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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손 창 섭
1
며칠 동안 궂은 날씨가 계속되었다. 창 밖이 훤해 오기에 그만 개려나 보다 하면, 어느새 수채를 흐르는 빗물 소리가 도로 들려오곤 하였다. 그러기 아이들의 머리나 옷은 연일 눅눅히 젖어 있었고, 교실에는 퀴퀴한 악취가 가실 줄 몰랐다. 장마철이라기에는 아직 이른 계절이었다. 추울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휘엉한 교무실은 몹시 스산하였다. 직원들도 모두 퇴근한 뒤였다. 일직 당번인 구남영(具南英)은 숙직 선생과 교대하기 위해서 혼자 남아 있었다. 밖에는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바로 창 밖에 있는 수채에서는 빗물 흐르는 소리가 소년의 오줌발 소리같이 들리었다.
책을 읽고 앉았던 남영은 갑자기 고개를 들고 창 밖을 내다보았다. 어디서 아이들의 싸우는 소리가 들려 왔기 때문이다. 남영은 일어나서 창문 가까이로 갔다. 저쪽 교문 있는 데서 승강이를 하고 있는 두 아이의 모양이 보이었다. 얼굴은 잘 보이지 않지만, 몸집으로 미루어 여남은 살짜리 사내애와, 그보다 한두 살 더 먹어 보이는 계집애였다. 사내아이는 두 팔로 대문 기둥을 잔뜩 끌어안고 있었다. 계집아이는 사내아이의 어깻죽지를 두 손으로 움켜잡고 악을 쓰듯 잡아당기는 것이었다.
“가, 가, 집에 가. 얼른 집에 돌아가잔 말야.”
계집아이는 우는 소리를 내면서 기를 쓰고 끌어당기었다. 그러나 사내아이는 문 기둥을 꽉 안은 채 두 발을 힘껏 벋디디고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둘이 다 후줄그레 비에 젖어 있었다. 어쩐 영문인가 싶어 남영은 좀더 두고 바라보았다. 계집아이도 잠시 손을 멈추고 눈물을 닦았다. 그러다 말고 다시 사내아이에게 덤벼들어 힘껏 잡아 끌기 시작했다. 사내아이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간혹 뒷발질까지 하며,
“싫어, 싫어!”
하고 버티기만 하는 것이었다. 계집아이는 한참 동안이나 사내아이를 잡아당기며, 울음 섞인 소리로 어서 돌아가자고 졸라 보는 것이었다. 그래도 무가내였다. 마침내 계집아이는 와락 달려들어 사내아이의 어깨를 두 주먹으로 꽝꽝 때리었다. 드디어는 사내아이의 등에다 얼굴을 묻고 계집아이는 히이 히이 소리 내어 울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자 사내아이도 몸부림을 치며, 잉잉 울음보를 터뜨리고 말았다. 그 동안에도 가랑비는 그칠 줄 모르고 내리어, 아이들의 머리와 옷과 초목과 땅에 스미고, 남영의 마음 구석구석까지 적시어 주는 듯했다.
남영은 나가서 아이들을 데리고 들어왔다. 사내아이는 마침 남영이가 담임한 사학년 ‘다’반의 이창훈(李呂薰)이었다. 계집아이는 그의 누나인 오학년의 창숙(昌淑)이었다. 옷 주제들이 말이 아니었다. 장난꾸러기가 되어 그런지 창훈의 옷은 더욱 심했다. 거지애나 다름이 없었다. 비에 젖은 오뉘의 몸에서는 지린내 비슷한 악취가 푹푹 끼치었다. 남영은 그들을 걸상에 앉히고 나서 수건으로 두 애의 얼굴이랑 머리랑 닦아 주며 부드럽게 물어 보았다.
“왜들 그러니?”
“얘가 집에 안 간대요!”
창숙은 애가 타서 죽겠다는 듯이 창훈을 홀겨보며 대답했다.
“왜? 누나하구 어서 집에 돌아가야지. 이렇게 늦도록 학교에 있으문 집에서 어른들이 걱정하실 게 아냐. 자, 그러지 말구 어둡기 전에 어서 가요, 네?”
싹싹하게 타이르는 남영의 말을 창훈은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도리어 냉소와 경계에 찬 눈초리로 남영을 지켜보고 있을 뿐이었다.
“너 안감 나두 집에 안 갈 테야. 갈래? 안 갈래?”
창숙은 동생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창훈은 말없이 낯을 찡그리며 누나의 손을 홱 뿌리쳐 버리었다. 그리고는 일어서서 저쪽으로 몇 걸음 비켜섰다.
“왜 그럴까? 창훈은 왜 집에 가구 싶지 않을까? 아마 엄마한테 몹시 꾸중을 들은 게지!”
남영은 일부러 웃어 보였지만, 창훈은 아까의 동일한 태도로 결코 입을 열려 하지 않았다. 새학기가 시작되어 얼마 안 되기 때문에 남영은 아직 자기 반 아동들의 동태를 잘 파악하고 있지 못했다. 그렇지만 창훈에 관해서만은 전연 예비지식이 없는 바도 아니었다. 삼학년 때의 창훈을 담임했던 백(白)선생에게서 들은 말이 있었기 때문이다. 창훈은 언젠가 직원회에서도 문제된 일이 있었다.
“이거 봐, 창훈이! 어머니가 집에서 기다리구 계실 거야. 맛있는 저녁 반찬을 장만해 놓구, 우리 창훈이가 왜 이리 늦을까 하고, 어머니가 기다리구 계실 거란 말야. 안 그래? 자, 어서 돌아가요, 응? 누나하구.”
고분고분 이르는 남영의 말을 듣는지 마는지, 창훈은 역시 입을 꾹 다문 채 끊입없이 경계의 시선을 보내고 있다가, 비실비실 뒷걸음을 치기 시작했다.
“거짓말이다이. 아주 엉터리 거짓부렁이다이.”
별안간 그렇게 소리를 지르더니, 창훈은 쥐새끼처럼 재빠르게 밖으로 빠져 달아나 버리었다. 남영은 무중 뺨이라도 맞은 듯이 무안했다. 남영은 잠시 덤덤히 앉았다가, 인사하고 나가려는 창숙을 도로 붙들어 앉히었다.
“아버지 어머니 다 계시냐?”
“어머닌 계셔요!”
“그럼 아버진?”
창숙은 얼른 대답을 하지 못했다. 난처한 표정이었다. 마침내 얼굴을 숙여 버리고 말았다.
“그럼, 아버진 안 계신 게구나!”
그래도 창숙은 말이 없다.
“가족은 몇 식구지?”
“많아요.”
“많아? 어디 한번 꼽아 봐라. 누구누구니?”
“어머니, 창훈이, 나, 창식 (昌植)이, 그리구…….”
창숙은 잠깐 무엇을 생각하는 듯하더니,
“그 밖에두 또 있어요!”
그래 버리고 마는 것이었다.
“그래애. 직업은 뭐냐? 누가 돈벌일 하니?”
“장사해요.”
“무슨 장살 허니?”
“음식 장사예요!”
“오, 그래. 그럼 어머님이 혼자 장살 하시는구나?”
창숙은 가만하고 있었다.
“아버진 안 계신대지?”
창숙은 여전히 고개를 숙인 채 입을 열지 않았다.
“그럼 아버진 군대엘 나가셨나? 그렇지 않으면 멀리루 장살 가셨나?”
“…….”
“그럼 아버지가 살아 계시긴 한데, 한집에서 같이 살지는 않는단 말이지?”
“그런 건 잘 몰라요!”
