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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
☪ 최초 불교 경전 《숫타니파타》
숫타(Sutta)는 말의 묶음(經)이란 뜻이고, 니파타(Nipata)는 모음(集)이란 뜻이다. 따라서 ‘말의 모음집’이라는 의미다. 불교의 많은 경전 중에서 가장 초기의 경전이라는 점에서 중요하고 의미가 크다. 불교 경전이 다 그렇듯이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자들이 스승의 가르침을 간추려 간결한 산문 형태나 시 형태로 묶은 것이다. 암송하기 쉽게 구전되었기 때문에 원형 그대로 후세에까지 전해질 수 있었다. 경전에는 여승(女僧)에 대해서 한마디도 없는 것으로 보아 초기 불교 형태를 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숫타니파타는 모두 1,149수의 시를 70경으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다섯 장으로 나누었는데, 1. 뱀의 비유(蛇品), 2. 작은 장(小品), 3. 큰 장(大品), 4. 여덟 편의 시(義品), 5. 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 등이다. 첫째, 사품에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세상도 다 버리고 ‘뱀이 묵은 허물을 벗듯’,‘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는 구절이 반복되고, 두 번째 작은 장에는 부처님이 속가의 아들인 라훌라에게 한 당부가 담겼다. 세 번째 큰 장에는 열두 개의 경이 실려 있는데, 부처님의 전기, 바라문과 사성 평등(四姓 平等) 등 이치를 담고 있으며, 네 번째 여덟 편의 시편은 시로 이루어진 경이 많기 때문에 의품이라고 이름 붙인 것인데, 한역 의품경이 바로 이것이다. 다섯 번째 장, 피안에 이르는 길은 다른 경전들과는 달리 전체가 통일성을 지니고 있다. 즉 열여섯 명 바라문이 한 사람씩 부처께 물으면 대답해 주는 형식으로 모두 18절로 되어 있다. 숫타니파타에 실린 다섯 장 중에서, 제4장만 일찍이 한역되어 대장경에 수록되었고, 전체 번역은 인도의 재가 신자 지겸(支謙)이 오나라 초기(223∼253)에 번역하였다. 우리나라에는 아주 늦게 알려졌는데, 이는 초기 불교에 대한 충분한 이해 없이 대승불교를 접한 데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숫타니파타는 단순하게 표현된 초기 불교를 볼 수 있는데, 후기에 이루어진 경전처럼 현학적이거나, 번거로운 교리는 찾을 수 없다. 부처님은 단순하고 소박한 인간으로서 가야 할 길, 모순과 갈등으로 이루어진 데서 해탈의 세계(彼岸)에 이르는 길을 말씀하신 것이었다. 진리란 간단명료한 것임을 이 경전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19세기 이래 유럽에서는 영역과 독역이 이루어졌고, 일본에서도 5종이나 번역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글대장경〉과 〈정음문고〉에서 번역되고, 법정스님이 생전에 〈남전대장경(南傳大藏經)〉을 모본으로 번역한 이 책은, 도쿄대학 교수를 역임하기도 한 나카무라 하지매(中村元) 교수가 번역한 것을 참고했다고 했다.
【1장】뱀의 비유(蛇品)
1. 뱀의 독이 몸에 퍼지는 것을 약으로 다스리듯, 치미는 화를 삭이는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
17. 다섯 가지 장애물을 뛰어넘고, 번뇌와 의혹을 물리쳐 괴로움을 벗어던진 수행자는 이 세상도 저세상도 다 버린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
26. 소 치는 다니야가 말했다.
“나에게는 갓 태어난 송아지도 있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있습니다. 새끼 밴 어미 소도 있고, 암내 내는 암소도 있습니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있습니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27. 스승이 대답하셨다.
“나에게는 갓 태어난 송아지도 없고, 젖을 먹는 어린 소도 없다. 새끼 밴 어머 소도 없으며, 암내 내는 암소도 없다. 그리고 암소의 짝인 황소도 없다. 그러니 신이여, 비를 뿌리려거든 비를 뿌리소서.”
…
33. 이때 악마 파피만이 말했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기뻐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로 인해 기뻐한다. 사람들은 집착으로 기쁨을 삼는다. 그러니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기뻐할 것도 없으리라.”
34. 스승이 대답하셨다.
“자녀가 있는 이는 자녀로 인해 근심하고, 소를 가진 이는 소 때문에 걱정한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은 마침내 근심이 된다. 집착할 것이 없는 사람은 근심할 것도 없다.”
35.“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폭력을 쓰지 말고, 살아 있는 어느 것도 괴롭히지 말며, 또 자녀를 갖고자 하지도 말라. 하물며 친구이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36.“만남이 깊어지면 사랑과 그리움이 생긴다. 사랑과 그리움에는 고통이 따르는 법, 사랑으로부터 근심 걱정이 생기는 줄 알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47.“우리는 친구를 얻는 행복을 바란다. 자기보다 뛰어나거나 대등한 친구는 가까이 친해야 한다. 그러나 이런 친구를 만나지 못할 때는 허물을 짓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58.“널리 배워 진리를 아는, 생각이 깊고 현명한 친구를 가까이하라. 그것이 이익이 됨을 알고 의심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59.“세상의 유희나 오락 또는 쾌락에 젖지 말고 관심도 갖지 말라. 꾸밈없이 진실을 말하며,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68.“최고의 목표에 이르기 위해 열심히 노력하고, 마음의 안일함을 물리치고 수행에 게으르지 말며, 부지런히 정진하여 몸의 힘과 지혜의 힘을 갖추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71.“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
75.“사람들은 자신의 이익을 위해 친구를 사귀고 또한 남에게 봉사한다. 오늘 당장의 이익을 생각하지 않는 그런 사람은 보기 드물다. 자신의 이익만을 아는 사람은 추하다.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대장장이 춘다]
대장장이네 아들 춘다가 말했다.
