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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12.8(주일) 시편 28:1~9 ‘내 마음이 크게 기뻐하며’
성경은 하나님께서 기쁨의 근원이시며, 그 분이 주시는 기쁨이 우리의 삶을 충만하게 한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단순히 일시적이거나 외적인 기쁨이 아닌, 영원하고 내적인 참된 기쁨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시16:11에 “주께서 생명의 길을 내게 보이시리니 주의 앞에는 충만한 기쁨이 있고 주의 오른쪽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라고 합니다. 그 기쁨을 경험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시4:7에 시편기자는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라고 고백합니다. 성도는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의 기쁨을 누려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하나님의 풍성한 기쁨을 누리지 못하고 있는 것일까요?
1.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의 마음 상태, 신앙의 태도, 그리고 삶의 여러 요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다양한 원인을 보여줍니다.
첫째,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하나님과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가 죄로 인한 단절이라는 점은 성경 전체에서 일관되게 나타나는 주제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과 완전한 교제를 누리며 에덴동산에서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금하신 선악과를 먹음으로써 죄를 범했고, 그 결과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가 단절되었습니다. 죄의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부끄러움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서 숨었습니다(창 3:8). 하나님은 그들을 에덴동산에서 쫓아내어 더 이상 그곳에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하셨습니다(창 3:23-24). 죄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벽을 세우며, 그로 인해 하나님과의 친밀한 기쁨을 잃게 합니다. 다윗은 밧세바와 간음하고 그녀의 남편 우리야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큰 죄를 범했습니다. 나단 선지자를 통해 죄를 지적받은 다윗은 시편 51편에서 회개의 기도를 드립니다. 다윗의 기도를 보면 "구원의 즐거움을 내게 회복시켜 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시 51:12).
이는 죄로 인해 하나님과의 기쁨이 상실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오는 구원의 기쁨을 빼앗아 가지만, 진정한 회개를 통해 회복될 수 있습니다. 또한 로마서에서는 죄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끊는 장애물이라고 합니다. 로마서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며, 그의 영광과 임재를 누리는 것을 막습니다.
사59:2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하나님 사이를 갈라 놓았고….”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며, 회개하지 않는 죄는 우리의 영혼을 무겁게 하고, 기쁨 대신 죄책감과 슬픔을 가져옵니다.
죄는 인간과 하나님 사이를 분리시키는 가장 큰 장애물이며, 그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단절되고 기쁨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성경은 회개와 용서를 통해 이 단절이 회복될 수 있음을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는 다시 하나님과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참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과의 관계 소홀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하나님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되는 사례는 성경에 여러 곳에서 나타납니다. 이스라엘의 초대왕인 사울 왕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기보다 자신의 판단과 두려움에 따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다리라고 명하셨지만 상황이 급해지마 사울은 제사장인 사무엘을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번제를 드렸습니다(삼상 13:9). 또한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아말렉을 진멸하지 않았습니다(삼상 15:9). 그 결과 하나님께서 사울을 버리셨고, 그의 왕국이 다윗에게 넘어가게 될 것을 선언하셨습니다(삼상 13:14, 15:28). 사울은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을 잃고 불안과 두려움 속에서 살게 되었습니다(삼상 16:14).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고 자신의 방법을 선택하면 하나님의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10:38-42에서 마르다는 예수님을 집에 모셨지만, 분주함에 매몰되어 예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했습니다. 마르다는 여러 가지 일로 분주하여 예수님 발치에 앉아 그의 말씀을 듣는 일을 우선하지 않았습니다(눅 10:40).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한 그녀는 예수님이 집 안에 오신 동안에도 불평하고 걱정하며 평안을 잃었습니다. 그런 마르다에게 예수님은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41). 하나님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면 하나님의 임재와 기쁨을 누리는 대신 불안, 허무, 하나님의 책망과 심판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와 순종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할 때, 우리는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요 15:4-11). .요15:4-5에 “내 안에 거하라 나도 너희 안에 거하리라…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기도와 말씀 묵상 등 영적인 훈련을 통해서 기쁨의 근원이신 하나님과의 교제를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셋째, 환경과 문제에만 집중하기 때문입니다. 마태복음 14:28-31에 보면 제자들이 배를 타고 갈릴리 바다를 건너는 중, 풍랑 속에서 예수님이 물 위를 걸어오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자신도 물 위를 걷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 베드로는 처음에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물 위를 걷습니다. 그러나 곧 풍랑을 보고 두려워하며 물속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마14:30에 “바람을 보고 무서워 빠져 가는지라…”라고 기록합니다. 물에 빠진 베드로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보지 못했고, 물에 빠지며 도움을 요청해야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믿음이 작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라고 책망하셨습니다(마 14:31). 환경과 문제에만 집중하면 믿음이 흔들리고, 하나님의 기쁨과 능력을 누릴 수 없습니다. 베드로가 물위를 걷다가 바람에 집중했을 때, 두려움에 빠졌던 것처럼 우리의 시선이 환경과 문제에만 고정될 때 기쁨을 잃게 됩니다.
