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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년 이후의 역사는 빠져버렸네요. 뭐 그리 상관은 없습니다만 위의 울릉도의 역사에 대한 글의 일부 구절이 눈에 들어옵니다. '우산(于山)과 무릉(武陵) 두 섬이 울진 동쪽 바다 한 가운데에 있으며, 두 섬이 서로 거리가 멀지 않아, 맑은 날에는 바라볼 수 있고, 신라 때에 우산국(于山國), 또는 울릉도(鬱陵島)라 불렀다.' 라는 구절에서 무릉도(武陵島)는 무슨 섬을 말하는 것일까요? 조선왕조실록을 한번 검색해보겠습니다.
출처: 朝鮮王朝實錄 太宗實錄 三十二券 十六年
원문: 庚寅 以金麟雨爲武陵等處安撫使. 戶曹參判朴習啓 “臣嘗爲江原道都觀察使, 聞武陵島周回七息, 傍有小島, 其田可五十餘結. 所入之路, 纔通一人, 不可竝行. 昔有方之用者率十五家入居, 時或假倭爲寇. 知其島者, 在三陟, 請使之往見.” 上可之, 乃召三陟人前萬戶金麟雨, 問武陵島事, 麟雨言 “三陟人李萬嘗往武陵而還, 詳知其島之事.” 卽召李萬. 麟雨又啓 “武陵島遙在海中, 人不相通, 故避軍役者, 或逃入焉. 若此島多接人, 則倭終必入寇, 因此而侵於江原道矣.” 上然之, 以麟雨爲武陵等處安撫使, 以萬爲伴人, 給兵船二隻、抄工二名、引海二名、火㷁火藥及糧, 往其島, 諭其頭目人以來. 賜麟雨及萬衣笠靴.
해석: 경인(특정 시간입니다. 경은 갑을병정무기경신임계의 경에, 인은 자축인묘진사오미신유술해의 인입니다.)날에 김린우로 하여금 무릉 등의 장소의 안무사(벼슬 이름같습니다.)를 하게 하였다. 호조참판 박습이 일깨워주기를 " 신이 경험을 하였는데 강원도 도관찰사가 듣기를 무릉도를 두루 돌아다니면 7번 쉬며 (무릉도의)곁에는 작은 섬이 있으며, 그 밭은 50여 개를 맺는게 가능합니다(밭을 50개 만드는게 가능하다는 소리 같습니다.). 들어가려는 길의 장소는 겨우 한 사람만이 통할 정도이고(한 사람 정도가 다닐만한 넓이), 나란히 다니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옛날에 방지용이라는 사람이 있는데 15개의 집을 거느리고(15개의 가족들?) 들어가 살았으며, 어느 때에 왜인으로 가장하여 도적질을 하였습니다. 그 섬을 아는 사람이 삼척에 있는데 그 곳(삼척)에 사신을 보내 가서 보기를(무릉도의 방지용을 관찰하기 위해서 삼척의 무릉도를 잘 아는 사람에게 부탁하려는 듯 합니다.) 청합니다. " 라고 했다. 위에서(임금님이 말하기를) 그것을 가능하게 하였다. 이에 삼척사람 전 만호(만개의 집이라면 엄청난 부자일 듯 합니다.) 김린우를 불러 무릉도의 일을 묻자, 린우가 말하기를 " 삼척사람 이만이 무릉도로 가서 돌아오는 경험이 있으니 그 섬(무릉도)의 일을 자세히 알고 있습니다. " 라고 했다. 곧바로 이만을 부르고, 린우가 또 아뢰기를 " 무릉도는 멀리 바다 한 가운데 있으며, 사람들끼리 서로 통하지 아니하며, 그러한 이유로 군역자들(군 복무자들)이 피하러 오며, 혹은 도망을 하여 그곳에 들어갑니다. 이와 같이 섬을 접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곧 왜인들이 마침내 반드시 (섬에)도적질을 하러 들어갈 것이고, 이로 인하여 강원도는 침략을 당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라고 하니 위(임금님)에서 (린우의 말을)당연하게 여겼고 린우로 하여금 무릉 등의 장소의 안무사를 하게 하였으며 동료(전투병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만명으로 붙여 주었으며, 공인(기술자) 2명을 뽑아 주었으며, 해병(?) 2명을 이끌어 주었으며. 화구(불이 나오는 입구이므로 대포나 총같은 무기같습니다.)와 화약을 공급하고, 그 섬(무릉도)으로 가게 하여 그 우두머리와 보는 사람들이 되돌아오도록 타일렀다(도적질 하는 방지용을 되돌아오도록 한 것 같습니다. 해석이 어딘가 이상합니다. 저의 실력이 미천한 탓이니 너그러이 봐 주십시오. 흑흑흑.). 린우에게 만 벌의 옷과 삿갓과 신발을 공급하여 주었다.
