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가르치는 성경읽기 방법 87]
맺음말 1. 성령님의 일하심 안에서 성경 배우기
이제 앞으로 3회에 걸쳐 맺음말을 드리려 합니다. 칼빈 목사님은 기독교강요에서 우리가 알아야 할 참된 지혜는 하나님을 아는 것과 우리 자신을 아는 것이라고 하고, 맨 먼저 성경이 무엇인가에 대해 가르칩니다. 우리의 맺음말도 성경, 삼위일체 하나님, 교회의 순서로 다루겠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과 교회의 언약 관계의 그 은혜의 수단이므로, 우리는 죄와 고난의 교회 공동체(sinful and suffering community)로서, 기도와 찬양을 드림으로써(prayer and praise) 성경을 부지런히 읽기 시작해야 합니다(reading). 우리의 지성, 감성, 의지를 굴복시켜 성령님의 의도(intention)를 파악하고, 일반적인 가르침(doctrine)을 배우고, 구체적 삶에 적용할 바 (useful application)를 배웁니다. 말씀을 통해 은혜 주신 하나님께 찬양하고, 순종할 힘을 달라고 기도하고(praise & prayer) 다시 삶의 현장에서 자기 죄를 회개하고 고난 가운데 순종합니다(sinful and suffering community). 성경에서 은혜 받는 방법, 첫 자를 따서 SPRIDUPS로 기억합시다.
■하나님은 과거에 주신 계시를 가르치고, 비교하여 판단하며 새로운 계시를 주심
느헤미야 8장 8절에서 에스라와 레위인들이 1) 말씀을 낭독하고 2) 번역하듯이 해석하고 3) 구체적으로 실천할 지혜를 배우고(지혜를 세움) 4) 그 말씀이 성도의 마음 속에 들어가 깨닫게 하는 성경 해석의 과정을 보았습니다. “번역하듯 해석하는 것”(히브리어-파라셔)은 “가르친다”(헬라어-디다스코)는 뜻입니다. 목사도 하나님의 말씀을 위임 받은 직분자로서 말씀을 해석하고 가르칩니다.
그런데, 느헤미야서에 나타난 레위인의 “가르침”은 하나님께서 계시하시는 일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과거에 주신 계시를 가르치고 비교하고 판단하며 새로운 계시를 주십니다.
첫째, 성경에서 처음으로 “가르친다”는 말이 나온 것은 신명기 4장 1절입니다. 신명기는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이지만 출애굽기의 율법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둘째, 파라셔를 민수기 15장 34절은 “조치한다”고 말하는데, 하나님께서 “비교하여 판단하신다”(신-크리노)라는 뜻입니다. 안식일을 어긴 사람을 사형에 처하라는 새로운 계시는 이미 출애굽기에 계시하신 안식일 법에 대한 더 자세한 가르침입니다.
셋째, 창세기 40-41장은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석”한다는 것도, “비교하여 판단하신다”(신-크리노)라는 단어를 씁니다(창 40:8, 41:13). 요셉의 해석은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주신 꿈이라는 기존의 계시를 성령님의 감동으로(창 41:39) 해석한 것입니다. 꿈의 해석에 나타난 명철과 지혜는, 풍년에는 곡식을 저장하고 흉년에 내다 파는 유익한 적용, 실제적 지혜로서 언약 백성뿐 아니라 이집트 제국의 생명을 보호하는 복을 낳습니다. 요셉의 해석과 지혜는 자기의 독창적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미 주신 꿈이라는 그 계시에 대한 성령님의 해석입니다.
넷째, 사도 바울도 자신의 가르침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사람의 지혜의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님의 가르치신 것으로 하니 신령한 것(성령적인 것)은 신령한 것으로 분별하느니라(신-크리노)”(고전 2:13). 성령님께서 사도에게 가르쳐 주시고, 비교하며 판단하게 하여 내려 주신 그 계시는 예수님의 십자가 사역과 예수님의 가르침이라는 기존의 계시에 근거해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보다 앞서,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크리노, 고전 2:2)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는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명령(그리고 구약의 계시)을 자신이 가르치는 것(“내가 말하노니” 고전 7:10-12)과는 세밀하게 구별하여 말합니다. 기존 계시를 해석하는 그의 가르침은 개인의 의견이 아니라 “성령님을 가진 자”(고전 7:40)의 판단이지만, 그 뿌리는 구약과 그리스도의 가르침입니다.
구약과 신약의 계시의 세계 안에서도 하나님과 성령님은 이렇게 과거의 계시에 대한 일관성 있는 신실함 가운데 새로운 계시를 주셨습니다. 그러니, 오늘날 말씀을 가르치고 “비교하여 판단하는 것”을 사명으로 하는 목사는 모든 가르침을 성경에 명확히 근거해야 하고, 성령님의 인도를 받아서 전달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성도들은 세상 가운데 그리스도적 삶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습니다.
■성경을 신실하게 읽는 일에서 성령님의 감동과 가르침이 시작된다.
“하나님의 사람” 목사 디모데는 성령님의 감동으로 된 구약 성경을 신실하게 읽고, 자신이 먼저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지혜”를 얻어야 했습니다(딤후 3:16). 이어서, 교회에 대해서도 “말씀을 전파(케루소)”하는 일을 먼저 하고, “경책하고 경계하며 권하는”(딤후 4:2) 일을 해야 했습니다. 히브리어 ‘카라’는 선포와 읽는다의 두 가지 뜻이 있음을 생각할 때,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선포하는 것은 말씀을 공적으로 낭독하는 것과 같습니다. 또 디모데는 바울이 보낸 편지를 먼저 성도들에게 읽어 준 다음에, 그것에 기초하여 권면하고 위로해 주어야 했습니다(딤전 4:12-13).
우리 시대 목사도 어떠한 가르침과 위로의 말도, 먼저 신구약 성경을 개인적으로 공적으로 성실하게 읽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그러할 때 성령님께서 이 시대의 목사와 교회를 성경 본문의 은혜와 진리의 세계로 인도해 주십니다. 종교 개혁기의 스크라스부르그의 무스쿨루스 목사님의 시편 주석 서문의 한 부분입니다. “성령님께서 경건한 사람의 마음을 (시편을 기록한) 선지자들의 실제 상태(res)와 동조하게(convenir) 하셔서, 그들의 마음을 하나님께 쏟아놓게 하십니다. 따라서 모든 선택 받은 사람은 하나님의 아들의 영의 모습으로 거의 근접하게 변화되어 가게 만드십니다.” 성경의 “의미(sensus)”를 깨달을 뿐 아니라, 성령님의 “정서와 의지(affectus)”에 일치되는 복이 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