“위대하고 지혜로운 성인, 눈을 뜬 어른, 진리의 주인, 집착을 떠난 분, 최고의 인간, 뛰어난 마부께 저는 묻겠습니다. 세상에는 어떤 수행자들이 있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스승은 대답하셨다.
“춘다여, 네 종류의 수행자가 있고, 다섯 번째는 없느니라. 지금 그 물음에 답하겠다. ‘도의 승리자’‘도를 말하는 사람’‘도에 의해 사는 사람’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이니라.”
대장장이 춘다가 말했다.
“도의 승리자, 도를 말하는 사람은 어째서 다른 사람과 견줄 수 없으며, 도에 의해 산다는 것은 무슨 뜻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그리고 도를 더럽히는 자에 대해서도 말씀해 주십시오.”
“의혹을 넘어서고 고뇌를 이기고 열반을 즐기며, 탐욕을 버리고 신들을 포함한 온 세계를 이끄는 사람, 이런 사람을 ‘도의 승리자’라 하고, 눈을 뜬 사람들을 말한다.
이 세상에서 가장 으뜸가는 것을 가장 으뜸가는 것으로 알고, 법을 설하고 판별하는 사람, 의혹을 버리고 동요하지 않는 성인을 수행자들 중에서 둘째로 ‘도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잘 설명된 진리의 말씀인 도에 의지해 살면서 스스로 절제하고, 깊이 생각해 잘못된 말을 하지 않는 사람을 수행자들 중에서 셋째로 ‘도에 의해 사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맹세한 계율을 잘 지키는 체하지만, 고집 세고 가문을 더럽히며, 오만하고 남을 속이며, 자제력 없고 말 많고, 그러면서도 잘난 체하는 사람을 가리켜 ‘도를 더럽히는 자’라고 한다.
학식 있고 현명한 재가 수행자는 ‘그들 네 종류의 수행자는 다 이와 같다’고 알아, 그들을 통찰하여 그와 같음을 보더라도 믿음이 변하지 않는다. 그는 더럽혀진 것과 더럽혀지지 않은 것, 깨끗한 이와 깨끗하지 않은 자를 혼동할 염려가 없기 때문이다.”
[극복]
“사람이 죽어서 쓰러졌을 때는 몸이 부어서 검푸르게 되고, 무덤에 버려져 친척도 그것을 돌보지 않는다. 개나 여우, 늑대, 벌레들이 파먹고, 까마귀나 독수리 같은 날짐승이 쪼아먹는다. 이 세상에서 지혜로운 수행자는 깨달은 사람의 말씀을 듣고 그것을 완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는 있는 그대로 보기 때문이다. ‘저 죽은 시체도 얼마 전까지는 살아 있는 내 몸뚱이와 같은 것이었다. 살아 있는 이 몸도 언젠가는 죽은 저 시체처럼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알고 안팎으로 몸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야 한다. 저세상에서 육체의 욕망을 떠난 지혜로운 수행자는 죽지 않고, 평화롭고 멸하지 않는 열반의 경지에 도달한다. 인간의 이 몸은 부정하고 악취를 풍기므로 꽃이나 향으로 은폐되어 있다. 그렇지만 온갖 오물로 가득 차 있어 여기저기서 그것이 흘러나오고 있다. 이런 몸뚱이를 지니고 있으면서 스스로 잘난 체하거나 남을 무시한다면 그는 눈먼 소경이 아니고 그 무엇이겠는가.”
[성인(聖人)]
“이미 돋아난 번뇌의 싹을 잘라 버리고 새로 심지 않고, 지금 생긴 번뇌를 기르지 않는다면, 이 홀로 가는 사람을 성인이라 부른다. 저 위대한 성인은 절대 평화의 경지를 본 것이다.
모든 것을 이기고 모든 것을 알며, 지극히 지혜롭고 여러 가지 사물에 더럽혀지지 않으며, 모든 것을 버리고 집착을 끊어 해탈한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스스로를 자제하여 악을 행하지 않고, 젊었을 때나 중년이 되어서도 자신을 억제한다. 그는 남을 괴롭히지 않고 남한테서 괴로움을 받지도 않는다.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성의 접촉을 끊고 어떤 젊은 여성에게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며, 교만하지도 태만하지도 않은, 그래서 속박에서 벗어난 사람, 현자들은 그를 성인으로 안다.
