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니케 실어증
교과서에서 본 용어였다.
지구 반대편쯤의 나와 상관 없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용어인줄 알았다.
오전에 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했다.
'누나... 엄마가 이상해... 나 엄마집에 가고 있어. 병원을 어디로 가야하지? 누나 올 수 있어?'
이게 뭔소리인지 알아들을 수 없었다. 엄마에게 전화했다.
내 전화를 받은 엄마는 평소와 다른 어투에 대화가 잘 이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엄마, 나 누구야?'라고 물었더니 생각해 내려고 노력하다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럼 엄마 이름은 뭐야?'
'음... 으 으 모르것다'
'엄마 병원가야것네. 조금만 기다려 큰애 갈꺼야 나도 갈께'
'아녀 아녀 괜찮어 안가'
CT를 보며 의사가 설명했다. 언어를 이해하는 영역은 이상이 없는데 표현해서 말하는 영역에
뇌경색이 발생했다고. 중간정도 혈관이 막혀서 검게 나왔다고. 더 진행됬으면 팔다리 마비도 왔을 거라고...
대학병원으로 옮겼다. 엠뷸런스에 같이 타고 삐뽀삐뽀 소리를 내며.
응급실에 의사나 간호사들은 수시로 엄마에게 물었다
'여기가 어디에요?' '이사람은 누구에요?' '환자분 성함은요?'
엄마는 단어를 찾고 있었다. 하지만 잘 찾아지지 않았다.
어렵게 자신의 이름을 말하고서는
내 이름을 묻는 질문에도 그 답을 말했다
지금 계절이 뭐냐는 질문에 '글쎄... 계절... 으 음..'이라고 답하셨는데
종이에 답을 써달라고 했더니 '겨울'이라고 써주셨다.
명사나 사람이름은 어려워했지만 말씀을 하시기는 했다
'엄마, 눈이 엄청 왔어. 파주는 더 많이 온거 같애'
'응.. 많이 왔어'
'올겨울은 정말 춥네'
'그랴 일요일에 또 추워진다잖어'
의사가 와서 이름을 물어대면 말을 못하는 엄마가 의미없이 하는 말은 대화가 되었다.
생물심리학때 배웠던 <베르니케 실어증>이었다.
집 보일러 걱정을 했다. 추운 날씨에 얼어터질까봐 내내 걱정하셨다.
곧 다가올 아버지 제사도 걱정하고, 병원비도 걱정하고...
몹시 놀래서 두려운 눈빛이었다.
언니랑 형부 집에 보내고 큰 동생이 밤에 있겠다고 하니까
'아녀 아녀 그럼 안돼야'
언니가 있겠다고 하니 그제서야 고개를 끄덕이고 엄마 어디 안간다고 할때 안심하는 아이눈빛을 보였다.
언니가 제일 든든하고 의지되었나 보다.
불안이 너무 넘치게 다가오면 내가 하는 행동 반응들을 여지없이 그대로 하고있는 나를 보았다.
뭐 그리 많이 놀라지도 않은 사람처럼 엄마에게 말걸고, 동생들 위로하고, 농담하고
엄마에겐 며칠 누워있다 일어나면 된다고 뻥치고...
그리고 집에 와 세수하면서 울었다.
올 봄까지 25년을 일했던 남대문 칼국수 다이 팔아넘긴게 월요일인데...
이제 겨우 좀 쉬어볼까 하셨는데...
봄이 오면 여행도 다니고 하면서 살살 살꺼라 하신게 월요일이다...
엄마 생각을 계속하면 내가 좀 어려워질 것 같다.
과거로도 미래로도 내 생각을 옮기면 내가 좀 어려워질 것이다.
그냥 난 오늘 책에서 배운 용어를 만나것 뿐이다.
이제 그 병명을 가진 사람이 치료 과정을 겪는 것을 나는 지켜볼 것이다.
더 많은 것들은 그 다음에... 그 다음에... 생각해볼 일이다.
목이 아프다
첫댓글 마음이 아프네요....
아 뭐라 위로의말씀을 드릴까요. 좌절하지말구 어머니곁에서 지켜주는 것만으로 힘이되실거예요 . 힘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