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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라사(俄羅斯)는 본시 우랄산맥 서(西)쪽의 소국(小國)이었다.
○ 세계사(世界史)는, 근세기(近世期)에 조선사(朝鮮史)를 해체(解體)한 후(後), 서구열강(西歐列强) 중심(中心)으로, 조급(躁急)하게 왜곡(歪曲), 조작(造作)하다 보니, 그 허점이 하나하나 발견되고 있으며, 『특히 “조선사(朝鮮史)는, 조선인(朝鮮人)을 위한, 조선인(朝鮮人)의 손으로”라는 목적(目的)을 가진 우리 카페가 중심적(中心的)이다. 이것 하나만은 자부심(自負心)을 가져도 좋다.』고 생각한다.
○ 세계사(世界史)의 왜곡(歪曲)과 조작(造作)된 곳에서 “아라사(俄羅斯)”국(國), 역시(亦是) 피할 수 없다. 『본시(本是) “아라사(俄羅斯)”는 우랄산맥(山脈) 서(西)쪽의 소국(小國)이었으며, 이곳에서 남(南)쪽으로 일만(一萬)리 되는 곳에 원(元)의 “대도(大都)”가 있었다.』고 하였다.
그렇다면 “대도(大都)”은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에 있었다는 것이며, 현 모스크바에서 아프가니스탄 북부(北部)의 “두산버 또는 사마르칸트는 직선거리(直線距離)로 3000km 가량”이나 된다. 결국(結局), 몽고족(蒙古族) 원(元)나라의 정체(正體)가 밝혀지게 될 것이다.
《이것은 “환국고려”님께서 게재한 글【조선사 일반이야기 게시판】에서 말하는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연경(燕京)’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지역(地域)이다. 해국도지(海國圖志) 아라사(俄羅斯) 편에서 말하는 것을 토대(土臺)로 보면,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地方)은 조선(朝鮮)의 제후(諸侯) 또는 속국(屬國)이었으며, 또는 변경(邊境)지방이었다는 우리 카페의 역사해설(歷史解說)과 똑같은 내용(內容)이랄 수 있다. 》
《현재(現在)의 ‘모스크바’에서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 : 왜곡된 역사통설(歷史通說)인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에서 말하는 옛 대도(大都)=연경(燕京)】까지는, 직선거리(直線距離)로 5,800 km 가 넘기 때문에, 일만(一萬)리라는 표현(表現)과는, 너무나 동떨어진 거리이며, 당시(當時) 아라사(俄羅斯)의 남(南)쪽 방향(方向)이 될 수 없다. 『이는 현재(現在)의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은 옛 “원(元)의 대도(大都)이 아니다.』 라는 직접적(直接的)인 증거(證據)요, 고증사료(考證史料)다. 특히 해국도지【海國圖志 : 청(淸)의 역사가(歷史家)이자 지리(地理)학자(學者)인 위원이 서력(西曆) 1,844년 저술(著述)하였다.】는 청(淸)나라 때인 19세기에 저술(著述)된 것임을 감안(勘案)해보면, 그 증거(證據)로써, 고증(考證)사료(史料)로써 충분(充分)한 여건(與件)이 갖춰졌다고 볼 수 있다.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논자(論者)들의 원흉(元兇)들은, 기필코 반역죄(反逆罪), 매국노(賣國奴)로 처단(處斷)해야 할 것이다.》
