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친절과 친절
비 내리는 토요일, 휴일의 느긋함을 즐기며 평소보다 늦은 아침을 준비하는데 남편의 휴대폰이 반갑지 않게 울린다. 7시 이전이기에 전화내용에 신경이 곤두선다. 아니나 다를까 남편은 전화 끊기가 무섭게 시골에 내려가야 한다며 갑자기 분주해졌다. 나도 덩달아서 세수를 하며 ‘누구에게 온 전화냐? 무슨 일이냐? 왜?’라며 성급한 질문을 쏟아낸다. 시골에 사는 남편 친구에게서 온 전화인데, 어머님이 일어나지 못하시고 누워계신다는 전갈이었단다. 시어머니는 가끔씩 어지럼증이 심하게 올 때면 인사불성이 되시곤 한다.
이전과 달리 어머님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듯하여, 도착하자마자119구급차를 불렀다. 구급대원은 밤 근무를 하고 퇴근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며 환자를 병원에 빨리 수송하고 싶은 분위기다. 가까운 읍내의 건천 어느 병원으로. 왠지 반기는 분위기가 아닌지라 어색하기만 한데 게다가 의사는 왜 그리도 쌀쌀 맞고 불친절한지 병원을 찾아온 우리가 미안한 기분이었다. 구급대원들과 대화 도중에 마찰이 있었던지 화가 난 얼굴로 퉁명스럽게 한마디 내뱉는다.
“전화도 안 해보고 이렇게 들이닥치면 어쩝니까?”
‘…….’
내가 옆에서 사정하듯 말했다.
“환자가 어디 시간을 정하고 아픕니까? 집 가깝다고 이리로 왔는데 화 푸시고 진료하시고 응급조치라도 부탁드립니다.
진료거부라도 할 듯이 굴더니 혈압을 잰다. 혈압을 재면서 구급차를 보내지 말란다. 무슨 사정이 있는지는 몰라도 애초부터 환자를 받을 생각이 없었나보다. 구급대원들에게 기다려 달라고 요청할 수밖에 없었다.
비는 더욱 세차게 내린다. 경주의 큰 병원으로 향하면서 의사의 불친절에 대한 불쾌감을 지울 수 없었다. 불쾌해서 구급대원들과 함께 불만을 나누고 있었다. 배운 사람이… 사회적 지도층에 있는 사람이… 자기 편리만 생각하고…저런 x이 다 있노!
시내병원 응급실에서 오전을 거의 보내고 오후 1시가 다 되어갔다. 혈압을 재고 혈액검사를 위해 채혈을 하고, 혹시나 해서 뇌 검사까지 한다. 링거 투여를 하는 동안에도 의식을 찾지 못하고 입술을 바르르 떨면서 입에 거품을 자꾸 내니 의사가 혹시 무얼 먹었는지 아느냐며 자꾸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혼자 계셔서 잘 모르겠다고 말하는데 마음이 찔린다. 어머님을 대구로 모셔 오기로 했다. 그르려면, 다시 어머님께서 살고 계시는 시골 집에 다시 들러 이것저것 갈아입을 옷이라도 챙겨야 한다. 그때서야 시장기가 느껴졌는지, 남편은 집 가까이에 있는 식당에 차를 세웠다. 길가의 작은 마을에 있는 허름한 식당이다. 아침 겸 점심을 먹기로 했다. .추적추적 내리던 비는 더욱 거세진다. 초라한 차림새에 허리까지 구부러진 팔순을 넘긴 노인의 모습은 아주 초라하다. 겨우 부축을 하여 식당으로 들어서니, 주인아주머니가 얼른 나와서 방석을 깔고, 전기난로를 가까이 가져와 켜준다. 방석을 깔자 바로 누워버리는 시어머니가 많이도 안타까워 보이셨던지, 아주머니는 덧버선 한 켤레를 가져 나와서 신겨주시기까지 한다. 맨발이 눈에 거슬렸나 보다. 그분의 마음 씀씀이에 가슴이 뭉클해온다. 나라면 처음 보는 낯선 노인에게 저렇게 할 수 있을까? 염소탕은 금방 나왔다. 어머니를 일으켜 앉히고 다른 그릇에 국물만 조금 떠서 드렸더니 한 숟가락 뜨시는 표정이 영 아니다. 입에 맞지 않으신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그 모습을 보더니, 얼른 주방으로 들어가서 뭔가를 가져오신다. 집에서 기른 토종닭을 잡아 끓인 닭죽이라며 드셔보시란다. 갖은 채소를 넣은 영양 닭죽이다. 어머니는 맛을 보시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내 입에 맞다 하시며 맛있게 드신다.
