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총재 통역
보름 전 쯤 IMF 홍보실에서 이멜이 왔는데 서울에서 있을 기자회견 영한통역을 해줄 수 있나 해서
일정을 보니 졸업시험 기간이라 일단 될 것같다고 답신을 했습니다. 2년 전 기획재정부에서
IMF 연례협의회가 끝난 후 기자회견을 했던 경험도 있어 호기심이 발동했습니다.
지난 학기 중에는 한-EU 대표단 회의 통역을 위해 브뤼셀로 오라는 제의도
학교일정때문에 못가 아쉬웠거든요.
며칠 후 보도를 보니 라가르드 총재가 서울에 온다는 것이었고, 일이 커진 것(!!)을 깨닫고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IMF와 기재부 홈피를 중심으로 관련 자료를 보며 용어를 정리하다 보니
역시 거시경제는 간단한 주제가 아니었습니다. 2년 전 경험 이후 저서 [통역강의록]에도
한 챕터를 할애하고 1/2학년 영한 시간에 몇 번이나 라가르드 총재의 연설을 다뤘음에도
그 분야는 계속 모르는 용어(예: tapering---버냉키 연준의장이 임기 말에 만든 양적완화 축소라는 조어)와 내용이 남아있었습니다. 준비 중에 수업에서 설명 못했던 부분들도 비로소 알게됐습니다.
(예: 유럽 재정위기에서 core란 프랑스, 독일 등 유럽 중심국가, periphery란 그리스, 이태리 등
주변 국가, 같은 유로 단일 통화권이지만 금융 통합이 안돼 상이한 금리 등으로 주변국들이
불리한 고통을 받고 있다는 등등...)
11월 말 이멜로 계약서를 받고보니 12월 5일(목) 3시에 광화문 프레스센터에서 한 시간 가량
회견이 있을 테니 2시까지 현장에 출두하라는 겁니다. 또 동시통역이라고 했습니다.
무심코 알았다고 하면서 "나혼자 통역하는 거 맞지?"라고 물었는데 놀랍게도 "같이 할 동료가
있으면 추천하라, 계약서를 보내겠다"는 겁니다. 그런 이메일을 읽어보면 영어도 훌륭하지만
IMF 등 유수 국제기구 직원들의 신속/정확성과 효율성에 감동을 받습니다. 몇시간을 통역하든
"일이 되게하기 위해 얼마간의 예산은 쓸 수 있다"는 분위기와 함께...
한시간 회의면 혼자 못할 것도 없고, 일단 혼자 하게되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혼자 최선을
다하게돼 더 큰 보람을 느낍니다. "궁즉통(窮卽通)"이니까요. 그러나 회견 시간이 더 늘어날 수도 있고 같이 하라는데 혼자 하겠다고 고집할 필요는 없어 수배 끝에 우수한 30기 제자 하나를 불러 계약을 하게 했습니다.
일단 제자와 함께 한다고 하고 보니 게으름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못하면 제자가 해주겠지?
이 나이에 윗니 임플란트도 끝나지 않아 발음도 새는데 잘됐다. 제자가 많이 하게해야지?"하면서
여유를 부리기 시작한 거죠.
서로 준비한 용어집을 공유하면서 보니 제자의 우수한 재질을 재확인할 수 있었고,
역시 프리랜스 통역사는 타고나야한다는 것을 다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 들어 동시통역에
절실한 순발력이 떨어지고, 강의나 하면서 1년에 한두번 실전에 나가는 사람과 거의 매일 다른
주제를 통역하는 제자의 능력은 비할 바가 못되었습니다.
프레스센터의 10층 외신지원센터에서 3시 조금 넘어 시작된 회견에서 사전에 임바고 보도자료로
배부된 모두 말씀을 내가 통역하고, 질의응답을 서너개 제자가 통역하다보니 30분도 안돼 행사는
끝났습니다. 회견장이 창문도 없이 페쇄된 구조라 더워서 총재가 부채를 부친 것도 회견단축의
원인이었어요. 인천 송도에서 김용 세계은행총재와 함께 박근혜 대통령을 모시고 개소한 GCF
본부 행사가 최대 이슈였으니 다른 큰 문제가 없었던 까닭입니다. IMF는 30분 통역을 위해
200만원 가까운 예산을 쓴 겁니다.
통역을 준비하면서 " 이 나이에 괜히 통역하겠다고 욕심을 부렸구나"하고 후회도 했지만 결과는
"또 많이 배웠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제 내년 수업에서는 IMF나 글로벌 거시경제에 대해 더
현실감 있는 강의를 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통대 교수들도 1년에 몇 번은 현장통역을 해야
현장감을 잃지 않는다는 거지요. 음대 교수들이 연주회를 하고, 미대교수들이 전시회를 하듯...
취임할 때부터 관심을 쏟았던 라가르드 총재를 직접 본 것도 인연처럼 느껴졌습니다 파리 출생이 어떻게 저런 훌륭한 영어를 구사하고, 두 번이나 이혼을 한 여성이 세계 제1의 금융기관 수장이
되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과연 "여걸"이었습니다...
출처 : http://www.jckwak.net/zeroboard/zboard.php?id=freeboard&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
첫댓글 아..게시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졸업한 지도 얼마 안 되었는데,, 게을러지는 저를 다시 채찍질하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