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은 어느 누구도 안전비행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자욱한 연무로 4500명의 주민이 거주하는 알래스카 최북단 도시에 위치한 배로(Barrow)봉의 시야는 4분의 1 마일도 채 되지 않았다. 주변 340마일 북극권 상층의 기온은 온화했지만 빙점에 가까웠다. 습도는 거의 100%였고 날씨는 비행기 날개를 고드름으로 만들기에 더할 나위 없이 충분했다. 심지어 남동쪽으로 500마일 떨어진 페어뱅크스(Fairbanks)에서 출발하는 알래스카 항공 비행기도 항로를 변경하여 비행했다.
이 비행기에는 조종사가 타고 있지 않았다. 어느 누구도 안전비행을 장담할 수 없는 찌푸린 9월 아침을 슬며시 빠져나가는 무인비행기였던 것이다. 길이 3피트, 무게 30파운드의 단발 무인비행기는 반쯤 얼어붙은 보퍼트해(Beaufort Sea)를 넘어 정상적인 조종사라면 비행을 포기할, 북극 소용돌이를 헤치며 나아가고 있었다. 미국 콜로라도대학의 기상학자가 탑재한 폭풍 조사장비를 싣고 있는 이 무인비행기는 앞으로 10시간 동안 호기심 어린 벌새처럼 이리저리 하늘을 탐색하며 떠다닐 것이다.
최근 들어 무인비행기는 군 작전의 핵심적인 존재로 부각되고 있다. 얼마 전에도 알 카에다 공격작전에 미군이 미사일-발사 무인비행기를 사용했다. 이제 무인비행기는 알래스카뿐 아니라 우리 생활 속에도 조금씩 보급되고 있다. 무인비행기는 할리우드의 고공비행 액션영화 촬영에서부터 하와이에서 커피농작물의 수확시기를 알아내거나 일본에서 쌀 종자를 논에 뿌리는 데까지 사용되어 왔다.
그러나 무인비행기가 보편적인 미국 상업비행기로 자리잡기에는 중요한 걸림돌이 있다. 연방항공국의 무인비행기 운행 표준지침이 없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매우 제한적인 비행계획을 허가받기 위해서도 몇달씩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다. 게다가 수백만달러에 달하는 민간 무인비행기 가격은 지나치게 비싸다.
그러나 5년 동안 배로봉 주변의 대양과 대기에 관해 연구를 담당하고 있는 콜로라도대학 짐 마스라니크 교수의 경우는 다르다. 그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에어로손데(Aerosonde)사가 제작한 무인비행기를 태평양 기상감시에 이미 사용해오고 있다. 이 비행기들은 하루 이상 공중에 높이 떠있을 수 있으며 조종사가 비행하는 것보다 더 낮게, 더 천천히 비행할 수 있어 더욱 정밀한 측정을 가능케 한다. 또한 조종사가 하기에 아주 위험한 상황에서도 임무를 수행할 수 있다.
생명을 담보할 필요가 없는 일이지요. 조종사 없는 비행기로는 아무도 다치지 않으니까요. 마스라니크 교수의 말이다.
국립항공우주박물관의 선임관리자인 톰 크라우치의 말에 따르면 조종사 없는 항공기는 라이트형제가 북 캘리포니아 키티호크(Kitty Hawk)에서 첫 엔진 비행기를 이륙시키기 전부터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1990년 초 24개의 인공위성으로 이루어진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이 개발되면서 조종사 없는 항공기의 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기 시작했다. 현재의 무인비행기는 철저하게 통제된 항공로를 따라 운행되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 어느 지점으로도 갈 수 있다. 또한 이리듐(Iridium) 네트워크와 같은 저궤도 통신 인공위성들로 인해 무인항공기의 한계는 없어졌다.
무인비행기는 이전부터 라디오신호로 제어되어 왔으며, 이는 안테나 범위 밖을 벗어날 수 없음을 의미했다. 하지만 지금은 인공위성을 경유해 제어신호가 전달되기 때문에 외딴 지역까지 어디든 날아갈 수 있다.
탄소섬유와 같이 가벼운 소재 또한 무인비행기를 만드는 주요 요소다. 무인비행기가 천천히 날고 장기간 공중에 높이 떠 있으려면 가벼워야 한다. 무인항공기의 가격은 일본에서 점점 인기를 끌고 있는 8만달러 원격제어 모형 헬기에서부터 하와이 커피수확에 사용된 300만달러 태양전기 방식 무선비행기까지 다양하다.
유(U)자 모양의 패스파인더(Pathfinder) 플러스 모델은 에어로바이런먼트(AeroVironment)사가 제작한 무게 800파운드, 날개 길이 121피트의 무인비행기다. 지난 9월말 미국 항공우주국(NASA) 연구원이자 클라크대학의 지구과학 교수인 스탄 허위츠는 하와이에서 가장 큰 커피 재배지인 카우아이(Kauai)에서 가장 숙성된 커피 모종의 위치를 알아내기 위하여 두대의 카메라를 탑재한 패스파인더를 사용하였다.
허위츠 교수의 동료인 짐 브래스(Jim Brass)는 로스앤젤레스 북쪽에 위치한 가브리엘 산맥의 산림화재 현장을 보기 위해 무인비행기를 사용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연방항공국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무인비행기가 산림청의 통제 아래 나무를 솎아주기 위한 화재현장으로 접근할 경우 온타리오(Ontario)에 있는 교외 공항으로 가는 항공로에 근접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연방항공관청은 무인비행기가 혼잡한 영공에 들어가는 것을 원치 않았다.
이런 일은 민간 무인비행기 사용시 일반적으로 일어나는 문제다. 조종사가 있는 소형 비행기의 경우 약간의 비행통지 혹은 무통지로 거의 어디라도 비행할 수 있다. 그러나 무인비행기는 작은 공간을 비행하기 위해 연방항공국으로부터 제한적인 허가장인 공인증명서가 있어야 한다. 그 증명서를 받는 데 수개월이 걸린다.
조종사 없는 항공 수송수단을 이용하는 데 연방항공국의 제약이 너무 많아 무인비행기의 상용화가 어렵다고 업계 전문가들은 말한다. 정부기관은 아직 무인비행기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최소 표준조차 발표하지 않고 있다. 무인비행기 조종사 훈련지침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부 회사는 무인비행기의 수익모델을 찾으려 하고 있다. 영화와 광고의 추격장면을 찍는 데 5인치 반 길이의 무인헬기가 사용된다. 업계 소식통은 특별히 교통과 환경감시 분야에서 작은 저공비행용 무인비행기 시장이 열릴 것이라고 내다본다.
`무인 조정 수송수단'이라는 책의 지은이인 제임스 머세이(James Masey)씨는 민간 무선비행기 산업을 전망하며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걸음마 단계에 있지요. 그러나 결국은 유인 항공기가 그랬듯이 진보를 위한 걸음을 내딛게 될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