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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사음식과_추도예배에_대하여-201100703-주소.hwp
성구 검색 및 복사 = 내 사랑하는 책 4.5, 본문 : 한글 개역성경
제사음식과 추도예배에 대하여
사도 바울께서 당시 고린도지역에서 성행했던 우상에게 바쳐졌던 제물로 사용된 고기가 시장에서
팔리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므로 믿음이 약한 이들이 영적 지도자의 위치에 있는 자신의 우상 제물된
고기 먹음을 보고 실족할까[우상에 대한, 우상제물에 대한 지식, 믿음 없으므로]
그런 연약한 형제들을 위해 고기를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한 것을 기억합시다.
우상의 제물인 줄 모르고 먹는 것과 우상의 제물인 줄 알고 먹는 것은 분명한 차이
죽은 사람에게 제사를 지낸 불신자들의 입장에서는 제사 음식을 먹지 않음은
기독교인 친척, 자손들이 자신들의 제사행위에 대한 不인정, 否동의의 행위로 간주며
죽은 사람에 대한 존중, 숭배의식이 큰가?
자신들이 不인정, 否동의하는 듣기 싫고, 보기 싫은 하나님 존중, 숭배의식이 큰가? 의 시험임.
인간적인 형제, 친족간의 화목을 위해 우상의 제물을 먹는 것은 어떤 이유로도 하나님을 모독함.
고전 10:18 육신을 따라 난 이스라엘을 보라 제물을 먹는 자들이 제단에 참여하는 자들이 아니냐
19 그런즉 내가 무엇을 말하느뇨 우상의 제물은 무엇이며 우상은 무엇이라 하느뇨
20 대저 이방인의 제사하는 것은 귀신에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니
나는 너희가 귀신과 교제하는 자 되기를 원치 아니하노라
21 너희가 주의 잔과 귀신의 잔을 겸하여 마시지 못하고
주의 상과 귀신의 상에 겸하여 참여치 못하리라
22 그러면 우리가 주를 노여워하시게 하겠느냐 우리가 주보다 강한 자냐
23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이 아니니
24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치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조상숭배 제물로 인식하는 불신자들의 양심을 위해서도 제사한 음식을 먹지 않음이 성경적일 것.
고전 10:28 누가 너희에게 이것이 제물이라 말하거든 알게 한 자와 및 양심을 위하여 먹지 말라
29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
행 24:16 이것을 인하여 나도 하나님과 사람을 대하여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기를 힘쓰노라
B. 추도예배에 대한 허용적 입장과 비판적 입장
1. 긍정적 또는 허용적 입장
⑴ 제사제도와 추도예배 (퍼온 글) http://blog.daum.net/jooyoung470913/7131826
명절에 화목한 가족이 제사 문제로 적지 않은 갈등과 마찰을 가져오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이 죽으면 귀신이 되는 것이 아니라
신자의 영혼은 천국에서 복락을 누리고,
불신자는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데 그 곳은 서로 왕래할 수 없는 곳이요,
또 세상으로 올 수도 없는 곳(눅 16:19-31)이라 하였다.
죽은 조상은 결코 신이 아니다. 이것은 인간의 깊은 관념 속에서 만들어낸 미신일 뿐이며,
신이 아닌 것을 신으로 숭배하는 우상숭배로 십계명의 1-3계명에 어긋난다.
18세기 말에 천주교와 19세기 말에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제사를 우상숭배로 금하는
선교사들과는 달리 평신도를 중심으로 제사를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는 고뇌로
추도예배가 시작하게 되었다.
1897년 [조선그리스도인회보] 9월호 기사에
" 정동감리교회 이무영성도(당시 궁궐의 정3품 고관)가
어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여 고민하다가 드린 예배가 추도예배의 시작 " 이다.
선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도 스스로가 삶의 실천적인 신앙적 결단이 계기가 된 것이다.
제사문제는 1920년에 [동아일보]에 기사화 되는 등 논쟁거리가 평신도들 사이에서
지속되어 오다가 1934년 감리교 총회에서 추도예배를 정식으로 인정한 이후
1950년대 구세군과 성결교에서, 1970년대 말에 장로교에서 인정하게 되었다.
추도예배는 '죽은 자를 생각하며 슬퍼하며 드리는 예배'란 뜻을 가진다.
결국 하나님보다도 죽은 사람을 향한 예배의 의미가 짙게 깔려 있기에 부정적인 시각도 있다.
집안에 안 믿는 어른들이 예수를 믿지 못하게 핍박이 심하므로,
추도예배라는 명목으로 제사를 대신하고
어른들의 눈을 가리던 것이 기독교인의 당연한 예절로 정착하게 된 것이다.
성경에는 죽은 자를 추모하거나 추도한 것이 없고, 예를 갖추라고 한 곳도 없다.
오히려 죽은 자를 위하여
성물을 쓰지 말라(신26:14)고 하였고, 시편 106:28에는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하나님의 진노를 산 것이 있고, 에스겔 24:17에는 죽은 자를 위하여 슬퍼하지 말라고 하였다.
그리고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도 추도예배를 한 일이 없다.
명분은 하나님께 예배드린다는 것이지만,
실은 고인을 생각하게 되는 잠재의식이 무의식중이라도 일어나는 것은 피할 수 없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께 드려지는 온전한 예배라 할 수 없으나
전도나 교육을 위해 추도예배를 드려야 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어떤 이들은 창47:29-31에 야곱의 유언인 "내가 죽으면 애굽에 장사하지 말고
선영에 장사하라"고 맹세까지 시킨 것이 있다고 말하며 추도예배를 옹호한다.
그러나 야곱의 유언은 자기 시신에 대한 애착심으로 선영인 가나안에 묻히기를
소망하였기보다는, 이스라엘의 후손들이 유언을 생각하며 '가나안에 들어 갈
소망을 갖게 하려고 했던 유언'이라 생각한다.
이 같이 추도예배에 대한 성경적인 근거는 없다. 사람은 살았을 때에 신앙 여부에 따라 죽은 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갈뿐, 죽은 후에는 전혀 아무런 기회도 없기 때문에,
성경은 죽은 조상에 대한 제사나 예배 같은 것은 전혀 말하고 있지 않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명절날이나 돌아가신 날에 추도예배를 드리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우리는 추도예배를 완전히 무시하기보다는 돌아가신 조상들의 가르침이나 교훈을
기억하면서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하나님의 사랑을 예배를 통하여 경험하는
현재와 미래지향적인 시간을 가지는 게 좋을 것이다.
유학자 주희와 같이 사람을 죽이는 지혜가 아니라 고뇌에 찬 한 평신도의 기독교 토착화를 위한 결단과
같이 사람을 살리는 지혜가 평신도들의 삶속에서 지속적으로 이어지기를 기대한다. - 아멘 -
⑵ 기독교단의 공인, 제도화
18세기 말에 천주교와 19세기 말에 개신교가 들어오면서 제사를 우상숭배로 금하는
선교사들과는 달리 평신도를 중심으로 제사를 신앙 안에서 해결하려는 고뇌로
추도예배가 시작하게 되었다.
1897년 [조선그리스도인회보] 9월호 기사에
" 정동감리교회 이무영성도(당시 궁궐의 정3품 고관)가
어머니의 기일을 맞이하여 고민하다가 드린 예배가 추도예배의 시작 " 이다.
선교사의 가르침이 아니라 성도 스스로가 삶의 실천적인 신앙적 결단이 계기가 된 것이다.
제사문제는 1920년에 [동아일보]에 기사화 되는 등 논쟁거리가 평신도들 사이에서
지속되어 오다가 1934년 감리교 총회에서 추도예배를 정식으로 인정한 이후
1950년대 구세군과 성결교에서, 1970년대 말에 장로교에서 인정하게 되었다.