더 묻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듯이 창숙은 울상이 되어 남영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단순하지 않은 창숙이네 집안 내용을 남영은 족히 짐작할 수가 있었다. 기회 있는 대로 창훈이네 가정환경을 자세히 조사해 두려고 별러 온 남영이었지만, 그 이상 더 캐어물을 용기가 나지 않았다.
갑자기 저쪽 복도에서 인기척이 났다. 남영은 일어나서 그쪽을 내다보았다. 이층으로 통통통 뛰어 올라가는 소년의 뒷모양이 보였다. 창훈임에 틀림없었다. 남영은 얼른 교무실을 나와 이층으로 따라 올라가 보았다. 이층 복도에는 사람의 그림자도 없었다. 어느 교실에 들어가 숨은 모양이라고 머뭇거리는데, 저쪽 끝 사학년 ‘다’반 교실에서 창훈이가 튀어나왔다. 그는 좀전까지는 가지고 있지 않던 책보를 겨드랑 밑에 꽉 끼고 있었다.
“창훈이냐? 난 또 누구라구. 그럼 인젠 누나하고 집에 돌아가지?”
그러나 창훈은 잠시 이쪽을 노려보듯 하다가,
“헤이 우습다이!”
그러고는 저쪽 층대로 뺑소니를 쳐버리고 말았다.
“책보를 가지러 왔었나 봐요.”
어느새 창숙이도 따라 올라와 있었다.
“선생님, 안녕히 계세요.”
무슨 말을 건넬 사이도 없이 창숙이마저 저의 동생의 뒤를 쫓아 뛰어나가 버리고 말았다. 남영은 잠시 그 자리에 멍청히 서 있다가 담임반 교실로 가보았다. 테이블이 몇 군데 삐뚤어져 있었다. 아까부터 창훈은 빈 교실에 들어와 혼자 놀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영은 일부러 슬리퍼 소리를 내며 들어가서 삐뚤어진 테이블을 바로 고쳐 놓았다. 교실을 나오기 전에 남영은 벽에 붙어 있는 아이들의 그림과 글씨를 한번 훑어보았다. 물론 그것은 남영이 자신의 손으로 채점을 해서 골라 붙인 것들이다. 그 가운데는 남영이 감탄해 마지않는 그림과 글씨가 여러 장 붙어 있었는데, 그것은 한결같이 창훈의 작품이었다. 특히, 여남은 살 되었을 사내애와 계집애의 나체화는 여러 가지 의미에서 볼 때 남영을 놀라게 해주었다. 그 그림은 한쌍의 소년 소녀가 알몸으로 나란히 뒷짐을 짚고 서 있는 뒷모양이었다. 배경 전체는 암흑 일색이다. 전면을 새까맣게 칠해 버린 바탕 한가운데, 아이들의 불그스름한 살색만이 유난히 빛나 보였다. 크레용으로 이만큼 효과적인 색깔과 생동하는 실감을 나타낸 그림은 남영은 일찍이 본 기억이 없었다. 그러나 남영이 더욱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딴 데 있었다. 그 그림이 풍기고 있는 센슈얼한 매력인 것이다. 서로 닿을락 말락한 어깨와 툭 불거진 엉덩이의 선도 선이려니와, 똑같이 뒷짐을 짚고 섰는 두 아이의 손가락 끝이 금시라도 서로 꼭 쥐어질 것만 같이 느껴졌다. 물론 어느 외국 잡지 같은 데서 보고 그린 것이겠지만, 남영은 이 그립을 대할 적마다 가슴이 울렁거리었다. 어떠한 긴장과 불안과 감동에서 오는 고동이었다. 남영은 후 하고 부지중 한숨을 토하고 나서 딴 데로 시선을 돌리었다. 그러고 보니, 넉 장이나 되는 창훈의 그림에는 한결같이 인물이 배치되어 있었다. 그 인물들이 똑같이 한쌍의 어린이거나 젊은 남녀인 데 새삼스레 놀랐다. 남영은 까닭 모를 전율 같은 것을 느끼며, 악연(愕然)한 기분으로 발길을 돌이켰다. 교단 쪽으로 몇 걸음 옮기었을 때였다. 남영의 발은 도로 딱 달라붙어 버리고 말았다. 남영은 흑판을 응시한 채 잠시 꼼짝도 않고 서 있었다. 해괴한 낙서가 눈에 띄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유심히 바라보고 섰던 남영은 저도 모르게 얼굴이 붉어지며 양미간을 찌푸렸다. 흑판의 그림은 여자의 생식기에 틀림없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장한 여인의 그것을 나타내느라고 얄궂은 선과 점이 무수히 그려져 있었다.
그림 옆에는 제법 능숙한 글씨로,
‘이게 먼지 아니? 하하하.’
그렇게 적히어 있는 것이다. 남영은, 일종의 모욕감을 느끼었다. 이내 덤벼들어 북북 지워 버리고 말았다. 물론 창훈의 장난임에 틀림없었다. 얼마 전에도, 반 아이들의 소지품을 검사하다가 창훈의 교과서와 학습장 표지 뒷면에서 해괴한 그림들을 발견한 남영은, 창훈을 조용히 따로 불러다 놓고 가볍게 나무란 일이 있었다.
“앞으루 창훈이 때문에 속을 좀 썩이실 겝니다. 허지만 그 녀석 원체 머리는 좋아요. 그래서 특별히 유의해서 좀 바로잡아 볼려구 애써보았지만 그 애 가정환경이 아주 나쁜데다가, 내 노력두 부족했구 해서, 결국은 실패였습니다. 구선생님은 아직 나이두 젊구, 교원이 된 지두 오래지 않았으니까 교육에 대한 야심이랄까, 포부랄까, 그런 게 크실 줄 압니다. 그러면 젊은 교육인의 정열을 기울여 창훈을 잘 좀 지도해 보세요. 그 녀석 두뇌와 재능이 아까워요!”
새학년도가 시작될 때, 현재의 사학년 ‘다’반을 남영에게 인계하면서 백선생이 한 말이었다. 사범학교를 나와 가지고, 인제 겨우 교원생활 이 년째로 접어드는 남영은, 십여 년간의 교직생활에 지쳐 버린 백선생에게서 그 말을 들었을 때, 은근히 자신과 흥분 같은 것을 느끼기조차 했던 것이다.
“힘껏 싸워 보겠어요. 선생님의 풍부하신 경험으루 제 뒤를 좀 받들어 주세요!”
“그 애를 바로잡는 데는, 경험보다두 부단한 정열이 필요할 거예요. 아무튼 꾸준히 애써 보세요. 나중에 기회 있는 대루 그 애네 가정환경에 대해서 내가 알구 있는껏 말씀해 드리죠.”
“잘 좀 부탁합니다.”
그날 이래 남영은 창훈에게 대한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았다. 그러면서도 아직 교무에 익숙지 못한 남영은 창훈이 문제에 특별히 머리를 써볼 여유를 갖지 못한 채, 하루하루 분망한 날을 보내 왔던 것이다.
2
점심시간이었다. 별 용건은 없었지만 남영은 식사를 끝내는 길로 자기의 담입반 교실에 올라가 보았다. 대부분의 아동들이 점심을 먹고 운동장에 나가고 교실에는 여남은 명밖에 남아 있지 않았다. 그들은 창훈을 중심으로 한군데 모여 서서 열심히 무엇을 들여다보고 있었다. 담임선생이 옆에 와 서 있는 줄도 모르고 그들은 제각기 가운데로 뚫고 들어가서 좀더 자세히 보려고 서두는 것이었다.