출가한 이와 집에 있는 이는 거처와 생활 양식이 같지 않다. 집에 있는 이는 처자를 부양하지만, 계율을 잘 지키는 이(출가자)는 무엇을 보아도 내 것이라는 집착이 없다. 집에 있는 이는 남의 목숨을 해치고 절제하기 어렵지만, 성인은 자제하고 항상 남의 목숨을 보호한다. 마치 하늘을 나는 목이 푸른 공작새가 아무리 애를 써도 백조를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집에 있는 이는 세속을 떠나 숲속에서 명상하는 수행자에게 미치지 못한다.”
【2장】작은 강(小品)
[보배]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상에 사는 것이건 공중에 사는 것이건 다들 기뻐하라. 그리고 마음을 가다듬고 내 말을 들어라.
밤낮으로 재물을 바치는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어라. 함부로 대하지 말고 그들을 지켜라. 이 세상과 저세상의 어떤 부(富)라 할지라도, 천상의 뛰어난 보배라 할지라도, 우리들의 완전한 스승에게 견줄만한 것은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마음의 통일을 얻은 스승은 번뇌와 욕망과 죽음이 없는 경지에 도달한다. 이 이치와 견줄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이 뛰어난 보배는 그 이치 속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성문 밖에 선 기둥이 땅속에 깊이 박혀 있으면 거세게 불어오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 것처럼, 성스런 진리를 관찰하는 착한 사람은 이와 같다고 나는 말한다. 이 뛰어난 보배는 승단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초여름의 더위가 숲속의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듯이, 눈 뜬 사람은 평안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셨다. 뛰어난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 행복하라. 뛰어난 것을 알고 뛰어난 것을 주고, 뛰어난 것을 가져오는 위 없는 이가 으뜸가는 진리를 설했다. 이 뛰어난 보배는 눈 뜬 사람 안에 있다. 이 진리에 의해서 행복하라. 모든 살아 있는 것들이여, 지상에 사는 것이건 공중에 사는 것이건 신과 인간이 다 같이 섬기는 완성된 승단에 예배하자. 행복하라.”
[부끄러움]
“부끄러움을 잊어버리고 또 싫어해서 ‘나는 당신의 친구다’라고 말하면서도 도움을 주지 않는 사람, 그는 내 친구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친구들에게 실천이 없이 말만 앞세우는 사람은 ‘말 만하고 실천하지 않는 사람’임을 어진 이는 알고 있다.
우정이 끊어질까 듣기 좋은 말을 하면서도 친구의 결점만을 보는 사람은 진정한 친구가 아니다. 아기가 엄마 품에 안기듯이 그 사람을 의지하고, 다른 사람 때문에 그 사이가 멀어지지 않는 사람이야말로 진정한 친구다.”
[더없는 행복]
이와 같이 나는 들었다. 어느 날 거룩한 스승께서는 사맛티의 제타 숲 외로운 사람들에게 먹을 것을 나누어 주는 장자의 동산에 계셨다. 그때 모습이 아름다운 신이 한밤중이 지난 제타 숲을 두루 비추며 스승께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고 예의를 갖춰 절한 뒤 한쪽에 서서 물었다.
“많은 신과 사람들은
행복을 바라고 있습니다.
으뜸가는 행복을 말씀해 주십시오.”
“어리석은 사람을 가까이하지 말고 어진 이와 가깝게 지내며 존경할만한 사람을 존경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분수에 알맞은 곳에 살며 일찍이 공덕을 쌓고 스스로 바른 서원을 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지식과 기술을 쌓고 그 위에 말솜씨가 뛰어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부모를 섬기고 아내와 자식을 사랑하고 보호하는 것. 일에 질서가 있어 혼란스럽지 않은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
“수행을 하고 깨끗하게 행동하고 거룩한 진리를 깨닫고 열반의 경지를 실현하는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세상일에 부딪혀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고, 걱정과 티가 없이 편안한 것.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이러한 일을 한다면 어떤 일이 닥쳐도 실패하지 않는다. 어느 곳에서나 행복할 수 있다. 이것이 더없는 행복이다.”
[라훌라] (부처님의 속세 아들)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라훌라여, 늘 가까이 함께 있기 때문에 너는 어진 이를 가볍게 여기는 것은 아니냐.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 주는 사람을 너는 존경하고 있으냐?”
라훌라가 대답했다.
“늘 함께 있다고 해서 어진 이를 가볍게 여기는 일은 없습니다. 모든 사람을 위해 횃불을 비춰 주는 사람을 저는 항상 존경하고 있습니다.”
“사랑스럽고 즐거움이 되는 다섯 가지 욕망의 대상을 버리고, 믿음으로 집을 떠나 고통을 없애는 사람이 되라. 선한 친구와 사귀라. 마음을 떠나 깊숙하고 고요한 곳에서 머물라. 그리고 음식의 양을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 되라. 옷과 음식과 병자를 위한 물건과 거처, 이런 것에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 다시는 세속으로 돌아가지 말라. 육체의 욕망 때문에 아름답게 보이는 겉모양을 떠나서 생각하라. 육신은 부정한 것이라고 마음에 새겨 두고 마음을 하나로 집중시키라. 마음에 자취를 두지 말라. 마음에 도사린 오만을 버리라. 오만을 없애면 그대는 평화로운 나날을 보내리라.”
참으로 거룩한 스승은 라훌라 존자에게 이와 같은 시로써 되풀이하여 가르치셨다.
