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락산 기타부기
계곡의 함성
주말아침 수락산 1번 출구는 일행을 기다리는 등산객들로 입추의 여지가 없다.
날씨도 덥고 대원들 요청도 있고 해서 대장이 주봉을 가려던 코스를 바꾸어
귀임봉으로 계획을 바꾸었다. 모두들 좋아했다. 장마로 맑은 물이 넘치는 계곡은 물놀이를 즐기는 아이들의 함성으로 활기가 넘쳤다. 우리도 통닭을 시켜놓고 물에서 놀면 얼마나 좋을까?
오솔길을 따라 계속 올라갔다. 울창한 숲길이어서 참으로 다행이었지만 모두들 땀을 줄줄 흘린다. 큰 바위가 있는 곳에서 휴식을 취할 겸 간식을 먹기로 했다. 아까부터 어적거리며 뒤따라 올라오는 할아버지가 잠시 우리 있는 곳에 멈춰 서서 이야기를 한다. 연세가 얼마냐고 물었더니 50년생이란다. 80정도는 된 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아래다. 속으로 은근히 놀랐는데 눈치를 챘는지 “왜 팍삭 늙은이로 봤어요?”하고 묻는다. 수박을 좀 먹어보라했는데 안 먹는다. 호박엿을 한줌 쥐어주니 성의를 생각해서 한 개만 받겠다고 한다. 산에서 간식을 일체 먹지 않는 주의라고 했다. ‘먹는 재미가 없으면 산을 왜 오르느냐?’고 하는 사람들도 있는데 대단한 사람이다.
사패터널을 바라보며
영빈이가 “날씨가 너무 덥다. 이제 그만 내려가자”고 했다. 주변에서 이제 거의 다 왔으니 조금만 더올라가자 라고 해서 다시 길을 출발했다. 조금 올라가니 능선이 나왔다. “다 올라온 줄 모르고 자칫 내려갈 뻔했잖아?” ‘行百里者 半九十里’ 어느 기원에서 본 액자의 문구가 생각났다. 백리를 가고자 하는 자가 구십리를 가서 반밖에 못 왔다 생각하고 포기한다는 뜻일 것이다. 자만을 경계한다는 뜻도 있다 한다.
조금 올라오니 정상으로 보이는 곳에 훤한 바위가 있어 많은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우리는 전망 좋은 한곳에 자리 잡고 남은 간식들을 꺼내었다.
사패산 터널이 눈앞에 선명하게 보였다. 사패(賜牌)는 왕이 공을 세운 왕족이나 신하에게 땅이나 노비를 하사할 때 그 소유권을 인정하는 문서를 이르는 말이다. 사패산은 선조의 여섯째 딸인 정휘옹주가 유정량(柳廷亮)에게 시집갈 때 선조가 하사한 산이라 하여 붙인 이름이란다.
사패산 터널은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에 있는 터널. 송추IC와 호원IC 사이에 있는 편도 4차선짜리 쌍굴터널로, 길이가 무려 4km에 달하는 세계 최장 광폭터널이다.
2001년에 서울외곽순환고속도로 서울 이북구간(일산 나들목 ~ 퇴계원 나들목)의 건설계획이 잡히면서 공사가 시작되었다가 불교계와 시민단체들의 반대로 공사가 중단되는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문득 천성산 터널과 도룡뇽 논쟁이 생각났다. 2004년 8월 경남 천성산을 관통하는 고속철 터널을 뚫으려 하자 도롱뇽 서식지를 파괴할 것이라며 지율 스님이 도롱뇽을 원고로 하여 소송을 제기하고, 청와대 앞에서 단식 농성을 벌였다. 한동안 공사가 중단된 끝에 2010년 천성산 터널이 완공됐지만 도롱뇽 생태계는 파괴되지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 공사지연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과 파장은 엄청났다.
지난해 우리나라에서는 여의도 면적(290만㎡)의 8.4배인 2443만㎡의 숲이 태양광발전소 건설로 사라졌다. 정부는 현재 7~8% 수준인 재생에너지 발전 비율을 2040년까지 35%까지 끌어올리겠다고 했다. 원전 1GW 설비 용량을 갖추는 데 필요한 부지는 0.6㎢인데, 태양광으로 1GW의 전력을 생산하려면 여의도 면적의 4.6배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계획을 밀어붙이는 건 비현실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환경 훼손과 전기료 폭등을 가져올 게 불 보듯 뻔하다고 해도 정부는 막무가내다.
이상한 것은 사패산터널, 천성산 도롱뇽이 그 난리를 쳤는데 이처럼 광범위한 환경 훼손이 전국적으로 자행돼 생태계가 파괴될 상황에 처했는데도 그 많던 환경론자들은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는다 (조선일보 2019.06.20 03:13)
베트남 새댁의 얼굴
34~5도를 오르내리는 폭염이 모두를 지치게 했다. 가파른 길에 설치한 통나무 계단이 폭우로 흙이 빠져버려 위험한 길이 되어있었다. 험한 내리막길에서 내가 통나무 돌출부위에 걸려 넘어졌다. 돌발사고에 뒤에 따라 오던 친구들이 놀라서 비명을 질렀다. 가파르고 험한 곳이어서 넘어지는 순간 오늘 작살났구나 싶었는데 그런대로 멀쩡했다. 정강이가 까져 피가 나고 손바닥에도 피가났다. 부러지거나 깨어지는 등 끔직한 일은 없었다. 무릎통증에 더하여 오른쪽 팔이 까져있고 옆구리 갈비뼈가 조금 아픈 외에 별다른 이상은 없는 것 같았다. 천만 다행이다.기슭에 내려오니 기영이가 세수를 좀 해야겠다며 계곡으로 내려갔다. 나도 손을 씻을 양으로 따라 내려갔다. 계곡에는 곳곳에 사람들이 물에 발을 담그고 피서를 하고 있었다. 맞은편에 시어머니와 며느리인 듯한 사람들이 앉아있었다. 곱상스런 새댁이 나를 보더니“아저씨 다쳤네요 많이 아파요?” “아저씨 산꼭대기에 올라갔다왔어요?” 신기한 듯 이것저것 묻는다. 내게 친절하게 묻는 새댁이 신기해 자세히 보니 베트남에서 시집온 여인 같았다.
