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리학적 관점에서 성경을 보려는 여정을 출발하며
[김도훈의 성경과 심리학1]
▲김도훈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
성경해석은 필자의 오랜 관심이었다. 어렸을 적부터 기도 제목의 중심에는 언제나 진리의 말씀을 바로 알게 해달라는 중얼거림이 있었던 것 같다. 빌라도가 예수에게 묻던 “진리가 무엇이냐”가 참으로 신기해 보였기 때문이었으리라. 진리의 바다에서 소요유(逍遙遊)의 기쁨을 충만히 누리려 하나 아직도 작은 풀잎 하나 띄울 정도의 깊이밖에 되지 않으니 하물며 그때야 진리의 옷자락이라도 만져보았으랴. 설레며 신학의 문 앞에 들어서자 충격을 준 것이 소위 성경해석 방법의 절대지존인 역사비평학이었다. 인간 이성이 만물의 척도이던 시대에 합리성에 근거하여 만들어진 그 방법은 신학의 초보자들의 과거와 전통을 모조리 허물어 내고 있었다. 마치 전쟁에 승리한 적장과도 같았다. 신비와 상징과 비유와 기적과 꿈에 대한 관심은 학문이전의 신앙으로 치부되었다. 본문이 주는 메시지 보다 본문의 형성과정이나 전승이 중요하였다. 그 때부터 역사비평학의 유혹과 폭력 앞에서 때로는 넘어지며 때로는 저항하며 때로는 수긍하기도 하며 역사비평학이 만들어 놓은 여정을 시작하고 있었다. 마치 바라바와 예수 사이에서 여론과 종교 세력의 힘에 밀려 어설픈 선택을 한 빌라도처럼.
그러나 역사비평학의 길을 걸으면 걸을수록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역사비평학적 방법으로 성경을 보는 방식은 필자에게 무척이나 큰 고통과 멍에가 되고 있었다. 방법상의 문제 뿐 아니라 그 해석방법의 동기 및 의도, 결과의 비효율성, 성경의 정경성, 성경을 이해하고자 하는 관점의 문제, 등등이 오랜 기간 필자를 괴롭히고 있었다. 성경의 전승 단계, 성경텍스트의 형성과정, 편집과정과 의도, 문학양식 등에 대해서 이 방법은 필요이상으로 가르쳐 주었다. 한 본문에 대한 수많은 다른 연구 결과들, 툭하면 후대의 편집이나 삽입이라고 답변해버리는 연구들, 참 결론 내리기 쉽다는 생각과 함께, 도대체 그 본문이 오늘 나에게 무엇이란 말인가, 오늘의 현실의 문제나 설교나 교인들의 삶의 변화에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단 말인가, 학자들의 학문적 만족을 위한 놀이에 불과한가, 성경은 이스라엘의 책인가 우리의 책인가, 성경은 그때의 책인가 아니면 오늘의 책이기도 한가, 영이 없는 죽은 문자에 불과한가라는 강한 분노의 질문 같은 것이 솟아오르고 있었다. 더구나 신비체험을 중시하는 교회에서 자라난 필자에게 있어서 신비는 필자의 신앙적, 신학적 실존이었다. 그 질문은 이 실존의 터전이 무너져 내리는 것에 대한 반발이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고대 교회의 주 성경해석방법이었던, 그래서 이제는 한물가버린 방법이어서 성경해석사의 흔적으로만 남아있는 “‘알레고리 성경해석’이 과연 잘못된 것인가?”라는 어느 독일의 유명한 신약학자의 질문은 근대의 해석훈련을 받은 필자에게 도전이면서 손더듬이로만 헤쳐가야 하는 어두운 동굴에 비치는 서광이었다. 이 질문만으로도 “참을 수 없는 존재(해석)의 무거움”이 덜어지는 듯 하였다. 상당히 오래전의 느낌이었지만 이 느낌은, 비평학과는 전혀 다른 관점에서 성경을 보게 하는 실마리를 제공해 주었다. 성경해석의 역사를 다시 되감아보았다. 오늘날의 다양한 성경해석에서 시작하여 지금도 지배력을 행사하고 있는 역사비평학, 자유주의자들의 성경관, 또 다른 한편의 문자주의, 경건주의자들의 성경연구, 종교개혁자들의 연구, 중세시대의 연구, 고대교회의 알레고리 성경연구 등 역으로, 역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았다. 점점 더 시대가 성경과 가까워졌다. 순서를 다시 바꾸어 보았다. 성경으로부터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성경에 가까워짐, 성경으로부터 멀어짐, 이것은 성경해석의 파노라마의 가장 간단한 도식이었다. 역사비평학이 성경해석의 절대지존이 아니라 이제 다만 사라져가야 할 하나의 해석 패러다임임을 알게 해주었다.