장로교란 통합측 또는 기장측을 의미할 듯.
고신, 합동, 기타 성경적 보수주의 입장의 장로교단들은 아직까지 불허 입장인 듯.
⑶ 추도예배에 대한 만인구원론적 입장
추모예배를 바라보는 신학생의 고언
- 미국 드류대학교 예배학 박사과정생들의 노무현 전 대통령추모예배
예배학 전공자들임에도 비기독교인에 대한 교회의 추모예배에 대한 신학적 고찰이라면서
성경말씀에 근거하지 않은 초대교회의 전통과 교부의 견해를 통해서 주장합니다.
또한 개업 때의 돼지머리 고사행위가 기독교식 개업예배로, 조상제사가 추모예배로 바뀐 것을
인정치 않으려면 개업예배 등 교회에서의 공식적 예배 이외의 것들도 폐지되어야 한다는
논리를 폅니다.
십자가상의 한 강도가 한 위대한 신앙고백을 빼버리고 단순히 예수님께 “나를 기억하소서”라고
외치므로 예수님과 함께 신약교회 최초의 낙원에 들어간 사람이었다고 주장합니다.
추모 예배를 바라보는 신학생의 고언 - 퍼온 글
http://montgomerykmc.org/wp/archives/916
노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서 기독교 성직자가 기도를 하고, 찬양단이 찬양을 드린 것이 부적절한
처신이었는지 신학생의 연구자료가 있어서 소개를 한다. 이 글은 드류대학교 신학대학원에서
공부 중인 김형락 (예배와 예전학 박사과정, Liturgical Studies),
김남중 (예배와 예전학 박사과정, Liturgical Studies) 목사가 작성했다.
노 전 대통령의 서거는 안타까운 일이다. 서민 대통령, 원칙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을 만들고자
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외침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오랫 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을
추모하며, 유족들에게 하나님의 위로가 함께 하기를 기도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예배를 둘러싼 논쟁을 보며
▲ 드류대학교 신학대학원 학생들이 5월 27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예배를 했다.
I. 들어가는 말
지난 5월 27일 드류대학교(DrewUniversity)에서 ‘故 노무현 대한민국 16대 대통령 추모 예식’이
드류대학교 신학대학원 한인 학생회와 유니온신학교 한인 학생회 공동 주관으로 거행됐다.
추모 예식 이후, 인터넷 상에서 공개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지 않고 죽은 비(非) 기독교인에
대한 추모 예식이 기독교에서 가능한가?’ 하는 논쟁이 시작됐고, 추모 예식을 준비한 당사자들
또한 동일한 질문을 공개적으로 받았다. 본 글은 이러한 일련의 질문에 대한 답변 형식으로
드류대학교 신학대학원 박사 과정에서 예배와 예전의 역사와 신학을 연구 중인 두 명의 목회자가
작성했다.
신학은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돕고 섬기기 위해 있는데 때로는 ‘도전’과 ‘자극’을 통해 기능한다.
기독교 2000년 역사가 이러한 순기능과 역기능을 반복해왔다고 할 수 있다. 필자들이 바라기는
이번 추모 예식을 계기로 촉발돼 조명되는 ‘예배와 예식에 대한 관심’이 목회적 돌봄과 선교적
차원에서 교회와 신앙 공동체를 돕고 섬기는 순기능이 되기를 바란다.
II. 몸말
1. 추모 예식이란 무엇인가?
공식적으로 한국 기독교에서 영어의 ‘Memorial Service’에 해당하는 용어는
‘추모 예식’(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 기독교대한성결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혹은
‘추모식’(기독교대한감리회)이라고 표기한다.
과거에는 ‘추도 예배’ 혹은 ‘추모 예배’라고 표기했다. 그렇지만, 새 예배서는 일반 예배
(General Service, ‘주일 예배’와 ‘매일 기도’)와 특정한 상황과 목적으로 드리는 의식을
구분하기 위해 ‘예식 혹은 상황 예식’이라 표기한다. 예식은 예배와 비교할 때, 보다 실용적이며
순서와 형식에 있어 유연성이 있는데, 새롭게 출간된 기독교대한감리회 새 예배서는 기독교 예식을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예배와의 관계를 설명한다.
지난 5월 27일 드류대학교에서 열린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추모 예식을
‘故 대한민국 16대 노무현 대통령 서거 추모 예배’라고 표기했다. ‘추모 예식’ 혹은 ‘추모식’을 ‘
추모 예배’로 표기한 이유는 관례적으로 한국 교회에서 ‘예식’을 ‘예배’로 표기하고 있고
실제로 그렇게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었다. 예를 들면 장례 예배·입관 예배·발인 예배·결혼 예배·
입당 예배·건축 예배·입주 예배·개업 예배·봉헌 예배 등등 -한편 각 교단의 새 예배서는
이들 모두 장례 예식·입관 예식·발인 예식·결혼 예식·건축 예식·입주 예식·개업 예식·
봉헌 예식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제부터 ‘비기독교인을 위한 추모 예식(추모식)이 기독교에서 가능한가?’에 대한 필자들의 연구와
소견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자 한다.
2. 기독교 추모 예식의 역사
기독교 예배 역사 속에서 지켜져 내려온 ‘추모 예식’에 대해 살펴보자. 기독교 예배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가 바로 추모와 비슷한 개념인 ‘Anamnesis’이다. 이 용어는 단순히 기억 혹은 추억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구속의 역사,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구원사를 기억하고,
지금 현재에도 현존하는 것을 믿고 증언하며, 나아가 말씀 속에 앞으로 약속된 하나님 나라의 완성 즉,
과거, 현재, 미래의 약속을 기억하고 믿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교회와 신자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것을 ‘주일 예배’와 ‘매일 기도’ 를 통해 기억·회상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희생을
추모하며, 앞으로 있을 약속을 고백·신뢰하는 믿음의 삶을 신앙 공동체와 더불어 살아간다.
이런 측면에서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 초대교회 예배에서부터 순교당한 믿음의 선진들을 추모하는
예식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순교당한 초대 교부였던 폴리캅에 대한 추모 문헌으로부터 시작해
어거스틴의 고백론에 나타난 그의 어머니 모니카에 대한 추모의 글들을 살펴 볼 때, 추모 예식은
초기 기독교부터 행해진 예식이다. 그렇지만 추모 예식 속에서 순교당한 교부들 혹은 추모를 받는
신자들은 예배의 대상이 아니었다.
이 추모 예식 속에서 오직 예배의 대상은 하나님이셨다. 다만 그들(추모 대상자들)이 하나님을
신뢰하며 행하였던 거룩한 행적들을 존경하는 마음으로 회상하고, 예식에 참여하는 신앙 공동체
또한 그분들의 믿음을 지켜나가겠다고 다짐하는 예식이었다. 이러한 예식은 천주교와 개신교 역사
속에서 오늘날까지 존속해온 예식 전통이다.
3. 한국 개신교의 추모 예식
▲ 한국은 예로부터 조상 제사를 지냈다. 하지만 한국 선교 초기 한국에 들어온 선교사들은
이를 우상숭배로 여겼을 수도 있다. - 10계명 중 1, 2계명이 무엇인지 모르시는지? 무엇이든 믿으면
구원된다는 종교다원주의적인 입장이겠지요? 만인구원론일지도.
