 김 훈은 어느 인터뷰에서 “지겨운 밥벌이를 하며 어떻게 살아야 사람답게 살 수 있는가?”라는 독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사람은 밥을 먹기 위해서 밥을 벌어야 한다. 자기의 밥을 벌지 않고는 인간의 존엄성을 지킬 수 없다. 그러나 그 혹독한 밥벌이의 과정 속에 역설적으로 인간성을 잃게 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상실된 인간성만큼 밥을 벌면서 스스로 새로운 인간성을 창조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난 한 해 밥을 벌기 위해 열심히 뛰었다. 밥벌이 속에서 잃어버린 인간의 존엄성은 우리의 가슴에 많은 회한을 남긴다. 그러나 잃어버린 만큼 얻은 것도 많다. 나와 나의 가족이 밥을 먹고 일 년을 무사히 살았으며 내 자식이 보다 나은 미래를 가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 않았다. 밥을 열심히 벌면 밥을 베풀 수 있다는 신념도 잃지 않았다. '밥이 조국이다'라며 피눈물을 삼켜야 했던 '애니깽'들에 비한다면 우리는 축복받은 삶을 살고 있다.
밥은 희망이고 밥은 내일이다. 조국도 우리의 현실도 모두 밥 속에 들어 있다. 밥벌이에 전념하면서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사는 것이 잘 먹고 잘사는 것이리라. 밥벌이의 어려움 속에서도 지혜와 신념을 갖고 2014년의 떠오르는 태양을 맞이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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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 같이 밥한그릇합시다"
참으로 따뜻한 약속이지요
한솥 밥을 먹는다는것 귀한 인연이지요
님이 올린 밥 이야기에 마음이 먹먹해
그냥 가볍게 밥먹자는 인사로
새해인사를 할까합니다
우리 언제 만나면 밥한그릇해요^*
늘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빌겠습니다
그래요. 부담없이 인사로 하죠. "식사 한 번 합시다. "
그때마다 전 묻습니다. 언제냐고? 그리고 날을 잡지요. ㅎㅎㅎㅎ. 오늘도 전화로 얘기하다가 다음 주에 한 번 만나자고 인사로 말하는 분들과 날을 잡았지요. 월요일, 또 한 분은 화요일에. ㅎㅎㅎㅎㅎ 2014년 복 짓는 한 해 되시기 바랍니다.
밥벌이에 묶여사는 우리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입니다...
올해도 인간성을 잃지 않고 밥벌이 하도록 최선을 다해보겠습니다.
행복한 한해 되세요_()_
감사합니다. 선생님도 신나는 2014년 만들기 바랍니다.
밥 한번 먹어요 ^^/ 우리
참 정감 가는 말이지요. '밥 같이 먹자.' 부담없이 주고 받을 수 있는 정겨운 말, 그래요. 한 번 식사 같이 합시다. ㅎㅎㅎㅎ
새삼 밥 한톨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느끼고 갑니다. 늘 건강하시고 삶의 향기 들려주세요.^__^
감사합니다. 산울림, 고요한 산 속에 울려 퍼지는 소리 잘 듣고 있습니다. 신나는 2014년 만드십시오.
먹기위해 사나? 살기위해 먹나?? 현재 지금 무슨 생각하면서 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