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이수영 상무는 세계적인 환경전문가를 꿈꾸고 있다.IT(정보통신), BT(생명공학) 강국 전통을 이어 ET(환경기술) 강국 코리아. 코오롱을 ET 전문기업으로 세계에 인식시키겠다는 다부진 각오를 보였다./이진한 기자 magnum91@chosun.com
'물 사업'으로 승승장구 코오롱 이수영 상무
차장에서 곧바로 상무보(常務補), 37세 때 임원 승진, 그룹 회장의 전폭적인 신뢰, 이명박(李明博) 대통령 직속 위원회 민간위원…. 재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이수영(李水映·41) 코오롱 그룹 '워터 앤 에너지 전략사업본부'(Water & Energy SBU) 전략기획팀장을 둘러싼 수식어들이다."저를 둘러싼 논란 자체가 정말 섭섭해요. 지난 3년 동안 누구보다 더 환경문제에 전념했고 그걸 사업화했으며 실적을 냈는데…. 심지어 이상득(李相得·1977~1983년 코오롱 사장 역임) 의원이 저를 돕는다는 소문까지 들었어요."
이 상무는 자기 영역을 알아서 개척한 인물이다. 서울대 노어노문학과를 나와 미국 노스웨스턴대에서 MBA를 한 그는 미국 5대 제약회사 중 하나인 BMS에서 근무하다 2003년 코오롱 차장으로 영입됐다. 2005년 상무보가 됐고 2007년에는 상무가 됐다.
그를 영입했을 때 이웅열 회장은 '웰빙 비즈니스'를 내세우고 있었다. 이 상무는 그때 '웰리스' 사업팀장으로 발령받았다. 그때도 오해는 있었다. "회장님과는 성(姓)이 같을 뿐이었는데 친·인척이 아니냐는 오해까지 받았어요. 한두달에 한번 물과 에너지 분야 사업방향 보고 때 만날 뿐이었는데요."
그는 자정 이전에 퇴근해본 적이 거의 없다. 구두 굽을 석 달에 한번 바꾸겠다는 생각으로 뛴 것이다. 그는 "업체 관계자, 공무원을 가리지 않고 만나다 보니 정말 구두 굽이 닳았고 심지어 두달 만에 구두 굽을 간 적도 있다"고 했다.
2005년 상무보가 된 어느 날 그는 한 주간지를 보다 눈이 번쩍 뜨였다. '전국의 물값이 천차만별이고 프랑스의 '비올리야'라는 회사가 물 사업만으로 세계 최고 기업이 됐다'는 내용이었다. 별명이 '호기심 천국'이라는 그는 그 기사에서 물 사업을 생각하게 됐다.
마침 그룹 내에는 물 정화에 사용되는 '멤브레인'이라는 나일론 실을 만드는 회사도, 상·하수도 시공사업을 하는 회사(코오롱건설 환경사업본부)도 있었다. 그는 "이 둘을 결합하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겠다"고 생각했다. 곧바로 팀원 4명으로 '물 태스크포스(TF)' 팀을 만들고 회사에 3억원 투자를 요청했다.
"이게 코오롱 물 사업의 시발점이었어요. 회사에서 얼마나 놀랐겠어요? 터무니 없는 사업을 시작한다면서 돈까지 달라고 했으니. 남들이 아무도 시작하지 않은 사업을 시작하게 된 것입니다." 그에게 본격적인 기회가 주어진 것은 2년여 지난 2006년 2월이었다.
국내 하수처리장 시설을 담당하는 환경시설공사를 '비올리야'가 인수하려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이다. 그는 인수 경쟁에 뛰어들었다. "국가 기간사업을 외국 기업에 넘긴다는 것이 이해가 안됐어요. 반드시 우리가 인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직원이 1000명이나 되고 노조가 있는 이 회사 인수에 그룹에서는 반대가 심했어요."
하지만 그는 전국의 물과 환경 관련 전문가 1000명의 인력을 확보한다는 것이 큰 자산이라고 생각했다. 이 상무는 6개월 동안 밤낮을 가리지 않고 하수처리 회사를 찾아갔다. 그는 "저를 믿어달라"고만 했다. 그때 결정적으로 이 상무를 도운 이가 이웅열 회장이다.
이 회장은 "리스크가 있다면 그걸 극복하면 되는 것이지 리스크가 있다고 포기하면 안된다"며 "최종 목표인 환경기업으로 가는 데 필요하다면 그 회사를 인수하라"며 그룹 내 투자심의위원회에서 최종 결정하도록 했다. 심의위는 결국 이 상무의 손을 들어줬다.
최종 입찰일, 이 상무는 예상하지 못한 전화를 받았다. 파리 출장 중인 이 회장이 전화로 "꼭 인수해야겠느냐"고 한마디 묻더니, "후회 안 하실 겁니다"라는 이 상무의 말에 "그럼 반드시 인수해라. 금액도 알아서 판단해 써 내라"고 한 것이다.
"결국 성공했어요. 팀원들이 저를 헹가래를 쳤지요. 팀원들이 그리고 조직이 나를 확실히 인정하게 된 날이었어요." 이 회사 인수 후 물 관련 그룹 매출액은 4000억원으로 증가했다. 이와는 별도로 그가 2006년 그룹 내 원료의학사업부와 바이오신약사업부를 합병해 설립한 코오롱생명과학은 지난 4월 코스닥에 상장해 시가 총액 3000억원 규모로 성장했다.
"지금 30대 그룹 내 신사업 전략기획을 여성에게 위임하고 팀장 자리를 주는 것은 우리 회사가 유일할 것입니다. 돈을 만지는 데다 신사업이라 남성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M&A를 위해서는 몇 백억, 조 단위를 투입하는데 잘못하면 회사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것이잖아요."
이 상무는 "물 사업은 전기와 도시가스처럼 인프라인데, 국내는 10조원 규모지만 세계적으로 800조원 규모"라며 "그룹의 물 에너지 분야의 매출을 2012년까지 2조원 이상 달성해 세계 10대 물 기업으로 성장시킬 작정"이라고 말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가 자는 시간은 하루 5시간뿐이다.
그의 취미는 트레킹이다. 지리산, 우포늪 같은 생태환경이 어우러진 곳을 찾아 다니며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여성이라서 인맥에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가능발전기업협의회 회원이 됐어요. 국회 기후변화포럼 위원도 됐고 서울시 녹색위원에도 선출됐습니다. 대통령 직속 녹색성장위원도 그 결과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