“그게 뭐냐?”
뜻하지 않았던 남영의 말에, 아이들은 기겁을 해서 뒤를 돌아보았다. 그중 약삭빠른 몇 놈은 어느새 뒷문으로 해서 빠져 달아나 버리었다. 남아 있는 아이들은 모두 당황한 표정으로 남영의 눈치만 살피었다. 무슨 사진 같은 것을 들고 있던 창훈은 재빨리 그것을 주머니에 감추며 뺑소니를 치려고 했다. 남영은 날쌔게 창훈의 한쪽 팔을 붙들었다.
“선생님에게 그걸 보여라. 뭐냐?”
한쪽 손을 잔뜩 바지 주머니에 찌른 채, 창훈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서 있을 뿐이었다.
“자, 어서 그걸 선생님에게 보여 봐.”
그래도 창훈은 말없이 버티고 서 있었다.
“대체 그게 뭐냐?”
남영은 한결 부드러운 소리로 물었다.
“사진예요.”
“무슨 사진이냐?”
옆에서 누가 킥킥 웃었다. 창훈은 다시 입을 다물어 버리고 말았다.
“창훈은 아마 그 사진을 여러 사람 앞에서 보이구 싶지 않은 게지. 그럼 단둘이 아무두 없는 데루 가서 선생님에게만 살짝 보여줘, 응?”
그 자리에 버티고 서서 움직이지 않으려는 창훈을 남영은 살살 달래어 숙직실로 데리고 갔다. 거기서도 창훈은 좀처럼 사진을 내놓으려고 하지 않았다.
“선생님의 말씀을 종내 듣지 않겠단 말이냐? 혼을 좀 나 봐야 정신 들겠니?”
남영은 창훈의 머리를 한번 쥐어박고 나서 그렇게 언성을 높이었다.
“사진을 뺏을라구 그러죠?”
창훈은 반감어린 눈으로 남영을 쳐다보았다.
“옳지, 선생님이 사진을 뺏을까 봐 그랬군. 아니, 창훈의 사진을 선생님이 왜 뺏어. 안 뺏을 테니 그 사진을 선생님에게 좀 보여 줘, 응.”
그제야 창훈은 영문 모를 미소와 함께 사진을 내놓았다. 그 사진을 집어 드는 순간, 남영은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하마터면 비명을 지를 뻔했다. 남영은 얼른 그 사진을 책상 위에 엎어 놓았다. 그것은 춘화(春畵)였다. 이처럼 해괴망측한 사진을 남영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남영은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그러한 남영을 쳐다보며 창훈은 비죽이 웃었다. 용서를 비는 비굴한 웃음같이도 보였지마는, 한편 남영을 조롱하는 웃음같이 느껴지기도 했다. 창훈의 따귀를 힘껏 갈겨 주고
싶은 충동을 남영은 꾹 참았다.
“너, 이 사진 어서 났니?”
“손님 아저씨가 빌려 줬어요.”
“손님 아저씨라니?”
“우리집에 술 먹으러 온 손님 아저씨 말예요.”
남영은 머리를 끄덕거리고 나서,
“그 아저씨가 왜 빌려 줘?”
캐어물었다.
“이 사진하고 꼭 같이 한 장 그려 주문 미제 크레용 사준댔어요.”
“뭐라구?”
남영은 눈을 사납게 떠보였다.
“너 이게 무슨 사진인지 아냐? 아주 나쁜 사람만이 보는 사진야. 도둑놈보다두 더 나쁜 사람이 보는 거야. 그러니까, 당장 이 자리애서 태워 없애 버려야겠어.”
그러자,
“안 돼요!”
하고 창훈은 볼멘 소리로 항의를 한 것이다.
“안 된다구! 그럼 창훈인 아주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릴래. 그렇다면 신생님은 창훈일 그냥 둘 순 없어. 교장선생님하구두 의논해서 단단히 벌을 줄 테야.”
“이거 없앴다구 손님 아저씨가 막 야단치문 어떡해요?”
“야단하거든 그 사람을 학교로 데리구 와. 이런 나쁜 사진은 누구 것이든 없애 버려야 하는 거야!”
창훈은 할 수 없이 고개를 숙이고 가만하고 있었다.
남영은 창훈이 보는 앞에서 그 사진을 불살라 버리었다.
그날 종일 남영은 그 춘화에서 받은 충격이 가시지 않았다. 암담한 시분이 남영을 지배했다. 내처 창훈이 문제만이 머릿속에 꽉차 있었다. 시급히 창훈이네 가정을 방문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 전에 남영은 백선생에게서 좀더 자세한 예비지식을 들어 두기로 했다.
“백선생님, 오늘은 제가 차를 한잔 사드리겠어요.”
퇴근 시간에 남영은 백선생을 비교적 조용한 다방으로 안내했다. 구석진 자리에 마주 앉자,
“설마 비싼 자야 아니겠지! 중매를 서란다든지…….”
하고 백선생은 농담을 걸어 보였지만, 남영의 내심을 짐작하는 모양이었다.
“댁에서 애기들이 기다릴 텐데, 미안해요, 선생님!”
남영은 그렇게 사과부터 하고 나서 창훈의 얘기를 꺼냈다. 낙서사건과 춘화사건을 자상히 설명한 것이다.
“어떻게 했음 좋겠어요? 창훈네 가정을 한번 방문해 볼까 하는데요.”
“그게 좋을 겝니다. 창훈의 여러 가지 면을 어느 정도 깊이 이해하구 파악하기 위해서는 우선 그 애의 보호자를 직집 만나 보구, 그 가정환경을 세밀히 알아볼 필요가 있을 거예요.”
“그래서 말씀예요. 그 전에 선생님에게서 좀더 구체적인 이야기와 주의를 듣구 싶어요. 그러구 나서 찾아가 봐야겠어요.”
여급이 차를 날라 왔다. 두 여인은 말없이 차를 마시었다. 찻잔을 비우고 나서 백선생은 차분차분 이야기를 시작했다.
“나두 창훈이에 대해서는 어지간히 머리를 써보았어요. 여러 각도루 그 애를 연구해 보았어요. 그런데 가끔 노출되곤 하는, 나쁜 면만이 그 애의 전부가 아니랍니다. 그게 본질이 아니란 말예요. 내 관찰이나 판단이 정확하지 못한지는 몰라두 확실히 가정환경에서 온 영향이라구 난 보고 있어요. 머리가 얼마나 비상하게 좋다구요. 뭐든지 한 번만 보고 들으면 잊어버리질 않아요. 숙제두 잘 안 해오구, 통 공부도 하는 것 같지 않지만, 시험을 치러 보면 언제든 최고 점수예요. 그런데다가 구선생도 아다시피 그림이나 글씨의 재능이란 천재에 가까워요.”
“그렇더군요. 그림은 아주 장기더군요. 저의 사범학교 때 미술선생님이 고명하신 분예요. 그래서 한번은 그 애의 그림을 몇 장 갖구 가보였더니, 취한 듯이 한참이나 들여다보시다가, 대체 나이가 몇 살이냐구 묻지 않겠어요. 그러길래 바른 대루 열두 살이라구 했더니, 입을 벌리신 채 영 곧이 안 들으시는 거예요.”