해국도지(海國圖志) 원문(原文)속으로 들어가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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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국도지(海國圖志) / 북양아라사연혁(北 洋 俄 羅 斯 國 沿 革)(原 無 今 補)
(1)〔皇清四裔考:俄羅斯國,東北至海;南接喀爾喀、準噶爾、哈薩克、土爾扈特;西接西洋諸國。: 황청사예고(皇淸四裔考) : 아라사(俄羅斯)국은, 동북(東北)으로 바다에 이르고 : 남쪽은 객 이 객(喀爾喀), 준갈이(準喝爾), 합살 극(哈薩克), 토 이 호 특(土爾扈特)과 접하며 : 서(西)쪽은 서양(西洋)의 여러 나라와 접(接)하였다. 秦漢為渾庾、屈射、丁靈諸國,匈奴並有其地;唐為骨利幹國,居瀚海北,其地北距海;元時為阿羅思、吉利吉思、昂可新地, 元史稱吉利吉思;南去大都萬餘裏,其境長一千四百裏,廣半之;有謙河西北流,注於昂可剌河;北入於海。: 진(秦)나라와 한(漢)나라 때의 혼 유(渾庾), 굴 사(屈射), 정령(丁靈)의 여러 나라였으며, 흉노(匈奴)가 나란히 그 땅에 있었다. : 당(唐)나라 때의 골 리 간(骨利幹)국으로 한해의 북쪽에 살았는데, 그 땅의 북쪽은 바다와 떨어져 있다. : 원(元)나라 때의 아라사(阿羅思)이며, 길 리 길 사(吉利吉思)이며, 앙 가 신(昻可新)의 땅이며, 원사(元史)에서 칭하는 길 리 길 사(吉利吉思)이다. : 남(南)쪽으로 대도(大都)가 만여(萬餘)리 떨어져 있으며, 그 지경은 길이가 일천(一千)사백(四百)리인데, 넓이의 반이다. : 겸하(謙河)가 있는데 서북(西北)으로 흘러, 앙가랄 하(昻可剌河)로 들어가 : 북쪽의 바다로 들어간다. 今俄羅斯有昂噶喇河,即元史昂可剌河也。昂可新者,元史謂即唐之骨利幹也;今名俄羅斯,即元阿羅思轉音也. : 지금의 아라사(俄羅斯)에 있는 앙 갈 라 하(昻噶喇河)는, 곧 원사(元史)에서 말하는 앙가랄 하(昻可剌河)이다. 앙 가 신(昻可新)이란, 원사(元史)에서 일컫는 곧 당(唐)의 골 리 간(骨利幹)이다. : 지금 이름은 아라사(俄羅斯)인데, 곧 원사(元史)의 아라사(阿羅思)가 전음(轉音)된 것이다. 〕하였으며, 그 주석(註釋)에는,
【주석(註釋) / 案:元時阿羅思為一國,欽察為一國,太祖滅之,以封其長子者也。: 안(案) : 원(元)나라 때 아라사(阿羅思) 한 나라, 흠찰(欽察) 한 나라였으나, 태조(太祖)가 멸하고, 그 장자(長子)를 봉하였다. 吉利吉思為一地,昂可剌為一地,謙州為一地,益蘭州為一地,此則隸於嶺北行營元帥府,皆在和林以北,以阿爾泰嶺、興安大嶺為界,在今日為俄羅斯東藩,而在元時則乃蠻故地,非阿羅斯所屬也,近始為俄羅斯所並 : 길리길사(吉利吉思) 한 곳, 앙가랄(昻可剌) 한 곳, 겸주(謙州) 한 곳, 익란주(益蘭州) 한 곳인데, 이것은 ‘영북행영원수부’에 종속(從屬)시켰는데, 모두 화림(和林) 이북(以北)이며, 아이태령(阿 爾 泰 嶺), 흥안대령(興安大嶺) 지경이다. 지금 있는 아라사(俄羅斯)의 동번(東藩)은, 원나라가 있을 때 만(蠻)의 옛 땅이며, 아라사(俄羅斯)에 속한 곳이 아니었으며, 근래에 처음 아라사(俄羅斯)가 이곳을 병합하였다.】고 하였다.
○ 위의 원문(原文)에서, 우리는 대륙조선사(大陸朝鮮史)와 관계(關係)되는 몇 가지 아주 중요(重要)한 사항(事項)을 발견(發見)하게 된다.
①「아라사(俄羅斯) 땅은, “당(唐)” 때 골리간(骨利幹) 나라로 한해(瀚海)의 북(北)쪽에서 살았다.」는 말은, ➡「한해(瀚海)는 아라사(俄羅斯) 남쪽지방이다.」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그곳은 “우랄산맥(山脈)의 서남쪽지대”를 말하는 것이 되는데, 곧 “아랄 해(海)의 서(西)쪽 지방인 ”카스피 해와 흑해(黑海)주변“이 해당(該當)된다.
