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 이기기
2025년 4월 6일 욥 10:13-19
1. 부조리한 삶
영국의 시인 T. S. Eliot의 황무지(The Waste Land)의 한 구절입니다.
사월은 가장 잔인한 달이다.
죽은 땅에서 라일락을 피우고
기억과 열망을 뒤섞고
잠든 뿌리를 봄비로 깨우기 때문이다.
겨울은 오히려 따뜻했다.
모든 것을 잊게 만드는 흰 눈이 대지를 덮고
이 연약한 목숨은 마른 작물로 유지하였으니.
APRIL is the cruellest month, breeding
Lilacs out of the dead land, mixing
Memory and desire, stirring
Dull roots with spring rain.
Winter kept us warm, covering
Earth in forgetful snow, feeding
A little life with dried tubers.
시인은 4월이 가장 잔인하다고 합니다. 죽은 땅에서(겨우 내 꽁꽁 얼어 죽은 것 같았던 땅에서) 라일락을 피워내고요, 오랜 세월이 지나 이제는 아득해 진, 오래된 우리의 기억과 꿈을 살려내고요, 겨우내 잠들었던 나무뿌리들을 봄비로 촉촉이 적셔 깨우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차라리 추운 겨울은 오히려 견디기 쉬웠답니다. 젊은 날의 소중한 기억과 꿈들이랑 잊고서 그냥 마른 감자 몇 알로 지냈으면 되었으니까요. 간절한 바람, 꿈, 소망이 있으면 실현되든지, 실현될 수 없다면 아예 마음과 기억에 떠오르지 말던지 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해서 번뇌하는 우리네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같은 부조리한 삶의 탄식은 성경에도 많이 나타납니다. 모르시는 분들은 성경엔 좋은 이야기만 있는 것으로 생각합니다만, 실제 성경에는 인생살이에 지친 사람들의 탄식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도 보통 사람들이 아니라 성경에서 위대하게 묘사된 대단한 인물들이 탄식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위대한 영도자 모세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시 90:10입니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빠르게 지나가니, 마치 날아가는 것 같습니다.
모세가 어떤 사람입니까? 하나님하고 그렇게 가까운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 모세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라고 고백합니다. 우리 인생의 유한한 모습, 허무한 점이 잘 나타나 있지요. 여러분, 혹시 왜 이렇게 인생이 고달픈가 생각할 때가 있습니까? 내가 이렇게 수고하는 데도 왜 이렇게 즐거움이 없는가 생각할 때가 있지요? 그럴 때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모세도 그렇게 느꼈습니다. 인생이란 게 본래 그런 겁니다. 엘리야도 탄식합니다. 왕상 19:4입니다.
자신은 홀로 광야로 들어가서, 하룻길을 더 걸어 어떤 로뎀 나무 아래로 가서, 거기에 앉아서, 죽기를 간청하며 기도하였다. “주님, 이제는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나의 목숨을 거두어 주십시오. 나는 내 조상보다 조금도 나을 것이 없습니다.”
위대한 예언자, 예언자 중의 예언자, 예언자의 대명사격인 엘리야이지만, 그러나 그도 개인적인 삶에 있어서는 하나님 앞에 깊이 탄식하는 존재였습니다. 예수님도 탄식하였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장면을 기억하시지요? 십자가 독배를 들기가 싫어 몸부림치는 인간 예수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의 몸부림과 탄식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
이처럼 우리만이 아니라 성경의 위대한 인물들도 부조리한 삶에서 탄식하였습니다.
2. 욥의 탄식
그럼에도 성경에서 가장 큰 어려움을 겪은 사람을 꼽으라면 단연 욥일 것입니다. 욥은 아주 부자였고요 또한 신앙심도 매우 깊은 인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사탄의 모함으로 큰 어려움을 겪게 됩니다. 자식들이 한 날, 한 시에 한 집에서 몰사합니다. 모든 재산이 하루아침에 날아갑니다. 나중엔 병들어 차마 볼 수 없게 됩니다. 욥의 아내는 그리 사느니 차라리 죽으라고 하고, 친구들은 네가 잘못해서 그 지경이 되었으니 어서 속히 하나님께 빌라고 충고를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는 의심이 없지만, 그러나 너무나 힘든 고통 앞에서 어깃장을 놓는 것이 오늘 본문입니다. 욥 10:13-14입니다.