“그러기 말입니다. 비단 그림뿐 아니라, 잘만 지도하면 어느 방면에 있어서나 출중한 재능을 나타낼 것 같애요. 그래서, 화가 치밀구 밉살스런 때도 많았지만, 어떻게 좀 바루잡아 보려구 애써 봤는데 좀처럼 나아지는 것 같지 않더군요. 원체 그 가정이 말이 아니거든요. 편모 슬하에 삼남매가 있어요. 창숙이라구, 오학년에 다니는 그 애 누나 말예요. 창숙이, 창훈이 그리구 그 밑에 젖먹이 사내애가 하나 있는데, 세 애가 모두 아버지가 다르대나 봐요. 저이 어머니가 본시 술집 여자래거든요. 그러니까 지금두 술집 영업을 하구 있지 않아요. 색시를 셋씩이나 두구…….”
백선생은 갑자기 말끝을 흐리더니 가만히 한숨을 토하였다. 남영은 말없이 백선생을 마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백선생은 엽차를 청해 놓고, 남영의 얼굴을 유심히 들여다보며 이상한 말을 했다.
“말이 술집이지, 그게 그냥 예사 술집인 줄 아세요!”
“그럼 뭐예요?”
백선생은 남영이 앞으로 얼굴을 바싹 내대며, 한층 낮은 음성으로 속삭이듯 하였다.
“사창굴(私娼窟)예요. 밀매음집이란 말예요!”
남영은 눈을 크게 떴다. 까닭 없이 얼굴이 붉어졌다. 남영은 거기까지는 생각지 못했던 일이었다. 백선생 말에 의하면, 창훈의 모친은 자기 자신도 한 달이 멀다 하고 남자를 갈아 댄다는 것이었다.
막벌이꾼을 상대로 하는 창훈네 술집은 물론 골목 안에 자리잡은 판잣집이었다. 대패질도 하지 않은 송판으로 아무렇게나 못질을 해서 세워 놓은 식탁을 중심으로, 그래도 칠팔 인이 들어앉을 만한 장소가 있었다. 그게 이를테면 가게인 동시에 창훈네 식구가 기거하는 안방인 것이다. 거기에 잇대어 간신히 두어 사람 누울 수 있는 색시방이 셋이 붙어 있었다. 손님들은 술을 먹다 말고 곧잘 색시와 얼려서 그 조그만 방으로 숨어 버리었다. 그 속에서는 누가 듣거나 보거나 꺼릴 것 없이 만판으로 시시덕거리었다. 밤이 깊으면 손님들은 자고 가기가 일쑤였다. 그러한 속에서 별의별 추잡한 장면을 다 보고 겪으면서 성장해 오는 창훈이었다. 학교만 다녀오면 창훈은 잠시도 집을 떠날 수가 없었다. 모친은 마치 심부름하는 애 이상으로 창훈을 부려먹기 때문이다.
가정방문 혹은 이웃에 사는 아이들이나 학부형을 통해서 안 일이라고 하며, 백선생은 이상과 같은 이야기를 차근차근 들려 주는 것이었다. 엽차를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백선생은 뒷말을 이었다.
“무엇보다도 그러한 환경에서 오는 영향이 사사건건이 단적으로 타나더군요. 해괴한 낙서를 한다든지, 젊은 남녀의 나체화를 그린다든지, 쌍스런 유행가를 부른다든지, 이상한 거동으로 계집애들을 건드린다든지, 그게 모두 여남은 살짜리 소행으로는 생각되지 않을 만큼 조숙하구 대담한 짓으루 나타난단 말예요. 하두 어이가 없어서 되레 내가 말문이 막혀 쩔쩔맬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우. 그러면서두 창훈의 사건을 될 수 있는 대로 직원회 같은 데 공개적으로 내걸지 않은 것은 단지 그 애의 장래가 애처로워서였어요. 다시 말하면, 그 녀석의 뛰어난 재질이 아까워서였지요. 어디 구선생이 열성껏 한번 선도해 보세요. 그 애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보다도 깊은 이해와 따뜻한 애정일 거예요. 집에 돌아가선 영 사족을 못 쓰거든요. 어머니에겐 줄창 뚜들겨맞구, 색시나 손님들에겐 놀림감이 되구, 그러니까 방과후에두 얼른 집에 돌아가지 않구, 늦도록 학교에서 놀거나 혼자 거리를 쏘다니길 잘해요.”
“그 애 어머니가 나쁘구먼요. 어째서 좀더 아껴 주지 못할까요?”
“아마두 자기가 낳은 아이가 아닌가 봐요. 나두 첨엔 그 까닭을 이해할 수가 없었는데, 차차 여러 가지 점으로 미루어 볼 때, 그 여자가 낳은 아이가 아니라는 짐작이 갔어요. 호적상의 전남편이 첩을 얻었던 모양예요. 창훈은 그 첩의 아인가 봅디다. 그러기 술에 취해서 창훈을 때릴 적마다 걸핏하면 그런대지 않어요. ‘핏줄로 따진다면 네가 나하구 무슨 상관이란 말이냐, 결국 새빨간 남남이지 뭐냐. 그뿐이겠니? 도리어 원수의 새끼가 아니냐, 원수의 새끼야. 멕이구 입히구 학교에 보내는 것만두 태산 같은 은혠 줄 모르구, 요 육실할 자식이 왜 애를 먹이는 거냐’ 그런대요. 그러니 저주받은 운명에 태어난 아이예요, 창훈은. 생각하면 측은하기두 하구…… 아무튼 구선생이 잘 알아보구 용기가 나거든 한번 애정을 부어 넣어 보세요.”
백선생은 긴 이야기에 약간 피로한 듯이 엽차를 다시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뒤로 기대앉았다.
그날 밤 남영은 집에 돌아와서도 좀처럼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남영은 자기네 삼남매가 겪어 온 설움이 되살아 오르기 때문이었다. 이려서 어버이를 잃은 그들 삼남매는, 각기 고모와 이모네 집에서 눈치밥을 먹고 자랐다. 세 아이를 어떻게 나누어 맡느냐 하는 문제를 놓고 고모와 이모는 맹렬한 의견충돌을 하였다. 한쪽은 한 아이를, 한 쪽은 두 아이를 맡게 되니, 아무래도 공평을 기할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남영은 고모네 집에 머물게 되었고 남동생인 남식(南植)과 여동생 남희(南姬)는, 영업집 이어서 생활이 좀 낫다는 이유로 이모네 집에 보냈다. 당시 국민학교 육학년이었던 남영이가 마지막 시간을 마치고 밖에 나와 보면, 남식이와 남희는 그때까지 집에 돌아가지 않고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남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하구 고모네 집에 갈래!”
“나두 언니하구 같이 가 살래!”
두 동생은 눈물을 질름대며 남영을 붙잡고 놓아 주지 않았다. 두 어린 동생은 간신히 달래어 이모네 집 가까이까지 바래다주고, 혼자 고모네 집으로 돌아오는 남영이도 눈물이 앞을 가리곤 하였다. 식구 많고 넉넉지 못한 고모네 집에서 식모처럼 틔어난 남영이나, 조그만 음식점을 내고 있지만, 고모보다는 훨씬 야박한 편인 이모네 집에서 주눅이 들어 꾀만 늘어난 남식이와 남희는 한결같이 설움 많은 소년 소녀 시절을 지내 온 것이다. 금년 열아흡 살 나는 납식은 마침내 주위 사람들에 대한 반발심에서 불량배와 얼려다니다가 요즘은 어디 가 있는지 소식조차 알 수 없었다. 간신히 사범학교를 마친 남영이가 지금 학교에 취직한 작년 봄부터 방을 얻어 가지고 남희만은 데려다 같이 지내는 처지였다. 창훈의 문제에 머리를 쓰게 되면서부터 남영은 행방을 알 길 없는 남동생의 일이 더욱 가슴 아팠다. 따라서 그러한 남영은 불행한 창훈을 위해서 어디까지나 힘이 되어 주고 싶었다.
