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의 교통사고로 척추를 다처 15년째 꼼작도 못하고 수발을 받으며 열정적인 삶을 이어가고 있는 서상복씨 (35대구시 동구 미곡동 218)) 2평 남짓한 방에서 움직일 수 있는 것은 오직 눈뿐인 그지만 누구보다 바깥세상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 있고 자기자신 마저 남의 도움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도 남을 돕는데는 발벗고 있다.
그는 자신의 집에 아마츄어 무선국을 차려놓고 무선을 통해 중증장애인들에게 차량지원을 연결해주는 사랑의 가교역할을 하는가 하면 산불발생 교통사고등을 알려주는 파수꾼 노릇까지 하고 있다. 더구나 다른 장애인들에게 전화상담을 통해 삶의 의욕과 용기를 북돋워주는 마음의 등불 역할까지 하고 있다
서씨의 운명은 15년전으로 되돌아간다 779년 9월 20일 당시나이 23세인 그는 직장에서 일을 마치고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다 승용차와 충돌 목뼈가 부러진것이 운명을 뒤바꿔놓은 것.서씨는 대구시 동구 미곡동 팔공산자락에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평범한 어린시절을 보내며 자랐다.
여느시골소년처럼 농삿일을 거들던 그는 가난 때문에 중학교만 졸업. 17세의 나이에 철공소에 취직했다 그는 밤 낮을 가리지 않고 일한 덕분에 돈을 조금 모을수 있었고 기술도 차츰 늘어가 독립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
대구시민 운동장 청주 신흥고 실내체육관공사등 제법 굵직한 공사도 따내는등 예비사업가로서의 재질을 발휘 74년 3월 드디어 그는 동네앞에 삼강공업사란 철공소을 차렸다 천성이 부지런한 그는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수입도 꽤 짭짤했다. 그러나 운명의 여신의 시샘? 이였던가. 79년 친구들과 함께 오토바이를 타고 귀가하다 승용차와 충돌 목뼈가 부러지면서 그의 인생항로는 뒤바뀌어 버렸다.
1년여의 투병생활을 했으나 병세는 호전되지 않고 오히려 등에 욕창이 생기고 전신마비가 돼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곳이라곤 눈밖에 없었다. 때문에 결혼을 약속한 애인마저 눈물을 머금고 스스로 보내야했다. 그러던 어느날 서씨의 형이 미국전신마비 장애인의 아마추어무선(HAM) 관련기사를 보여주며 한번 해보길 권했다. 처음에는 망설였으나 무엇인가 해야겠다 는 생각에 85년 5월 시험을 치기위해 6년만의 화려한 외출을 했으나 낙방. 이듬해 재도전해 척추장애인으로서는 국내최초이자 유일무이한 아마추어무선사 3급자격증을 따냈다.
이후 그의 생활은 종전과 달리 할 수 있다 는 자신감과 해야한다 는 사명감을 갖게됐다. 그는 무선을 통해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장애자가 많다는 것을 알고 지난 91년 한국장애인봉사협회를 조직 현제까지 장애인들의 지팡이 역할을 하고 있다
현제 부회장직을 맡고 있는 그는 무선과 전화를 통해 장애인들의 어려움을 상담 상담하거나 병원출입. 외출등을 도울 차량을 연결해 주고 있다. 또 그는 장애인결혼주선 장애인을 위한 음악회 개최 장애인 도서관개설등에 앞장서 왔다. 현제 그는 장애인 운전면허와 이.미용자원봉사자모집에 동분서주하고 있다. 자원봉사자가 모자라 도움을 요청해도 모두 도울수 없는 현실이 안타깝다. 며 장애인 수송을 위한 봉고승합차 한 대 가 뮹만? 하는 소박한 꿈을 갖고 있는 그는 사랑을 실천하는 성직자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