참고로 학자들은 한국에 온 초기 선교사들이 거의 대부분 죽은 자들에 대해 교회가 배려하는
전통을 몰랐거나, 한국의 조상 제사를 우상숭배로 여겼기 때문에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가
힘들었을 것이라고 분석한다. 드류대학교 신학대학원 예배·예전학 안덕원 교수의 ‘
한국 감리교 추모 예식의 기원에 대한 연구’에 의하면, 한국에서 추모 예식은 선교사나 교단에서
만들어 준 것이 아니고, 1897년 정동제일 감리교회 평신도였던 이무영 성도가 비기독교인이었던
자기 모친의 기일에 어떻게 하면 기독교적으로 효도와 전도 차원에서 예식을 행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가 고안해 낸 것이 그 시초이며,
아펜젤러 선교사가 발행했던 ‘죠션 그리스도인 회보’(September, 1897)에 이와 관련된 기사가
나온다고 한다. - 그렇다면 조상 제사가 우상숭배가 아니고 무엇인가? 성경에서의 교훈은 무시해도
되는가? 십계명 1, 2계명. 출 20: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지니라
4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또 위로 하늘에 있는 것이나 아래로 땅에 있는 것이나
땅 아래 물 속에 있는 것의 아무 형상이든지 만들지 말며 5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며 그것들을
섬기지 말라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비로부터 아들에게로 삼 사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 6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이와 비슷한 예는 선교지 교회 예식들에서 쉽게 그리고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예식에는 소위 기독교
복음이 전파된 토착민들의 문화·전통·상황, 그리고 그들 고유의 얼과 정서가 많이 담겨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보니 교단과 교회 인준에 시간이 소요되기도 한다. 한국 감리교의 경우 1934년에 이르러서야
교단에서 추모 예식을 정식으로 인준해 예배서에 활자화 된다. 한 가정의 비공식적 예식에서 공식적인
문서로 활자화 되는데 걸린 시간이 무려 47년이 걸린 셈이다.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한국 교회에서
사용되는 대부분 예배 예식서에는 추모 예식에 대한 내용이 활자화 됐다. 한국 개신 교회 교단마다
추모 예식이 예식서에 들어온 시기는 조금씩 상이하지만, 각 교단들이 출판한 예식서들 속의
추모 예식들은 신자와 불신자를 위한 추모 예식을 따로 구분해 놓거나 신자와 불신자를 위한 기도를
다르게 만들어 놓는 등, 불신자들에 대한 배려를 엿볼 수 있다.
또한 대부분 개신교 예식서들이 추모 예식 과정에서 종교간 충돌이 있을 것에 대비해 협조를 구해
무리 없이 진행할 것을 권고하고 있으며, 목회적 돌봄의 필요에 의해, 그리고 기본적으로
선교 지향적인 상황 예식의 성격상 비기독교인을 위한 추모의 기도나 예식을 여러 교단에서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물론 이러한 예식서들은 오랜 수정과 보완을 통해 재구성된 것이고
지속적인 신학적 토론 끝에 활자화 된 것이다.
그러므로 비기독교인의 추모 예식에 대해 시정되어야 할 요소가 있다면, 그 예식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는 서구의 대부분의 교회들과 한국의 예장통합·기장·기감·기성 등 주요 교단 본부와
대화를 나누어야 할 사안이다. - 죽은 비기독교인을 위한 추모의 기도? - 성경에 근거했나요?
4. 비기독교인들에 대한 교회 안에서의 추모 예식의 가능성에 대한 신학적 고찰
그렇다면 ‘어떻게 믿지 않고(비기독교인) 사망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추모 예식이 가능한가?’
이 질문에 대한 필자들의 소견은 아래와 같다.
(1) 추모 예식은 ‘고인을 예배하는 시간과 장소’가 아니다. 이 예식 속에서 영광 받으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아닙니다. 추모예식은 오직 하나님께 영광이 아닌 인간중심의 모임일 뿐입니다.
추모예식은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도 아니며, 성경적 근거도 없으며, 조상제사로 말미암은
핍박을 면하고, 신자와 불신자가 불경하게 하나님을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 구경꾼으로
초대하는 예배 형식일 뿐입니다.
예배는 영어로 ‘Worship’ 혹은 ‘Service’로 생명을 창조하시고 돌보시고, 날마다 새롭게 하시는 주
님께 그 성품과 존재하심과 일하심에 합당한 가치(Worth + Ship)를 돌려드리며, 그러한 가치를
지니신 분을 호렙산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 선 모세처럼 보고 듣고 말하고 결단하는 거룩한 시간과
장소라는 포괄적 의미를 담고 있다. 또한 그러한 주님께(을) 혹은 주님의 말씀과 뜻을
봉사한다(섬긴다)는 의미에서 ‘Service’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도 한다.
▲ 예배의 대상은 당연히 삼위일체 주 하나님이시다. 예배는 주님이 주시는 떡과 잔을
신앙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시간과 장소로 비유할 수도 있다.
예배의 대상은 삼위일체 주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예배에 참여하는 주체는
산자와 죽은 자를 포함한 모든 만물이다. 예배는 ‘주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떡과 잔,
평화의 음식을 신앙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시간과 장소’로 비유할 수 있다. 그래서 혹자는
기독교 신앙 공동체를 ‘밥상 공동체’라고 일컫기도 한다. 예수는 당시 비유대인들인 이방인들,
오늘날로 말하면 비기독교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었고, 그를 배신했던 가룟 유다와 떡과 잔을
나누었다. 그를 세 번이나 부인했던 베드로를 사랑으로 품으시고 교회와 성도들을 목양하라고
부탁했다. 더욱이 예수는 유대인들이 ‘개’로 취급한 이방 야만인, 사마리아인을 영원한
생명을 얻은 주인공으로 등장시킴으로써 ‘선민’과 ‘비선민’이라는 선을 그어 선민의 안전지대를
확보하려는 유대인들의 종교적 교만을 경고한다. - 예배를 단순히 공동체가 함께 하는
시간과 장소로 전제해 둡니다.
예배의 공동체가 밥상을 나누는 정도의 친분을 쌓으면 되는 것으로 주장합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택자와 불택자, 신자과 비신자의 구별을 뭉개뜨리려 합니다.
최초 교회는 십자가상에서 이루어졌다.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Remember me!)’라고
단 두 마디를 외친 강도 한 사람이, 예수와 함께 최초로 낙원에 들어간 사람이었다는 것을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이 모든 상황이 예배 주체의 포괄적 성격과 관련 있다. 예배의 주체는
범위와 한계가 없다. 모든 만물이 예배의 주체다.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역사와 함께,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선과 악으로
구별하지 않으시고 예배의 자리로 모든 만물을 차별 없이 초청하셨기 때문이다.
따라서 추모 예식이 ‘고인을 예배하는 시간과 장소’라는 혹자의 전제와 해석은 그 의미상
어색하고 부적절하며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오히려 이 예식 속에서 영광 받으시고 높임을
받으시는 분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 예수와 함께 십자가상의 한편 강도가 최초로 들어갔다고
단정 지을만한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까? 예수님은 그저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예수님 외에 다른 두 십자가에 달린 살아있던 두 강도들의 다리를 꺾었던 자들이
두 강도들보다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에 예수님의 다리를 꺾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무리들 중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이들이 예수님이 세상을 떠나시던 시각, 동시에 예수님과 함께
낙원에 간 자가 없다고 단정 지을만한 근거가 어디 있습니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Remember me!)’라고 단 두 마디를 외친 강도 한 사람이, 예수와 함께
최초로 낙원에 들어간 사람이었다는 것을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 만인구원론은 주장하기 위해
성경본문을 왜곡하여 한 강도가 했던 위대한 신앙고백을 삭제해 버립니다.