필자가 나름대로 신학을 해 나가면서 고민을 하기 시작한 것은 경험(체험)에 관한 문제였다. 신비경험이든, 하나님과 만남의 체험이든, 이해할 수 없는 고난의 경험이든, 경험이 “나의 신학”의 문제로 다가오기 시작하였다. 인생의 씨, 날줄을 그렇게 많이 엮어내지 못하였지만 그래도 자신 있게 나의 삶을 간단히 요약할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나를 이처럼 사랑하사”였다. 이것은 나의 성공이 아니라 실패 속에서, 절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하나님의 침묵과 일식 속에서 얻어진 체험의 결과였다. 고난과 역경을 통한 하나님의 사랑을 체험하면서 체험의 신학적 의미를 연구하기 시작하였다. 연구라기보다는 고민이라는 말이 더 어울릴지 모르지만, 체험을 신학의 틀거리로 삼아 씨름해보기로 하고, 이런 관점으로 성경을 다시 읽어보았다. 자신의 비전과 하나님의 비전의 충돌로 고난당하는 인간, 불안 속에서 하나님과 씨름하는 인간, 하나님 없음의 무게 속에서 헤어나려는 인간, 하나님의 요구의 멍에가 무거워 벗어버리려는 인간, 하나님으로 인하여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버리는 인간, 열등감과 부정적 그림자를 지워내려는 인간 등, 하나님을 체험한, 하나님의 계시에 응답하는 인간과 하나님을 체험케 하는 사건들이 보이기 시작하였다. 나름의 체험적 성경해석을 시도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드레버만(Eugen Drewermann)이라는 이름과 함께 심리학적 성경해석을 발견하게 되었다.
드레버만은 독일 심리학적 성경해석의 대표적인 인물이므로 간단히 소개해 보려한다. 그는 1940년 6월 독일 도르트문트 근처의 베르크카멘 (Bergkamen)이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정은 종교적으로 다양한 가정이었다. 아버지는 개신교도였으나 덜 종교적이었고, 어머니는 니체의 글을 읽지 못하게 하는 매우 엄격한 로마 카톨릭 신자였다. 어머니의 종교적 엄격성은 그에게 큰 상처가 되었다. 그는 뮨스터, 파더본 대학에서 철학, 심리학, 카톨릭신학을 배웠다. 당시 칼 라너(K. Rahner), 발타잘(H. U. von Balthasar), 앙리 루박(Henri de Lubac)등 유명한 카톨릭 신학자들이 있었으나 그에게 별로 영향을 주지는 못하였다. 그의 조직신학 선생들은 대체로 보수적인 사람들이었다. 그가 그토록 역사비평학을 비판하고 있는 이유는 보수적 선생들로부터 배운 학생시절의 경험에 근거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시기에 파더본에서 뮬렌(H. Mühlen)으로부터 카톨릭의 탈신성화 및 카리스마 운동을 통한 교회의 갱신을 접하게 되었으나 그는 오히려 영적 고난의 학문, 심리분석 또는 심층심리학이나 심리요법을 통한 교회와 신학의 갱신에 더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그는 철저히 심리학적 해석방법에 근거하여 성경을 보고 있을 뿐 아니라 교회에 많은 도전을 주었다. 그는 마치 저작광(cacoethes scribendi)처럼 엄청나게 많은 책들을 쏟아내었다. 많은 신문과 잡지, 방송, 인터넷 등에서 그의 이론을 논증하고 토론하였다. 신학도 뿐 아니라 많은 목회자들과 평신도 사이에서, 카톨릭 신자들뿐 아니라 개신교 신자들 사이에서도 “마치 그의 심층심리학적 해석을 갈망이나 했다는 듯이, 마른 스폰지가 물을 빨아들이듯 흡수되고 있다”고 그의 이론을 평가하는 분위기였다. 이런 현상은 역사비평학이라는 대학의 학문적 주석에서 보다는 심리학적 성경해석에서 성경에 대한 살아있는 접근을 발견하였고, 또 그것이 교회의 심각한 무체험적 성경해석을 극복할 수 있는 대안이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특별히 종교적으로 상처를 입었거나 잘못 대우받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레버만의 글들을 통하여 위로 받는다고 말할 정도였다. 심지어 “심층심리학과 주석”이라는 그의 책은 “신학의 역사에 있어서 하나의 새로운 장”을 열어 놓은 책이라고 평가받기도 하였고, 목회자 계속교육과정에서는 “드레버만 이후에야 비로소 나는 설교할 용기를 다시 얻게 되었다”라는 고백이 튀어나오기도 하였다. 드레버만의 심층심리학적 성경해석이 여러 약점에도 불구하고 신학적 사고나 실천에 있어서 새로운 방향을 제시해준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다. 이런 현상을 “드레버만 현상”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그는 역사비평학을 매우 신랄하게 비판하였다. 실제로 인간의 무의식과 꿈과 상들과 경험을 강조하며 텍스트가 오늘 우리에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가를 추구하는 그의 해석이 역사비평학에 어울릴 리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심리학적 성경해석의 발견은 필자에게 있어서 하나의 “해석학적 회개”였다. 드레버만과 융을 통하여 본 성경은 생명력이 살아 숨쉬는 책이었다. “오늘의 인간과 성경의 인간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그들의 명제는 필자에게는 충격이었다. 얼마나 나는 바울과 실라를 “쓰스와 허메”로 만들려고 했던가? 다윗을 얼마나 나는 초인적 인물로만 이해하려 했던가? 성경의 인물들도 우리와 동일한 인간으로서, 종교적 체험을 하며, 마찬가지로 불안해하며 열등감과 기타 심리적 갈등을 겪는 등 오늘 우리가 가질 수 있는 문제를 가진 인간이라고 이해하는데 그토록 오랜 길을 돌아왔던 것이다.