저는 처음에 무릉도가 혹시 독도를 말하는 것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하였습니다. 그런데 위의 글을 보니 독도가 아닌 듯 합니다. 독도에는 밭 50개가 있을만한 땅이 없습니다. 그리고 저의 친구 중에 ㅎ아무개가 울릉도의 군대에서 훈련을 받았는데 울릉도에서 맑은 날에 독도를 바라보려고 해도 독도가 보이지 않았다고 합니다. TV프로그램에서 독도에 대한 프로그램을 했었는데 그 프로그램에서 울릉도에서 독도를 보려고 애썼습니다만 실패했습니다. 당시 저는 친구의 말과 프로그램에서 독도를 못 본 이유가 현대인들이 옛날 사람들에 비해 시력이 나빴거나 날씨가 그다지 좋지 않아서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지금 제가 나름대로 연구를 하다보니(?) 현재의 울릉도가 왜곡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게다가 맨 위의 글에서 러시아 사람의 회사가 벌목과 양목 권한을 갖는 장소를 생각하면 할수록 이상하게 느껴졌습니다. 당시 러시아는 일본과 한반도에서 팽팽한 줄다리기를 하였으며, 이로 인해 한반도 내에서는 군사적 긴장감이 팽배했습니다. 이러한 시절에 한반도를 야금야금 먹기 위해 러시아 왕조가 뿌리너를 통해 손을 쓴다고 할 때 한반도와 일본 열도 사이의 섬을 건들어 불에 기름을 붓기 보다는 지리상 러시아와 가까운 한반도 북부 지역을 야금야금 빼앗아 세력을 키우는 편이 더 효과적입니다. 혹시 압록강과 울릉도가 한반도 북부 지역에서 가깝게 위치한 게 아닐까요? 그럼 어디에 있었을까요? 일단 아래에 펌한 자료를 봐 주시기를 바랍니다.
출처: http://blog.daum.net/min0691/13722750
KBS 1TV 역사스페셜
독도 강치의 증언
-1905년 일제의 독도 침탈 비사
▣방송 : 2011. 10. 27(목) 22:00~22:50 (KBS 1TV)
▣진행 : 한상권 아나운서
▣연출 : 양승동 PD
▣글, 구성 : 고은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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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도에 서식하던 수만 마리의 ‘강치’(바다사자)! |
■ 독도 강치, 누가 어떻게 멸종시켰나? |
수만 마리의 강치가 서식하던 독도, 하지만 20세기 중반 이후 강치는 완전히 멸종되었다. 이제 강치는 사진, 박제품, 그리고 기록 속에서만 찾아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수만 마리의 강치는 왜 자취를 감춘 것일까? 강치 멸종의 가장 큰 사유는 일본 어부들의 무분별한 남획이다. 그 중심에 어부이자 사업가였던 ‘나카이 요자부로’가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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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강치 잡이 현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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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강치 잡이의 성행 |
일본 오키섬의 자연관, 이곳에서는 독도 강치의 각종 부위를 이용해 만든 공예품들이 전시돼있다. 당시 고급품이었던 이 가방은 파리박람회에 출품해 수상을 할 정도로 품질이 뛰어났다. 독도 강치의 쓰임은 이뿐만이 아니었다. 피하지방은 기름으로 살과 뼈는 비료로 이용했고, 새끼는 생포해 서커스용으로 팔아 넘겼다. 당시 ‘독도 강치’는 최고의 수입원이었고 그에 따라 강치 잡이도 성행했다. 당시 독도 강치 잡이 중심에 있던 ‘나카이 요자부로’가 오키도청에 제출한 강치 잡이 신고서에 따르면 1905년에만 2750두, 1906년 1385두, 1907년 2094두 1909년 1660두로 엄청난 수의 강치가 해마다 10,000여 마리 이상씩 어획되었다. |
■ ‘나카이 요자부로’! 독도 어업 독점을 꾀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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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이 요자부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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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05년 이전 독도는 무주지였나? |