단순히 드류대학교 신학생 필자들의 주장대로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Remember me!)’라고
단 두 마디만 외친 것은 아닙니다. 다른 강도가 예수님을 조롱하는 것을 책망하고,
하나님이 두렵지 않느냐, 우리는 우리 죄로 말미암아 죽지만 예수님의 행한 일은
옳지 않은 것이 없다고 바른 신앙을 고백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두려워 하는 죄인이며 예수님은 의인이심을 입술로 십자가 처형장의
많은 사람들 앞에서 고백한 것입니다.
그리고 난 후에 예수님께, “예수님,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하소서”하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고백하며, 부탁드렸습니다.
이런 상황의 강도의 죄의 고백과 부탁, 또 그 말을 들으신 예수님의 죄의 용서와
낙원 허락의 약속을 제하여 버리고, 그저 단순히 강도의 흉악한 그 죄 그대로 가지고
그저 같은 형벌 도구인 십자가에 못 박힌 처지인 곁에 있는 사람인 예수에게
“나를 기억해 주세요!”하고 외치는 정도에
예수님께서 낙원에 함께 들어가도록 구원하셨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조직신학의 기독론, 인죄론, 구원론 등에 문제를 나타내는 사상입니다. 이렇게 아무나
모든 사람을 구원하시려고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 인간으로 세상에 나시고
죄인인 인간들에게 심지어 흉악한 강도죄로 십자가 좌우편에 못박힌 한 편 강도에게까지
조롱받으셨어야 했단 말입니까?
아래의 성경 역본들과 원어 성경에서 과연 단순히 예수님을 보자마자 “나를 기억하소서”
라고만 강도가 말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추도예배에 대한 신학생의 고언에 대한 종합 비판
만인구원론이다. -
㉮ 성경을 부인한다.
예수님께서 영생과 영벌을 말씀하신 것을 부인한다. 성경말씀 속의 낙원은 인정하지만,
지옥을 부정하므로 성경말씀에서 지옥교리를 빼는 것이다.
㉯ 전도할 필요가 없다.
모든 산자와 죽은 자, 선과 악 등 구별 없이 모든 만물이 예배의 자리로 초청되며,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과 은혜를 받을 수 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술로 시인하여 구원함에 이른다는 성경 말씀보다 편한 구원 방법이다.
열심히 전도하는 사람은 헛된 짓하는 것이 되어 버린다.
㉰ 지옥이 필요 없다.
그러나 저들의 구원관이 거짓이므로 살아있는 동안에 복음을 거절하고
죽음 이후에도 재구원의 기회가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죽은 이들에게는
다시 구원의 기회가 실제로 없게 된다.
낙원에 갈 줄 알고 담대하다가 결국은 지옥에 간 부자처럼,
살았을 때, 믿을껄, 교회다닐걸, 후회해도 소용없게 된다.
마치 돌팔이 의사의 처방을 믿고 제대로 치료하지 않아 손을 쓸 수 없고,
때를 놓쳐 사망하는 경우처럼 돌이킬 수 없는 결과를 낳게 된다.
㉱ 배교자들도 순교자들과 똑같이 구원받는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은 30개에 팔아넘긴 배교자 가룟 유다에게도 구원의 은혜가 베풀어진다.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한 베드로, 바울, 사도들, 로마의 원형경기장에서
사자 밥이 되었던 초대교회 순교자들, 잘못된 로마 천주교의 교리를 반대하며
성경적 진리를 사수했던 중세시대 종교재판에 희생된 성경적 신앙인들,
일제시대 신사참배의 박해 속에 추운 감옥에서 고문과 굶주림으로 순교한
모든 이들과 배교한 자들과 동일한 은혜를 얻는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저들의 교리는 이단적이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과 예수님의 말씀들, 성령님의 중생케 하시는 사역을 부인하고
성경에 근거한 정통 기독교 신앙에 대립되므로 이단성이 있다.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의 말씀하신 금령을 어기고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으면
하나님같이 된다고 하여 타락하게 한 뱀의 말과 같다.
㉳ 저들의 인간의 영혼관은 이교적 귀신론이다.
세상을 떠난 영혼이 세상에 다시 올 수 있다는 점에서 그러하다. 이것은 이방 종교 풍속에서
초혼의식, 빙의, 살풀이, 씻김굿, 배뱅이굿 등 무당 또는 접신자의 말과 행동을 빌어 죽은
사람의 영혼과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행위와 유사한 개념이다.
저들은 주장하기를 예배의 대상은 삼위일체 주 하나님이시다. 그리고 예배에 참여하는
주체는 산자와 죽은 자를 포함한 모든 만물이다. 예배는 ‘주님께서 나누어
주시는 떡과 잔, 평화의 음식을 신앙 공동체가 함께 나누는 시간과 장소’로 비유할 수 있다.
예배의 주체는 범위와 한계가 없다. 모든 만물이 예배의 주체다.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역사와 함께,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선과 악으로 구별하지 않으시고 예배의 자리로
모든 만물을 차별 없이 초청하셨기 때문이다. 추모 예식의 관심이 돌아가신
가족 구성원이 기독교인이었느냐 혹은 비기독교인이었느냐에 있지 않고, 돌아가신 가족,
그러나 사랑했고 그리워했던 가족들의 삶과 추억을 회상하며 드리는, ‘그리움을 담은
감사와 성찰의 희망 예식’이라는 점에 의미가 있다. 라고 주장하므로
육신이 죽어 장례 마친 자가 산자의 예배에 참여하는 참여자라고 주장하는 점에서 그렇다.
다음 본문은 사무엘이 죽은 후 위기에 몰린 사울이 신접한 여인에게 찾아가서 사무엘의
영혼을 불러내라고 한 이방풍속의 초혼의식을 기록했다. 그러나 실제로 사무엘을 신접한
여인이 마음대로 부를 수는 없는 것이며, 사무엘의 모습을 한 거짓 마귀의 영이 여인의
입술을 통해 교훈한 것으로 보는 것이 성경적이다.
왜냐하면 사무엘의 신이 땅에서 올라온다고 했기 때문이다.
삼상 28:11 여인이 가로되 내가 누구를 네게로 불러 올리랴 사울이 가로되 사무엘을
불러 올리라 12 여인이 사무엘을 보고 큰 소리로 외치며 사울에게 말하여 가로되
당신이 어찌하여 나를 속이셨나이까 당신이 사울이시니이다 13 왕이 그에게 이르되
두려워 말라 네가 무엇을 보았느냐 여인이 사울에게 이르되 내가 신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나이다 14 사울이 그에게 이르되 그 모양이 어떠하냐 그가 가로되
한 노인이 올라오는데 그가 겉옷을 입었나이다 사울이 그가 사무엘인 줄 알고
그 얼굴을 땅에 대고 절하니라 15 사무엘이 사울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불러 올려서 나로 분요케 하느냐 사울이 대답하되 나는 심히 군급하니이다
블레셋 사람은 나를 향하여 군대를 일으켰고 하나님은 나를 떠나서 다시는
선지자로도, 꿈으로도 내게 대답지 아니하시기로 나의 행할 일을 배우려고
당신을 불러 올렸나이다 16 사무엘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를 떠나 네 대적이
되셨거늘 네가 어찌하여 내게 묻느냐 17 여호와께서 나로 말씀하신 대로 네게
행하사 나라를 네 손에서 떼어 네 이웃 다윗에게 주셨느니라 18 네가 여호와의
목소리를 순종치 아니하고 그의 진노를 아말렉에게 쏟지 아니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오늘날 이 일을 네게 행하셨고 19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너와 함께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니 내일 너와 네 아들들이 나와 함께 있으리라 여호와께서 또 이스라엘
군대를 블레셋 사람의 손에 붙이시리라 20 사울이 갑자기 땅에 온전히 엎드러지니
이는 사무엘의 말을 인하여 심히 두려워함이요 또 그 기력이 진하였으니
이는 그가 종일 종야에 식물을 먹지 못하였음이라
다윗 왕은 자기가 죽은 아이에게로 갈 수 있을 뿐, 죽은 아이는 돌아 올 수 없다고 말했다.