[제자 담미카의 물음]
스승께서 사밧티 제타 숲 동산에 계실 때, 재가 신자 담미카가 오백 명 신도들과 같이 스승께 와서 예의를 갖춰 절한 뒤, 시로써 물었다.
“지혜가 넓으신 고타마여, 당신께 묻겠습니다. 가르침을 받으려는 사람은 출가하는 것과 집에서 믿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을까요. 아지바카 교도이건, 자이나 교도이건 논쟁을 즐기는 어떤 이교도라 할지라도, 모두 지혜로운 당신을 따를 수 없습니다. 마치 서 있는 사람이 달리는 사람을 따를 수 없는 것처럼. 스승이시여, 당신께서 말씀하신 진리는 오묘하고 또한 평화를 가져다줍니다. 원컨대 저희들에게도 설해 주십시오. 더없이 눈 뜬 분이시여.”
스승께서 말씀하셨다.
“수행자들이여, 내 말을 들어라. 번뇌를 없애는 이치를 그대들에게 말하겠노라. 그대들은 모두 그것을 잘 지키라. 뜻을 보는 지혜로운 이는 출가한 사람에게서 그 행동을 배우고 따르라. 수행자는 제때가 아닌 때는 돌아다니지 말라. 정해진 시각에 탁발을 하러 마을에 가라. 때가 아닌데 다니는 것은 집착에 얽매인 것이다. 그러므로 눈 뜬 사람들은 제때가 아닌 때에는 나다니지 않는다.
모든 빛, 소리, 냄새, 맛, 촉감은 사람을 도취시킨다. 이 다섯 가지 욕망을 삼가고 정해진 시각에 아침밥을 얻으러 마을에 들어가라. 그리고 수행자는 정해진 때에 얻은 밥을 가지고 홀로 그늘에 앉으라. 자신을 다스리고 안으로 돌이켜 마음이 밖으로 쏠리게 해서는 안 된다. 만일 가르침을 듣고자 하는 사람이 있거나 다른 수행자들과 함께 이야기할 일이 있거든, 그 사람에게 훌륭한 진리를 보여주어라. 이간하는 말이나 남을 헐뜯는 말을 해서는 안 된다.
(…)
수행자는 음식을 씻고 침구와 가사를 세탁할 물 같은 것에 집착하여 더럽히는 일이 없다. 마치 연꽃잎에 구르는 물방울처럼. 재가자가 해야 할 일을 말하리라. 이와 같은 사람은 좋은 가르침을 듣고 배워서 따르라. 순수한 출가 수행자에 대한 규율을. 소유의 번거러움이 있는 사람이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다. 살아 있는 것을 직접 죽여서는 안 된다. 또 남을 시켜 죽여서도 안 된다. 그리고 죽이는 것을 묵인해도 안 된다. 난폭한 것을 두려워하는 모든 생물에 대해서 폭력을 거두어야 한다.
(…)
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든지 가져서는 안 된다. 슬기로운 사람은 음행을 회피하라. 타오르는 불구덩이를 피하듯, 만일 불음(不淫)을 닦을 수가 없더라도 남의 아내를 범해서는 안 된다. 둘이 있든 여럿이 함께 있든, 누구도 남에게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남에게 거짓말을 시켜도 안 된다. 또 남이 거짓말하는 것을 묵인해도 안 된다. 모든 허망한 말을 하지 말라. 술을 마셔서도 안 된다. 그것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미치게 하며 어둡게 하는 것인데, 어리석은 사람들은 이를 즐기고 있다. (ㅋㅋ)
(…)
첫째, 살아있는 것을 해치지 말라. 둘째, 주지 않는 것을 가지지 말라. 셋째, 거짓말을 하지 말라. 넷째, 술을 마시지 말라. 다섯째, 부정한 짓을 하지 말라. 여섯째, 밤에는 음식을 먹지 말라. 일곱째, 화려하게 치장하지 말고 향수를 쓰지 말라. 여덟째, 땅 위에 마련된 자리에서만 자라. 이것이야말로 여덟 부분으로 된 재계(齋戒)고 고뇌를 없애버린 부처가 가르친 바이니라.
(…)
법답게 얻은 재물을 가지고 부모를 섬겨라. 떳떳한 장사를 하라. 이와 같이 열심히 살고 있는 재가자는 죽은 후 ‘저절로 빛이 난다’는 신들 곁에 태어나리라.”
【3장】큰 장(大品)
[출가]
눈이 있는 사람은 어째서 출가를 했는지, 무엇을 생각한 끝에 출가를 선택했는지 그의 출가에 대해서 나는 이야기 하리라.
“집에서 사는 생활은 비좁고 번거로우며 먼지가 쌓인다. 그러나 출가는 널찍한 들판이며 번거로움이 없다”그렇게 생각해 출가한 것이다. 출가한 다음에는 몸으로 짓는 나쁜 행위를 멈추었다. 말로 짓는 악행도 버리고 아주 깨끗이 생활하였다. 눈 뜬 사람은 마가다국, 산으로 둘러싸인 왕사성으로 갔다. 수려한 모습을 가진 그는 탁발하기 위해 그곳으로 간 것이다. (…)
마가다 왕 빔비사가 높은 다락에서 그를 발견하고는 수레가 갈 수 있는 곳까지 달려간 뒤 수레에서 내려 그의 곁에 앉으면서 말했다.
