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택가 풍경
2002년 6월 미국 유학을 떠나는 아들과 동행해서 미국 땅을 밟기
시작한 이래로 여러 차례 미국을 방문하여 보통 2주일 정도
머물다 돌아왔지만, 금년 1월 둘째 아이를 출산한 며느리의
산바라지를 하기 위해 출국한 아내와 함께 머문 이번 방문에서는
50일이 넘게 미국에 머물게 되었다.
1970년대부터 미국유학과 이민이 본격적으로 붐을 타면서 미국
땅에서 살고 있는 한국인이 급속도로 증가하였고, 그에 따라 한국
과 미국 사이를 오고 가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엄청나게 늘어나
미국의 문물이 한국 국민들에게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다.
그런 과정에서 미국인들의 생활상을 우리 것을 비교해 ‘미국은 재
미없는 천국이고, 한국은 재미있는 지옥’이란 이야기가 널리 퍼기
게 되었다. 이번에 미국의 중산층들이 모여 살고 있는 주택가에서
생활하면서 목격한 미국인들의 생활 풍경을 바탕으로 판단할 때,
미국 사람들은 정말로 심심하고 재미가 없지만 아주 편안하게 생
활을 영위한다고 느껴 ‘재미없는 천국’이라는 표현이 딱 맞는다고
느꼈다.
한국 토종인 내 눈에 비친 그들의 사는 모습 중, 본받고 싶지만
우리가 결코 따라갈 수 없는 것들과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그들의 몇 가지 습관을 살펴보겠다.
(1) 주택의 겉모습
아들이 미국 중부의 Saint Louis에 자리 잡기 시작하면서 1년 간
생활했던 대학교에서 운영하는 원룸 형 5층 콘크리트 독신자 숙
소를 제외하면 Saint Louis 시내의 우리나라 연립주택과 비슷하
지만 뼈대가 목조건물인 콘도(Condominium)와 Seattle의 아파트
를 거쳐 작년 여름부터는 Seattle 외각 동쪽 외각에 위치한
한 위성도시의 단독주택에서 골고루 살아 보는 행운(?)을
갖게 되었다.
처음 구입했던 콘도에서 6년 동안 살면서 아들이 결혼도 했고 첫
아이도 얻었으며 박사학위를 취득하였으나, 지난 2011년 3월 미
국 서북부 워싱턴주 Seattle에 있는 암 연구소에 직장을 구해 그
곳으로 이사를 하였는데. 목조건물인 2층짜리 아파트의 2층에 월세
를 들어 살기 시작했다.
그 때 아들 내외는 두 돌을 지낸 세 살짜리 딸 때문에 심각한
고민에 빠지게 되었다. 아이 때문에 반드시 1층을 세로 얻어야
했지만 급하게 살 곳을 마련하느라 어쩔 수 없이 2층으로 이사를
하게 되었던 것이다. 애가 너무 쿵쾅거리면서 뛰어 다니는
통에 시끄러워 못 견디겠다면서 걸핏하면 2층으로 올라와 항의하는
아들네 바로 아래층의 두 미혼녀의 성화 때문에 철없는 아이에게
제발 조용히 놀아달라고 단속하느라 애 엄마가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되었다.
Saint Louis 시절, 목조 건물인 콘도 1층에서 살고 있을 때 주로
밤에 일을 나가는 독신 남자가 2층에 살아 비교적 조용한 편이었
지만, 수십 년 전에 지어진 낡은 집의 마루나 통로 바닥이 삐거덕
거리거나 쿵쿵 울리는 것을 여러 번 겪었던 기억으로 미루어 볼
때, 집에 머무는 동안 조용히 휴식을 취하려던 그녀들이 얼마나
괴로웠을까 짐작할 수 있었던 아들 내외는 늘 전전긍긍하면서 지
냈고, 아이가 조금만 뛰어다녀도 아래층 언니들한테 야단맞는다고
아이를 타이르는 게 일과가 되고 말았었다.
단독주택으로 이사한 후 아래 위층을 마음대로 뛰어다닐 수
있게 된 아이가
“엄마, 여기서는 뛰어다녀도 정말 괜찮아?”
라고 확인하면서 그렇게나 좋아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우리나라에서 아파트 위층의 소음 때문에 서로 싸우다 살인까지
일어났다는 뉴스가 떠올랐고, 여러 집이 모여 사는 콘도나 아파트에서
발생하는 층간 소음문제가 심각할 수밖에 없는 목조 건물의 치명적인
단점을 고려할 때 아이를 키울 때는 가급적 단독주택에서 살아야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해 여름부터 새로 살게 된 주택은 Seattle 중심부에서 동쪽에
위치한 중산층 주택가의 전형적인 미국식 목조 2층 집이다.