이제 성경을 달리 보자. 역사비평학이라는 안경을 가지고 성경을 본다면 성경의 문학 양식의 차이나 본문의 차이점들이 일차적으로 먼저 눈에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심리학적 성경해석이라는 틀로 성경을 본다면 성경의 많은 역동적 드라마 속에 나타나는, 고민하며 상처받아 괴로워하며 또 즐거워하기도 하는 문제투성이, 상처투성이의 인간들이 먼저 보일 것이다. 그들은 우리와 다른 인간이 아니다. 성경을 읽는 관점을 이제는 성경의 텍스트 형성이나 전승과정보다 성경에 등장하는 수많은 사건과 인물에 관심을 쏟는다면 성경은 오늘의 우리에게 좀더 친근하고도 은혜로운 책으로 다가올 것이다.
성경과 심리학을 연결시켜보려는 여행을 시작하려 문지방을 나서 신들메를 고쳐 매고 있으려니 장자(莊子) 추수(秋水) 편의 정중지와(우물 안 개구리) 우화가 떠오른다. 어느 날 개구리가 동해바다 출신의 자라에게 말했다. “나는 정말 행복해. 나는 우물 난간 위까지 뛰어 오르기도 하고, 우물 속에서는 깨진 벽돌 가에서 쉬기도 하며, 물속에서는 양 겨드랑이로 수면에 떠서 턱을 물위로 내밀기도 하고 ... 저 장구벌레나 게나 올챙이 따위가 나를 따를 수 있겠는가? 더욱이 나는 한 우물의 물을 독차지하여 멋대로 노는 즐거움이 지극한데, 당신은 어째서 때때로 와서 구경하지 않소.” .... 그때 자라가 “대저 천리라는 먼 거리로도 바다의 넓이를 형용할 수 없고, 천 길이란 높이로도 바다의 깊이를 다 나타낼 수가 없다. 수많은 홍수에도 바닷물은 늘지 않으며 아무리 가물어도 그 수량이 조금도 줄지 않았다. 대개 시간의 장단에 따라 변화하지 않고 물의 다소에 따라 증감하지 않는 것, 이것이 또한 동해의 즐거움이다”라고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우물 안 개구리는 깜짝 놀라 정신을 잃고 말았다.
열려있지 않은 사고, 자기 생각의 틀에만 머물러 있는 자는 아마도 정중지와일 것이며, 장자의 표현대로 가느다란 대롱으로 하늘을 쳐다보고, 송곳으로 땅을 찔러보아 하늘과 땅의 모든 것을 다 안다고 하는 격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이것은 역사비평학이 성경해석이 전부라고 생각하는 자들에게나 심리학적 성경 해석과 같은, 역사비평학을 넘어서려고 하는 성경해석자들 모두에게 해당한다. 다시 말하면 나와 그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다. 필자가 소개하고자 하는 심리학적 성경 해석 역시 본질을 가리키는 하나의 손가락, 즉 도구일 뿐이다. 필자의 염려는 손가락을 펼쳐 필히 보아야할 것을 보게 하지 못하고 손가락만 강조하여 그것만 보게 할까 함이다. 인간의 인식의 한계를 생각한다면 먼저 우리는 말씀 앞에 조용히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기를 간구해야 할 것이다. 성경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다 쓸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기록이 아닌가!
김도훈 교수(장로회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