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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피와 차의 오글오글한 이야기 62
천하절경 구이린은 소수민족들이 많이 사는데,그중 홍야오족이 사는 세문체라 는 곳의 여인들은 장발로 유명합니다. 18세에 머리를 딱 한 번 자르고, 평생 동안 머리채를 기른 채로 살아갑니다.
만약 머리채가 없다면 죽어서 가족들이 나 남편의 옆에 묻히지 못한다고 하네 요. 이 곳의 차는 요우차라고 하는데, 찻잎을 기름에 볶은 뒤 뜨거운 물을 붓 고 찻잎은 건져 냅니다 . 그 물을 오목 한 종지에 붓고, 푹 삶은 뒤 오랜 동안 건조시킨 찹쌀을 넣어 먹습니다. 차는 마시는 법인데, 요우차는 젓가락으로 건더기를 건져내면서 먹다 보면 마른 찹쌀이 찻물을 다 흡수해서 마실 물이 남아있지 않습니다. 이 요우차를 아침 이나 간식 대용으로 먹습니다.
이 역시 차라고 부를까요? 차죽이라고 해야 할까요? 홍차의 고향 스리랑카, 실론의 하푸탈레는 최상급의 골든팁을 생산하는 다원들이 있는 곳입니다. 홍차의 왕이라고 불리우는 토마스맆튼 이 이 곳을 자주 찾아, 한 잔의 홍차를 마시며 광활한 차밭을 언제까지나 바라 보았다고 하지요.
영국인들은 찻잎을 따기에 부족한 노동 력을 보충하기 위해, 인도에서 타밀족 들을 데려와서 차 밭에서 노역을 시켰고 그 후손들은 아직도 집단을 이루어 노동 을 하고 있습니다. 고향이 그리운 타밀 인들은 사모사를 만들어 먹곤 했는데 일종의 만두와 같은 음식입니다.
고급의 찻잎을 다 수확하고 난 뒤, 남은 찻잎을 거두어 말린 것으로 차를 만들어 사모사와 함께 먹으며 타밀 사람들은 향 수를 달래었고 오늘날 하푸탈레의 사모 사는 맛있기로 유명합니다. 이처럼 한 잔의 차가 만들어내는 것이 무궁무진 합니다. 차마고도에서 수유차를 따라 참 멀리도 왔군요. 다시 돌아가 볼까 요? 이 장은 차마고도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차 마시는 법에 대해 이야 기하는 장인데, 그러다 보니 차마고도의 이야기가 나온 것이지요. 그러니 차마 고도로 다시 돌아가 이야기를 이어가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 신비로운 길을 따라가며 우리는 또 어떤 사람들과 어떻 게 차 마시는 사람들을 만나게 될까요?
차마고도를 오가는 마방들은 험준한 길을 오가면서 먹고 자는 것도 열악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들이 쉴 때는 자신들 보다 말들이 풀 을 먹을수 있는 곳이 더 중요합니다. 말에게 풀과 물을 먹게 한 뒤에야 비로 소 불을 피우고, 둥근통을 얹어 야크버 터와 물을 넣은 뒤 한 줌의 찻잎을 소중 하게 꺼내어 넣습니다. 소금에 절인 고기 한 조각과 뜨거운 수유차 몇 잔. 이것이면 마방들은 하루를 무사히 살아 낸 기쁨에 젖습니다. 차마고도의 마방 들은 수 만리 길을 다니면서 많은 것을 옮기고 바꾸고 변화시켰는데 음식도 그중 하나입니다. 윈난의 소수민족 중 에 나시족이 있는데, 차마고도의 길이었 던 호도협에서 멀지 않은 우무마을에 모여 살고 있습니다. 나시족은 동파문 자라는 자신들만의 문자를 가지고 있는 고유한 문화가 있는 사람들인데, 원래 유목 생활을 하다가 이 곳에 모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시족은 날씨가 서늘할 때 돼지를 잡아 각 부위를 해체해서, 소 금과 향신료를 발라 처마 밑에서 말리는 전통 비법으로 고기를 저장하는데 훠투이라고 하지요 . 훠투이는 원난의 많은 소수민족들이 자기들만의 방식으 로 만드는데,나시족의 훠투이를 만드는 방식은 교역의 힘이 적용되었다는 겁니 다.
이 저장 비법이 바로, 마방들이 전수해 준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은 보통 훈연 을 하거나 소금에 절여서 저장을 하는데 소금에 향신료를 더하는 것은 교역의 산물이었습니다. 마방들은 훠투이를 식량으로 해서 지방을 섭취했고, 고기가 오랫동안 상하지 않는 그 비법은 여러 곳에 전파되었을 테지요. 윈난의 랑허 현은 아창족과 다이족이 많이 사는데 그 시장은 예로부터 거리 음식들이 유명합 니다. 그런 음식들 가운데 닭발을 삶아 절구에 넣고 찧으면서 파는 음식이 있는 데,계속 절구질을 하는데도 닭발의 모양 은 전혀 으스러지지 않습니다. 절구에 고추와 장을 비롯한 양념과 여러 향신료 를 넣고 절구공이로 닭발에 맛과 색을 입히는 방식이지요. 이런 방식은 티벹 의 일부 유목민들이 음식을 만들 때 쓰는 방법으로,역시 마방들을 통해 전해 졌습니다. 원래 차마고도를 처음 개척 한 사람들은 많은 소수민족 중에 윈난의 나시족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도 차마고도에 대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지요.
중국과 티벹등 수많은 여행을 다닌 선생 에게 참 많은 이야기를 들었는데,여기는 차의 이야기를 하는 곳이니 이만 하기로 합니다. 차마고도의 이야기는 어지간히 했고,차와 말과 사람의 삶이 이어지는 위대한 여정을 잠깐이라도 흩어 보면서 마음이 설레었습니다. 아직도 많이 남 은 이야기는 이 글을 써 나가면서 계속 나올지도 모릅니다. 지금도 차마고도 를 다니면서 교역을 이어가는 마방들이 존재하고 그 길을, 사람들은 호도트레킹 이란 이름으로 구간을 정해 험난한 트레 킹에 도전합니다. 인간이란 아무리 험한 곳이어도,호기심을 쫒아 기어이 가 보고야 마는 존재인가 봅니다.
그런데 여기서 사람들이 기이하게 여기 는 티벳의 풍습 하나를 이야기하고자 합니다. 지금은 많이 사라졌다고는 하 나, 아직도 마방으로 생계를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가난한 지역엔 형제공처 의 풍습이 남아 있습니다. 윈난성을 비롯한 중국쪽의 마방들이 차를 팔기 위 해 티벳으로 떠났다면, 티벳의 마방들은 몇 개월 동안 채취해서 염장한 송이를 팔기 위해 길을 나섰습니다. 형제가 여럿이라면, 그 여럿이 한 명의 부인을 두고 공처해서 한 명만 집에서 가족들을 지키며 나머지 형제들은 돈을 벌어와서 식구들을 먹여 살립니다. 살기 위한 궁여지책의 처절한 풍습을 두고, 손가락 질 하며 음습한 시선으로 보아서는 안 되는 까닭입니다. 이제 마방이 사라지 면 형제공처의 풍습도 없어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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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그렇겠죠 변화의 물결은 예외가 없으니요 결국 좋은 것을 선택하게 되지 않겠어요
감사합니다 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