민수기 13-14장에는 환경과 문제만 집중하다가 하나님을 원망하고 심판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대해서 나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땅을 정탐한 후 약속의 땅에 들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12명의 정탐꾼이 땅을 탐사한 뒤 보고를 합니다. 10명의 정탐꾼은 그 땅이 아름답지만 거인족과 견고한 성읍 때문에 불가능하다고 보고했습니다(민 13:28-29). 백성들은 이 보고를 듣고 두려워하며 하나님께 원망합니다.
백성들이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환경만 바라보며 두려워한 결과,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셨습니다(민 14:28-30). 환경과 문제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약속과 능력을 잊고, 두려움과 불평 속에서 하나님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
열왕기상 19:1-18에서는 엘리야 선지자의 낙심과 두려움의 배경을 설명해 줍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갈멜산에서 바알 선지자들과 대결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보여줬지만, 이세벨의 위협을 듣고 두려움에 빠져 광야로 도망쳤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의 생명을 비관하며 하나님께 죽여달라고 기도합니다(왕상 19:4).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지만, 먹을 것과 쉼을 주시고 "네가 어찌하여 여기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엘리야를 통해 일하실 계획을 말씀하셨습니다(왕상 19:9-18).
환경과 문제에만 집중하면 하나님의 능력과 약속을 보지 못하고 기쁨과 평안을 잃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시선을 돌리고 그의 말씀과 약속을 믿을 때, 우리는 어떤 환경에서도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을 통해 우리의 기쁨이 환경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음을 가르칩니다(빌 4:4).경과 문제에만 집중하면 하나님의 계획과 능력을 보지 못하고 낙심하여 기쁨을 잃을 수 있습니다.
넷째, 불신과 의심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또 다른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께 대한 불신과 그의 말씀에 대한 의심입니다. 성경에는 이러한 불신과 의심이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을 잃게 만드는 사례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18:9-15에 보면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의 의심에 대해서 말씀해줍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사라가 나이가 많음에도 아들을 낳을 것이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사라는 천사의 말을 듣고 속으로 웃으며 "내가 늙었으니 어찌 그런 일이 있으리요?"라고 생각했습니다(창 18:12).
하나님은 사라의 불신을 지적하시며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라고 말씀하셨습니다(창 18:14).
그러나 하나님의 약속은 이루어졌고, 사라는 결국 이삭을 통해 기쁨을 회복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의심은 기쁨을 잃게 하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그의 말씀을 성취하십니다.
요한복음 20:24-29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도마의 의심을 말합니다. 예수님이 부활하신 후, 도마는 다른 제자들의 증언을 듣고도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도마는 "내가 그의 손에 못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고 말했습니다(요 20:25). 예수님은 도마에게 나타나셨고, 도마는 결국 예수님을 주님으로 인정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너는 나를 본 고로 믿느냐? 보지 못하고 믿는 자들은 복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20:29).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신은 기쁨을 지연시키지만, 믿음으로 기쁨을 누릴 수 있습니다. 히11:6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지 못할 때, 마음 속에 불안과 염려가 자리잡게 됩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그의 말씀에 대한 의심은 기쁨과 축복을 가로막는 주요 원인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고 순종할 때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음을 반복해서 가르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의뢰하라 그가 기쁨을 주시리라"(시편 37:4)는 말씀처럼, 믿음과 신뢰가 하나님과의 관계의 기쁨을 회복하는 열쇠입니다.