삼하 12: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예수님의 눅 16장의 거지 나사로와 부자 사건에서도 지옥에서 고통 받는 부자는
자기 마음대로 지옥을 벗어날 수 없었다.
㉴ 천주교의 연옥설과 유사한 구원의 재기회설이다.
산자들이 고인을 추모하는 예배드릴 때, 비록 복음을 거절했고, 심지어 배교자라도
또한 비기독교인의 상태로 죽은 자에게도 참석하여 복음을 들을 수 있도록 초청된다는
복음의 재영접 기회설이다.
또한, 개신교는 천주교와는 달리 연옥에 대한 교리가 없다. 개신교 추모 예식은
그 예식을 드림으로 죽은 자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 따라서 예식을 드림으로 인해
믿지 않고 죽은 자가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모인 가족이 고인이 된 분을 추모하며,
그 예식에 함께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다. 비기독교인 가족들도 함께
이 예식에 참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을 듣도록 초청받는다.
배교자에게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재세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인효론(人效論)이라 하며 라틴어로는 ‘Ex opere operantis’ 라고 한다.
이에 맞서 어거스틴은 성례는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거룩한 예식이므로 번복될 수 없으며,
이것을 번복하는 것은 하나님의 성례에 의심을 갖는 것이다.
그 성례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이름으로 정당한 절차에 의해 거행되었다면,
집례자와는 관계없이 유효하다고 주장했다. 이 주장을 사효론(事效論)이라 하며
라틴어로는 ‘Ex opere operato’라고 한다. 이 논쟁의 결과로
사효론이 서방 교회의 정통교리가 되었고 천주교 뿐 아니라 대부분의 개신교까지도
이 교리를 따르고 있다.
예배의 주체는 범위와 한계가 없다. 모든 만물이 예배의 주체다.
역사 안으로 들어오셔서 역사와 함께, 역사를 통해 일하시는
주님께서 모든 만물을 선과 악으로 구별하지 않으시고 예배의 자리로
모든 만물을 차별 없이 초청하셨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효론의 측면에서 하나님께서는 추모 예식 혹은 추모식에
함께하는 참석자들을 향해 은총과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위로하시며
교제해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전적인 은총과 은혜는
설사 고인이 비기독교인이었다 하더라도 참석자들과 집례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였고 정당한 절차로 진행된 예식이기에
기독교인의 추모식과 동일한 은총과 은혜가 참석자들에게 베풀어진다.
천주교의 연옥설과 다른 점
천주교에서는 연옥에 있는 대기하는 영혼들이 이 세상에서의
미사와 가족들의 선행 등의 공력으로 구출되고 천국으로 옮겨질 수 있다는 것이다.
죽은 불신앙자의 영혼은 연옥에 머물러 대기해 있음.
마치 재판받기 전의 경찰서 유치장 생활.
외부사람의 도움으로 석방이냐,
교도소 장기 투옥이냐 하는 상황에 비유할 수 있음.
필자들의 주장(만인구원론)은 살아있는 자들의 예배 장소에
죽은 자들, 기독교인이든 비기독교인이든 예수님께 초청을 받아 예배 참여할 수 있으며,
기독교인, 비기독교인의 구별 없이 동일하게 베푸시는 은혜를 받을 수 있다.
초청받은 비기독교인들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들을 기회가 주어진다.
마치 비유한다면 집행유예로 자유롭게 사회활동이 가능한 범죄자의 생활과 같다.
그런데 연옥설과 달리 개신교의 추모예배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는 저들의 말이 거짓이다.
사효론적 측면에서
배교자가 집례한 성례가 유효하다고 인정되듯이,
배교자가 참여한 예배도 유효하다,
예배가 유효하므로 모든 참석자가 동일한 은총과 은혜를 받는다.
결국 비기독교인으로 죽은 자도 산자들의 예배를 통해 구원을 얻을 수 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돌아다님. 흔히 세상말로 죽은 자의 귀신이 떠돌아다닌다.
2. 부정적, 금지적 입장에서의 비판
⑴ 불신자를 위한 추도예배
딤전 4:1 그러나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 하셨으니
① 박정희대통령 사망 후 추도예배
② 불신자를 위한 기도
퍼온 글 http://www.chtoday.co.kr/view.htm?page=2&id=203958&code=
2009년 8월 17일에 불신자로 죽은 자를 위한 기도를 하므로 이단성이 있으며
웨스트민스터신앙고백을 어겼다고 장로교 통합측 서울서노회에서 고발당했습니다.
③ 노무현 팬인 설교자의 흥분된 설교
http://pann.nate.com/video/207661873
그가 크리스찬이든 아니든 기득권자와 대항해서 싸운 노무현의 가치는 중요하다고 주장합니다.
절망감에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노무현 맹렬 팬입니다.
예수를 믿지 않았어도 예수님의 삶을 닮아갔다고 주장합니다.
개XX, XX 등의 욕설을 노무현 반대 정당과 사람들에게 해대는군요.
④ 노무현 전 대통령 장례 때 교회협의회(KNCC)의 권오성목사 기도.
50년 불교와 인연을 맺은 노무현 전 대통령, 모친과 부인 독실한 불교신자
http://www.sisapress.com/news/quickViewArticleView.html?idxno=49276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장례식 기도문
2009년6월25일 오전10시50분 모두 조회수 1 0
퍼온 글 - http://blog.yahoo.com/_CVOE5YZCZGZHP3RB2YWBDFAIQY/articles/13544
⑤ 김대중 전 대통령 장례 하관식 기도 -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인지? 죽은 사람에게 드리는 기도인지?
⑸ 로마 가톨릭의 연옥설 - 적은 누룩이 온덩이에 퍼진 결과
평화방송 성당에서의 성모에게 [엄마 엄마 엄마] 3창 동영상 참조!
http://tvpot.daum.net/clip/ClipView.do?clipid=16133000&srcid=622315
로사리오(묵주기도)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르치신 하나님께 대한 기도]주기도 1회당
성모마리아께 10회 기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dic_view.asp?ctxtIdNum=778
퍼온 글 -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myb9 2004.07.17 22:28
성모승천 원문 - 가톨릭용어사전 http://info.catholic.or.kr/dictionary/dic_view.asp?ctxtIdNum=1688
천주교의 3종의 성경 원문 http://info.catholic.or.kr/bible/view.asp 에서 검색
⒁ 하나님이 찾으시는 자들의 예배 - 이 세대를 본받지 않는 예배!
이 세상 풍습을 좇는 한 가지 예를 제시합니다.
지난 2011년 4월 24일 한국교회 부활절연합예배 동영상 첫부분을 참고하십시오.
http://www.fgtv.com/fgtv/player/player_vod.asp?CODE=0&SECT=ram6&TSECT=&DATA=6c110424&ANUM=25246
이방 풍속이 개신교회 안에 들어온 것을 눈으로 확인하십시오.
특히 2분 50초 ~ 3분 30초 구간을 집중 반복해서 보십시오. 최후의 만찬 그림을 향해서
절하는 모습과 강대상에 성경을 올려놓고 난 후 합장하며 절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설교 후에도 물을 회중석을 향해 뿌리는 의식이 나옵니다.