②「아라사(俄羅斯) 남(南)쪽 일만(一萬)리에 원(元) 대도(大都)가 있다.」는 말은, ➡ 「“대도(大都)”는 현(現) 하북성(河北省) ‘북경(北京)=연경(燕京)’이 아니라,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지방에 있었다.」는 뜻이며, 흑해(黑海)와 카스피 해(海) 남(南)쪽 지대와 중앙(中央)아세아(亞細亞) 남부(南部)지방이다.
【위키 백과 /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 대도(大都) : 원(元)때의 대도(大都)는, 원(元)나라의 겨울 수도(首都)이다. 현재(現在)의 중국(中國) ‘베이징’이다.】라고 하였는데, 이러한 반도사관(半島史觀)=식민사관(植民史觀)의 역사해설(歷史解說)은, 망국(亡國)으로 가는 역사관(歷史觀)이란 것을 의심(疑心)치 않을 수 없다.
③「아라사(俄羅斯)는, 땅의 길이가 1천 4백리」라는 말은, ➡ 「당시 아라사(俄羅斯)는 조그만 소국(小國)이었다.」는 뜻이다.
④「아라사(俄羅斯) 동번(東藩) 땅은, 근래(近來)에 처음 병합(倂合)했다」는 말은, 조선사(朝鮮史)의 근대(近代)를 푸는데 아주 중요(重要)한 대목이랄 수 있다. 주석(註釋)편을 보자.
《吉利吉思為一地,昂可剌為一地,謙州為一地,益蘭州為一地,此則隸於嶺北行營元帥府,皆在和林以北,以阿爾泰嶺,興安大嶺為界,在今日為俄羅斯東藩,而在元時則乃蠻故地,非阿羅斯所屬也,近始為俄羅斯所並. : 길리길사(吉利吉思) 한 곳, 앙가랄(昻可剌) 한 곳, 겸주(謙州) 한 곳, 익란주(益蘭州) 한 곳인데, 이곳은 ‘영북행영원수부’에 종속(從屬)시켰는데, 모두 화림(和林) 이북(以北)이며, 아이태령(阿 爾 泰 嶺), 흥안대령(興安大嶺) 지경이다. 지금 있는 아라사(俄羅斯)의 동번(東藩)은, 원나라가 있을 때 만(蠻)의 옛 땅이며, 아라사(俄羅斯)에 속한 곳이 아니었으며, 근래에 처음 아라사(俄羅斯)가 이곳을 병합하였다.》고 하였다.
「근래(近來)에 처음으로(近始) 아라사(俄羅斯)가 이곳을 병합(倂合)하였다.」에서 “근시(近始)”란 말은 수백(數百)년 전을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 해국도지(海國圖志)가 서력(西曆) 1,844년에 저술(著述)되었다고 하니, 그 당시(當時) 또는 수십(數十)년 정도의 시차(時差)를 말하는 것일 게다.
그렇다면, 이곳이 어디냐? 위 원문(原文) 주석(註釋)에서도 말하고 있듯이, 「아이태산맥(阿爾泰山脈)과 흥안대령(興安大嶺)의 지경(地境)」인데, 원(元)나라가 있을 때, 이곳은 “만(蠻)”의 땅이라고 하였다. 이곳은 「우랄산맥(山脈)의 동쪽지방을 지칭(指稱)」하는 말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조선사(朝鮮史)의 한 페이지를 장식(裝飾)하는, 17세기【서력(西曆) 1654년과 1658년에 2차에 걸쳐 있었다.】에 있었던, 『조선군(朝鮮)의 나선(羅禪)정벌(征伐)』 은, 안타깝게도 우랄산맥(山脈) 주변(周邊)에서 일어났던 사건(事件)으로, 절대적(絶對的)으로 재(再)해석(解釋)이 요구(要求)되는 사안(事案)이다.
