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속냐!' 꽤 오랜 시간, LG 팬들의 즐거운 시간은 4월까지였습니다. 그러던 LG가 어느새 포스트시즌은 당연히 갈 만한 팀으로 성장했는데요. 더 높은 곳을 바라는 팬들의 눈에는 부족한 점부터 보이는 게 사실입니다. 팬들이 잠시나마 힐링타임을 가질 수 있도록 희망찬 이야기들을 전해드리겠습니다.
"민호형이랑 친하냐고요? 국가대표도 한 번 못해봤는데..."
요즘 야구팬들, 정확히는 LG와 롯데팬들 사이에서는 '유강남이 강민호의 영혼을 흡수했다'는 말이 돈다. 유강남이 강민호의 타격폼을 벤치마킹하면서 성적이 좋아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작 개인적인 친분은 거의 없는 모양이다.
유강남은 8일 현재 97경기에 출전해 타율 0.260, OPS 0.765, 12홈런, 51타점을 기록 중이다.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대단한 성적이다. KBO리그 포수 중 국가대표인 강민호, 양의지 다음가는 기록이다. 특히 홈런은 양의지보다도 1개 많다. 팀 내에서는 무려 1위다. 대체선수대비승리기여도(WAR)도 1.56으로 포수 중 3위.
놀랍게도 LG 구단 역사상 10홈런 포수는 김동수, 조인성에 이어 역대 3번째다. 함께 잠실을 쓰는 두산까지 범위를 넓혀봐도 홍성흔, 양의지 외에는 없다. LG가 조인성 이후 명맥이 끊긴 프랜차이즈 공격형 포수를 드디어 얻게되는 것일까.
시즌 초에는 크게 고전했다. 1군에서 말소되던 날, 5월 29일 당시 유강남의 타율은 0.176였다. '강민호 스타일'로 변신하면서 결과가 좋아졌다.
6월 16일 1군 복귀전서 홈런을 쳤다. 이틀 뒤에는 5타수 3안타 1홈런 4타점. 2군에 다녀온 이후 55경기 166타수 51안타 10홈런 41타점, 타율 0.307, OPS 0.892다. 올 시즌 강민호가 OPS 0.837, 양의지가 OPS 0.811을 기록 중이다. 적어도 1군 복귀 후에는 강민호, 양의지만큼 치고 있는 셈이다.
유강남은 강민호의 타격폼을 항상 눈여겨보고 있었다. 2011년에 입단한 유강남도 나름 프로 밥을 먹을 만큼 먹었다. 자신이 해오던 게 있었으니 함부로 바꾸지는 못했다. 그러다 올해 초, 아예 바닥으로 떨어지자 이판사판 부딪혔다.
"하도 안 맞아서 이것 저것 다 해봤다. 물론 내 폼을 지키는 선에서의 변화였다. 이래도 안되고 저래도 안됐다. 2군 내려간 첫 날 결심했다. 어차피 안 되면 그냥 아예 바꿔버리는 방법이 낫겠다 싶었다."
이렇게 새 타격폼이 태어났다. 유강남은 "폼, 메카니즘, 마인드 다 바꿨다. 스탠스도 좁히고 방망이 위치도 조정하고 스트라이드도 줄였다. 최대한 스윙이 자연스럽게 흘러가도록 했다"고 밝혔다.
이어 "강민호 선배님이 치는 걸 보고 영감을 얻었다. 사실 캠프 때부터 따라 해서 몇 번 쳐봤다. 훈련 때도 가끔 그렇게 쳤다. 공이 잘 날아갔었다. 하지만 내 것이 있었기 때문에 주저했다. 그러다가 2군에 내려간 김에 아예 이렇게 쳐봤다. 홈런 레이스 한다 생각했다. 타이밍을 앞에 두고 휘둘렀다. 생각보다 결과가 좋았다"고 설명했다.
지금은 여기에 자기만의 노하우를 많이 덮어 씌운 상태다. 강민호의 폼을 기본으로 유강남의 스타일을 하나씩 가미하고 있다. 덕분에 타격만큼은 사실상 커리어 하이 시즌이다.
강민호에게 로열티라도 지불해야 되는 것 아니냐고 묻자 유강남은 "연봉 차이가 얼마나 나는데요"라며 펄쩍 뛰었다. 그렇다. 유강남은 올해 연봉 1억원에 계약했다. 강민호는 2014년 FA로 4년 총액 75억원을 받은 초특급 포수다.
그럼 밥이라도 한 끼 사야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사실 개인적인 친분은 없다"고 털어놨다. "제가 뭐 국가대표를 했던 것도 아니고 특별한 인연이 없다. 사석에서는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경기장에서 마주치면 인사하는 정도다. 가끔 타격에 관해 이야기를 해주실 때가 있어 귀담아 듣는다"고 돌아봤다.