“창훈의 앞길을 가로막는 검은 운명의 손길과 힘껏 싸워 보자!”
남영은 속으로 그렇게 중얼거리며, 잠을 청하는 것이었다.
3
며칠 뒤의 일이었다. 그날도 점심 시간이었다. 수수한 몸차림을 한 중년 부인이 교무실에 나타나 사학년 ‘가’반 담임선생님을 찾았다. 남선생들끼리 둘러앉아 식후의 잡담을 하고 있던 양(楊)선생은 얼른 일어나 나갔다. 오 분이 채 되었을까말까 해서 양선생은 돌아왔다. 그는 문 안에 들어서는 길로 교무실 안을 잠깐 둘러보고, 남영이 옆으로 다가왔다.
“구선생님, 저 대신 저이 반 아이의 어머니를 좀 만나 주실 수 없을까요?”
“왜 그러세요. 선생님 반 아이의 모친이라면, 선생님이 직접 만나시면 되잖아요?”
양선생은 어색한 표정으로 웃어 보이고,
“여자 선생님이 아니면 좀 꺼내기 거북한 얘기랍니다.”
하였다. 그렇다면 제가 만나 드리죠, 하고 일어서는 남영은 대체 무슨 이야긴가 싶어 은근히 호기심이 동했다. 복도에 나가 보니, 여인은 수심기 띤 얼굴로 저쪽 창 밖을 멍하니 내다보고 서 있었다.
“사학년 양선생 님을 찾아온 손님 이시죠?”
남영의 물음에,
“네, 죄송합니다!”
의젓이 그렇게 대답하고 여인은 허리를 굽히었다.
남영은 부인을 숙직실로 안내했다.
“누추하지만 예가 기중 조용합니다.”
남영을 따라 방에 들어와 앉은 부인은,
“사학년 가반, 윤명자(尹明 子)란 아이의 어머니입니다.”
하고 또 한번 머리를 숙이었다. 무슨 일로 찾아오셨느냐고 묻는 남영의 말에, 명자의 모친은 약간 주저하다가 입을 열었다.
“이런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온당한 일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여러 가지 의미에서 선생님들께서두 알구 계시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찾아 뵈었습니다.”
명자의 모친은 여기서 잠깐 다시 말을 끊었다가 잔잔한 음성으로 계속했다.
“저이 명자가 어제 학교에서 상처를 입고 돌아왔습니다. 즉시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았는데 다행히 큰 상처가 아니어서 마음은 놓았습니다만…… 그래서 오늘두 학교에 못 나왔에요.”
“그거 참 안됐습니다. 어딜 다쳤는데요?”
“어떤 사내애가 대꼬챙이로 찔렀다고 하며, 피를 홀리구 돌아왔에요. 하부예요!”
“하부라뇨?”
“말씀드리기 부끄럽습니다!”
순간 남영은 정신이 펄쩍 들었다. 가슴에 따끔 짚이는 데가 있었다. 직감적으로 이야기의 의미를 완전히 알아차릴 수가 있었다. 부인이 채 말하지 아니한 내용까지도.
“죄송합니다. 무어라 사과의 말씀이 없습니다!”
머리를 숙였다 드는 남영의 얼굴엔 새하얗게 핏기가 가시어 있었다. 그걸 본 명자의 모친은 당황한 기색으로,
“선생님, 과히 놀라지 마세요. 제가 선생님들께 책임을 추궁하거나 괴롬을 끼치려구 온 건 아닙니다. 그저 한두 분 선생님께서 그런 사실을 알구나 계셔야 참고가 되시구, 따라서 저두 안심을 할 수 있을 것 같구 해서 들른 겝니다. 결코 학교에서 크게 문제를 삼지 말아 주세요. 저쪽 부모님께두 될 수 있는 대로 걱정을 끼쳐 드리지 않도록 해주시구…… 명자는 모레쯤부터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부인은 이내 자리를 일어섰다. 남영은 거듭 무어라 답변할 말이 없다고 정중히 사과를 하고 나서 담임선생님과 잘 상의해 가지고 사후 문제는 선처하겠노라고 했다. 명자 모친은 이 일을 교장선생님께까지는 알리지 말 뿐더러 저쪽 편 부모에게도 너무 무안을 주지 않도록 해달라고 또 한번 당부하고 돌아갔다. 남영은 교문 앞까지 따라 나가 부인을 보내고,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잠시 부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저런 어머니 밑에서 자라나는 명자가 부러울 지경이었다. 거기에 비하면 창훈은 얼마나 고독하고 불행한 소년인가! 쥐새끼처럼 조그맣고 새까만 눈에 항시 반감이 어리어 있는 창훈의 모습이 머리에 떠올랐다.
명자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은 남영의 예감대로 역시 창훈이었다. 부드러운 태도로 캐어묻는 남영이 앞에서 창훈은 별반 주저하는 기색도 없이 자기가 그랬노라고 선선히 대답했다. 소변 보고 있는 것을 대꼬챙이로 찔러 주었다는 것이다. 남영은 우선 위협도 하고 살살 달래기도 하면서, 결코 앞으로는 그런 짓을 해서는 안 된다고 누누이 타일렀다. 창훈은 그러겠노라고 고개를 끄덕거리고 물러갔다. 그러나 저만 치 가더니 창훈은 별안간 두 주먹을 하늘로 추켰다 내렸다 하면서,
“아, 신난다, 신난다!”
그렇게 소리를 지르고 밖으로 뛰어나갔다. 남영은 저도 모르게 나식한 한숨을 쉬었다.
방과후에, 남영은 양선생과 함께 창훈네 가정을 방문하기로 했다. 그러나 남영은 기실 마음이 내키질 않았다. 이왕 별러 오던 김이기는 하지만, 이번 사건을 논의하기 위해서 찾아간다는 것은 창훈에게 도리어 불리한 결과를 가져다주리라고 생각되기 때문이었다. 그러한 남영에게 대해서, 양선생의 의견은 대립적이었다. 만일 창훈의 보호자측에서 이 사건에 대해 진심으로 걱정하고 앞으로 극력 협조해 주려는 성의가 보이면 몰라도,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공개적으로 즉시 직원회의 같은 데 부의해서 전직원의 의사와 교장선생의 단안에 따라 처리하자는 것이다. 지나치게 무의미한 온정주의를 아동에게 베푸는 일은 일종의 감상주의라고, 도리어 남영을 나무라듯 하는 것이었다. 그렇다고 굳이 반대하여 논쟁만 하고 있을 수도 없고 해서, 남영은 양선생의 의사를 좇아, 창훈을 불러 앞세우고 같이 교문을 나선 것이다. 창훈은 그만 기가 죽어서 느릿느릿 걷다가는 자주 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곤 하였다.
“어서 빨랑빨랑 가!”
양선생의 엄격한 독촉에, 할 수 없다는 듯이 창훈은 고개를 숙이고 도로 걸음을 옮기었다. 그의 축 처진 조그만 어깨를 바라보며 따라 걷는 남영의 마음도 역시 무거웠다.
자기 집 앞에 이르자 창훈은 걸음을 멈추고 선생님들의 얼굴을 쳐다보았다.
"그럼 먼저 들어가서 우리가 왔다는 걸 어머니께 알려 드려라. 우린 이렇게 예서 기다릴게.”