㈇ 마귀의 유혹 - 추도예배 - 가르침과 반대로 행동하는 가족들과 성도들
생전에 가르침을 받은 이들이 사후에 가르침대로 하지 못하도록
고인에 대한 정성, 추모를 강조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신 31:29 내가 알거니와 내가 죽은 후에 너희가 스스로 부패하여 내가 너희에게
명한 길을 떠나서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너희의 손으로 하는 일로
그를 격노케 하므로 너희가 말세에 재앙을 당하리라 하니라
추도예배의 유혹 - 가르친 것과 반대로 행하게 하는 마귀의 장난
마치 에덴동산에서 하와에게 접근하여 유혹한 것을 생각하게 합니다.
창 3:1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신 들짐승 중에 뱀이 가장 간교하더라
뱀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오늘도 추도예배를 주장하는 이들은 이런 식으로 말합니다.
성경에 추도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말씀이 있더냐?
정확하게 드리지 말라는 말씀이 없으니 드려도 되지 않느냐?
⒜ 손양원목사 추도예배와 주남선목사 추도예배 준비
1951-52년 사이 부산고려신학교에서 손양원목사님 추도예배가 있었고
백목사님이 당시 조사님으로 이를 강하게 비판하여 중단시켰으며
1951년 거창교회에서 주남선목사님 추도예배가 준비되었으나
이 역시 백목사님이 당시 조사님으로 강하게 반대하고
주남선목사님의 가족들이 백목사님을 전적 따르는 상태였기 때문에
막아졌습니다.
복사한 글 출처:
⒝ 부산 서부교회 백영희목사의 장례와 추도예배
다음은 고 백영희목사 사후에 있었던 일에 대한 비평입니다.
추도식예배는 손양원목사님 역시 생전에 이를 반대하여 애양원교회에는 없었고
백영희신앙노선에서는 이런 신앙노선이 백목사님 평생 지켜졌으나
1989년 9월 2일 토요일
대구공회는 김해 백목사님 묘소에서 백목사님 추도예배를 개최합니다.
백목사님 장례 기간과 모든 일정은 원래 공회와 서부교회와 가족 대표 사이에
하관예배까지로 완료되도록 했으나
대구공회는 하관예배 완료 후부터 교권투쟁의 기선을 제압한다며
백목사님 묘소를 왕릉 규모로 만들자고 즉석에서 제안했고
부산공회측이 이를 반대하자 무력을 동원해서라도 그렇게 하겠다고 위협했으며
하관예배 후 3일째가 되는 날, 불교도들이 만든 '삼오제'에 예배를 붙여
'삼오예배'를 개최하게 됩니다.
복사한 글 출처:
⒞ 한국교회사에서 실천적인 모범 장례 가식 없는 중 목사 - 김현봉목사의 장례
고 김현봉목사의 목회철학 중의 결혼, 장례 방침은 독특했습니다.
결혼식에는 평일 저녁 예배 때의 짧은 권면과 기도로, 하객은 20명 이하로 제한.
장례 때는 영구차를 빌리지 않고, 손수레에 시신을 실어 손수 끌고 가서
당시 홍제동의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조건이면 장례식 설교를 하는 것이었답니다.
자신이 죽은 후에 묘 등이 벗어지도록 너희들이 할 모양이니 내 묘를 쓰지 말라.
교인들에게 자신이 죽으면 자신이 가르쳤던 방식으로
손수레에 실어 홍제동 화장터에서 화장하는 조건으로
장례를 치르며 울지 말라고 김현봉목사님이 가르쳤답니다.
시신을 손수레에 싣고 가서 홍제동 화장터로 옮겨 화장을 했지만
두 번째 요구, 울지 말라는 것은 1200교인들이 통곡하여 순종치 않았답니다.
http://www.changgwang.net/?mc=m5s1&mcn=2403
3. 성경이 우리에게 가르치시는 교훈입니다.
⑵ 울지마십시오.
예수님께서도 죽음을 슬퍼하여 울지 말고 오히려 산자들을 위하여 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눅 8:52 모든 사람이 아이를 위하여 울며 통곡하매
예수께서 이르시되 울지 말라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하시니
23:28 예수께서 돌이켜 그들을 향하여 가라사대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
자신이 죽을 때 울지말라, 찬송불러 기쁘게 보내 달라고 했다던 성도의 임종 모습
말기 암과 말기에이즈 환자들의 임종하기 전부터 임종까지를 관리해주는
경기도 용인에 있는 샘물호스피스 원장 원주희목사님의 여의도순복음교회 금요예배 간증동영상입니다.
http://www.fgtv.com/fgtv/search/Search.asp?keyword=%BF%F8%C1%D6%C8%F1&s01=2&s02=0
2편 모두 시청하시므로 죽음을 어떻게 맞을 것인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2009년 동영상에서 원주희목사님의 손위 처남의 임종하기 직전의 성도의 아름다운 최후 모습입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암이 폐로 퍼져 숨쉬기도 힘든 상황 중에도
있는 힘껏 찬송 부르는 모습의 동영상입니다.
찬송가 제목은 “저 높은 곳을 향하여”입니다.
⑶ 생전에 자주 전화통화, 방문, 초청, 선물, 전도하십시오.
4. 제사와 추도예배에 심적, 육체적 고초를 겪지 않을 방법은 무엇일까?
장례예배, 추도예배의 곤란함 극복을 위해 -
집안에서 믿지 않고 세상 떠난 이, 또는 예수를 믿었다가 세상 떠날 즈음에 신앙을 떠나
불신자로 살았던 경우, 다른 가족들이 믿지 않는 경우, 기독교 장례를 고집하지 말고,
양보할 것.
목사가 신앙 양심과 달리 죽은 고인의 불신앙적인 것을 덮어주게 되고,
입술에 침도 바르지 않은 거짓 칭찬으로 훌륭한 신앙생활을 했던 것으로
미화시켜야 하는 고민을 겪게 한다.
고인의 장례를 교회에서 간여했다가 장례 후에 얼마가 지났든지 간에
집안에, 사업에, 건강에, 이상이 생기면 기독교 장례를 주장했던 이가 핍박을 받게 되고
교회를 욕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 된다.
- 복음전도의 기회는 이 때 말고도 하나님께서 주실 것임.
생존시 고인의 대한 하나님의 뜻대로 택한 백성인가의 여부가 구원을 결정지었으므로,
죽은 후에 진행되는 장례절차를 개신교식, 천주교식, 불교식, 유교식, 등 어떤 종교식으로
진행했는가가 구원에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님.
내가 예수를 믿고 세상 떠난 이후의 장례절차
(기독교식, 화장 또는 매장, 화장 후 납골당 또는 산골)에 대하여,
또 다른 사람들이 해마다 기일에 하는 추도예배에 대한 거부의사를
유언장, 녹음테이프나 CD, 녹화 동영상 등으로 분명하게 남겨둘 것.
* 기독교 장례 때에 조심할 점
1. 뇌사 상태시, 장기기증을 하지 말 것. 물론 살아있는 동안에도 역시!
생명, 죽음은 하나님의 뜻하신 것. 인위적인 생명연장 행위는
하나님의 섭리, 주권에 대한 대항적 태도.
2. 빈소 또는 시신이 안치된 곳에 영정사진을 놓는다.
3. 영정사진 앞에 고인의 신원을 확인할 표식을 놓는다. 일반적으로 위패라고 한다.
그 내용은 교회에서의 직분에 상관 없이 성도 + OOO + 교회의 직분이 있는 경우는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으로 표시한다. 절대로 목사, 장로, 권사, 집사 등 교회에서의
직분을 앞세우지 말 것. 교회에서의 직분에는 변동이 있을 수 있으나, 예수 믿고 난 후
우리에게 주신 첫 이름 또는 직분이 성도인데 이 이름 또는 직분은 이 세상과 죽음 이후의
낙원과 천년왕국 등 모든 곳에서 사용되는 불변적인 것이다.
