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같이 걷자, 서창 한 바퀴
광주에는 인근 고을의 세곡(조세로 바치는 곡식)을 모아 나주로 보내는 역할을 하는 두 곳의 세곡 창고, 동창(東倉)과 서창(西倉)이 있었다. 특히 서창이 있었던 극락강(영산강 줄기) 일대 너른 평야는 현재도 농작물 재배가 이루어지는 곳으로 옛 모습을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서창지역에는 풍요로운 농업생산력을 배경으로한 문화재가 남아 있는데, 바로 ‘용두동 지석묘’다. 청동기 시대 무덤인 10여 기의 고인돌이 모여 있는 용두동 지석묘는 강력한 권력 집단이자 문화적 수준이 높은 집단이 오래전부터 거주해왔음을 증명하고 있다.
서창 포구에는 세곡과 물건이 모여들고 다른 지역과 교류했던 역사가 곳곳에 녹아 있다. 포구의 물길을 따라 옛이야기가 흐르고 있는데, 그중에서도 서창 포구 마지막 뱃사공이라 불리는 박호련의 얘기를 빼놓을 수 없다.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그는 뱃일을 하며 모은 돈으로 주변의 어려운 이들에게 한없이 베풀곤 했다. 주민들은 그의 마음 씀씀이를 높이 사 그를 기리는 송덕비를 나루터 인근에 세웠다.
서창 일대에는 풍요로운 역사·문화 자원이 남아있으나 시민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았다. 한때 교통의 요지였던 포구의 영화도 과거의 기억 속에 묻혀버려 도심 변두리의 풍광 좋은 곳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창 들녘과 포구에 깃든 역사를 발굴해서 오늘을 살아가는 광주 시민에게 소개하고자 한다. 문화재청의 생생문화재 프로그램 ‘스토리텔링으로 되살아나는 서창’을 통해 서창 들녘과 포구에 담긴 이야기를 읽어보고, ‘우다다다! 고인돌 탐험대’에 참가하여 고인돌 마을을 체험하며 선사인들의 삶을 살펴보자.
낭만이 흐르는 정자, 만귀정
서구 8경 중 하나인 만귀정(晩歸亭)은 장창우가 1671년 서당을 세워 후학들을 가르치던 옛터에 건설된 정자다. 1934년 후손들이 그의 덕을 기리기 위해 연못 한가운데에 수중 정자를 세웠다. 만귀정 외에 습향각, 묵암정사 등의 정자가 다리를 사이에 두고 한줄로 늘어서 있다. 만귀정에서 두 번째 정자인 습향각 쪽을 향해 가다 보면 널찍한 돌을 볼 수 있다. 그 돌의 한쪽 면에는 취석(醉石), 반대편에는 성석(醒石)이라는 글자가 새겨져 있다. 즉, 습향각으로 들어갈 때 취하고, 나올 때는 깨서 나오라는 의미다. 자연에 취해 수많은 문인이 시를 읊었던 공간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습향각은 1940년 묵암 장안섭이 ‘연꽃 향기 엄습한다’라는 의미를 담아 세운 정자로, 연꽃이 피어오르는 계절이면 코끝에 맴도는 은은한 향에서 그 뜻을 느낄 수 있다. 습향각에서 또 하나의 작은 다리를 건너면 바로 세 번째 정자인 묵암정사가 나타난다. 다리와 같은 방향으로 나무가 길게 누워 뻗어있다. 묵암정사에서 만남을 가졌던 선인들의 흔적이 새겨진 나무를 보면서 잠시 사색에 잠겨본다. 오감을 통해 만귀정의 자태를 만끽하고 싶다면, 생생문화재 프로그램 ‘만귀정에 물들다’에 참여해 보자. 프로그램에서는 그림자극, 미디어아트, 음악회를 통해 만귀정의 낭만적인 정취를 색다르게 변주하고 있다.
추천 여행 코스 : 용두동 지석묘- 만귀정 - 운천사 마애여래좌상 - 풍암호수공원 01 운천사 마애여래좌상 | 광주광역시 서구 쌍촌동 원효대사가 서쪽 하늘에 상서로운 기운이 서린 것을 보고 제자를 보냈더니, 큰 바위에서 빛이 솟아 나오므로, 그곳에 마애불을 새겼다고 한다. 1974년 광주광역시 유형문화재 제4호로 지정되었다. 02 풍암호수공원 | 광주광역시 서구 풍암동 460 1956년 농업용으로 축조된 저수지를 풍암택지 개발 이후 1999년 국토공원화 시범사업을 통해 공원으로 조성했다. 전통정자와 목교 등을 설치한 공원은 자연과 전통이 조화를 이루는 광주의 상징적 쉼터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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