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사회에서 나타나는 이기주의의 팽배에 대해 꾸짖음과 그것을 극복하려는 자세 교훈등을 말해주고 있는 글이다. 요즘 컴퓨터에서 가장 많이 나타나는 익명성이 예로 나타나 있다.
"사람들은 이제 무얼 알 시간조차 없어지고 말았어. 사람들은 다 만들어 놓은 물건을 가게에서 산단 말이야. 그렇지만 친구는 파는 데가 없으니까, 사람들은 이제 친구가 없게 되었단다. 친구가 필요하거든 나를 길들여."
여우의 이 말 중에서 익명성이 상품화에 기인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하지만 이것은 물건을 상품화 한다는 것 이외에 사람또한 상품화되는 것을 잘 말해 주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사람들이 더 이상 친구를 필요치 않으며 모든 사람에 대해 똑같이 연관관계를 맺음이 되는 것이다.
●둘째, 그러한 사회적 조건에 비추어 볼 때, 참다운 인간 관계를 형성하는 데에 이 글에서 암시하고 있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이 어떠한 의의와 한계를 지니고 있을까?
→ 참다운 인간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어려운일이다. 이것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이라는 것이 필요할것같다. 솔직히 요즘 친구를 사귈때 그냥 어쩔수 없이 친구를 두는 경우들이 많이 있다. 그 사람을 안다고 할때에는 그사람의 가족관계나, 성격, 좋아하는것등을 알고 있을때 좀더 가까운 사이라 할수 있다. 여우처럼 좀더 멀리서 그냥 지켜보다가 그다음은 얘기를 나누고 점점 가까워질 수 있는 그런 시간이 필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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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가 보기에 나도 다른 수만마리의 여우와 똑같잖아? 그렇지만 네가 나를 길들이면 우리는 서로 아쉬워질거야. 내게는 네가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존재가 될 것이고 네게도 내가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여우가 될거야’
익명의 관계는 다른 사람의 정체나 인격과는 상관없이 필요에 따라 부분적으로 결합하고 협조하는 것이어서 언제라도 그 필요성이 사라지면 그 관계도 쉽게 해소된다. 그런데 여우는 「길들임」으로써 그런 익명성을 극복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모든 것이 상품화된 사회에서 서로를 길들이고 구속하면서 일상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삶의 행복을 느끼게 되고 서로를 소중한 존재로 여길 수 있는 개인적 차원의 노력은 분명 현대사회의 익명성을 극복할 수 있는 실마리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개인적 차원의 극복 방안은 사회 구조적 측면에서 볼 때 어쩔 수 없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현대는 대중사회이고 그속에서 구조적으로 상품화가 되있는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곳은 없다는 말처럼 아무리 노력해도 각 개인의 노력은 한정되 있는 것이다.
●셋째, 그리고 이를 토대로 하여, 그 한계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도대체 어떤 것이 될 것인가?
→ 이런 문제점을 극복해 나갈수 있는 방안에는 어떤것들이 있을까 ? 이기심이 날로 늘어가는 지금에서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사람에 대한 배려와 관심이 필요하다.
본문의 내용중에 어린왕자는 장미꽃들에게 자신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얘기하는 부분에서 자신에게 어떠한 의미가 부여되지 않으면 현대인은 고독감을 느끼게 된다. 이점을 극복하기 위해서 나자신이 가장 특별한 사람임을 자각하고 나 자신을 개발시켜나가는 자세가 필요할 것이다. 또 사회의 성원들에게 개인의 존재를 소중하게 여기게되는 생각을 만드는 것은 어떨까~?
마지막으로 이글에서 나오는 ‘길들임’은 익명성을 없애기위한 필요 요소이다. 하지만 이것만 가지고는 모든 문제를 해결할수 없음으로 사회적인 여러 가지 측면들을 결합시켜야 좀더 인간적인,정이 넘치는 사회로 발전할수 있을 것이다.
첫댓글 자신이 소중한 만큼 타인에 대한 배려와 관심을 가져야 하겠습니다 수고 하셨습니다.[19]
나는 나와 너는 너를 결합시킨다면 마징가개발 이후에 최대의 사건이 될듯...(18)
자기자신을 사랑할줄 모르면 다른 사람도 사랑할수 없다니까요..(17)
익명성에 촞점을 두셨군요... 극복하기 위해서는 익명성을 파괴하는 것이 나을까요? 어쩌면 현대사회의 필요악일수도... 수고하셨습니다....(18)
그렇죠? 익명성과 상품성에 초점을 맞추다 보니, 다소 논리적 연관성 부분이 떨어지는 듯 하네요. 길들임이 익명성을 없애는... 그렇겠지요만... 내가 누군가에게 특별한 존재가 되는 것은, 내가 그를 특별한 존재로 맞아들이기 때문은 아닐까요[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