내가 매일 오전과 오후 두 차례씩 동네를 산책하면서 발견한 그
동네 주택의 특징은 첫 째 모든 주택은 목조 2층 집이지만, 쌍둥
이처럼 외모가 꼭 같은 집은 전혀 없고, 둘 째 모든 집은 쓰레기를
수거해 가는 대형 청소차도 접근이 용이하도록 차도와 접하고 있으며,
집 앞 정원을 내다볼 수 있는 1층 한 쪽에는 거실이 자리 잡고, 다른
쪽에는 자동차 2대가 주차할 수 있는 차고가 자리 잡고 있다는 것이다.
아들네 집이 위치한 지역은 제법 높은 야산 전체를 1970년대 중
반에 주거전용 지역으로 개발한 곳이어서 주변이 오르막길과 내
리막길이 번갈아 이어져 있고, 집을 짓기 전에 밀집해 있던 상록
수들을 가능한 한 살려놓아 앞쪽 정원과 후원에는 지금도 큰 나
무가 하늘 높이 치솟은 채 자라고 있어 도로 양쪽에는 별도로
심어놓은 가로수를 볼 수 없었다. 아들네 집에도 차고 입구 한편에
둘래가 1미터가 넘는 상록수 두 그루가 버티고 있고, 뒤뜰에도
그 비슷한 크기의 나무가 몇 그루 자라고 있다. 우리 부부가
그곳에 도착한 며칠 후, 같은 골목길의 대각선 방향에 위치한 집
앞뜰 복판에 서 있던 큰 나무 하나를 베어내는 것을 목격했는데,
밑둥치는 그대로 놔둔 채 윗부분만을 제거할 경우 보통 1,000달러의
비용이 든다는 말을 들었다. 그런 식으로 주택의 조망을 위해
정원에 서 있던 큰 나무를 베어낸 흔적을 산책 중 여러 곳에서
목격할 수 있었다.
(2)주택가 주변 도로와 산책 중 만난 사람들
아들이 유학생활을 시작했던 2002년부터 미국을 방문할 때마다
느꼈지만, 미국 도시의 인도에 깔린 대형 보도블록이 너무도 멋있
고 편리해 보였다. 내가 그동안 방문했던 몇몇 도시에서는 우리나
라의 조그만 벽돌 크기의 보도블록과 달리 표면이 매끈한 사방
약 4피트 크기의 정사각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보도블록으로 깔아
놓아 보행자가 아주 편하게 걸을 수 있도록 했고, 차도와 인도를
연결하는 부위에도 곡면으로 시공한 별도의 구조물을 깔아 놓아
자동차가 차고로 들어가기 위해 인도로 진입하거나 개구리 식으
로 도로변에 주차를 하는데 전혀 불편이 없도록 설계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역시 자동차를 두 발처럼 활용하는 미국 문화답다고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리고 도로를 포장할 때 중앙부를 양
끝부분보다 약간 높게 시공하였고 도로 양 쪽에 배수구를 촘촘히
설치해 놓아 사흘이 멀다고 비가 내리는 데도 불구하고 도로에
물이 고여 있는 광경을 전혀 구경할 수 없었다.
미국의 주택가는 주택 하나가 차지하는 면적이 평균 200평 정도
이고 모든 집이 도로와 접해 있도록 마을이 구성되어 인구밀도가
아주 적은 데다 주변에 사람이 모일만한 시설이 전혀 없으니 평일
낮 길에서 걸어 다니는 사람을 만날 기회가 참 드물었다. 산책
자체를 즐기는 은퇴한 노인들이나 개를 운동시키는 전업주부가
가끔 보이고, 맑은 날씨의 주말에는 산책하러 나온 젊은 엄마들이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지나가는 것이 가끔 눈에 뜨일 뿐, 궂
은 날이 많은 쌀쌀한 겨울철이라 그런지 주택가 전체가 너무나
조용해서 나도 모르게 기분이 착 가라앉는 느낌을 여러 번 겪었
다. Seattle 지역이 우울증 환자가 많아 미국 내에서도 자살률이
가장 높다고 들었던 이야기에 수긍이 갔다.
겨울 한 철 비 오는 날이 아주 많은 Seattle지역이지만, 비오는
날 우산을 들고 산책을 나가 보면 가끔 길에서 만나는 사람들이
하나 같이 우산을 들지 않은 채 비록 가랑비지만 비를 그대로 맞
으면서 걷고 있는 것을 여러 번 목격했다. 그들 대부분은 후드가
달린 점퍼를 입고 모자를 쓰는 것만으로 겨울비를 피하는 방법을
취하여 옷이 비에 젖는 것 쯤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그들 눈에는
우산을 들고 있는 내가 오히려 이상한 사람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는 생각이 들었다.
