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티아고 가는 길」에서 나를 본다.
산티아고 가는 길(Camine de Santiago)을 읽고
글 최미선 사진 신석교 펴낸곳 넥서스BOOKS
건우 아빠가
도교육청, 제주교육가족 독후감 경진대회(초중고등학교와 교사, 학부모) 부문에서 각각 대상1편, 금상1편, 은상4편, 동상4편, 가작 4편씩 70편이 입상했다. 이 중에서 이 독후감은 학부모부문에서 대상을 차지했다.(제주일보 12월 2일자 13면)
“삶에 찌들고 지친 당신 떠나라! 상 장 피드포르에서 산티아고까지 800킬로미터를 간새 피우며 걸어라.”며 늘 마음 속에서 소리친다. 그런데요, 우도에 가면 우도 올레를 걸어야지 늘 다짐하며 몇 번을 갔지만 조금 걷다가 말았습니다. 끙 다음에 걷지 뭐. 집사람이나 건우를 설득 못해서인지 나중으로 미룹니다. 게으른 사람 간새다리입니다. 에이, 나도 하던 일 후다닥 집어치우고 배낭메고 떠나고 싶습니다. 꿈이어도 좋습니다. 단순한 바램이어도 언젠가 이루어지리가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기폭제가 되어 후반기를 훨훨 타오르게 하고 싶습니다. 마치 산티아고 길을 걷고 난 후, 귀국한 서명숙기자가 사단법인 '제주올레'를 만들고 제주를 걷기 천국으로 만들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산티아고는 9세기 경 예수의 제자 성 야고보의 유해가 발견된 이후 예루살렘, 로마와 함께 3대 성지로 불리는 곳인데 해마다 수백만의 순례자들이 찾는 곳으로 UNESCO의 세계문화유산에 지정된 길입니다. 마찬가지로 제주특별자치도의 한라산, 선산일출봉, 거문오름용암동굴계도 2007년 세계자연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하지만 등잔 밑이 어두워 우리 것이 좋은 줄 모릅니다.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우리나라는 전 국토가 박물관이다.” 외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그런데요, 무심히 지나치는 돌멩이 풀 한 포기마다 역사를 애기하는데도 듣지 못하고 보여주는데도 보지 못합니다. 나는 이렇게 무식합니다.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면 보이나니, 그 때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는 이 말을 아직도 올바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전에는 무척이나 충격이었는데, 지금은 그냥 평범한 말이 되어 버렸습니다. 이제나 저제나 건우가 아빠 독후감 쓰라는 주제에 벗어나 딴데로 가버립니다. 진짜 걷고 싶은 것일까? 왜 걷고 싶은 것일까? 자신에게 물어 봅니다. 누우면 죽고 걸으면 산다는 책이 생각나서일까요?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딴 청 피우고 싶어서일까요? 나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면서도 멀고 먼 이국 땅을 걸어보고 싶습니다.
앞만 보며 정신없이 사는 세상을 부정하고 싶어서입니다. 왜 뛰는지도 모르고 남들이 뛰니 나도 뛴다고 하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예전에는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 세상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뭉치면 죽고(레드오션), 흩어지면 산다(블루오션).’고 하고 있습니다. 800킬로 길을 남들이 한 달 걸려서 걸었다면 나는 두 달이 넘어도 걸을 것입니다. 무리를 쫒아 갈 필요도 있지만, 자신을 살펴볼 필요도 있습니다. 자신의 속도를 알고 걸으면 오래 오래 걸을 수 있지만, 속도를 잃으면 얼마가지 못해 쓰러집니다. 누구를 탓하겠습니까? 남 탓도 있지만 자신을 보지 못한 자신의 책임이 큰 까닭입니다.
무거운 배낭도 걸으면서 가벼워집니다. 걸으면서 필요 없는 물건들을 내려놓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쌓아 놓기만 했습니다. 이제 감당하기 힘들어졌습니다. 오십이 넘으면서 후반기 삶을 생각하고 필요 없는 짐을 정리하고 싶습니다. 짐을 가볍게 하고 싶은데 그동안 정신없이 남들 따라 뛰느라 오히려 짐을 더 무겁게 하는데 익숙해져 큰일입니다. 속도를 늦추고 싶어도 늦출 수가 없습니다. 늦추면 주저 앉거나 쓰러질 것 같습니다.
‘길에서는 누구나 혼자, 내 인생은 내가 책임져야한다.’라고 합니다. 과연 그럴까요? 같이 걷고 싶은 사람과 함께 갈 때는 먼 길을 가도 힘들거나 지루하지 않습니다. 떨어지고 싶은 사람과 함께 걷는다면 어떤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나를 버리면 내가 편할 지는 몰라도 부모나 자식은 더욱 힘들어지겠지요? 자신의 책임만일까요? 죽으면 모든 것이 끝난다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후손에게 빚을 물려주기도하고 지혜를 물려주기도 하여 그렇게 이어지는 것 같습니다.
‘한 달 예정이라 무조건 하루 70 리 이상을 걸어야 하고, 잠은 저렴한 순례자의 숙소 알베르게(Albergue)에서 해결한다.’ 이 것 또 의무적이라 일상을 떠났는데, 일상으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싫습니다. 간새 피우며 놀멍, 쉬멍, 즐기멍 숙소도 좋은 호텔에서 호사도 부릴 땐 부릴 줄 알면 좋겠습니다.