시 37:28 여호와께서 공의를 사랑하시고 그 성도를 버리지 아니하심이로다
저희는 영영히 보호를 받으나 악인의 자손은 끊어지리로다
고전 1:2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곧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또 각처에서 우리의 주 곧 저희와 우리의 주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예수 믿고 구원 받은 우리가 천국가게 되는 것은 교회의 목사, 장로, 권사, 집사, 권찰,
구역장의 직분과 신앙생활의 공력(功力)에 의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바른 표기는
고 OOO 목사(장로, 권사, 집사) 등도 아니고, 목사(장로, 권사, 집사) OOO 도 될 수 없다.
이는 죽음의 순간까지 하나님 앞에 겸손하지 못하고 자기를 드러내는 행위가 되는 것이다.
사람에게서 선출되지 않고 하나님께 뽑혀서 하늘의 하나님 보좌 곁의 각각 자기 보좌에
금면류관을 쓰고 앉았던 24장로들조차도 자기들의 금면류관을 하나님 보좌 앞에서
자기들의 면류관을 벗어 던지며 엎드려 경배했다.
계 4:10 이십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신 이 앞에 엎드려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경배하고
자기의 면류관을 보좌 앞에 던지며 가로되 11 우리 주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또한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죽음을 귀중히 여기신다.
시 116:15, 성도의 죽는 것을 여호와께서 귀중히 보시는도다
4. 영정사진 주변 눈에 잘 띄는 위치에 기독교 장례식이므로 고인의 영정사진을 향하여
절하지 말도록 표시한다. 예) 기독교 장례식이므로 절하지 마십시오.
5. 영정사진 앞에 향을 피우지 말 것. 향을 피우는 것은 이방세계에서 행하는 의식임.
6. 영정사진 앞에 헌화하는 것을 준비하지 말 것. 이방세계에서 행하는 의식임.
7. 영정사진을 두는 곳 주변에 고인이 사용했던 성경책을 두지 말 것.
고인의 영혼은 세상을 떠난 후 즉시로 낙원에서 보좌 앞에 서 있게 된다.
그러므로 낙원에 들어간 성도인 고인에게는 세상에서 썼던 고인의 성경, 유품이
더 이상 필요치 않다. 그러므로 고인의 성경책을 올려두거나, 또 펼쳐두는 것은
이 세상의 풍속이며 또한 고인의 신앙 공력(功力)을 돋보이게 하려는 허례허식이다.
8. 고인이 천국 간 것을 확신한다면 절대로 울지 말 것. 오히려 우는 사람들을 위로할 것.
예수 믿고 세상 떠난 성도의 장례 때, 천국 소망을 불어넣으며 위로하기보다는 곁에서
보기에 민망스럽게 느낄 정도로 통곡하는 어떤 교회의 권사님들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고인이 천국가지 못하고 지옥으로 갔기 때문에 불쌍해서 우는 것인지,
아니면 그렇게 좋은 천국을 나랑 같이 가지 왜 먼저 갔느냐며
속상한 마음으로 그렇게 우는 것인지,
통곡하는 사람, 슬피우는 사람들에게 질문해 보아야 할 것이다.
9. 고인이 생전에 좋아했던 찬송가들과 더불어 죽음 이후에 천국을 소망하는 밝은 곡조의 찬송가들을
선정하여 CD, 또는 녹음기, 특별히 mp3에 곡을 저장, 증폭 스피커로 연결,
반복적, 계속적으로 틀어 둘 것.
10. 조문객을 위한 음식접대에 술을 제공하지 말 것. - 분위기 혼란. 덕스럽지 못함.
11. 장지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예수 믿다가 데려가신 은혜의 감사와 영광을 하나님께 올려드리며,
유족 및 친척의 위로와 전도기회로 삼아 찬송가들을 힘써서 부를 것. - 고인이 출석했던 교회의
성도들이 많이 동행하여 9항의 찬송가들을 힘과 정성을 다해 불러서 위로하며
교회 장례가 세상 장례와의 다른 점을 확실하게 보여줄 것. 이후 장례 일정 속에서도 힘찬 찬송을!
성도들이여! 비록 조의금 봉투에 돈을 많이 넣지 못해도 초상집에 자주 갑시다.
힘찬 찬송으로 예수 믿다가 세상 떠난 이의 남은 가족과 친척들에게 성도의 죽음이
끝이 아닌 천국 입성이요, 고생의 끝이요, 행복의 시작임을 찬송의 고백으로 증거합시다.
또 초상집에 가서는 죽음을 배울 수 있다.
오늘 죽은 저 성도처럼 나도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천국가겠구나!
전 7:1 아름다운 이름이 보배로운 기름보다 낫고 죽는 날이 출생하는 날보다 나으며
2 초상집에 가는 것이 잔치집에 가는 것보다 나으니 모든 사람의 결국이 이와 같이 됨이라
산 자가 이것에 유심하리로다 3 슬픔이 웃음보다 나음은 얼굴에 근심함으로 마음이 좋게
됨이니라 4 지혜자의 마음은 초상집에 있으되 우매자의 마음은 연락하는 집에 있느니라
12. 입관, 발인, 하관, 화장로 투입, 납골묘 안치, 산골 등 모든 장례 절차에서
고인의 시신, 관, 유골, 묘소에 대하여 아빠!, 엄마!, OO야! 하며 이 세상 풍속을 좇아서
부르거나 부르짖지 말 것. 고인이 성도라면 보이는 현실 세계를 떠나 보이지 않는 세계,
하늘나라에 가 있으므로 오히려 하늘을 보고 불러야 할 것. 이런 행위도 적절한 것은 아님.
이 세상에서의 인간관계와 달리 천국에서는 실제적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너나 할 것 없이
형제이므로 이 세상에서의 인간관계가 계속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임.
13. 장례 절차를 모두 마친 후에는 고인에 대한 추억을 빨리 잊고 일상생활로 복귀할 것.
다윗은 어린 아들이 아플 때 금식하며 기도하다가 죽은 소식을 듣고 씻고 의복을 갈아입고,
여호와의 전에 가서 경배한 후에 먹었다.
삼하 12:19 다윗이 그 신복들의 서로 수군거리는 것을 보고 그 아이가 죽은 줄을 깨닫고
그 신복들에게 묻되 아이가 죽었느냐 대답하되 죽었나이다 20 다윗이 땅에서 일어나
몸을 씻고 기름을 바르고 의복을 갈아 입고 여호와의 전에 들어가서 경배하고
궁으로 돌아와서 명하여 음식을 그 앞에 베풀게 하고 먹은지라 21 신복들이 왕께 묻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는 위하여 금식하고 우시더니 죽은 후에는
일어나서 잡수시니 어찜이니이까 22 가로되 아이가 살았을 때에 내가 금식하고 운 것은
혹시 여호와께서 나를 불쌍히 여기사 아이를 살려 주실는지 누가 알까 생각함이어니와
23 시방은 죽었으니 어찌 금식하랴 내가 다시 돌아오게 할 수 있느냐
나는 저에게로 가려니와 저는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리라
가. 결혼 전 예방법
① 교회에서 설교, 교육을 통해서 아동기부터 미혼상태기간
지속적으로 결혼하기까지 교육할 것.
② 자녀 또는 본인의 이성 친구, 결혼 대상자의 신앙을
최우선 조건으로 가족과 이성에게 제시할 것.
③ 자녀 또는 본인의 배우자 결혼 대상자를 두고 교제 전에 무시로 기도할 것.