일본 측은 독도가 무주지였으며 1903년 이후 ‘나카이 요자부로’가 독도에서 강치 잡이를 한 것이 독도를 실효 지배한 것이라며 일방적으로 독도를 편입시킨다. 그러면서 한국은 그전에 독도에서 어로행위를 한 적이 없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1962년 발간된 민국일보의 거문도 주민 ‘김윤삼’씨의 인터뷰 기사를 보면 일본 측의 독도가 무주지라는 주장은 잘못된 것임을 알 수 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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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문도 주민 ‘김윤삼’ 관련 기사-1962년 3월 20일 민국일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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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제국 칙령 제41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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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칙령 제41호, ‘석도’(石島) 명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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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도 강탈의 증거, 강치 |
1905년 일본의 어부 ‘나카이 요자부로’의 청원을 빌미로 이루어진 부도덕하고 은밀한 일본의 독도편입. 비록 일본인의 총칼에 살육 당했던 강치는 지금 사라졌지만 그 수난의 역사는 고스란히 남아 일본의 독도 편입은 명백한 ‘강탈’이었음을 증명하고 있다. |
1900년대라면 러일 전쟁이 일어나기 5년 전이군요. 그리고 아래 원문도 참고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원문출처: 朝鮮王朝實錄 高宗實錄 四十四券 四十一年
원문:
下勅宣書于政府, 頒布中外. |
勅宣書 一, 旣往韓、俄兩國間에 締結한 條約과 協定은 一體廢罷하고 全然勿施할 事. 一, 俄國臣民이나 會社에 認準한바 特許合同中 至今尙在其期限內者난 自今以後로 大韓政府가 以爲無妨한 者면 如前히 其認準을 繼續享有게하나 至於豆滿江、鴨綠江、鬱陵島森林伐植特許하야난 本來一個人民에게 許諾한거신대 實狀은 俄國政府가 自作經營할 外라 該特準規定을 遵行치아니하고 恣意로 侵占的行爲를하얏스니 該特準을 廢罷하고 全然勿施할 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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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칙선서를 정부에 내려 중심(수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과 바깥(수도 바깥의 지역들 같습니다.)에 반포한다. 칙선서 하나, 이미 갔었던 한국과 아국(러시아) 두 나라 사이에 체결한 조약과 협정은 일체폐파하고(폐기시킨다는 뜻입니다.) 전체적으로 당연히 시행하지 말아야 할 일이로다. 하나, 러시아 신민이나 회사에 인준한바 특허합동중 지금에 이르러 그 기한 내의 사람들은 높이 있게 되난(어딘가 해석이 이상하네요....) 스스로 지금 이후로 대한정부가 무방하다고 여기는 사람이면 여전히 그 인준을 계속 누릴수 있게 하나 두만강, 압록강, 울릉도 삼림벌식 특허에 이르러 하야난 본래 일개의 인민에게 호락한 거신대 실상은 아국정부(러시아정부)가 스스로 경영을 할 바깥이라(?) 마땅히 특별 인준 규정을 존행치 아니하고 마음대로 자기 뜻대로 침점적 행위를 하얏스니(뿌리너에게 준 권한을 러시아 정부가 누렸다는 소리를 하는 듯 합니다.) 마땅히 특별기준을 폐파(폐지)하고 전체적으로 당연히 시행하지 말아야 할 일이로다.