폼도 폼이지만 가장 중요한 원동력은 역시 자신감이었다. 아무리 좋은 기술을 가졌더라도 펼쳐보이지 못하면 허사다. 유강남은 "타석에 들어가면 고민하지 않으려고 한다. 어떤 결과를 특별히 노리지 않는다. 자신있게, 후회없이 휘두르자는 생각이다. 그러다보니 예전처럼 움츠러드는 모습은 확실히 줄었다. 그렇게 돌리면서 운좋게 맞아나가는 타구들이 홈런이 되는 것 같다"고 겸손하게 말했다.
서용빈 1군 타격코치는 이런 점에서 선수들을 가장 편안하게 해준다. 타석에서 잡념이 생기면 끝이다. 이는 타격의 달인이자 LG 간판타자인 박용택도 강조하는 바다. 모든 고민은 웨이팅 서클에서 마쳐야 한다. 유강남에 따르면 서 코치는 최대한 개개인에 따른 맞춤형 도움으로 선수들의 부담을 덜어준다.
유강남은 "타자들의 변화를 서용빈 코치님이 제일 먼저 알아차린다. 좋았을 때 어땠는지, 나빴을 때 어땠는지 입력이 다 돼있는 모양이다. 우리가 최대한 편하게 칠 수 있도록 신경을 정말 많이 써 주신다. 안 맞기 시작하면 잘 맞을 때와 비교해 어디가 달라졌는지 바로 집어주신다"고 감사한 마음을 전했다. 특히 "무언가를 일괄적으로 주문하거나 강조하지 않으신다. 타자 성향 별로 꼬집어주셔서 많이 배운다"고 덧붙였다.
수비 이야기로 넘어가면서는 목소리가 작아졌다. 얼마 전에는 은퇴를 앞둔 NC 이호준에게 최고령 도루를 허용하기도 했다. 유강남은 WAR 리그 3위, 프랜차이즈 3번째 포수 등 거창한 수식어에 화들짝 놀라며 말도 안된다고 했다. 아직은 스스로 생각해도 수비가 많이 부족했다.
"무슨 3위냐, 가당치도 않다. 수비가 택도 없다. 한참 멀었다"며 스스로를 한껏 낮췄다. "사실 도루 저지는 아쉬운 점도 솔직히 조금 있다. 잡았다고 생각했던 것들도 많다. 이호준 선배님 도루를 허용한 날은 잠을 못잤다. 커브 타이밍에 뛰면 다음 동작이 쉽지 않아서 미리 대비를 해야한다. 그런데 그때는 전혀 뛸 줄 몰랐다. 준비를 안했다. 내가 소홀했다. 오명을 남겼다. 잠을 못잤다"고 회상했다.
다만 팀 평균자책점 1위를 지키는 팀의 주전포수라는 점에는 자부심이 있다. 눈에 보이는 타격 수치보다는 포수로서의 존재감 에 더 큰 보람을 느낀다. 팀이 잘 돼야 포수도 빛난다고 유강남은 생각한다.
유강남이 타격감을 찾으면서 LG도 최근 5강 싸움 불씨를 되살렸다. 팀 성적이 8월 차츰차츰 미끄러져 어느새 7위까지 떨어졌다. 주초 선두 KIA를 연파하며 5위가 다시 가시권에 들어왔다. 홈에 앉는 유강남의 눈에 LG는 어떻게 비쳤을까.
유강남은 "역시 막으면 이길 수 있다는 점을 확실히 느꼈다"는 한마디로 LG의 컬러를 명쾌하게 설명했다. 아무리 방망이가 안되는 날이라도 최소 실점으로 버티면 결국 찬스는 오기 마련이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팀 평균자책점 1위의 마운드를 이끄는 안방마님 유강남은 어깨가 더욱 무겁다.
"투수들이 지금껏 버텨줘서 여기까지 왔다. 어떻게 해서든지 실점을 줄여 버티면 된다. 1점, 2점을 내고도 비등비등하게 갈 수 있는 힘이다. KIA전에서 피부로 체험했다. 만약 5일 경기서 3점 홈런을 맞았지만 거기서 추가 실점했으면 우린 아마 졌을 것이다. 꾸역꾸역 막으니까 결국에 점수가 나긴 나더라. 나부터 정신을 똑바로 차려야겠다"고 각오를 단단히 다졌다.
20경기 남짓 남겨놓은 현 시점, 마지막 흐름이 드디어 찾아왔다는 걸 LG는 알고 있다. 끝으로 유강남은 "계속 잘 나가면 좋겠지만 오르막과 내리막은 분명히 있다. 8월에 힘들긴 했다. 오르막과 내리막의 일부다. 버티고 버티면 기회는 반드시 오리라 생각하고 다들 버텼다. LG가 남들이 밖에서 보는만큼 결코 그렇게 쉬운 팀은 아니라는걸 꼭 보여드리겠다"고 힘주어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