④ 자녀 또는 본인의 이성 친구, 결혼 대상자, 중매자에게
제사와 추도예배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자주 말할 것.
⑤ 자녀 또는 본인의 이성 친구, 결혼 대상자와 가족의 신앙이
기독교(천주교) 아닌 때는 교제를 끊을 것.
⑦ 자녀 또는 본인의 이성 친구, 결혼 대상자와 가족의 신앙이 기독교일지라도
죽은 자에 대한 집안 풍습을 살필 것
⑥ 자녀 또는 본인의 이성 친구, 결혼 대상자의 앞으로
신앙생활 하겠다는 말에 절대로 속지 말 것.
‘결혼대상자가 다 좋은데 한 가지 흠이라면, 신앙생활을 안 해!
또는 교회에 안 다녀, 식구들은 다녀도!’ 앞으로 다니겠지! 정신없는 소리임.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만물의 창조주 하나님을 믿지 않는데,
만물과 바꿀 수 없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불경건한 자의 삶일 뿐.
최근의 법원 판례에서 제사문제로 인한 종교갈등으로 이혼판결 사례가 있음.
너 두고봐 가만 안 둘거야! 하는 말은 무섭지 않지만,
차차 할게, 앞으로 할게 하는 말은 안 지킬 확률이 매우 높음.
결혼 후에 연애 전과 달라진 태도 때문에 부부싸움이 잦아지는 이유가
결혼하기 전에는 내 사람 만들기 위한 작전, 낚시 미끼를 썼지만,
결혼해서 내 사람 되었는데 이제 그렇게 매사 상대방에게
맞출 필요가 있나 하는 생각들을 가지기 때문임.
잡은 물고기 먹이 주는 것 봤어?
위와 같은 사전 준비없이 사랑한다는 이유로, 또는 신앙 외의 학벌, 재산, 직장, 월급 등의
조건 때문에 결혼하여 교회 출석을 금지 당하고, 제사 참석을 강요받고, 심지어 개종강요,
개종하는 사례로 고통 받는 이들이 주변이 많음.
요즘 동남아 국가의 이슬람교도들이 이주노동자로 입국, 합법적 체류, 성적 욕구 해결,
이슬람의 4혼으로 인한 이슬람교 포교를 위한 목적으로 한국여성들을 유혹, 결혼 후
자녀들을 이슬람식으로 교육함과 아울러 아내의 개종을 요구,
불응시 폭력행사로 고통당하는 경우가 많다고 함.
http://www.islammission.org/news/Korea/Korean_Mariage1.htm
처녀들 신앙은 결혼할 때보면 안다는 뼈 있는 농담이 있습니다.
교회 직분자 신앙은 자녀들 또는 본인이 결혼할 때보면 압니다.
물론 신앙으로 잘 지도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식이 제 뜻대로 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2011년 7월 1일 오전 11시 50분경 극동방송, 중보기도 시간에
연속으로 여집사님 2분이 아들이 각각 불신자와 결혼하려고 하는데 결혼 준비에
상대집안과 마찰 때문에 힘들다고 기도요청.
한 케이스는 며느리 될 처녀의 엄마가 독실한 불교 신자로서
목사님 주례로 결혼식을 하려는데 반대가 심하고 대화하기가 무섭다고 호소하는 것을 들었음.
나. 결혼 후 대처 방법
① 출석하는 교회에서 모든 성도들이 무시로 기도로 도울 것.
② 주변의 신앙을 가진 친구, 이웃, 친척들의 기도를 요청할 것.
③ 가장 극심한 핍박자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위하여 기도할 것.
④ 제사와 추도예배 외에는 흠잡을 만한 것이 없이 최선을 다해,
가정과 친족을 살필 것(경조사 참여 등). 가정, 집안일에 소흘하므로 교회에 미쳤다는 식으로
비난을 들을 정도이면 핍박은 당연한 결과임. 이런 정도 상황이면 당신의 예배는 거절될 것임.
당신의 잘못으로 예배의 대상자이신 하나님을 욕되게 하기 때문.
⑤ 교회 생활과 가정, 친척의 일이 동시에 충돌될 때, 무조건 교회생활을 주장하며
가정, 집안일을 무시하지 말 것.
주일과 겹친 집안 제사에 절은 하지 않아도 되니 어른들 인사나 하고 오후예배 참석하라는
요구 거절로 양육권 소송 패소 및 이혼 판결. 연애 결혼했던 목사 딸의 사례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1/21/2011012102136.html
⑥ 제사와 추도예배에는 참석할 수 없다는 것을 배우자의 부모님들께 분명히 자주 말할 것.
에스더의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의 금식, 결심과 지혜로운 행동으로 죽을 수 있는 상황에서
아하수에로 왕의 내미는 금홀로 왕에게 말할 기회를 얻게 되었음.
에 5:2 왕후 에스더가 뜰에 선 것을 본즉 심히 사랑스러우므로 손에 잡았던 금홀을
그에게 내어미니 에스더가 가까이 가서 금홀 끝을 만진지라
⑦ 남편이 독남무녀 외아들로,
제사음식 만드는 것을 피할 수 없을 때는 금식기도하며 준비해 줄 것.
⑧ 제사와 추도예배 문제로 상대방이 이혼을 제기할 때는
신앙자유를 위하여 이혼할 각오를 가질 것.
만약 ③④⑦ 항에 진실로 충실했다면 상대방이 이혼을 제기할 수가 없을 것임.
구약 욥의 경우를 보라.
그의 아내는 고난 중에 있는 남편에게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면서 떠났다.
⑨ 제사와 추도예배 문제로 상대방에게 먼저 이혼을 제기하는 것은 도피하는 것임.
고전 7:10 혼인한 자들에게 내가 명하노니 (명하는 자는 내가 아니요 주시라)
여자는 남편에게서 갈리지 말고
11 (만일 갈릴지라도 그냥 지내든지 다시 그 남편과 화합하든지 하라)
남편도 아내를 버리지 말라
12 그 남은 사람들에게 내가 말하노니 (이는 주의 명령이 아니라)
만일 어떤 형제에게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있어
남편과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저를 버리지 말며
13 어떤 여자에게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있어
아내와 함께 살기를 좋아하거든 그 남편을 버리지 말라
14 믿지 아니하는 남편이 아내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고
믿지 아니하는 아내가 남편으로 인하여 거룩하게 되나니
그렇지 아니하면 너희 자녀도 깨끗지 못하니라 그러나 이제 거룩하니라
15 혹 믿지 아니하는 자가 갈리거든 갈리게 하라
형제나 자매나 이런 일에 구속받을 것이 없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은 화평 중에서 너희를 부르셨느니라
16 아내된 자여 네가 남편을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며
남편된 자여 네가 네 아내를 구원할는지 어찌 알 수 있으리요
(이 말씀에 담대함을 얻어 불신앙 결혼 대상자 전도할 수 있다고 호기부리지 말 것.
마귀는 당신보다 더 뛰어난 지능과 재능을 가지고 당신의 설득을 무력화시킬 수 있고,
복음을 거절하도록 조종할 수 있다).
17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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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추모예배를 보면서``무엇보다중한건 ~`예수를믿었느냐~라고생각된다~`믿지도않고 죽었는디``살아서 세상가운데잘하고 ~이런말은
아무소용없다``거지나사로가 한것처럼``부자에 입술에 물한방울은 이미강건너등불일뿐이고``~살아서구원못받앗다면 `분명하게처러하는것도 더중요하다
어떤자리~체면을봐서~` 우리에인간에생각되로모든것처러할려면``주님에말씀은 ~없어도될것같습니다``세상법처럼 하나님에 게획을 무시하느건아무에게도도움안된디
감사합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항상 함께 하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