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계간 <문학동네> 문예공모에서 '경찰서여, 안녕'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온 신예 작가 김종광은 젊은 작가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든 강력한 서사구사능력과 해학과 풍자의 능란한 변주가 뛰어나 주목받는 작가이다.
이번 첫 창작집에서도 김종광은 자신의 이같은 작가적 역량을 고스란히 담아냈는데, 등단작이자 표제작인 '경찰서여, 안녕'을 비롯 모두 11편의 단편을 발표 순서대로 엮었다. 쉴새없이 일구어내는 웃음과 그 뒤에 자리잡은 연민과 비애의 시선은 김종광의 작업이 보기 드문 경우라는 것을 보여준다.
김종광의 장점은 우선 이야기 구조를 만들어내는 강력한 힘을 들 수 있다. 표제작 '경찰서여, 안녕'을 예로 들어보면 괴도 루팡을 꿈꾸는 한 소년의 이야기를 다소 과장된 듯한 소재임에도 능청스럽고도 그럴싸하게 서사 전체의 얼개와 호흡을 조율해낸다.
특히 그는 서사 자체를 드라마로 엮어내는 재주를 갖고 있다.
'분필 공화국'에서 보면 고등학교 교실을 소재로 한 소설임에도 기존의 여느 작품과는 달리 작가 자신의 시각을 개입시키지 않는다. 그 어떤 계몽적 시선도, 해부학자의 태도도, 알레고리 구성자의 이념적 편향도 내보이지 않고 오직 고등학교 체육시간에 벌어지는 사소한 사건만이 있을 뿐이다. 또 그를 어쩔수 없는 이야기꾼이게 하는 것은 작품 마디마디에 넘치는 해학과 풍자, 능청과 의뭉이다. '많이 많이 축하드려유'는 무려 30여명이 넘는 인물들이 속사포처럼 뱉어내는 원동기 면허시험자장에서의 능청스런 입담들을 빠르게 담아낸다.
문학평론가 김민수씨는 그의 문학적 배경에 대해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이 함께 심어져 있다"고 평가한다. '모종하는 사람들' 은 체험의 구체성이 돋보이는 작품으로 대학을 나왔지만 일자리가 없어 공공근로사업에 지원한 사람의 모습을 가감없이 그렸는데, 오늘의 현실을 살고 있는 민중들의 삶에 대한 작가의 성숙한 시선을 느끼게 해준다.
신예답지 않게 작가는 독자들로 하여금 노동의 고됨과 기쁨, 삶의 막막함에 대한 슬픔과 분노, 잔잔한 희망의 여백을 느끼게 해준다. '중소기업 상품설명회'는 농촌까지 침투한 자본주의의 상혼을 지렛대 삼아 이 시대 새로운 농촌의 단면을 여실히 드러낸다.
농촌을 짐짓 희화화시킴으로써 작가가 겨냥하는 것은 모두가 안간힘을 대해 도달하려는 '멋진 신세계'의 우스꽝스런 비애와 천박한 살림살이들에 대한 짙은 연민이다.
재기발랄한 젊은 이야기꾼은 책 뒤에 붙여진 후기를 통해 작가로서의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다.
"소설을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된 이상, 작금의 소설 시장이 제 아무리 난해해 보이더라도. 소설이 격과 차를 분명히 지닌 어떠한 것이라는 믿음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소설을 향한 진군을 멈추지 않는다면, 이전보다 더 높은 차원의 희열(격)을 맛볼 수 있을 것인데, 어찌 멈출 수 있겠습니까."
풍자와 해학 너머의 비애의 세계를 드러내고 감싸안으려는 김종광의 작가의식은 디지털 시대의 가벼움에 견주어 의미있는 가벼움의 가능성을 겨냥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그를 그동안 우리가 보아왔던 일군의 신세대 작가들과 구별하는지도 모르겠다.
첫댓글 김유정의 반어, 채만식의 풍자, 이문구의 능청스런 입담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