허리춤을 치켜 올리고 책보를 고쳐 끼더니, 창훈은 다시 한번 뒤를 돌아보고 나서야 기운 없이 판자쪽문 안으로 사라졌다. 이어서,
“누구? 선생이, 학교 선생이 왔단 말야?”
하는 여자의 목소리가 쨍쨍 울려 나왔다. 그러더니 곧이어,
“땟손인데 뭣 하러 왔대?”
하고 사뭇 불만스러운 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래도 좀 뒤에 창훈의 모친은 옷매무새를 고치면서 나타났다. 화려한 옷차림과 짙은 화장을 한 제법 드물게 보는 미모의 여자였다. 물론 첫눈에 어떤 부류의 여자라는 소성이 홱 드러나는 야한 인상은 감출 수 없었다. 방금 어디 나갔다 돌아온 참이라고 하며, 창훈의 모친은 몸짓으로 인사를 표하고 나서, 어떻게들 이처럼 찾아오셨느냐고, 의아한 표정으로 두 선생의 얼굴을 번갈아 보며 물었다.
“조용히 좀 의논할 일이 있어서요.”
“그럼 복잡한 대루 이리 좀 들어오실까요.”
이쪽에서 먼저 딴 데로 나가자고 할 수도 없고 해서 두 선생은 떠름한 낯으로 문 안으로 들어섰다.
안방에서는 중년 남자 셋이 색시를 사이에 앉히고 술을 먹고 있었다.
“가만있자…… 이쪽 방으로 들어들 오시죠.”
창훈의 모친은 두 선생을 기중 구석진 조그만 방으로 안내했다. 남영은 난처한 표정으로 양선생을 보았다. 양선생도 몹시 거북한 눈치였으나, 용기를 내어 먼저 방으로 들어갔다. 너댓 명이 겨우 들어앉을만한 방 한구석에는 얄팍한 이부자리가 개켜져 있었다. 짙은 색깔의 무늬가 있는 야단스런 벽지로 돌려 바른 판자벽에는 여자의 꾀죄죄한 옷가지가 아무렇게나 걸려 있었다. 외국 잡지의 광고판 같은 데서 흔히 볼 수 있는 색도쇄의 야비한 그림도 붙어 있었다. 백선생에게서 미리 들은 말이 있기 때문에 이 방이 무엇에 소용되는 방인지를 짐작할 수 있는 남영은 부지중 낯이 붉어졌다.
두 선생이 거북살스러운 자세로 좌정하자, 창훈의 모친은 그들을 마주 보며 까닭 없이 히쭉 웃어 보이었다. 왜 그런지 그 웃음이 야비하게 느껴져서 남영은 일순간 모욕감을 의식했다.
“갑자기 대접할 것두 없구, 이를 어쩌문 좋아요. 하긴 술이라면…….”
창훈의 모친은 그러고 나서, 마침 남자선생님도 오셨으니 한 잔씩 드시겠느냐고 물었다. 양선생이 얼른 엄숙한 태도로 술 먹으러 온 게 아니라고 했다.
남영은 자기가 창훈의 담임선생이라는 것을 밝히고 나서 몇 마디의 허두를 붙이었다. 창훈이가 월등하게 총명해서 성적이 우수하다는 점, 게다가 글씨도 능할 뿐 아니라, 특히 그림은 놀라울 정도라는 것, 그러므로 이러한 창훈의 재질을 어디까지나 구김살 없이 벋어 나가게 해주고 싶은데, 몇 가지 걱정되는 점이 있어서, 그렇지 않아도 벌써부터 한번 방문하려고 벼르던 참이라는 말을 하고, 오늘은 특별히 부탁할 일이 있어 왔노라고 했다. 창훈의 모친은 신통한 이야기가 아니라는 듯이 표정에 별반 성의 있는 반응이 나타나지 않았다. 도리어 약간 경계하는 빛으로,
“무슨 부탁이신데요?”
하고 반문하는 것이었다. 학교에서 선생들이 아무리 애쓸지라도 가정에서 깊은 관심을 갖고 협력해 주지 않으면, 자녀 교육의 원만한 성과는 거둘 수 없다는 말을 주로 양선생이 간단히 설명을 하였다.
“우리야 원체 아는 게 없구, 또 그날 그날 벌어먹구 살기에 바빠서 어디 아이들을 제대루 돌볼 수가 있어야죠. 그러기 그저 죽이든 살리든 선생님들만 믿구 염체없이 맡겨 두는 거예요.”
"물론 다른 점으루 보아서는 창훈이는 하나두 나무랄 데가 없는 아이예요. 하 머리가 좋구 재간이 뛰어나서 제일 기대를 걸구 있습니다. 그런데 꼭 한 가지 결점이랄까, 어쨌든 보통아이들에 비해 엉뚱한 데가 있어요. 어른들이 깜짝 놀랄 일을 가끔 저지른단 말씀예요. 그래서…….“
남영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창훈의 모친은 대뜸 얼굴이 붉어지고 눈꼬리를 치켜뜨더니,
“아, 고 망종이 또 무슨 일을 저질렀군요!”
하고 발끈했다. 그 무례한 태도에 선생들은 몹시 불쾌했다. 양선생은 볼멘 소리로 툭 내쏘듯 대답했다.
“우리 반 여자 아이에게 상처를 입혔답니다. 참대 꼬챙이로 하복부를 말입니다. 소변 보구 있는 걸 찔러 버렸어요. 저쪽 부모에게 대해서 학교측으로서두…….”
역시 말 도중에 창훈의 모친은 별안간 벌떡 일어섰다. 상반신을 문밖으로 내밀고는 쨍쨍 하는 소리로 창훈을 불러 대는 것이다. 발악하듯 흥분한 소리다. 이내 눈치를 살피며 겁에 질린 창훈이가 나타났다. 고 조그맣고 새까만 눈에는 순식간에 절망적인 체념이 괴기 시작했다. 그러한 시선으로 창훈은 원망스러이 두 선생과 자기 모친을 번갈아 보며 문 앞으로 다가왔다. 그의 모친은 성난 사자처럼 창훈에게 덤벼들었다.
“이 육실할 녀석아, 왜, 왜 학교에 가서까지 에미 망신을 시키구 댕기는 거냐…… 뭐 할 짓이 없어서 남의 집 계집애 × ×를 찢어 준단 말이냐. 요 불망나니 같은 깍정이가 일찌감치 뒈지지를 않구 살아서 갖은 속을 썩이더니, 그래 나중에는 이 에미까지 잡아먹을 셈이냐!”
창훈의 모친은 그렇게 빽빽 소래기를 질러 가며, 한 손으로 어린 창훈의 덜미를 그러쥐고 다른 손으로는 어깨며, 등이며, 머리며 구별없이 함부로 내리 족치는 것이었다. 창훈은 두 손으로 머리를 꼭 싸안고 바들바들 떨면서,
“누나야! 누나야!”
하고 악을 쓰며 불러 대었다. 구원을 청하는 절규인 것이다. 어느 틈에 쫓아왔는지 창숙은 저도 소리내 울면서 어머니 팔에 매달려 필사적으로 뜯어말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이런 난장판이 벌어지자 남영과 양선생은 기가 질려 어쩔 줄을 모르고, 서로 얼굴만 마주 보았다. 남영은 홍당무가 된 얼굴이 그대로 울상이다. 그냥 보고만 있을 수도 없어서 뜯어말리려고 양선생이 일어섰을 때는 문 앞에 구경군이 빽 둘러서 있었다. 양선생이 창훈을 감싸안듯 하면서 아무리 말리어도 창훈의 모친은 조금도 노기를 풀려 하지 않았다. 일껏 귀한 돈 들여 학교에 보내니까 공부는 않구 남의 집 색시 × ×를 찔러 주느냐구, 한층더 기승스레 날뛰는 것이었다. 창피하기도 하고 울화도 치밀어서 맘대로 하라고 양선생은 마침내 물러서고 말았다. 어느새 남영은 파랗게 질린 얼굴로 골목 어귀에 나와 서 있었다. 양선생은 찡그린 이마를 수건으로 문지르며 남영이 곁으로 왔다.