그러나 지금 생각해 보니, 주님께서는 늘 나를 해치실 생각을 몰래 품고 계셨습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죄를 짓나 안 짓나 지켜보고 계셨으며, 내가 죄를 짓기라도 하면 용서하지 않으실 작정을 하고 계셨습니다.
‘내가 죄를 짓나 안 짓나 지켜본다?’ 하나님이 그러셨을까요? 욥도 그리 생각했을 리는 없겠습니다만, 너무나도 억울한 욥의 심정을 그렇게 토로한 것이지요. 18-19절입니다.
주님께서 나를 이렇게 할 것이라면 왜 나를 모태에서 살아 나오게 하셨습니까? 차라리 모태에서 죽어서 사람들의 눈에 띄지나 않았더라면, 좋지 않았겠습니까? 생기지도 않은 사람처럼, 모태에서 곧바로 무덤으로 내려갔더라면, 좋았을 것입니다.
그런 경험 있나요? 우리가 너무 속상할 때, 악에 받쳐 싸울 때, 상대방에게, 부모님이나 배우자에게, 혹은 친구에게 가장 가슴 아픈 말을 할 때가 있지요. 들어서 가장 속상할 만한 얘기만 골라서 하지요. 그럴 수 있습니다만, 이제는 그러지 마세요. 그러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그런데 욥이 지금 딱 그런 심정입니다. “도대체 이럴 바에야 왜 나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까? 차라리 나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하나님,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하는 태도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힘에 겨운 인생을 죽을 지경으로 살아가는 우리네 심정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습니다. 이런 점에서 욥기는 욥의 이야기면서 우리네 이야기입니다.
3. 4월 이기기
제가 설교 제목을 ‘4월 이기기’라고 했습니다. 4월은 이겨내야 하는 달입니다. 왜냐하면 4월은 매우 힘든 달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것 같던 나뭇가지에서 라일락이 피어나 마음속에 오래 가라앉아 있던 것들을 휘저어 놓습니다. 이제는 다 없어진 줄 알았던 젊은 날의 기억과 꿈들이 다시 살아나는 겁니다. 이제는 힘도 없고, 열정도 없고, 아무 것도 없는데 그 옛날의 기억과 꿈들이 자꾸만 스멀스멀 일어나는 겁니다. 참으로 죽을 지경이지요.
4월은 진달래의 계절입니다. 진달래가 얼마나 색깔이 곱습니까? 하지만 저는 그 꽃만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대학생 시절 4월이면 학교 교정에 진달래가 만발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의 4월은 몹시도 힘들고 아픈 달이었습니다. 다음 주간이면 4.19가 돌아옵니다. 자유당의 이승만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역사적인 날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 날을 온전히 기뻐할 수 없는 것은 그 후에 또 다른 군사독재정권들을 맞이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오늘도 군사 통치를 획책하는 무리들이 여전히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지난 주간 우리는 정말로 마음을 졸이며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지켜보았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이런 몰지각하고 비상식적인 일들을 당해야 할까요? 민주주의란 이렇게 누리기 어려운 것일까요?
매우 아픈 시간, 잔인한 달 4월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4월을 이겨낼 수 있을까요? 여전히 우리의 답은 사랑입니다. 해바라기의 ‘사랑으로’라는 노래가 있지요. 그 가사가 일품입니다.
내가 살아가는 동안에 할 일이 또 하나 있지.
바람 부는 벌판에 서 있어도 나는 외롭지 않아.
그러나 솔잎 하나 떨어지면 눈물 따라 흐르고,
우리 타는 가슴 가슴마다 햇살은 다시 떠오르네.
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우리 주변의 작은 것들을 사랑하는 것이 이 잔인한 달을 이겨내는 한 방법입니다.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한 것처럼 우리의 사랑이 필요한 곳에 우리의 사랑을 담아주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를 살리는 길입니다. 사랑이 정답입니다. 이 잔인한 계절에 극심한 우울증을 겪고 있는 저도 제 작은 사랑을 담을 곳을 찾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들도 사랑을 담을 어두운 곳을 잘 찾으시기 바랍니다. 지난 주간 교회 단체 대화방에서 나눈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 가운데 한 구절입니다. “…인생은 당신이 행복할 때 좋습니다. 그러나 더 좋은 것은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입니다.”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당신 때문에 다른 사람이 행복할 때!
열심히 사랑함으로, 정말 열심히 사랑함으로 이 잔인한 달, 4월을 이겨내는 저와 여러분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