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럼은 주일마다 '바이블25'와 '당당뉴스'에 연재 중입니다.
두루두루 할렐루야
찬양모음집을 묶는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곡 ‘할렐루야’를 부른 2017년을 시작으로 몇 년 동안 입례송(入禮頌)을 발굴하여 불러왔다. 이제 일곱 절기마다 모두 선택하여 소책자로 만들면서, 스무 곡 정도의 다양한 찬양곡을 추가하여 함께 엮는 중이다. 절기 주제 외에 성찬, 감사, 축하와 축복 그리고 공동체에 맞는 노래들이다. 우리 가락과 시대정신 그리고 세계 여러 나라의 곡들에서 뽑았다.
입례송은 예배 시작을 알리는 타종과 함께 간결하지만 호소력 넘치는 절기 노래이다. 의외로 호응이 좋아 일곱 절기의 입례송은 금새 모두에게 익숙해졌다. 뜻밖에도 성령강림절 노래는 어린아이들도 너무 좋아한다. 오죽하면 빨리 성령강림절이 왔으면 좋겠다는 어린아이도 있을 정도다. ‘성령이여 지금 여기 오셔서’로 시작하는 짧은 노래는 원래 라틴 찬송인데, 미국에서 3박자의 곡으로 편곡한 것을 우리말로 번역하였다.
마땅치 않은 경우 음악교사 교우가 직접 작곡하였다. 창조절 노래와 그물짜기 송이 대표적이다. 독일 복흠교회가 25주년을 맞아 ‘희년 잔치’를 열면서 만든 ‘순례자의 노래’ 두 곡도 포함하였다. 언젠가 한인디아스포라 사연을 담은 노래를 찾을 때 순례자의 노래들이 발견 되기를 소망하는 마음이다. 1990년대 초, ‘고난함께’ 모임에서 양심수를 위한 기도회를 열 때마다 부른 기도송(시 102편)이나, 요즘 거리 예배에서 인기있는 비교적 신곡 ‘빈자리 있습니다’도 같은 심정이다. 아마 한국찬송가가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씨실과 날실 엮어 색동보자기를 이루듯/ 말씀과 찬양으로 모임과 나눔으로/ 삶의 그물 엮는 그물짜기 성경공부/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위하여// 예수님 닮아가는 그물짜기 성경공부/ 말씀에 흠뻑 취해 그물 건져 올리세/ 주님 하신 말씀 사람 낚는 어부되라네/ 세상에 나가서 복음 전파하리라”(색동교회, 그물짜기 송)
“주여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고 응답하소서/ 내가 고난을 당할 때 주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 내 마음은 풀처럼 시들어 가고 시름에 지쳐 살이 마르오/ 지붕 위에 외로운 새들처럼 잠 못 이루고 탄식만 하오”(고난함께 기도송, 시편 102편 중에서).
한동안 교회마다 열심히 찬양집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다. 1990년대 이래 복사물이 판을 치다가, 이젠 스마트 폰으로 쉽게 공유하고, 대형 화면으로 모두의 시선을 모으니 찬양집은 낡은 유물처럼 보인다. 그런데 너무 빨리 찬양을 소비하다 보니 제대로 익힐 새 없이 스쳐 지나가고 만다는 푸념도 적지 않다. 대체로 세대 찬양에서 소외된 나이 든 이들이 공유하는 경험담이다. 그래서 겨우 28쪽에 불과한 <색동찬양모음>일망정 고전적이라 불릴 만하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유월절 만찬을 마친 후 겟세마네 동산을 향해 걸어가며 노래를 불렀다. “이에 그들이 찬미하고 감람산으로 가니라”(막 14:26). 함께 불렀다니 짐작하건대 모두가 잘 알고, 두루 알려진 노래임에 틀림없다. 당시의 곡조와 가사를 알 수 없지만, 당장 절실하고 용기를 주는 찬미가였을 것이다. 본래 시편이 그렇듯 공동체의 믿음, 역사적 삶, 인간의 아픔과 희망을 두루 담아낸 그런 찬송이 아니었을까?
본래 시편의 고백처럼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의 찬양은 아픔, 고난, 참회, 기쁨, 희망, 공동체가 두루 담겨있어야 한다. 가장 중요한 원칙은 모든 노래의 출발점이 하나님을 찬양하는데서 부터 시작한다는 점이다. 서양 계명에서 첫 계이름 ‘도’(Do)는 라틴어 ‘도미누스’(Dominus) 또는 ‘도미네’(Domine)인데, ‘주님’이란 뜻의 머리글자다. 원래 이름은 ‘우트’(ut)였는데 구이도 다레초(991 경~1033년 경)가 고쳐 부른 것이 현재에 이르렀다. 노래의 목적이자 전부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임을 음계를 바꾼 의도 속에 잘 담겨있다.
다달이 모이는 가족예배에서 어울려 찬양할 때마다 어떤 자리에서도 아이와 젊은이 그리고 부모 세대 모두가 합창할 수 있는 레파토리 몇 개쯤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찬양집을 만들게 된 배경이다. 자신의 목소리로 조화를 이루어 부르는 ‘아 카펠라’는 본래 교회 스타일이란 뜻이다. 과연 오늘 교회 스타일은 무엇일까? 우리 시대의 정신을 담아, 고난과 희망을 아우르는 그런 찬양이 우리 신앙공동체에 자리 잡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