➡ 위 원문(原文) 주석(註釋)에서, 《근래에 처음 병합했는데, 본래 아라사(俄羅斯)의 땅이 아니었다.》는 설명(說明)이, 이를 증명(證明)해고, 증거(證據)하고 있다. 해국도지(海國圖志)는 : 『청(淸)의 역사가(歷史家)이자 지리(地理)학자(學者)인 “위원”이 서력(西曆) 1,844년 저술(著述)하였다.』고 하였으니, 『당시(當時)를 기준(基準) 근래(近來) 처음(始)으로 병합(倂合)했다.』는 이야기다 된다.
○ 우랄산맥(山脈)의 동쪽지대, 17세기 당시(當時)에는, 이곳이 “아라사(俄羅斯)”의 땅이 아니었다는 이야기다. 그렇다면 이곳 땅의 주인(主人)은 누구였는가? “만(蠻)의 땅”이라고 하였는데, 이것은 “조선영토(朝鮮領土)”를 숨기기 위한 것이다. 이곳은 모두 “조선영토(朝鮮領土)에 속(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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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라사(俄羅斯)의 인종(人種)은?
(2) 위 해국도지(海國圖志) :〔人皆長大,赤發,皙麵,綠瞳,以黑發為不祥,黑瞳者必曰陵苗裔也.: 사람들은 모두 장대(長大)하고, 붉은 머리에, 윤곽은 확실하고, 초록눈동자(綠瞳)이며, 검정머리털을 가진 자는 자세하지 않은데, 검은 눈동자를 가진 자들은 틀림없이 “이능(李陵)”의 후손들이다. 〕하였다. 이 말은 당시(當時) 아라사(俄羅斯) 땅에 황인종(黃人種)들도 살고 있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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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렇게 조선사(朝鮮史)를 해체(解體)하고 난 뒤, 세계사(世界史)는 조선사(朝鮮史)의 빈 자리를 채우기 위해, 왜곡(歪曲)과 조작(造作)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 땅은, 조선사(朝鮮史)의 영역(領域)으로 변경(邊境)지방(地方)이었으며, 서방(西方)과의 접경(接境)지역(地域)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 조선(朝鮮)이 흥성(興盛)할 때는, 이곳 중앙아세아(中央亞世亞)와 그 남(南)쪽, 북(北)쪽, 서(西)쪽으로 조선(朝鮮) 관리(官吏)들과 상인(商人)들의 발걸음이 잦았고, 그에 따라 조선(朝鮮)의 힘이 미쳤고, 문물(文物)이 전파(傳播)됐고, 조선(朝鮮)황제(皇帝)의 교화(敎化)가 미쳤다. 오늘날 그곳 지방에서 발견(發見)되고, 전해오는 이야기들은 모두 조선(朝鮮)의 영향(影響)으로, 조선(朝鮮)의 것들이 전파(傳播)되어 유행(流行)처럼 번졌다는 것을 의심(疑心)치 않는다.
○ 어설픈 사람들이 이곳을 방문(訪問)해 보니, 조선(朝鮮)의 문물(文物)과 대동소이(大同小異)한 것들이 있다고 하면서 호들갑을 떤다. 이들은 이곳이 조선(朝鮮)황제(皇帝)의 교화(敎化)가 미친 곳이란 생각은 전혀 염두(念頭)에 두지 못하고, 이러한 지방(地方)에서 조선(朝鮮)의 것을 발견(發見)하니, 생뚱맞게 이상(異常)한 주장(主張)을 한다. 이러한 분들은 조선사(朝鮮史)를 다시 공부(工夫)하고, 연구(硏究)해야 하지 않을까?
2014년 10월 05일 <글쓴이 : 문무(文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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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원의 대도가 알마티인줄로 짐작하고 있었는데 오늘 이글을 읽으니 위치비정이 더 확실해집니다
해국도지 속에는 그동안 우리가 접하지 못했던 많은 사실들이 기록되어 있는데, 시간이 나면 전체적으로 세밀하게 봤으면 좋겠습니다. 워낙 방대한 분량이라서.........중요부분이라도 조선사와 관계되는 부분을 소개해 드리고 있습니다. 최남석님! 조선사 연구에 많은 성원, 감사드립니다.