다섯째, 세상의 욕심과 분주함 때문입니다. 막4:19에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에 대해서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비유가 등장합니다. 이 중 가시떨기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를 뜻합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세상의 일, 물질적인 욕심, 세상의 성공에 마음을 빼앗길 때, 하나님께 집중하지 못하고 기쁨을 잃게 됩니다. 마태복음 19:16-22에 보면 부자청년의 비유가 나옵니다. 한 부자 청년이 예수님께 "영생을 얻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라고 묻습니다. 예수님은 그의 마음을 아시고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청년은 재물이 많아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그는 재물이라는 세상의 욕심 때문에 예수님을 따르는 기쁨을 포기했습니다. 세상의 재물과 욕심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을 막아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듭니다.
요한계시록 3:14-22에서는 미지근한 신앙을 가진 라오디게아 교회를 책망하고 있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는 부유하고 부족함이 없다고 여겼지만, 예수님은 그들이 실상 영적으로 가난하고 눈멀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교회의 미지근한 신앙은 세상의 부와 안락함에 안주한 결과였습니다. 예수님은 "너를 내 입에서 토하여 버리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계 3:16). 그들은 세상의 안락함을 추구하다가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을 잃었습니다.
세상의 풍요와 안락함에 빠지면 하나님과의 관계가 희미해지고, 진정한 기쁨이 사라집니다.
세상의 욕심과 분주함은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여 하나님의 기쁨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복음 6:33)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세상적인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집중할 때, 참된 기쁨과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여섯째, 감사하지 않는 마음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잃어버리는 이유 중 하나는 감사하지 않는 마음 때문입니다. 감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기쁨을 유지하는 중요한 태도입니다. 출애굽기 16장과 민수기 14장에서는 이스라엘 백성의 불평과 원망에 대해서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시고, 홍해를 가르며 놀라운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고 불평과 원망을 시작했습니다. 광야에서 먹을 것과 물이 부족하자 그들은 "애굽에서 고기와 떡을 먹던 때가 더 좋았다"며 하나님께 불평했습니다(출 16:3). 또한 이스라엘 백성4들은 가나안 땅 정탐 후에는 적들을 두려워하며 "차라리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말했습니다(민 14:4).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그들의 믿음을 약화시키고, 하나님의 약속과 기쁨을 보지 못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런 그들을
하나님은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하셨습니다(민 14:26-30). 감사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와 축복을 잊고, 결국 기쁨 대신 원망과 두려움이 자리 잡게 됩니다. 누가복음 17:11-19에는 열명의 나병환자를 고쳐주신 사건이 나옵니다. 예수님께서는 열 명의 나병환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고침받은 후, 오직 한 사람(사마리아인)만이 예수님께 돌아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예수님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라고 말씀하시며 감사하지 않는 태도를 책망하셨습니다(눅 17:17). 감사한 한 사람은 육체의 치유뿐만 아니라 영혼의 구원을 받았습니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온전히 누리지 못하게 하지만, 감사는 하나님의 기쁨과 축복을 더욱 깊이 경험하게 만듭니다.
로마서 1:21에서는 감사하지 않는 자의 어리석음에 대해서 경고합니다.
바울은 인간의 죄악된 본성을 설명하며, 감사하지 않는 태도가 어떻게 하나님의 기쁨과 관계를 잃게 만드는지 경고합니다.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하지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험앙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고 말합니다. 감사하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보지 못하고, 어리석음과 죄악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감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유지하는 열쇠이며, 감사하지 않으면 영적으로 어두워져 하나님의 기쁨을 잃게 됩니다.
감사하지 않는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축복을 잊게 하고, 결국 하나님의 기쁨을 잃게 만듭니다. 그러나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데살로니가전서 5:18)고 강조하며, 감사가 기쁨과 하나님의 축복을 경험하는 열쇠임을 가르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께 늘 감사함으로써, 하나님의 기쁨과 평강을 누릴 수 있습니다.
적용) 나는 어떤 원인으로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지 못하고 있습니까?
2.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1-9절).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는 간구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1-2절).