“당신은 젊음이 넘치는 인생의 봄입니다. 용모도 수려한 것으로 보아 귀한 왕족 태생인 것 같습니다. 코끼리 무리를 앞세운 날쌘 군대를 당신께 드리겠으니 그것을 받아 주십시오”
이에 코타마가 말했다.
“저쪽 히말라야 기슭에 한 정직한 민족이 있습니다. 예전부터 코살라국의 주민으로 부와 용기를 갖추고 있습니다. 성은 ‘태양의 후예’라 하고, 종족은 ‘석가족’이라 합니다. 왕이여, 나는 그런 집에서 출가했습니다. 욕망을 채우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모든 욕망에는 근심이 있고, 출가는 평화롭다는 것을 알고 힘써 정진합니다. 내 마음은 이것을 즐기고 있습니다.”
[정진]
악마 나무치가 말했다.
“당신은 여위었고 안색이 나쁩니다. 당신은 죽음에 임박해 있습니다. 힘써 정진하는 길은 가기 힘들고 행하기 힘들며 도달하기도 어렵습니다.”
이에 스승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게으름뱅이의 친구여, 악한 자여! 그대는 세속의 선업을 구해서 여기에 왔지만, 내게는 세속의 선업을 찾아야 할 필요가 털끝만큼도 없다. 악마는 선업의 공덕을 구하는 자에게 가서 말하라. 내게는 믿음이 있고 노력이 있고 지혜가 있다. 이처럼 정진하는 나에게 너는 어찌하여 삶의 집착을 말하는가.”
그리고,
“너의 첫째 군대는 욕망이고, 둘째 군대는 혐오이며, 셋째 군대는 굶주림, 넷째 군대는 집착이다. 다섯째 군대는 권태와 수면, 여섯째 군대는 공포, 일곱째 군대는 의혹, 여덟째 군대는 겉치레와 고집이다. 나무치여, 이것들이 바로 너의 군대이다. 검은 악마의 공격군이다. 용감한 사람이 아니면 너를 이겨 낼 수가 없지만, 용감한 사람은 너를 이겨서 즐거움을 얻는다.”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설법을 듣고 스승께 말씀드렸다.
“훌륭하십니다. 고마타여. 훌륭하십니다. 고타마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주듯이, 가려진 것을 벗겨 주듯이, 길을 잃은 자에게 길을 가르켜 주듯이, 그리고 ‘눈 있는 이는 빛을 보리라’하면서 암흑 속에서 등불을 비춰 주듯이, 고타마께서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법을 보여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 당신께 귀의합니다. 그리고 진리와 도를 닦는 수행자의 모임에 귀의합니다. 고타마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그 후에 바라문 순다리카 바라드바자는 스승께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그리고는 얼마 후 장로 순다리카 바리드바자는 홀로 멀리 떠나 게으르지 않고, 정진한 끝에 더없이 맑고 깨끗한 행의 궁극을 – 많은 사람들이 바로 그것을 얻기 위해 집을 떠나 집 없는 상태가 된다 – 이생에서 스스로 깨달아 이를 증명하고 실천하였다. 순다리카는 장로는 성인의 한 사람이 되었다.
[수행자 사바야]
사바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수행자라 부릅니까? 어떤 사람을 눈 뜬 사람이라고 합니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스스로 도를 닦아 완전한 평화에 이르고 의혹을 뛰어넘고 생과 사를 버리고 청정한 수행을 하며, 이 세상에 거듭 태어나지 않는(윤회) 사람, 그를 ‘수행자’라 합니다. 모든 시간과 윤회와 목숨이 있는 것의 생과 사, 그 두 가지를 분별하고 티끌을 털어 버리고 깨끗하게 생을 멸한 사람 그를 ‘눈 뜬 사람’이라 합니다.”
또다시 사비야가 물었다.
“어떤 사람을 바라문이라 합니까? 어떤 사람을 성인이라 부릅니까?”
“모든 악을 물리치고 때 묻지 않고 마음을 잘 가라앉혀 스스로 안정시키며, 윤회를 넘어서 완전한 자가 되어 걸림이 없는 사람 그를 ‘바라문’이라 합니다. 안팎으로 바른 것과 그른 것을 알고 인간과 신의 숭배를 받아 집착의 그물을 벗어난 사람, 이런 사람은 바로 그 때문에 ‘성인’이라 불립니다.”
(…)
이에 사비야가 말했다.
“당신은 저에게 의혹이 있는 것을 아시고 저를 의혹에서 건져 주셨습니다. 저는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성인이시여, 성인의 길을 다하신 분이여, 마음이 거칠지 않은 태양의 후예시여, 당신은 인자하십니다. 고귀하신 분이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가장 뛰어난 분이시여, 당신께 예배드립니다. 신들을 포함한 온 세상에서 당신에게 견줄 만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당신은 깨달은 분입니다. 당신은 스승이십니다. 당신은 악마를 정복한 분이며 현자이십니다. 당신은 번뇌의 숨은 힘을 끊고 스스로 거센 흐름을 건너셨고 또 사람들을 건너게 해 주십니다.”
사비야는 그때 바로 스승 앞에서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았다.