‘살인적인 더위를 피해 새벽부터 아침시간을 걷는다. 인생이 그러하듯 비가와도 바람이 불어도 쉬어 갈 수도 없다.’지만 살인적인 더위도 맛보고 늦잠도 자보고 무리하지 않으며 거꾸로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인생이 이렇게 막무가내 만은 아닌데도요, 비가 오면 우비나 우산으로 막을 수도 있고, 숙소에서 쉴 수도 있습니다. 바람이 불어도 마찬가지겠지요......
“아 힘들면 하루 걸을 길을 이틀에 걸으면 되고, 가다 못가면 그만 가면 되지 뭐가 문제야!”라고 하는 김희경의「나의 산티아고, 혼자이면서 함께 걷는 길」도 생각이 납니다. 나도 그랬다. 처음에 법당에 가서 삼천배하고 오자 라고 다짐할 때는 눈앞이 깜깜했다. 천천히 하다보니 하루가 지나고 자정이 가까워지자 삼천배를 하고, 이왕 늦은 김에 다시 삼천배를 하고 나니 바로 몇 시간 후면 새해라고 하면서 스님이 자정이 되어 타종해보라고 권하셨다. 그러다보니 나흘동안 삼천배를 세 번이나 할 수 있었다. 자신의 능력에 맞게 서둘지 말고 천천히 절하면 할 수 있는 것을 서두르다 천배도 못하고 주저앉는 우리 인생이 아니던가. 할 수 있는 것을 포기한 적이 얼마나 많았던가? 새삼 반성하며 돌아본다.
길 가운데 두 개나 짊어지고 가는 아저씨 바로 뒤에는 가다 말고 길바닥에 드러눕는 아들이 있다. 자식 위해 수행의 길로 아들의 배낭을 짊어진 것이다. 유럽인들에게도 자식 교육은 쉽지 않은가 보다. 아들의 배낭......., 버릴래야 버릴 수 없는 숙명의 짐이다. 그런데 나는 어떤가? 자식을 위해야지 하면서 방치하기만 한 것 같아 안타깝다. 집사람에게만 짐을 지워 짊어지게 하는 것이 안스럽다.
그러고 보면 자식은 부모 앞에서 아무런 탈 없이 커주는 것만으로 큰 효도다. 참으로 부모의 욕심은 끝 없구나. 오히려 지나친 보살핌이 아이를 아무것도 못하는 철부지로 만들어 버리는 것이 아닌지 생각해본다. 너무 바라지 말자며 다짐하지만 다시 보면 잊어 버린다. 금새 욕이 나가고 에휴 이 웬수 하는 것만 같다. 아이는 혼자서도 잘 큰다. 그런데 부모의 뜻데로만 커주기를 바라는 것이 언제나 아이로만 남아있게 하는 것 같다. 11살 4학년이면 어엿한 학생인데,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할 수 있는 나이 아닌가?
끝없는 길, 먼지 펄펄 나는 흙길, 들판, 산길, 더러는 1400미터의 피래내 산맥도 넘어야한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 스스로 걸어야 한다. 이것 저것 다 그만한 댓가를 치르며 걸어야 한다. 자신의 눈이 보고 입이 말하고 다리가 걷는다. 새삼스레 자신이 터득할 수 있는 것이다. 많은 것을 바라지 않으니 많은 것이 보인다. 하나를 버리면 전체를 본다. 예전에 중광스님이 그랬다. 83년 군 생활하던 무렵이었다. 동해안 낙산사에 근무할 때였다. 색종이에 크레용으로 그림을 낙서하듯 그려주는데 웃는 모습이 천연덕스러웠다. 그러면서 ‘미국에 가서 공항에 내리면 남들은 갈 길이 바쁜데, 나는 집이 없으니 어디든 갈 수 있다고, 내가 가고 싶은 곳이 다 내 집이다.’라는 말이 지금에야 생각이 난다. 집 없이 살아보는 것도 좋은 일인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지만, 그래 더 이상 볼 것이 없으면 나 자신을 돌아보는 것도 좋은 일인것 같다. 같이 우리 우도 올레 걷자.
발걸음을 멈추고 뒤를 돌아보니 아침 해가 떠 오른다. 해를 둘러싸고 뽀얀 안개 가득 덮혀 있다. 부드러운 햇살 속에 피어나는 물안개가 피어나는 냇물도 상큼하기 그지없다. 돌아보지 않았다면 몰랐을 아름다움이다. 앞만 보고 걷는 길은 절반의 카미노다. 인생도 여행도 뒤돌아볼 때 더 풍요로워진다. 그런데 나는 늘 바쁘다며 헉헉댄다. 앞 만보고 가기에도 모자라 뛰기까지 한다. 무얼 하려고 불 빛을 쫒는 불나방처럼 날아드는가? 바쁜 세상 가끔은 여유도 부리고 간새도 피우자. 앞도 좋지만 지나온 흔적도 살피자. 즐겁게 놀 줄도 알고 호기도 부리자. 무슨 말인들 못할 것 없지만 시간이 늦어지니 방향 없는 노를 이제는 내려 놓자. 그리고 쉬자. 다음 날을 위해......
첫댓글 신행만 잘하는게 아니라 글쓰기에도 일가견이 있군요. 축하드립니다
좋은 아침 좋은 글을 통해 마음의 여유를 가졌습니다.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고성인법우님은 19년차이고 제주고에서 근무하고 있습니다.건우엄마 직장이 우도여서 건우랑 건우엄마는 우도에 살고 있답니다.떨어져 있기 때문에 평소에 잘해주지 못했는데...이 독후감은 숙제였다고 하네요.글은 그 사람이다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로 진솔함이 돋보입니다.축하드려요 선배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