“그만 가십시다!”
양선생은 툭 내뱉듯이 하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말없이 몇 걸음 따라 걷다 말고 남영은 걸음을 멈추었다.
“선생님, 창훈일 데리구 가야겠어요.”
애원하듯 양선생을 쳐다보았다.
“전 무서워 못 가겠어요. 미안하지만 선생님이 가서 창훈을 좀 데려구 나와 주세요, 네!”
남영의 눈에는 눈물이 핑 어리었다.
“부질없는 센팁니다. 좀더 냉정한 비판과 판단을 가지세요!”
양선생은 남영을 꾸짖듯 하고, 우뜰해서 다시 걸음을 옮기었다. 할 수 없이 그 뒤를 따라 걷는 남영은 마치 무슨 죄를 저지르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4
다음날 장훈은 학교에 오지 않았다. 창숙을 불러 물어 보았더니 어머니가 오늘부터 학교를 그만두라고 했다는 것이다. 그것은 가혹한 처사라고 남영은 생각하였다. 어린 생명의 기본적 가치가 부당하게 짓밟힌다고 생각되었다. 남영은 의분 같은 것을 느끼었다. 이 문제를 어떻게 수습하나! 남영의 눈앞에는 창훈의 가련한 모습이 자꾸만 얼찐거려 수업 시간에도 차분히 아이들을 가르칠 수가 없었다.
네 시간째였다. 백묵통을 들고 남영이가 교실에 들어가 보니 뜻밖에도 창훈이가 자기 자리에 와 앉아 있었다.
“오, 창훈이가 왔구나! 왜 인제야 왔니. 무슨 일이 있었니?”
남영은 시치미를 떼고 그렇게 반가워해 주었다. 진심으로 반가웠던 것이다. 시간이 끝난 다음에 남영은 조용히 창훈을 불러 물어 보았다.
“어째서 이렇게 늦어졌니?”
“어머니가 학교 그만두랬어요, 오늘부터.”
“그래애! 어째서 그럴가? 그런데 어떻게 학교에 왔니?”
“어머니 몰래 도망쳐서 왔어요!”
그렇게 대답하는 창훈의 눈은 여느 때 없이 빛났다. 그것은 자유를 쟁취한 사람의 기쁨이었다.
남영은 우선 창훈의 모친을 만나 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이쪽에서 머리를 굽혀 가며, 계속해서 창훈이를 학교에 보내도록 간곡히 부탁한다면 설마 안 들어주랴 싶었다. 그러나 창훈네 집을 다시 찾아갈 용기가 나지 않았다. 창훈을 시켜서 데리고 오라고 할까도 생각해 보았으나 응해 줄 것 같지 않았다. 남영은 순 한글로 편지를 적었다.
꼭 뵈옵고 의논하고 싶은 일이 있습니다. 급한 일감이 밀려서 직접 찾아가 뵈욥지 못하오니 죄송한 말씀이오나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잠깐 틈을 내시어 오늘 중으로 학교에 와주시면 기쁘겠습니다. 어둡기까지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남영은 이 편지를 창훈에게 주면서 집에 다녀오라고 했다. 창훈은 단박 눈이 휘둥그래지며 펄쩍 뛰었다.
“집에 가문 치도곤이 맞아요. 난 집에 안 가요!”
할 수 없이 남영은 창숙을 불러 그 편지를 부탁했다:
딴 직원들이 다 퇴근한 뒤에도 남영은 혼자 남아서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창훈의 모친이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동안 창훈은 집에 돌아갈 생각은 않고, 운동장 한 귀퉁이에서 동무들과 놀고 있었다. 거진 황혼 무렵이 되어서였다. 사십 가까이 되어 보이는 웬 남자가 교무실 문 앞에서 남영을 찾았다. 누군가 싶어 나가 보았더니, 의외에도 창훈의 부친이노라 했다.
“이거 참, 면목이 없습니다. 아이들을 맡겨 놓구 한 번두 찾아뵙지를 못해서 …….”
자칭 창훈이 부친이라고 하는 그 남자는 약간 주기가 돈 얼굴을 몇 번이나 숙이었다. 아무튼 남영은 그를 교무실에 불러들여 걸상을 권했다. 창훈이나 창숙이와 어떻게 되는 부친이냐고 캐어묻고 싶은 생각이 붙일듯 했지만, 차마 그럴 수는 없었다.
“다름이 아닙니다. 창훈이 문젠데요, 학교를 그만두라구 하셨다구요?”
“이거 참 죄송하게 됐습니다. 엉뚱한 일로 선생님께까지 걱정을 끼쳐서. 허지만 염려 마세요. 낼부터 학교에 보내겠습니다. 괜히 저이 에미가 홧김에 그래 본 거죠. 이거 참 면목 없습니다. 안심합쇼. 온 이거 참…….”
‘이거 참’을 연발하는 그 남자는 덮어놓고 머리를 숙이는 것이었다. 남영은 어딘가 석연치 못한 느낌이 들었지만, 그렇다고 이렇게저렇게 따지고 들 수도 없어서, 오늘은 그 이상 긴 말을 하지 않기로 했다.
“그러면 내일부터 계속해서 학교에 보내 주세요. 그처럼 머리가 좋은 아이를 국민학교도 마쳐 주지 못해서야 되겠어요. 창훈이 문제에 관해서는 부모님과 여러 가지루 상의하고 싶은 일이 많지만, 후일루 미루겠습니다.”
저의 부친을 따라 집에 돌려보내기 위해서, 남영은 운동장에서 놀고 있는 창훈을 불렀다.
“창훈이가 집에 돌아가기를 무척 꺼려해요. 그러니까 집에서 너무 엄하게 다루지 마시는 게 좋을 거예요.”
창훈의 부친은 면목이 없노라고 하며 연방 머리만 굽실거렸다.
이윽고 복도에서 발소리가 나더니, 열려 있는 문 사이로 창훈이가 빠끔히 들여다보았다. 그는 경계하는 눈초리로 남영을 바라보다가, 그 옆에 앉아 있는 부친을 발견하는 순간 대뜸 낯빛이 달라져 뺑소니를 치려 하였다. 그러자 어느새 그 부친이 벼락같이 쫓아 나갔다.
창훈은 종시 현관 앞에서 저의 아버지의 우람한 손아귀에 붙들리고 말았다.
“선생님, 이거 참 죄송합니다. 그럼 이대로 실례하겠습니다. 틀림 없이 낼부터 학교에 보내죠. 이거 참…….”
남영을 돌아보며 남자는 또다시 몇 번이나 머리를 숙이고 나서, 한손으로 창훈의 덜미를 잡아 끌고 돌아가는 것이었다.
“선생님, 선생님, 아이구 선생님!”
똑 독수리에 채여 가는 병아리처럼 창훈은 죽을 힘을 다해 발버둥 치며 기를 쓰고 선생님을 불러 보는 것이다. 남영은 보다못해 운동장으로 쫓아 나갔다.
“이러지 마시구, 살살 달래서 데리구 가시죠!”
