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북권 아파트값이 올 들어서도 계속 강세다. 2006년 하반기 이후 시작된 강세 기조가 1년 반 이상 지속되고 있다. 특히 중소형(전용면적 85㎡ 이하) 아파트값 상승세가 무섭다. 아파트를 사겠다는 사람은 많은 데 매물은 씨가 말랐다. 당연히 값도 치솟고 있다.
한동안 집값 ‘소외지역’으로 분류됐던 강북지역의 아파트값이 해를 넘겨서도 강세를 이어가는 진짜 이유가 뭔지 따져봤다.
중소형 아파트값 오름세 “장난 아니네”
한국부동산정보협회와 중앙일보조인스랜드에 따르면 올 들어 강북권(강북ㆍ노원ㆍ도봉ㆍ성북ㆍ은평구) 아파트값은 4.22% 올랐다. 같은 기간 서울 전체 평균 상승률(1.24%)을 크게 웃돌았다. 올 들어 0.46%의 상승률을 보인 강남권(강남ㆍ서초ㆍ송파구)과 비교하면 강북권 집값 상승세는 더욱 두드러진다.
지역별로는 노원구(6.24%)와 도봉(3.24%)ㆍ강북구(2.54%)가 가격 상승을 주도했다. 이는 강남(0.67%)ㆍ서초(0.13%)ㆍ송파구(0.35%) 상승률을 크게 넘어선 것이다.
면적별로는 초소형(전용 60㎡ 이하) 아파트값 상승률이 뚜렷하다. 올 들어 두 달 새 7.63%나 뛰었다. 이어 소형(전용 60~85㎡)은 2.46%, 중소형(전용 85~102㎡)아파트값은 2.22% 올랐다. 반면 전용 102~135㎡ 이하(1.351%)와 135㎡ 초과(1.33%)는 중소형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승 폭이 크지 않았다.
강북권 아파트값 강세는 단지별 호가 움직임을 통해서도 금새 확인할 수 있다. 노원구 상계동 벽산아파트 49㎡는 1억4000만~1억5000만원으로 올 들어 2000만원 이상 올랐다. 같은 단지 56㎡도 두 달 새 2000만원 올라 1억5000만~1억6000만원을 호가한다.
상계동 대산공인 이종희 사장은 “역세권 주변에 주로 몰려 있는 중소형 아파트를 구하기 위해 대기자들이 줄을 선 상태”라며 “수요는 많은데 매물이 없어 집값이 호가 위주로 계속 오르고 있다”고 말했다.
상계동 수락중앙아파트 82㎡는 두 달 새 무려 5500만원이나 호가가 뛰어 1억8500만원 선이다. 중계동 무지개 아파트도 모든 주택형에서 올 들어 4000만원 이상 올랐다. 쌍문동 한양 1차 72㎡는 1억8000만원 선으로 올 들어 3000만원 가량 호가가 올랐다. 단기간에 급등한 가격에 부담을 느끼는 수요자들이 적지 않지만, 매물이 워낙 귀해 가격만 맞으면 매수하겠다는 수요는 여전하다는 게 현지 부동산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도봉구 방학동 신동아2차 89㎡는 연초 2억1500만원에서 지금은 2억4250만~2억5000만원을 호가한다. 창동 주공1단지 63㎡도 1억4200만원에서 1억7000만원으로 올랐다. 도봉구 창동 4단지공인 김현실 실장은 “계약서를 쓰기 직전에 매물이 회수되어 거래가 불발되기 일쑤”라며 “호가만 무섭게 치솟고 있다”고 전했다.
일부 단지에선 가격 담합 움직임까지 감지
강북권 아파트값이 강세를 이어가는 이유가 뭘까? 원인은 복합적이다.
첫째, 개발 호재를 꼽을 수 있다.
상승세를 주도하고 있는 노원구의 경우 2016년 완공 예정인 경전철 건설, 상계3ㆍ4동 뉴타운 개발, 당현천 복원공사, 창동차량기지와 도봉운전면허학원 이전, 서울외곽순환도로 개통 등의 각종 호재가 겹쳤다. 상계동 국민공인 관계자는 “각종 개발 호재로 추가 상승 기대 심리가 강하게 작용하면서 매물 품귀 속 호가 상승세가 계속되고 있다”고 말했다.
강북구는 우이~신설 간 경전철 착공 및 미아 뉴타운 개발에다 놀이시설(드림랜드) 부지의 대형공원 조성 재료를 안고 있다. 도봉구도 국군 창동병원 부지에 북부법조타운이 개발되고 우이~방학 간 경전철 연장 등이 호재로 작용하고 있다.
