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보-1.hwp
(1)언젠가 한참만에 오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바로 옆에 어린 아이 하나가 엄마와 함께 역시 버스를 기다리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린 아이가 지쳤는지 엄마에게 아이스크림을 사 달라고 보채기 시작했습니다.
엄마는 안된다, 아이는 사 달라, 실갱이를 하다가, 결국 엄마는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주었습니다.
아이는 신나게 아이스크림을 먹는가 싶더니, 엄마에게 이러는 겁니다.
“엄마, 나 다리 아파.”
“그래서 어쩌라고?”
“업어 줘.”
“엄마도 다리 아파.”
“그래도 업어 줘.”
엄마 다리가 아프거나 말거나, 아이는 칭얼댔습니다. 엄마는 할 수 없이 아이를 등에 업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엎다가 덜렁 하는 바람에 아이가 들고 있던 아이스크림 덩어리가 훌렁 땅바닥에 떨어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그 순간,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는 광경이 벌어졌습니다.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아이가 울기 시작했습니다. 그것도 그냥 우는 게 아닙니다. 엄마 등짝을 후려치면서, 발광하듯이 굴러대며 말입니다.
“내 아이스크림 내놔. 내 아이스크림.”
제가 그 광경을 보면서 정말 괘씸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도대체 그 아이스크림 누가 사 준 것입니까? 그리고 다리 아프다고? 아니 엄마 다리는 안 아픕니까? 그리고 누구 등에 업혔는데요? 누구 신세를 지고 있는 데 엄마 등판을 그렇게 두들기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아이 엄마는 “엄마가 잘못했다. 또 사줄 께.” 하는데, 그 아이를 한 대 콱 쥐어박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아! 그렇구나! 저게 인생이구나. 저 아이가 엄마의 저 지극한 사랑을 기억이나 할까?”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기억 못할 겁니다.
보통 4살까지 받은 사랑은 기억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때 받은 사랑이 가장 큰 한 사랑인데요.
기저귀 찼던 일이 기억날까요? 그럼 5살 때까지 오줌 쌌다는 증거입니다. 엄마 젖 먹던 생각이 난다고요? 입 밖에 내지 마십시오. 그건 6 살 때까지 엄마 젖 먹었다는 걸 광고하는 것이니까요. 무조건적인 사랑, 우리가 받은 끔찍한 사랑은 기억나지 않는 법입니다.
그러나 기억나지 않는다고 그런 사랑을 받지 않는 것
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니 이렇게 딱 결정해 놓고 가야지요.
‘무조건적인 사랑 기억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도 그 큰 사랑 받아먹었으니 여기에 있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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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며칠 전에 전화가 왔습니다.
전혀 모르는 전화입니다.
‘예’하고 받았는데 다짜고짜로
“선생님이시지요? 맞지요? 한용구 선생님? 그렇지요?”
걸걸한 40대 아주머니가 냅다 소리를 지르는 데 귀가 떨어져 나가는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엉거주춤 대답을 했습니다.
“예, 아 예, 그렇습니다만.”
“저요. 영숙이요? 신도초등학교 44회 졸업생, 영숙이, 기억 안 나요?”
아니 35년이나 지났는데 어떻게? 하이고! 그러나 이런 경우를 몇 번 경험해 봐서 이렇게 얼버무렸습니다.
“아, 예, 그래요, 기억이 날 듯 말 듯 하는데.”
“아, 저요. 그때 6학년 3반, 우리 선생님이잖여유.”
완전히 충청도 사투리로, 그러나 아주머니의 그 특유한 냅다 해다 붙이는 말로 쏟아 내는 데, 허허 웃기만 했습니다.
“선생님, 그때 재미있는 얘기 많이 해 줬잖어.”
하이고, 선생님이라 하지 말든지, 반말도 슬슬 섞어 가면서 말입니다.
“그때 다른 반 애들이 우리 반 무지하게 부러워했잖어유.”
묻지도 않았는데 별 얘기를 다합니다.
“나유? 일찍 결혼해서 지금 할머니 되시유. 다른 애들은 고등학교 다니는데, 나만 할머니 됐시유. 선생님, 한 번 만나유. 정말 보고 싶어유 ~”
하! 헷갈렸습니다. 예 예 해야 하는지, 그래 그러자 해야 하는지, 정말 헷갈렸습니다.
“내가 선생님 전화 번호 알았으니께 친구들에게 연락해서 다시 한 번 연락할께유? 그때 뵈유?”
“만나면 환상이 깨질텐데?”
“원 선생님 걱정도 팔자유! 다시 뵈유!”
에구구, 아줌마 된 제자 때문에 정말 진땀 뺐습니다.
그래도 한 편으로는 옛날 스승이라고 찾아 주니 반갑기는 했습니다.
5월, 가정의 달이 그렇게 푸르러갑니다.
가정마다 화목이 가득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