해국도지 북양 아라사 연혁에, 진 한때 정령, 당나라때 골리간, 원때 아라사의 위치가 어디였을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현 러시아의 주요부가 모스크바일대라 하더라도 ,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1689년 네르친스크조약, 1727 캬흐타조약, 1858년 아이훈조약)은, 해국도지가 쓰여질 때(1844~1852의 개정작업)때 보다 이른 시기임을 생각한다면, 현 몽골의 북부지방은 러시아의 영토(?)였고, 이를 감안하여 해국도지가 쓰여졌다면 정령, 골리간의 위치는 지금의 몽골 북쪽인 투바공화국 일대가 아닐까 합니다.
특히 앙가신의 땅 혹은 앙가랄하 라는명칭이 지금의 앙가라강에 남아 있어 정령 골리간의 위치는 시얀산맥 일대가 아닐까요?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이란 말에서 "청"이 현 대륙 땅에 있었는가? 하는 문제가 대두됩니다. 대륙조선사에서는 청이 현 대륙 땅에 없었다고 보는 것이구요. 따라서 "국경조약"이란 자체가 없는 것이 됩니다. 또 다른 사서는 회골의 서북방 3천리에 아라사가 있었다고 했기 때문에 당시의 아라사는 우랄산맥 서쪽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위글의 주석에 ‘지금 있는 아라사의 동번은 원나라가 있을 때 만(蠻)의 옛땅이며 아라사에 속한 것은 아니었으며 근래에 아라사가 이곳을 병합하였다’ 고 했는데, 만(蠻)의 위치를 우랄산맥 동쪽이라 하심은 이해할수 없습니다. 네르친스크 조약과 캬흐타조약은 왜곡된 것일까요...현 러시아와 중국(청)의 국경 조약은 언제 일까요.. 해국도지가 쓰여진 이후에 형성된것일까요....
러시아사람들은 푸른 눈에 붉은 수염은 맞지만 검정머리털에 검정눈동자를 가진이가 이릉의 후손이란 것 역시 황인종을 말하고 지금 투바공화국 인구의 70%이상이 황인종이라 하니
정령과 골리간의 위치는 현 투바공화국(시얀산맥) 일대가 아닐런지요...
중요한 것은 "아이태산맥과 흥안대령사이라고 했는데, 흥안대령이란 현 역사통설에서 말하는 대흥안령이 아니라는 것이죠. 또 이릉의 후손이란 수많은 인구를 가질 수 없는 한계가 있습니다. 또 이릉이 흉노선우와 싸우다가 포로로 된 곳 역시 현 외몽고 북방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만"이란 명칭은 황제의 교화기 미치지 못한땅을 이야기 하는 것이며, 현 유럽 땅 역시 "만"의 땅이라고 했습니다. 청과 러시아의 국경조약이란 없었다고 보며, 만약 러시아와 국경조약이 있었다고 한다면 "조선과 러시아의 국경조약"이 될 것입니다. 청은 여진이며, 여진은 우랄산맥 남쪽의 흑해와 카스피 해 주변과 그 동쪽 일부지방이 원토입니다.
현재 말하고 있는 많은 역사해설은 조선을 해체한 후, 빈자리를 메꾸기 위한 역사조작과 서구열강들의 땅뺏기 역사였다고 봅니다. 이것은 여기저기에 산재되어 있는 많은 원문을 보면서 느끼는 점입니다. 많은 성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기를 기원합니다.
청나라의 위치가 현 중앙아시아(천산부터 흑해까지)라 가정하고, 해국도지가 쓰여졌을 당시(1844) 청의 문자는 한자(漢字)라 봄이 타당할 것입니다. 지금 해국도지의 원문이 한자니여...아니면, 본래 그들(청)의 문자(만주어?)가 있었고 그들의 문자로 책(해국도지)를 완성한후 훗날 다시 한자로 번역하여 오늘에 이르게 된 것일까요...중앙아시아에서 한자가 쓰여졌을 개연성은 얼마나 될지 모르겠습니다.