오늘 본문 1~2절에서 다윗은 하나님께 부르짖고 있습니다. 1절, 2절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으오니 나의 반석이여 내게 귀를 막지 마소서 주께서 내게 잠잠하시면 내가 무덤에 내려가는 자와 같을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지성소를 향하여 나의 손을 들고 주께 부르짖을 때에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소서” 다윗은 무덤으로 내려가는 자와 같이 절망적인 상황에 있습니다. 그 때 다윗은 반석이신 주께 부르짖으며 자신의 기도를 들어주시기를 간구합니다. 절망의 상황에서 자기 힘을 내려놓고 오직 하나님만 붙잡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하나님께 나아가 간구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간구는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를 회복하고,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맡기며, 그분의 임재 안에서 참된 기쁨을 찾게 하는 중요한 영적 행위입니다. 간구는 하나님의 응답과 평안을 가져옵니다. 빌립보서 4:6-7에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간구는 우리의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마음의 평강과 기쁨이 회복됩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 하나님의 응답뿐만 아니라 그분의 평강을 통해 기쁨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사무엘상 1:10-18에는 한나의 간구에 대해서 기록합니다. 한나는 자녀가 없다는 이유로 깊은 슬픔과 괴로움 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성전에 나아가 하나님께 간구하며 자신의 모든 괴로움을 토로했습니다.
한나는 "마음이 괴로워서 여호와께 기도하고 통곡하며" 간구했습니다(삼상 1:10). 엘리 제사장이 하나님의 평강을 선언하자, 한나는 얼굴에서 근심이 사라지고 기쁨을 되찾았습니다(삼상 1:18). 간구는 슬픔과 괴로움을 하나님께 맡기는 길이며, 이를 통해 마음의 평강과 기쁨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29:12-13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찾으라고 초대합니다. "너희가 내게 부르짖으며 와서 내게 기도하면 내가 너희를 들을 것이요, 너희가 온 마음으로 나를 구하면 나를 찾을 것이요 나를 만나리라." 하나님께 간구하고 찾는 삶은 하나님과의 교제를 회복하며, 하나님의 응답을 통해 기쁨을 얻게 합니다. 간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참된 기쁨을 누리는 길입니다.
하나님의 자녀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은 우리가 고통당할 때 주께 부르짖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고통 자체나 고통의 원인 또는 고통당하는 나 자신만 생각한다면 나의 외침은 그저 응답없는 비명으로 끝나고 맙니다. 그러나 아무리 큰 고통의 비명도 주님을 향해 외치면 그것은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고통과 문제를 솔직히 아뢰는 것은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는 첫걸음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마음을 쏟아내는 기도는 우리 안의 두려움과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게 되고, 그 결과로 내적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빌4:6-7).
[큐티인묵상간증] [공동체와 함께 부르짖는 기도, 오은숙]
몇 달 전, 저는 우연히 작은 아들의 오른쪽 가슴에서 멍든 것처럼 보이는 단단한 덩어리를 발견했습니다. 이후 아들은 병원에 가서 조직 검사를 받았습니다. 검사 결과 감사하게도 전이성이 높지 않는 ‘융기성 섬유육종’이었습니다. 병원에서는 간단한 수술로 덩어리만 잘 제거하면 된다며 저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저는 마음이 불안해졌습니다. 10여년 전 큰 아들이 뇌종양으로 먼저 하늘나라에 갔기에, ‘작은 아들도 잘못되면 어쩌나?’라는 두려움이 몰려왔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날마다 말씀을 묵상하고 공동체 지체들과 함께 한마음으로 주께 부르짖었습니다(1절). 그러자 요동치는 마음이 가라앉고 아들의 수술 날짜를 잠잠히 기다릴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1차 수술 후 의사로부터 재발과 전이가 염려되니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를 해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러자 저는 또다시 마음이 심하게 요동쳤습니다. 첫째에 이어 둘째에게까지 질병의 고통을 주시는 하나님이 원망스러웠습니다. 하지만 공동체에 저의 이런 연약함과 믿음 없음을 솔직히 나누니, 지체들은 진심어린 기도와 권면으로 제 마음을 잡아주었습니다. 그렇게 지체들과 함께 간구하자 기도를 들으신 주님이 저의 힘과 방패가 되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6~7절). 그로인해 아들은 방사선 치료나 항암 치료 없이 건강을 회복할 수 있었습니다.