주말이나 공휴일에는 평일과 달리 비교적 많은 사람을 길에서
만나게 되는데, 조깅을 하는 젊은이들과 아기를 태운 유모차를 끌고
가는 애기 엄마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보행자들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가슴에 품고 다닐 정도의 조그만 애완견과는 전
혀 다른 어린 송아지만큼 큰 개를 끌고 나와 개를 운동 시키는
건지 사람이 산책을 즐기는 건지 헷갈리는 모습을 자주 목격하였
다. 특히 평일 낮 전업 주부가 그렇게 큰 개를 자동차 뒷좌석에
태우고 출타하는 모습을 볼 때면 ‘정말 미국 개들은 팔자가 참 좋
구나!’라고 감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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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자동차
모든 주택은 보통 부부용으로 자동차 두 대를 동시에 주차할 수
있는 차고를 갖고 있으나 차고를 다른 용도로 활용하는 집에서는
자동차를 자기 집 차고 앞마당에 옥외 주차를 하고 있었다. 산책
중 각 가정에 주차된 자동차와 도로를 지나가는 차를 살펴보면,
여기가 정말 미국 땅인가 의심될 정도로 미국제 승용차의 숫자가
아주 드물다고 느꼈다. 눈짐작으로 대충 헤아려 봐도, 일본제 자
동차가 60% 정도이고 다음으로 독일제, 그 다음으로 미국제와
한국제 자동차였다. 미국에서 판매된 현대의 엘란트라(한국의 아
반테 모델)가 200만대를 돌파했다는 뉴스를 TV에서 봤지만, 내
가 미국 체류 중 가장 많이 목격한 차종도 역시 엘란트라였다.
아들네 바로 옆집은 최근에 Texas에서 이사해 왔는데, 현대의 산
타페와 엘란트라를 Texas주 번호판을 교체하지 않은 채 굴리고
있고, 같은 골목 첫 째 집에도, 현대의 소형 자동차 2대를 운행하
고 있었다. 그 외에도 주변 도로에서 현대와 기아의 승용차나
SUV차량을 만날 때는 한국인의 자긍심을 느낄 수 있었고, 최근
우리나라 가전제품들이 일본 제품을 완전히 추월한 것처럼 멀지
않아 일본 자동차들과 질적, 양적으로 어깨를 견주는 날이 오리라
고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해 보았다.
(4)쓰레기 청소와 우편물 배달
그 동네의 쓰레기를 수거하는 매주 화요일이 되면 각 가정에서
는 뒤뜰에는 비치해둔 세 가지 색깔의 바퀴가 달린 플라스틱제
쓰레기 보관함 중 당장 수거해갈 필요가 있는 것을 골라 그날 이
른 아침 출근 시간에 자기 집 앞 인도 한쪽으로 끌고 나오는 소
리가 요란하게 들린다. 청색의 쓰레기통은 재활용 쓰레기, 밝은
회색은 일반 쓰레기, 그리고 녹색은 정원을 손질할 때 생기는 식
물 쓰레기와 음식물 쓰레기를 각각 따로 담아서 보관하게 되어
있어 3종류의 쓰레기 수거용 청소차가 동네를 돌면서 각기 해당
쓰레기통만 골라 수거하는데, 놀랍게도 청소차에서 사람은 아무도
내리지 않고 팔 모양의 지렛대를 뻗어 쓰레기통에 부착된 손잡이
에 걸고 들어 올리면 통이 거꾸로 뒤집히면서 쓰레기가 모두 차
안으로 쏟아지는 광경이 참 효율적이고 편리한 시스템이라 생각
되었다.
우편물은 두 가지 방법으로 각 가정에 전달되고 있었다. 일반 소
포나 택배는 배달원이 직접 현관 앞에 가져다 놓고, 초인종을 누
른 후 응답 여부에 상관없이 그대로 사라지지만, 수취인의 확인이
필요한 경우에는 초인종을 눌러 주인이 현관문을 열면 싸인을 받
은 후 물품을 넘겨주고, 빈 집인 경우에는 전화로 연락하여 수취
인이 직접 우체국에서 물건을 받아가도록 한다고 한다.
일반 편지를 각 가정에 배달하기 위해서 보통 집 앞 도로 양 쪽
에 있는 네 집 우편함을 모아놓은 우편 부스(사진 참조)를 차도에
서 먼 인도의 끝 부분에 설치해 놓았는데,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
일 우편물을 실은 상자 형 편지 배달차가 동네를 순회하면서 각
가정의 우편함에 우편물을 주입한다. 이 때 사람은 하차하지 않고
차를 인도 위로 바짝 붙여 정차한 후 팔을 내밀어 해당 우편함의
뚜껑을 열고 우편물을 넣는 식으로 편지 배달을 끝내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 식의 쓰레기 수거하거
나 편지를 배달하는 방식은 땅덩어리가 넓어 모든 주택이 도로를
접하고 있는 미국 같은 나라에서나 채택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
에 우리나라에서는 그림 속의 떡과 같은 시스템이어서 단념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이 서글펐고 미국이란 나라가 샘이 날 정
도로 몹시도 부러웠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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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자세한 스케치 잘 보앗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