이번 장에는 이외에도 [바라문 세라], [젊은 바셋타], [비난하는 사람 코칼리아], [홀로 가는 수행자 나라카] 등 수행자와 바라문들의 이야기가 많이 실려 있으나, 여기에 다 옮기지는 못했다. 하나만 더 소개하면 이렇다.
[화살]
사람의 목숨은 정해져 있지 않아서 얼마를 살지 아무도 모른다. 삶은 애처롭고 짧으며 고뇌로 엉켜 있다. 태어난 것은 죽음을 피할 길이 없다. 늙으면 죽음이 찾아온다. 생이 있는 자의 운명은 실로 이런 것이다. 익은 과일은 빨리 떨어진다. 그와 같이 한번 태어난 자는 죽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에게는 항상 죽음의 두려움이 있다. 젊은이도 늙은이도, 어리석은 이도, 지혜로운 이도 모두 죽음에 굴복하고 만다. 그들은 죽음에 붙잡혀 저 세상으로 가지만, 아비도 그 자식을 구하지 못하고 친척도 그 친척을 구하지 못한다.
세상 사람들은 죽음과 늙음으로 인해서 고통받는다. 그러나 지혜로운 이는 이것의 참모습을 잘 알고 슬퍼하지 않는다. 그대는 온 사람의 길을 모르고, 간 사람의 길도 모른다. 그대는 생과 사 양쪽 끝을 보지 못하고 부질없이 슬피 운다. 슬피 우는 것으로는 마음의 평안을 얻을 수 없다. 다만 괴로움만 깊어지고 여월 따름이다. 자신이 지은 업에 따라 죽어가는 사람들을 보라. 살아 있는 자는 죽음에 붙잡혀 떨고 있지 않은가. 사람이 백 년을 살거나 그 이상을 산다 할지라도 결국은 친족들을 떠나 이 세상에서의 생명을 버리게 된다. 그러므로 존경하는 사람의 말을 듣고, 죽은 사람을 보았을 때는 ‘그에게는 이미 내 힘이 미치지 못하게 되었구나’라고 깨달아 슬퍼하거나 탄식하지 말라.
진정한 즐거움을 구하는 사람은 슬픔과 욕심과 걱정을 버리라. 번뇌의 화살을 뽑으라. 번뇌의 화살을 뽑아 버리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면 모든 걱정을 초월하여 근심 없는 자, 절대 평화의 세계에 들어간 자가 될 것이다.
【4장】여덟 편의 시(義品)
[욕망] (766∼771)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면 그는 얻고자 하는 것을 얻었기 때문에 기뻐한다. 욕망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이 욕망을 이루지 못하게 되면, 그는 화살에 맞은 것처럼 괴로워하고 번민한다. 뱀의 머리를 밟지 않으려고 조심하는 것처럼, 모든 욕망을 피하는 사람은 바른 생각을 가지게 되고 이 세상의 집착을 넘어서게 된다.
논밭, 집, 황금, 말과 소, 노비, 여자, 친척, 그 밖에 여러 가지를 탐내는 사람이 있으면 온갖 번뇌가 그를 이기고 위험과 재난이 그를 짓밟는다. 마치 부서진 배에 물이 새어들듯이, 괴로움이 그를 따르게 된다. 그래서 사람은 항상 바른 생각을 지키고 모든 욕망을 피해야 한다. 배에 스며든 물을 퍼내듯이, 욕망을 버리고 거센 강을 건너 피안에 도달한 사람이 되라.
[분노]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남에게 자기의 계율과 도덕을 자랑하는 사람, 스스로 자기 일을 떠들고 다니는 사람은 거룩한 진리를 지니지 못한 사람이라고 진리에 도달한 사람들이 말한다. 모든 사물의 본질을 확실히 알고 자기의 생각에 집착하지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기만의 좁은 생각의 울타리 안에 갇혀 진리를 등지고 또 집착을 버리지 못하는 것이다.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이 세상 어디를 가든, 모든 살아 있는 것에 대한 편견을 보이지 않는다. 사악함을 물리친 사람은 교만과 거짓을 버렸거늘 어찌 윤회에 떨어질 것인가. 그에게는 이미 의지할 것도 가까이 할 것도 없다. 모든 일에 기대고 의지하는 사람은 비난을 받는다. 그러나 기대고 의지함이 없는 사람은 어떻게 비난받을 수 있겠는가. 그는 집착하지도 않고 버리지도 않는다. 그는 이 세상에서 모든 편견을 없애버린 것이다.
[으뜸 가는 것]
여러 가지 다른 견해로 분열된 사람들 사이에 있으면서도 어느 한쪽을 따르는 일이 없고, 어떤 견해일지라도 그대로 믿는 일이 없는 사람, 그는 양극단에 대해서 여러 생존에 대해서, 이 세상에 대해서도 저 세상에 대해서도 원하는 바가 없다. 모든 사물에 대해 단정하는 편견이 그에게는 조금도 없다.
그는 세상에서 본 것, 배운 것, 또는 사색한 것에 대해 티끌만 한 편견도 가지지 않는다. 어떠한 견해에도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이 이 세상에서 어찌 그릇된 생각을 하겠는가? 그는 그릇된 생각을 하지 않고 어느 한 견해만을 특별히 존중하지도 않는다. 그는 모든 가르침을 원하지도 않는다. 바라문은 계율이나 도덕에 이끌리지 않는다. 이러한 사람은 피안에 이르러 다시는 이 세상을 돌아오지 않는다.