요즘 저는 아들의 질병 고난을 통과하면서 지체들의 아픔이나 나의 아픔처럼 느껴집니다. 그래서 그들의 힘든 이야기를 들을 때면 체휼이 되어 눈물이 납니다. 다른 사람 이야기에 공감하며 눈물 흘린 적이 별로 없는 제게는 참 신기한 일입니다. 지체들의 구원을 위해 부르짖어 기도하라고 주님이 주신 마음인 것 같습니다(1절). 아들의 질병 사건 속에서 중심을 잡을 수 있도록 도와준 공동체처럼, 저도 주께서 지체들의 힘과 구원이 되어 주시길 기도하겠습니다(8~9절). 적용) 수술 후 아들이 약해진 체력이 회복되도록 영양가 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겠습니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지체들의 기도제목을 보며 기도하겠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하나님께 간구하고 나아가는 삶이 필수적입니다. 간구는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로 집중하게 하고, 하나님의 임재 안에서 기쁨과 평강을 누리게 합니다. 성경은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데살로니가전서 5:16-18)고 가르치며, 간구의 삶이 기쁨과 감사의 삶으로 이어진다고 약속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3-5절).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한다는 것은 우리의 삶에서 발생하는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 맡기며, 그분의 선하고 공의로운 뜻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정의는 우리의 기쁨과 안식의 근거가 됩니다. 시편 37:5-6에 보면 "너의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 네 의를 빛같이 나타내시며, 네 공의를 정오의 빛같이 하시리로다."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며 우리의 길을 맡길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 속에서 정의를 드러내시고 기쁨과 평안을 주십니다. 하나님께 맡기는 삶은 불의한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공의를 기다리며 흔들리지 않게 합니다.
욥의 하나님께 대한 신뢰는 하나님의 정의에 기초하여 믿음으로 기쁨을 회복합니다. 욥은 큰 고난을 겪었지만, 자신의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신뢰하며 끝까지 하나님을 원망하지 않았습니다. "욥이 그의 친구들을 위하여 기도할 때 여호와께서 욥의 곤경을 돌이키시고, 욥에게 이전의 모든 소유보다 갑절이나 주신지라."(욥기 42:10) 하나님의 정의를 믿고 신뢰하는 욥의 삶은 결국 기쁨과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하나님의 정의를 기다리며 신뢰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윗은 악인과 자신을 구별하시고 공의로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악인과 악을 행하는 자들과 함께 나를 끌어내지 마옵소서…”(3절).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신뢰는 고난 속에서도 기쁨을 잃지 않게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선하게 다스리시며, 악을 심판하시고 선을 보상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이 믿음은 불의한 상황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기쁨을 가능케 합니다.
셋째,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6-7절).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삶이 필요합니다. 찬양은 하나님께 대한 우리의 신뢰와 감사를 표현하는 행위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은혜와 응답을 더 깊이 경험할 수 있습니다. 6,7절에 다윗은 자신의 간구를 들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함이여… 여호와는 나의 힘과 나의 방패이시니 내 마음이 그를 의지하여 도움을 얻었도다”(6,7절) 다윗은 하나님을 “힘과 방패”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의지할 때 그의 마음은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기쁨을 주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다윗은 하나님을 자신의 "오즈"(힘)로 고백하며, 자신이 어려움과 고난 속에서도 버틸 수 있는 내적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다윗은 자신을 둘러싼 적들로부터 하나님이 마겐(방패)처럼 보호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이는 물리적 보호뿐만 아니라 영적, 정서적 안전까지 포함됩니다. 다윗이 하나님을 ‘힘과 방패’라고 고백한 것은 단순히 자신을 지키는 수동적 보호에 그치지 않고, 삶의 도전 속에서 전진하게 하는 능력을 주시고, 위험과 공격으로부터 보호해주는 하나님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표현은 하나님이 단순히 한 부분에서만 도움이 되는 분이 아니라, 우리의 전 삶을 완전히 감싸고 보호하시며 내적 능력까지 공급하시는 분임을 나타냅니다.