고종 황제께서 뿌리너에게 허락한 울릉도, 두만강, 압록강 삼림개발권을 폐지하시겠다고 선포하시네요. 이 때가 1904년의 일로서 러일전쟁이 시작되기 1년전의 일입니다. 이제 저는 뭔가가 보일려고 합니다. 강화도 조약 등을 통하여 일본은 한국에 영향력을 행사하였습니다. 일본의 억압에서 자유로워지려는 한국은 러시아를 끌어들여 일본을 견제하려고 애를 씁니다. 명성황후 민비는 친러정책을 시행하다 결국 을미사변의 참사를 당하십니다. 그래서 고종 황제는 아관파천을 하고, 러시아 사람에게 두만강과 압록강, 울릉도의 삼림개발권을 주는 등 러시아와 친해지려고 애를 씁니다. 그런데 한반도가 러시아 쪽으로 기울어지는 게 못마땅한 왜국 일본은 고종 황실에 압력을 가합니다. 겉으로만 왕이었지 실상 아무 힘도 없었던 고종 황제는 일제의 위협과 협박 속에서 점점 자신감을 잃어버리고 약해져 갑니다. 결국 무력하게 왜국에게 휩쓸리게 되고 왜국의 압력에 의해 러시아 사람에게 준 삼림개발권을 폐지합니다. 고종 황제의 삼림 개발권 폐지의 이면에는 왜국의 압력이 작용했으며 당시 왜국은 한반도와 만주를 완전히 자신의 영향력에 두기 위하여 러시아와 전쟁을 벌일 계획을 세웁니다. 미국과 영국의 자본가 집단이 왜국을 지원하여 왜국이 러일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게 도와준 사실은 쑹흥빙 씨가 지은 '화폐전쟁2' 란 책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러일전쟁이 일어난 이유가 왜국이 먼저 동해 해전을 일으키는 선제공격을 했다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보기에는 두만강, 압록강, 울릉도의 삼림재발권 문제에서 그 이유가 있는 듯 합니다. 고종 황제의 삼림재발권 폐지로 압록강, 두만강, 울릉도에서의 세력을 러시아는 잃어버렸습니다. 그 때에 왜국은 위에서 퍼온 글을 보듯이 울릉도 근처의 독도라는 섬에서 강치잡이를 하는 등 세력을 확장해 나갑니다. 러시아는 삼림개발권을 상실한 이유를 왜국의 개입이라는 것을 알고 왜국과 충돌할 준비를 합니다. 그리고 왜국은 이러한 러시아에 오히려 먼저 공격을 함으로서 승리를 얻게 됩니다.
이제 러일전쟁의 이면에 대해 어느정도 알았으니 러일전쟁의 도화선이 되었던 울릉도의 위치를 추측해보겠습니다. 저는 울릉도가 압록강과 두만강 근처에 있었던 섬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재 지도에 나오는 것처럼 멀리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강 근처에 있는 섬이라... 아마 바다로 흘러가는 강과 그 부근에 섬들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아래의 사진을 봐 주십시오.
출처: http://media.daum.net/foreign/others/view.html?cateid=1046&newsid=20110216171111639&p=mk
출처: http://cafe.daum.net/cpseoul/7Qxd/49?docid=1GXAi|7Qxd|49|20110407190315
아무르 강의 지도입니다. 사할린 쪽의 바다를 향해 흘러갑니다. 사할린 일대와 왜국 훗카이도 일대에는 섬들이 많습니다. 혹시 이 부근에 울릉도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압록강과 두만강은 아무르 강과 아무르 강의 지류가 아닐까요? 혹은 두 강 모두 아무르 강가의 지류들일까요? 자세히는 모르지만 저는 아무르 강과 사할린 일대의 섬들 중에 원래 울릉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위에서 왜국 사람들의 남획으로 물개의 일종인 강치가 멸종했다고 하는데 이는 울릉도를 현재의 울릉도로 보고 독도를 현재의 독도로 보기 때문에 멸종된 것이라 여긴다고 생각합니다. 사할린과 지금 왜국과 러시아 사이에서 마찰이 되는 러시아 영토 쿠릴 열도 사이의 바다에서는 물개들이 많습니다. 쿠릴열도와 사할린의 원주민들은 물개를 잡으며 먹고 살아갑니다.
저의 생각을 장황하게 써 봤습니다. 원문을 서툴게 해석하고, 비약이 심한 부분도 있고, 논리적으로 아딘가 어폐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만 그래도 읽어주신다면 감사하겠습니다. 사할린 지대의 물개 사진을 올릴려고 했는데 찾는데 실패했습니다. 흑흑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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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저도 잘은 모르지만 정황상 울릉도 이 조그만 섬을 나라라고 칭하는 자체가 말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울릉도 뿐 아니라 청해진 자체도 완도라고 할 수 있는지 의심스럽스기만 합니다. 오히려 산동반도 앞바다를 청해라고 송의 고지도에 표기된 것을 본 적이 있기는 합니다.
댓글 감사합니다. 저의 생각에 사할린에서 연해주에 이르는 지역이 원래의 강원도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반도, 일본 열도, 만주, 연해주의 지역에 조선이 아니라 고려라는 나라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시간이 남아 찾아 봤습니다.
무릉도(武陵島)가 울릉도거나 그 옆이다 했을 신...그게 뭔 바다 가운데의 왕릉이 아닐것이니...음차글로 봐야 할 겁니다.