밥을 다 먹어갈 때쯤 시골집에어머니 옷가지를 챙기러 갔던 남편이 식당에 도착했다. 주인은 그대로 남아있던 염소탕 한 그릇을 주방으로 가져가서 다시 데워서 가져왔다. 친절함에다 지혜까지 갖추신 중년 여인의 인정스러움이 향기롭다. 남편이 밥을 다 먹어갈 때 주방에서 나오시며 또 무언가를 들고 나오신다. 맛있게 드시는 어른이 저녁에 드시라고 통에다 담아주신 것이다. 좀 전에 토종닭이라서 식구들끼리 먹으려고 남겨둔 것이라고 하신 말씀이 생각나서 고마움이 더했다. 음식값을 계산하기 위해 이만 원을 드렸더니 만 원 한 장만 쑥 빼면서 이것만 받겠다고 하시는 주인아주머니와 나는 잠시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했다. 염소탕 가격이 만 이천 원인데 닭죽 챙겨주신 것까지 한다면 더 드려도 아깝지 않은데 이천 원이나 덜 받으시겠다니 말이다. 결국은 내가 밀렸다.
이천 원이 아닌 돈으로 따질 수 없는 친절함에 훈훈해진 가슴은 의사의 불친절함에 불쾌했던 순간들을 한순간에 녹여 준다. 웃으며 나서는 길에 우산까지 받쳐주며 비를 맞지 않도록 살펴주고 차 문까지 닫아주며 조심해서 가라고 인사하고 또 인사한다. 미안하고 고맙고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하는 나에게 “젊은 사람이 어른에게 잘하는 모습이 그저 예쁘기만 하구만~!” 하시면서 빙그레 웃으신다.
독일 문호 괴테가 ‘친절은 사회를 움직이는 황금의 쇠사슬’이라고 했던가. 오늘 처음 만난 사람들은 마지못해 업무상 불려온 달갑지 않은 구급대원의 얼굴과 불친절의 극치를 보여 준시골 읍내의 폭력에 가까운 얼굴, 병원 응급실에 근무하는 지극히 사무적인 의사와 간호사의 얼굴들이 하나씩 겹쳐지더니 마지막엔 마치 구세주처럼 환하게 식당 아줌마 의따스한 손길과 친절함은 불쾌했던 기억마저 지워준다. 마치 신비한 빛처럼 환하게 마음을 밝혀주고 충만하게 해주었다. 타인이 전해준 강렬하고 신비한 힘을 가진 친절은 상대를 즐겁게 하는 인간의 또 다른 언어다.
첫댓글 지금은 좀 어떠 하시온지요? 휴일 아침에 한바탕 부산스러웠겠습니다. 그래도 마지막에 친절하신 식당 아주머니 덕분에 밝아지신 선아님~ 제가 다 고맙네요. 얼른 쾌차하시길 바랍니다.,
걱정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요즘은 어쩔 수 없이 요양원에서 생활 하십니다.
마음이 늘 편치 않습니다만 세상 따라 가게 되나봅니다.
이 글은 몇 년 전에 글을 퇴고하여 수필로 완성한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