아뭏튼, 정령 골리간 아라사는 러시아고, 해국도지가 쓰여졌을 당시(1844), 아라사(정령 골리간)은 우랄산맥 서쪽이었다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보통, 청의 멸망은 1911년으로 되어있는데 (물론 서서히 망국의 길을 걸었겠지만요..) 1844년 이후부터 아라사는 청을 멸하고 천산 북동쪽(현 시얀산맥 북쪽의 중앙 시베리아)의 조선령과 극동인 블라디보스톡까지 그야말로 일사천리로 그들의 점령지를 넓혔다는 이야기가 되는데, 불과 50년 사이에 가능할까요...
청나라(중앙아의 청)는 러시아의 동진(東進)을 어떻게 받아들였을지도 궁금합니다.
청과 러시아와의 국경조약도 없었고 두 나라는 언제 합병되었으며 1911년 청의 멸망은 또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천산 서쪽의 청(淸)에 관한 역사적 사실이 알려진 것이 없으니 .....
또 천산 서쪽의 청(淸)과 동쪽의 조선은 엄연히 서로 다른 두 나라였다는 이야기인데 역사적 사건들은 서로 밀접한 관계로 그 궤를 같이했다는 점은 어떻게 이해해야 할런지요.... 가령 조선의 동학과 청의 태평전국의 난...등
태평천국이 동학이요, 동학이 태평천국이라는 발상전환을 해 보면 어떨까요?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설명할 수 있다면 "조선사"는 이미 완성된 것과 다름이 없다고 봅니다. 그렇지 않으므로 해서 하나 하나 진실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을 찾아나서는 것이 아닐까요. 우선적으로 지리적인 위치, 지명, 종족, 부족들의 본래로부터 말입니다. 일사천리로 가능합니다. 그것은 조선이 이미 힘을 잃었기 때문이며, 이때 러시아는 우랄산맥 동쪽으로 진출하여 중앙아시아 및 신강성 북방에서 남하했습니다. 역사설명(현재의)에서 보면, 청과 러시아는 신강성 북지방에서 충돌을 많이 합니다. 여기에 서구열강들과의 복밥한 관계가 설정이 됩니다.
이러한 설명은 기존의 역사통설로도 설명이 가능한 것입니다. 19세기 중엽부터 시작된 서구열강들의 적극적인 침략은 1세기만에 온 지구상의 모든 것을 바꿔 놓았습니다. 근세기의 여러전쟁이나 서구열강들의 침략으로 인한 중앙아세아의 영토분쟁, 아프리카의 국경긋기, 이슬람 국가들의 땅뺏기등등 수없이 많은 일들이 1세기 간에 걸쳐 대부분 일어났던 사건들입니다. 골리간이든 정령이든 이들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당시의 <아라사국>이 핵심입니다. 일본(일제)는 수십년 만에 아시아를 절반 정도 침략했으며, 대륙의 오지인 내몽고 서쪽과 감숙성 신강성까지도 일부 부대가 침투했었습니다. 이런 여러가지를 함께 감안해 생각해 봅니다.
동학과 태평천국은 하나의 사건으로 대륙조선에서 일어났다 생각합니다. 하나의 사건을 둘로 쪼개놓은 것이죠...마찬가지로 청의 건륭제와 조선의 영조도 동일인일 가능성이 있고, 이자성의 난과 이괄의 난 역시 같은 사건으로 생각됩니다.
지난번 환국고려님께 드렸던 질문인데요 ..천산 서쪽에 있었다는 청(淸)의 실체가 모호합니다. 우선 국호가 청(淸)인지부터, 그들은 한자를 사용했는지, 연행록에 나오는 문화들은 있었는지..등등요..
모든것을 일관되게 다 설명할수는 없겠지만, 천산 서쪽의 세력이 동으로 처 들어와(병자호란) 조선의 황경을 접수했다 란 설정은 이해하기 어렵고,또한 대륙조선에서 천산너머로 연행갔다는것도 어려운 일입니다. 심양지나서 거의 북경(연경)까지 버드나무를 심었다 했는데 가능한 일인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