시편 40:1-3에서 다윗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한 기쁨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 "내가 여호와를 기다리고 기다렸더니 귀를 기울이사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셨도다.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 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새 노래 곧 우리 하나님께 올릴 찬송을 내 입에 두셨으니..." 다윗은 하나님이 응답하심으로 구원을 경험했고, 그 응답에 찬양함으로 기쁨을 회복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분이며, 찬양은 그 은혜를 고백하는 표현입니다. 하나님의 응답은 그 응답으로 찬양하는 우리의 마음에 확신과 기쁨을 줍니다.
예수님은 이 일에 본보기가 되십니다. 요한복음 11:41-42에서 예수님은 나사로가 죽었을 때 감사와 찬양으로 하나님께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사로를 살리기 전에 "아버지여 내 말을 들으신 것을 감사하나이다"라고 말씀하시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습니다. 나사로는 죽음에서 다시 살아났고,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드러났습니다. 감사와 찬양은 하나님의 응답을 확신하는 신앙의 태도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이 나타납니다.
넷째, 공동체를 위한 축복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8~9절).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공동체를 위한 축복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우리에게 서로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기쁨과 은혜가 풍성히 임한다고 가르칩니다. 8,9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그들의 힘이시요 그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구원의 요새이시로다. 주의 백성을 구원하시며 주의 산업에 복을 주시고 또 그들의 목자가 되시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하소서” 다윗은 응답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할 뿐 아니라, 하나님께 응답받은 그 기쁨으로 온 백성을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의 목자가 되어 영원토록 그들을 인도해주시길 간구합니다. 하나님의 기쁨은 공동체 안에서 함께 나눌 때 더 풍성해집니다. 자신의 문제만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위해 중보의 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는 더 큰 은혜로 그 심령에 기쁨을 부어주십니다.
창세기 18:22-33에 보면,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시겠다고 말씀하셨을 때, 아브라함은 의인 50명부터 10명까지 줄이며 하나님께 간구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이익이 아닌 도시 전체의 구원을 위해 하나님께 중보하며 간구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기도는 나 자신뿐 아니라 공동체와 이웃을 위한 기도입니다. 아브라함의 간구는 그의 믿음과 사랑을 나타냈으며, 하나님은 그의 기도를 기쁘게 받으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바벨론을 위한 축복의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레미야 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이스라엘 백성이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에서도 그 도시를 위해 기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주어졌습니다. 공동체의 축복을 구하는 삶은 개인의 평안과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는 길입니다. 적대적인 환경에서도 이타적인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행위입니다.
예수님의 대제사장적 기도가 요한복음 17장에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7:20-23에서 예수님은 제자들과 믿는 자들을 위한 기도를 합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하나님께 제자들과 믿는 자들이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예수님은 자신을 위한 기도가 아니라 제자들과 모든 믿는 자들의 연합과 축복을 간구하셨습니다. 이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과 기쁨이 드러났습니다.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려면 공동체를 위한 축복을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경은 "너희가 짐을 서로 지라 그리하여 그리스도의 법을 성취하라"(갈 6:2)고 가르치며, 이타적인 기도와 축복을 통한 연합이 기쁨과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임을 보여줍니다. 공동체가 축복받을 때 하나님은 그 기쁨을 우리에게도 넘치게 부어주십니다.
적용) 하나님의 기쁨을 회복하기 위해 내가 나의 신앙생활 속에 적용해야 할 부분은 무엇인가요?
결 론
오늘을 살아갈 소망이 우리에게 있는 것은 고통 속에서 나의 간구하는 소리를 들으시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성도의 힘과 방패가 되신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악인은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음을 늘 인식하고 성도는 악에 가담하지 말고 늘 주의 공의와 사랑을 구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상황이나 조건에서도 하나님으로 인해 크게 기뻐할 수 있습니다. 내가 반석이신 주께 손을 들어 간절히 기도하고 의지할 때 나의 암울한 환경은 곧 찬양의 이유로 바뀌게 될 것입니다. 내가 의지하는 주님이 나를 인도하는 목자이신 것 자체가 인생 최고의 복이요, 성도의 기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