[늙음]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물건, 그것은 그 사람이 죽음으로써 잃게 된다. 나를 따르는 사람은 현명하게 이 이치를 깨달아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 잡히지 않는다. 잠이 깬 사람은 꿈속에서 만난 사람을 다시 볼 수 없듯이, 사랑하는 사람도 죽어 이 세상을 떠나면 다시는 만날 수 없다. 아무리 권세가 있던 사람도 한번 죽은 후에는 이름만 남을 뿐이다.
성인은 어떤 곳에도 머물지 않는다. 사랑하거나 미워하지도 않는다. 또 슬픔도 인색함도 그를 더럽히지 않는다. 마치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연꽃잎에 물방울이 묻지 않듯이 성인은 보고 배우고 사색한 어떤 것에도 더럽혀지지 않는다. 사악함을 털어 버린 사람은 보고 배우고 생각한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다. 그는 다른 것에 기대어 깨끗해지려고 하지 않는다. 그는 탐내지 않고 탐욕에서 떠나려 하지도 않는다.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
구도자 팃사 마이트레야가 말했다.
“스승이시여, 성교에 빠지는 자의 파멸을 말씀해 주십시오. 당신의 가르침을 듣고 우리도 멀리할 것을 배우겠습니다.”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마이트레야여, 성교에 빠지는 자는 가르침을 잃고 그 수행은 그릇되고 나쁘다. 이것은 그들 안에 있는 천한 요소이다. 지금까지 순결하게 살다가 나중에 성교에 빠지는 자는 길에서 벗어난 수레와 같다. 세상 사람들은 그를 천한 범부라 부른다. 그는 남에게 욕을 먹으면 날카롭게 반응하고 거짓말을 한다. 이것이 그의 커다란 결점이다.
속된 일에서 떠나는 것을 배워라. 이것이 모든 성자에게 있어 으뜸가는 일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자기가 최상이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다만 평안에 가까워졌을 뿐이다. 성자는 온갖 욕망을 거들떠보지 않으며, 이를 떠나 수행하고 거센 흐름을 건넜기 때문에, 온갖 욕망에 속박되어 살고 있는 사람들은 그를 부러워한다.”
“눈 뜨신 분께서는 직접 체험하신 위험과 재난을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오. 계율이나 정신을 안정시키는 방법도 함께 말씀해 주십시오”
“눈으로 보는 것을 탐내지 말라. 저속한 이야기에 귀 기울이지 말라. 맛에 빠져들지 말라. 세상에 있은 어떤 것도 내 것이라고 고집하지 말라. 고통을 겪을 때도 결코 비탄에 빠져서는 안 된다. 생존에 집착해서는 안 된다. 무서운 것을 만났을 때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음식이나 옷을 얻더라도 너무 많아서는 안 된다. 또 그런 것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걱정해서도 안 된다. 마음을 안정시키라. 흔들려서는 안 된다. 후회하지 말라. 게으르지 말라. 그리고 수행자는 한가하고 고요한 앉을 자리와 누울 곳에서 살아야 한다.
점을 많이 쳐서는 안 된다. 부지런하고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게으름과 거짓과 수다와 이성의 사귐과 겉치레를 버려라. 내 제자는 꿈을 해몽하거나 관상을 보거나 점을 쳐서는 안 된다. 수행자는 비난을 받더라도 걱정해서는 안 된다. 칭찬을 받더라고 우쭐거려서는 안 된다. 탐욕과 인색과 성냄과 욕설을 멀리해야 한다. 그들은 스스로 이기거나 남에게 지는 일이 없다. 나는 남에게서 전해 들은 것이 아니고 스스로 깨달은 진리를 보았다. 나의 가르침에 게으르지 말고 항상 예배하고 따라 배우라.”
[멧타구의 질문]
멧타구가 물었다.
“당신은 베다(흰두교 경전)에 통달한 분이고, 마음을 수양한 분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 있는 갖가지 괴로움은 도대체 어디에서 생겨난 것입니까?”
스승께서 대답하셨다.
“멧타구여, 그대는 내게 괴로움이 생기는 원인을 물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을 그대에게 말하리라. 세상의 온갖 괴로움은 집착에서 생긴다. 집착을 만드는 어리석은 사람은 어리석음 때문에 또다시 괴로움에 다가선다. 그러므로 괴로움이 생기는 것을 본 지혜로운 사람은 집착을 만들어서는 안 된다.”
“잘 알겠습니다. 다른 것도 묻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번뇌의 흐름, 생과 늙음, 근심과 슬픔을 초월할 수 있습니까?”