“이거 참 부끄럽습니다. 선생님, 과히 걱정 마시구 어서 들어가세요. 그럼 안녕히 겝쇼. 이거 참…….”
남자는 이번에도 두서너 번 꾸벅거리더니, 창훈을 냉큼 안듯이 하고, 빠른 걸음으로 교문을 나서는 것이었다. 남영은 정신없이 그 자리에 한동안 멍하니 서 있었다.
“아이구 선생님, 선생님!”
하고 죽는 시늉을 하는 창훈의 음성이 저편 한길 쪽으로 차차 멀어져갔다.
남영은 교무실에 돌아와서도, 자기 자리에 맥없이 걸터앉은 채 움직일 줄 몰랐다. 걷잡을 수 없는 우울과 심신의 피로가 그를 짓누르는 것이었다. 행방이 묘연한 남동생의 모습과 금방 지옥에라도 끌려가는 듯한 창훈의 절망적인 얼굴이 겹쳐서 남영의 눈앞을 자꾸만 얼찐거렸다.
숙직 선생에게 인사를 하고 남영이가 교문을 나선 것은 완전히 어두워서였다. 버스 정류장 쪽으로 걸어 나가던 남영은 어둠 속에서 눈을 크게 뜨고 몇 발짝 앞을 주시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는 마차 꽁무니에 매달려 있는 소년이 눈에 띄었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보아도 창훈이 같았다. 남영은 걸음을 빨리하여 접근해 보았다. 가게 앞을 지날 때 불빛에 비친 소년은 틀림없는 창훈이었다. 남영은 말을 걸까 하다가 일부러 잠자코 따라가 보았다. 갑자기 마부가 뒤를 돌아보며 버럭 화를 냈다. 창훈은 얼른 뛰어내려 몇 걸음 뒤로 물러섰다. 마부가 돌아서서 말을 몰고 도로 걷기 시작하자, 창훈은 이내 또 쫓아가서 마차 꽁무니에 냉큼 올라탔다. 이윽고 마부가 돌아서며 더 큰 소리로 욕설을 퍼부었다. 창훈은 재빨리 또 뛰어내렸다가 마부가 돌아서기만 하면 짓궂게 다시 올라타는 것이었다. 그러기 몇 번 만엔가 버스 정류장에 거의 이르렀을 때, 남영은 말을 걸었다.
“장훈이 아니냐!”
도로 마차 꽁무니에 뛰어오르려다 말고, 창훈은 깜짝 놀라는 듯 뒤를 돌아보았다. 남영이 한 걸음 다가서자 창훈은 경계하는 태도로 뒷걸음을 쳤다. 여차하면 달아날 기세다. 남영은 얼른 덤벼들어 창훈의 한쪽 팔을 잡았다.
“니 어째서 여기 와 있니?”
창훈은 대답 대신 머리를 숙이었다.
“놀러 왔냐? 이 민 데까지.”
“아녜요!”
“그럼?”
“어디루 가는 거예요. 마차 타구 먼 데루 갈래요!”
창훈의 손을 꼭 쥐어 주며, 남영은 불현듯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이거 봐, 창훈이. 이 밤중에 혼자 어딜 간다는 거야.”
남영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그럼 말이지, 선생님이 집에까지 바래다주마. 그리구 아벼지랑 어머니께, 창훈일 나무라지 말라구 잘 부탁드릴게…….”
“울 아버진 없어요.”
“그럼 아까 그분은 누구냐?”
“건 창식이 아버지야요.”
창식이란 창훈의 동생 이름임을 생각해 내고 남영은 혼자 고개를 주억거리었다. 아무리 달래어도 창훈은 자기 집에 돌아가려 하지 않았다. 남영은 부득이 창훈을 집으로 데리고 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의 집에서 들은 창훈이가 없어졌다고 좀 서둘지 모르나, 그런 부모라면 하룻밤쯤 걱정을 시켜도 좋다고 생각한 것이다.
집에 돌아와서 저녁을 같이 먹고 퍽 부드럽게 대해 주지만, 창훈은 불안한 듯이 입을 다문 채 눈치만 살피었다. 남영이와 남희의 거동을 쉬지 않고 지켜보고 있는 창훈의 눈에는 잠시도 경계의 빛이 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아무리 상냥하게 해주어도 남영이나 남희를 믿을 수 없는 모양이었다. 이미 창훈에게는 애정이 깃들일 틈서리조차 없었다. 모든 인간을 불신하는 창훈의 얼어붙은 마음을 결코 단시일에는 녹여줄 수 없다고 남영은 생각했다. 남희와 창훈이가 나란히 잠든 뒤에도 남영은 늦도록 혼자 깨어 있으며 여러 가지 궁리에 잠기었다. 결론적으로 창훈의 모친을 설복시키어 여름방학 동안만이라도 창훈을 직접 자기가 데리고 있어 보리라고 남영은 결심했다.
이튿날 아침이었다. 조반을 짓기 위해서 남영은 어슬해서 일어나 나갔다. 부엌에서 쌀을 씻고 있으려니까 별안간 비명에 가까운 남희의 음성이 방에서 흘러나왔다.
“어머나! 망측해. 요게, 요, 배라먹을 자식이…….”
무엇을 그러나 싶어 남영은 사잇문을 열고 들여다보았다. 남희는 드로즈 바람으로 뛰어 일어나 창훈을 잡아먹을 듯이 노려보고 있었다. 분김에 얼굴이 빨개 가지고 남희는 어쩔 줄을 모르는 것이다. 설명을 듣고 난 남영이도 속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남희가 자고 있노라니까 갑자기 하복부가 서물서물하더니, 창훈의 손이 주저없이 드로즈 속으로 쑥 기어 들어오더라는 것이다. 그러나 남영은 겉으로는 놀라는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난 또 무슨 큰일이나 났다구!”
그러면서 남영은 태연히 웃고, 창훈더러 어서 밖에 나가 양치질이랑 세수를 하라고 일렀다. 그리고 나서 쌀을 일고 있는 남영의 손끝 자꾸만 떨리었다.
식사 준비가 끝나고 나서 남영은 다시 한번 놀랐다. 창훈이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을 차리다 말고 남영은 집 안팎을 숨이 차서 찾아 보았다. 나중에는 집 주위를 돌며, 창훈이 이름을 큰 소리로 불러도 보았다. 그러나 창훈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반도 먹는 둥 마는 둥 남영은 학교로 쫓아갔다. 교문 안에 기다리고 섰다가 등교하는 창숙을 붙들고 창훈의 일을 물어 보았다. 어젯밤에 나간 채 창훈은 아침까지도 집에 돌아오지 않았다는 것이다. 무슨 반가운 소식이나 있는가 싶어 남영의 얼굴을 쳐다보는 창숙은 눈물이 글썽해 있었다.
행여나 하고 남영이가 애타게 기다렸지만, 마지막 시간이 끝날 때까지 장훈은 종시 학교에도 나타나지 않았다.
대부분의 직원들도 돌아간 뒤 남영은 자기의 담임반 교실에 혼자 올라가 보았다. 거기에는 물론 아무도 없었다. 벽에 붙어 있는 창훈의 그림만이 유난히 남영의 눈을 끌었다. 다가서서 그 그림들을 언제까지 바라보고 있는 남영의 시선이 차츰 흐리기 시작했다. 남영은 창훈의 그림을 모조리 떼어서 곱게 말았다. 집에 가져다 보관하기 위해서 인 것이다. 그것만은 창훈의 구김없는 자기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창훈이가 남겨 주고 간, 가시 돋은 기념품이기도 했다.
(『현대한국문학전집』, 신구문화사, 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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