곧,울릉도니 무릉도는...조선 한자 고유지명이 아닐 것이란 제 생각입니다.
극동이라면 역시 타타르나 몽골인들 언어를 써야 하니...
울릉"은...그들 뻑하면 자주 쓰는 울란(빨강,꼭히 빨강만도 아님)...
무릉"은 몽골제족들이 강 하류..물길들이 거대하게 얽힌 늪지대를 이르니...아무르강 하구라 봐야 하는데...
아무르 강 하구는 그렇다할 제도들이 없고...곧장 사할린과 맞다으니...
그 북단의 하바로브스크 만(灣) 중북부 해안의 섬들이 그 후보지일까 합니다.
그 쪽은 자료가 너무 않 나와서 정식 글론 못 올리겠고...
그 하바로브스크 해안으로 들어가는 아무르강의 훨 북쪽 강줄기가 있는데...오다(?)"강...라 표기됍니다.
그 강줄기의 하류가 엄청난 늪지대고...그 하류와 해안이 맞나는 곳들에 여러 제도들이 있습니다.
역시나 물개들의 서식지가 많고여...
이 하바로브스크 연해의 섬들간 바다 수심은 몇 미터 밖엔 않 돼니...과거 해수면이 좀 낮았을 시긴
물에 들락날락하는 모세의 그 바닷길 같이 이어졌을 겁니다.
타타르해협도 마찬가지겠고요.
세종 지리지는 일본 입장에선 역사왜곡의 포인트였을 것이니...
강원도 삼척부 소속이니 뭐니는 믿을게 없고...단지 강의 하류에 있는 섬이란 말로만 해석하면 됄 듯 합니다.
이 곳이 중요한 건...
러시아 해군들이...오브강타고 바이칼로...다시 아무르강 타고 타타르해협으로...
다시 하바로브스크 해안 요 울릉도(?)를 거처 베링해를 거처 아메리카로 연결돼는
유라시아와 아메리카를 가로지르는 강&연안항로 거점 중 하나란데 있습니다.
이제야 댓글답니다. 헤헤헤. 홍선생님의 말씀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한자를 음차글로 보고 판단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저의 짧은 생각에 왜구들 중에는 순수 왜인들도 있었겠지만 왜를 가장한 대륙의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호수가, 해안가에 사는 몽골인, 고려인, 조선인, 서역인 들 중에 꽤 될 듯 합니다.
하바로브스크 연해에 왜인들이 배를 타고 갈 수 있으나 시베리아 원주민들이나 섬에 사는 원주민들 중 일부도 왜를 가장하여 도적질을 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홍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저는 과거 고려 사람들의 영역이 동시베리아 일부 지역과 그 해안의 섬들이 아닐까 하는 느낌을 강하게 받습니다.
저는 제가 사는 한반도의 유물들 전체가 조작되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김병섭 님의 글처럼 한반도와 일본열도는 고려의 영토라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 이 고려는 대륙 장안을 중심으로 존재한 조선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었을 것입니다. 대륙조선사의 선구자들께서 한반도를 포기하려는 듯한 의도(?)가 있는 듯 하여 안타까웠습니다.
이야기가 많이 샜습니다. 죄송합니다. 현 울릉도와 독도는 조작된 것이라고 생각하며, 현재의 독도는 석도(石島), 즉 돌섬같구요, 압록강 근처에 울릉도가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압록강이 홍선생님께서 말씀하신 오다강일수도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데요, 모세의 기적도 원래 오다강, 캄차카 반도에서 퍼진 것이라면 매우 놀랍습니다.
이렇게 실력이 미천한 저의 글에 댓글을 다셔서 도움을 주신 위의 두 선생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들 건강하셔요.
울릉도의 중요성은 한국, 일본, 러시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중화'인민'공화국 등의 동북아시아 지중의 요새로서의 가치가 있는 것이죠. 해당지역의 군대주둔으로서만으로도 해당지역의 주도권을 가져갈 수 있는 천혜의 요지가 됩니다.
역사를 연구하는 사람으로서 접근을 해 본다면, 과거로 부터 이어지던 울릉도라는 지명이 현재의 그 섬이 적합한 가인가? 라는 화두에 적합한 근거적 접근을 해야 겠죠... 많은 부분이 적합해었기에 해당지역에 울등도의 지명이 들어선 것이 아닐까요? 신라시대 '우산국'이라고도 불리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