“멧타구여, 내가 말하는 것을 명심해 듣고 잘 수행하여 세상의 집착을 초월하여라. 상하좌우 중간 어느 곳에서나, 그대가 아는 어떤 것이라도 그것에 대한 기쁨과 집착과 식별을 버리고 덧없는 생존 상태에 머무르지 말라. 조심하고 게으르지 않은 수행자는 내 것이라 고집했던 것을 버리고, 생과 늙음, 근심과 슬픔을 버리고,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 이 세상과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나느니라.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고 생존의 욕망에 집착하지 않는 바라문(인도의 카스트제도상 최상위 계급인 브라만-성직자),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라고 그대가 아는 사람, 그는 확실히 이 번뇌의 흐름을 건넜다. 그는 피안에 이르러 마음이 평안하고 의혹도 없다. 그는 지혜로운 사람이면서 베다에 통달한 사람이고, 여러 가지 생존에 대한 집착을 버렸으므로 고뇌도 없고 희망도 없다. 그는 생과 늙음을 뛰어넘었다.
【5장】피안에 이르는 길(彼岸道品)
[서] (975∼1031)
베다에 통달한 바라문(바바린)이 무소유의 경지에 이르고자 코살라족의 아름다운 도시에서 남쪽으로 내려왔다. 그는 잇사카, 아리카 두 나라 중간을 흐르는 고다바리 강변에 살고, 이삭을 줍고 나무 열매를 먹으면서 그 강변 가까이 커다란 마을이 있었는데 그곳에서 얻은 것을 가지고 그는 큰 제사를 지냈다. 그가 제사를 끝내고 자기 암자로 돌아왔을 때 바라문 한 사람이 찾아왔다.
그의 발은 상했고, 목은 검게 탔으며 이는 더럽고 머리는 먼지로 뒤덮여 있었다. 그는 암자 안의 바바린에게 가까이 와서 금화 오백 냥을 구걸했다. 바바린의 그에게 앉을 자리를 권하고 그의 안부와 건강을 물으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내가 가기고 있는 것은 다 베풀어 주었습니다. 바라문이여, 용서해 주시오. 내게는 금화 오백 냥이 없습니다.”
“내가 구걸을 하는데도 당신이 베풀어 주지 않는다면 지금부터 이레 후 당신의 머리는 부서져 일곱 조각이 날 것이오.”
거짓말을 한 그 바라문은 주문을 외우며 무서운 저주를 퍼부었다. 그 말을 듣고 바바린의 괴로워했다. 바바린이 두려워하고 괴로워하고 있는 것을 본 암자를 지키는 여신이 그의 곁에 와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머리를 알지 못합니다. 그는 재물을 탐내는 사기꾼입니다. 그는 머리도, 머리가 부서지는 것도 알지 못합니다.”
“그럼 당신은 알고 있겠군요. 바라건대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내게 가르쳐 주십시오. 나는 당신의 말을 듣고 싶습니다.”
“나는 그것을 알지 못합니다. 그것에 대한 지식이 내게는 없습니다.”
“그럼 이 세상에서 머리와 머리가 부서지는 것을 누가 알고 있습니까. 여신이여 그것을 내게 말해 주십시오.”
“옛날 카필라성에서 태어난 세상의 지도자가 계십니다. 그는 감자왕의 후예이고, 석가족의 아들로서 세상을 비추고 있습니다. 그 눈뜬 분, 거룩한 스승, 눈 있는 분은 세상에서 법을 설하십니다. 당신은 그분께 가서 들으십시오. 그분은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눈 뜬 분이란 말만 듣고도 바바린은 몸시 기뻐했다. 근심은 가벼워졌고 기쁨이 넘쳤다.
(…)
[헤마카의 질문]
헤마카가 물었다.
“고타마 이전의 옛 사람들이 이전에는 이러했다. 미래는 이렇게 되리라 하고 제게 말해 준 것은 모두 전해 들은 바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모두 내 사색을 혼란 시킬 뿐입니다. 성인이시여, 집착을 끊어 버리는 방법을 말씀해 주십시오. 그것을 듣고 잘 수행해서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겠습니다.”
“헤미카여, 이 세상에서 보고 듣고 생각하고 식별할 아름다운 사물에 대해서 탐욕을 없애는 것이 영원한 열반의 경지다. 이것을 잘 알고 명심해 이 세상에서 번뇌를 완전히 벗어버린 사람은 항상 평안에 들어가 있다. 세상의 집착을 뛰어넘은 것이다.”
[핑기야의 질문]
핑기야가 물었다.
“나는 나이를 먹어서 기력도 없고 빛도 바랬습니다. 눈도 제대로 보이지 않고 귀도 잘 들리지 않습니다. 내가 헤매다가 이대로 죽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원컨대 진리를 말씀해 주십시오. 이 세상에서 생과 늙음을 버리는 길을 알고 싶습니다.”
스승은 대답하셨다.
“핑기야여,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늙어 가는 것을 볼 수 있고, 몸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은 병에 시달린다. 그러므로 당신은 몸에 대한 집착을 버려 다시는 삶을 받아 이 세상에 돌아오지 않도록(윤회*)하시오.”
*윤회 :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의 종교 용어로 사람이 태어나 늙고 병들었다가 죽기를 끊임없이 반복하는 것이 마치 바퀴가 돌듯이 세상을 도는 듯하다고 하여 붙여졌다. '윤회'의 원어인 संसार(saṃsāra)는 산스크리트어로 '정처 없이 헤매다, 빙글빙글 돈다.' 는 뜻이다. 그로 인해 한역은 바퀴륜(輪)을 써서 윤회(輪廻)라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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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우표 없는 편지 원문보기 글쓴이: 청풍명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