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년의 자잘한 즐거움
- 엄상익 변호사 에세이
실버타운에 이년 째 있으면서 노인들이 살아가는 속내를 본다. 황혼에 남은 여백을 칠하는 방법도 다양하다. 매일 바닷가 잔디밭에 모여 파크골프를 많이 친다. 색소폰이나 피아노를 배우는 노인도 있다. 여기 와서 알게 된 나이 팔십의 노인은 주민센터에 가서 하모니카를 배웠다. 이번에는 동해시의 평생교육관으로 가서 목공반과 볼링반에 등록했다고 한다. 그 노인은 부지런한 성격이다. 산에서 나뭇가지들을 가져다 칼로깍아 여러 개의 지팡이를 만들었다. 그걸 다른 노인들에게 주려다가 거절당하자 도로 산에 가져다 버렸다고 했다. 그 노인은 인생 마지막으로 산에 가고 싶다고 했다. 젊어서부터 산을 무척 좋아했다고 했다.
경동맥이 구십퍼센트 이상 막혔는데 산에 오르는 게 가능할지 모르겠다고 했다. 놀이도 단순한 게 아니다. 깊은 맛을 느낄 수 있게 하려면 미리 준비했거나 뒤늦었지만 강한 의지와 인내가 필요한 것 같다. 폐활량이 줄고 몸이 쇠약하지는 노년에 색소폰은 과연 의미가 있을까. 노인에 맞게 좀 더 가능하고 즐거움을 느낄 수 있는 게 더 적합하지 않을까. 노인들은 일 년이 순식간에 흘러가는데 긴긴 하루를 보낸다고 한다. 노년의 공백을 어떤 색깔로 칠할까가 중요한 문제인 것 같다.
글을 읽다가 독특한 할머니를 발견했다. 세계문학전집을 완독하는 걸 목표로 삼았다는 것이다. 그 할머니는 “다 읽었다”하고 저세상으로 건너갔다는 내용이었다.
내가 있는 실버타운의 노부부가 시에서 운영하는 도서관의 사서 보조로 봉사하겠다고 신청을 했다. 부부가 가서 면접을 봤는데 할머니는 합격하고 할아버지는 떨어졌다. 면접관이 할아버지에게 왜 도서관에서 봉사를 하시려고 하느냐고 이유를 물었다. 할아버지는 “집사람이 같이 가자고 해서”라고 대답하니까 면접관이 실버타운에 가서 그냥 쉬시라고 했다는 것이다. 실버타운에 묵는 다른 부부로 부터 전해 들은 얘기다. 노년 여백의 색칠도 의미를 아는 경우와 남이 하니까 따라서 칠하는 건 다른 것 같다. 자기가 선택한 자기만의 색깔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인생의 전반부에는 지위나 돈이 목표가 되고 비교 대상이 됐다. 인생 후반부는 그런 것들이 의미가 없어지고 자기가 즐거움을 느낄 소소한 작은 일을 선택하는 것이 중요한 것 같다. 나이 칠십이 넘어서까지 대통령이 되겠다고 아등바등 사는 사람을 보면 그것도 그리 아름다와 보이지는 않는다.
나의 아버지는 젊어서부터 새를 좋아했다. 좁은 방 한쪽 벽에 새장을 포개놓고 새들의 이민을 받아들였다. 잉꼬부부가 이사를 오고 이어서 카나리아, 십자매, 문조, 호금조등 여러 가족이 이주했다. 아버지는 세상보다 새들과 교류하는 걸 더 좋아했다. 아버지는 새들의 말을 알아듣는 것 같았다. 동네에서 ‘파랑새 할아버지’라고 불리던 아버지는 신혼부부들에게 초롱에 든 새 한쌍을 선물하기도 하도 더러 팔기도 했다. 새들은 아버지의 병든 긴 노년의 적막을 지저귀며 위로해 준 것 같다.
어머니 노년도 적막이었다. 하늘이 황혼으로 붉게 물들 무렵이면 아파트 창가의 작은 의자에 앉아 한없이 이십층 아래 도로를 지나가는 차들의 모습을 보곤 했다. 어머니의 약해 보이는 뒷모습에서 외로움을 느꼈다. 어머니의 중요일과는 성모상 앞에 촛불을 켜고 하루에 세 번씩 기도를 올렸다. 돋보기를 쓰고 성경에 자를 대고 한 줄씩 꼼꼼하게 읽었다. 어머니는 나이 팔십에 서예를 시작했다. 매일 책상에 앉아 붓에 먹물을 묻혀 종이 위에 한 글자 한 글자 혼을 집어 넣으면서 썼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좋은 문장들을 알려달라고 했다. 나는 어머니에게 ‘홀로, 천천히, 자유롭게’라는 글을 전해드렸다. 어머니는 그렇게 썼다. 내용이 참 좋다고 했다. 어머니와의 합작품이라고할까.
아버지 어머니가 하늘나라로 가시고 나는 지금 아버지보다 칠 년을 더 살고 있는 셈이다. 나는 매일 작은 글을 쓰고 있다. 그냥 재미로 쓴다. 언어라는 물감을 짜내서 섞으면서 새로운 관념의 세계를 만들어 보고 있다. 삶의 발자국을 수필로 대신하고 싶은지도 모른다. 김시습은 일생 이천편의 시를 짓고 금오산에 묵으면서 소설을 썼다. 소설 홍길동전의 저자 허균도 장독대 뚜껑이나 덮을 허드렛 글이라고 자기의 수필을 겸손하게 말하면서 글을 썼다. 그들이 나의 멘토라고 할까. 나도 김시습을 따라 수필 이천편을 달성했으면 좋겠다. 글은 내게 작은 성취감을 주는 즐거움이다. 노년의 즐거움은 누가 주는 것이 아니다. 자기 옆에 있는 자잘한 소재들을 즐거움으로 만들어야 하지 않을까.
첫댓글 엄상익 변호사 구수하고 공감가는 수필 미소지으며 읽었습니다
네, 작주님, 감사합니다.
의미있는 글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