“물에 발만 담그고 있으면 어떡해요? 산에 올라가야지”했더니 “어머님이 다리가 아파 못 올라 가요”한다. “업고라도 올라갔다 와야지요” 라고 하자 “아들이 업어 야지 나는 힘들어 못해요” 하며 활짝 웃는다. 저 모습이 오늘날 이 나라 젊은이들이 회복해야할 사람 본연의 모습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넉넉한 인심
장어집에 들어갔더니 ‘세야’라는 아가씨가 내 피나는 다리를 보더니 소독약에 마데카솔과 벤드를 찾아와서 약을 발라주고 벤드를 붙여주었다. 영빈 회장이 실컷 먹을 만큼 넉넉하게 장어를 시켰다. 분위기가 무르익어갔다. 내가 근래 만난 어느 부동산 아주머니의 증여, 상속, 부동산 업무 전반에 걸친 해박한 지식과 넘치는 삶의 에너지에 감동했던 이야기를 했다. 기영이가 자기도 대치동에 집이 있고 공인중개사 자격증도 있으니 앞으로 거기서 큰 부동산 사업을 해보겠다고 포부를 이야기 했다. 내가 대치동 청실아파트 재건축한 것 팔지 않고 가지고 있느냐? 몇평이냐? 하며 물어보았다. 옆에서 누가 ‘대치레미안 펠리스’ 35평인데 30억이라 했다. 내가 “이런 도둑놈(?) 대치레미안 35평에 용인 성곡 47평을 가졌으면 재벌아니냐? 영빈이 처럼 재벌이면 재벌답게 처신해야지 왜 숨기고 살았느냐? 했더니 나는 숨긴 적 없어 하고 항변했다. 기영이는 몇 년 전부터 어느 보험회사에서 기업컨설팅 고문으로 근무하고 있다. 실적을 요구하는 그런 업무가 그 나이에 얼마나 힘들겠나? 나는 지금까지 동대가 보험회사 나가는 것이 월급에 상관없이 건강에 좋은 것이라고 늘 격려해주었다. 그런데 실상을 알고보니 재벌(?)이다. "야! 뭔 재벌이 그렇게 주접을 떨어? 재벌이면 재벌답게 놀아야지" 하면서 욕인지 칭찬인지 모를 추궁을 하다 보니 모두들 많이도 웃었다. 기영이가 흔쾌히 점심값을 내겠다 하여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번쩍이는 이마 만큼이나 넉넉한 인심에 감사할 따름이다.
검은장갑
회장이 노래방엘 가자고 했는데 누구도 반대하는 사람이 없었다. 노래방에 들어가자마자 기영이가 "희태 애창곡을 내가 불러볼게" 하더니 ‘검은 장갑’을 멋들어지게 불렀다. 몇 차례 노래가 돌아가는가 싶었는데 종순이가 ‘부기부기’를 부른다. 왠일이니? 모두들 희태 노래를 부르는데 정말 맛깔나게 불러재킨다. 영빈이는 춤까지 추며 노래를 부르는데 완전히 '오빠' 수준이다. 황대장의 노래는 박자가 많이 좋아졌다. 대장은 역시 박자가 늘어져야 제맛인데... 모두들 기분좋은 오후다.
친구들끼리 만나 땀 흘리고 맛있는 것 먹고 노래 부르고 마음껏 웃는 삶이 얼마나 귀하고 값진 삶인가? 비록 다리가 깨어져 피가 흐르지만 어디한곳 부러지지 않은 것이 더없이 감사한 오후다. 2019. 8. 5 石泉
날씨가 덥긴 더운모양이여
첫댓글 재벌은 무슨, 친구들과 어울리고,가지고 갈 것도아닌 , 점유 뿐인 인생이거늘!
그런 넉넉한 마음으로 그렇게 사는 것이 재벌이지요
맛갈나는 산행일지 잘 보았습니다 다친곳이 별 탈없이 회복되기를 기원합니다 그래야 다음 달에도 또 만날수 있으니까요
고마워요
다리다친것 그곳이 아파 걸음걷는 것이 불편한데 뼈는 이상이 없는 것 같아 미련스럽게 버티고 있어요
옆구리 갈비뼈 가슴뼈가 결렸는데 점차 좋아지고 있어 다행, 별것 아니던 오른쪽 팔이 시간이 지나니 조금 불어오르더니 퍼렇게 멍이드는데 아픈것은 없지만 우리몸이 외부충격에 어떻게 작용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것같아 놀라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