둘째, 강북권 등에서 중소형 전세 매물을 구하지 못한 전세 수요자들이 매매로 돌아서고 있는 것도 중소형 아파트값 상승에 한몫한다. ‘중소형 전세수요 증가→전세 매물 품귀→전셋값 상승→소형 매매수요 전환’ 구조로 이어지고 있다.
강북구 수유동 하나공인 관계자는 “전셋값이 뛰자 전세 대신에 매매로 발길을 돌리는 수요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노원구 중계동 대신공인 윤효숙 사장은 “값 비싼 중대형 아파트는 대출규제 등으로 자금부담이 커 구입하기 쉽지 않지만 소형은 전셋값에 조금만 보태면 돼 상대적으로 부담을 덜 느낀다”고 말했다.
셋째, 임대사업자 등 투자 수요도 많아졌다.
보유 주택 중 일부를 처분하지 못해 양도세 중과에 걸리게 된 다주택자 중 일부가 초소형을 추가로 사들여 아예 임대사업자로 전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게 현지 부동산 중개업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상계동 한 공인중개사는 “초소형 아파트로 임대 수익과 함께 시세 차익도 누릴 수 있다고 판단한 때문인지 지난해 말부터 이곳 소형 아파트를 사려는 강남권 아줌마들의 움직임도 바빠졌다”고 전했다.
넷째, 일부 단지에선 가격 담합 의혹까지 제기되고 있다.
아파트 매물이 부족한 점을 이용해 호가 부풀리기에 나서는 주민들도 늘고 있다는 것이다. 창동 D단지 등에서는 최근 ‘얼마 이하에 팔지 말라’는 게시물도 나붙기도 했다.
지역 주민 중 일부는 인터넷 카페를 통해 “추가 상승 여력이 충분히 있으니 저가 매물을 내놓지 말 것”을 권하고 있다.
다섯째, 그동안 집값이 낮게 형성됐다는 점도 이곳 아파트로 수요자들이 몰리는 이유로 꼽힌다. 각종 개발에 대한 기대감과 집값이 저평가됐다는 인식이 확산하면서 주택 수요 증가와 함께 가격도 오름세를 타고 있다는 것이다. 강북구 미아동 늘푸른공인 관계자는 “‘가격이 더 오르기 전에 사놓아야 하는 게 아닌가’하는 실수요자들이 아직도 많다”고 전했다.
앞으로 가격 전망은 엇갈려
강북권 아파트 가격 전망에 대해서는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우선 가격 상승세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라는 ‘강세 지속론’이다. 이 같은 주장의 기저에는 새 정부의 규제 완화 ‘속도론’이 자리잡고 있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아파트 매매시장의 흐름을 바꿀 만한 큰 부동산정책 변화가 있지 않고서는 강북권 등 소외지역 아파트값 상승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도심 재개발 활성화로 재개발 사업에 가속도가 붙을 경우 가격도 오름세를 보일 것이라는 전망도 많다. 서울 은평구 수색동 샘공인 김충권 사장은 “강북 재개발에 대한 기대 심리로 뉴타운 주변 중ㆍ소형 아파트를 중심으로 실수요가 꾸준히 유입되면서 가격도 상승세가 이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전세시장 불안도 소형아파트 매매가격을 끌어올리는 데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전셋값 상승세는 올 연말은 물론 내년 이후에도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전망이다. 재개발 이주 수요 증가와 함께 유망 분양단지 청약을 노리는 전세 수요자가 증가할 것이기 때문이다. 유엔알컨설팅 박상언 대표는 “전세가격 상승은 매매가 상승으로 이어지고, 특히 전세 비중이 높은 소형 아파트는 매매수요 전환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강북권 집값 강세가 지속될 지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전문가들도 적지 않다. 우선 최근 강북권 아파트 매매 호가가 크게 상승하면서 인기지역과의 가격 차가 많이 줄었기 때문이다.
경전철 건설 등 개발 재료가 이미 아파트값에 상당 부분 반영됐다는 견해도 많다. 강북구 미아동 한 공인중개사는 “지난 일년 반 새 가격이 급등세를 보이면서 일부 단지에서는 가격에 거품이 낀 경우도 적지 않다”고 말했다. 강북권이 다른 지역에 비해 상대적으로 가격이 싸다는 점이 부각돼 가격이 오른 만큼 가격이 일정 정도 오르면 조정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다.
새 정부의 친시장적 부동산 정책도 강북권 아파트 매매시장 흐름에 주요 변수로 작용할 것이라는 의견도 많다. 강남구 개포동 개포공인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 강북지역의 아파트값이 올랐지만 올해는 투자 축이 버블세븐 지역으로 다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고 내다봤다. 세금 완화와 재건축 활성화로 강남지역의 재건축 아파트값이 상승세를 타면 강북권보다는 강남권과 버블세븐 지역 아파트값이 먼저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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