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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칠포리 암각화는 고래꼬리 형상화한 경미형(鯨尾形) 암각화
- 고령 양전동 암각화는 독수리토템 숭배의 비조형(飛鳥形) 암각화 -
김성규 (코리안신대륙발견모임 회장)
이곳 시카고에서 위성으로 보내오는 EBS 방송에서 건국대학교 김기덕 교수가 한국형 암각화에 대한 강의를 보았다. 김교수는 영일만 칠포리 암각화를 비롯한 이른바 '한국형 암각화'의 의미가 아직 그 해석이 제대로 되지 않아 미스터리로 남아 있음을 강조하면서 그에 대한 보다 새로운 해석이 나오기를 기대하고 있었다. 이 글은 김기덕 교수에게 답하는 필자의 대답으로 쓰는 글이다.
필자는 한국과 미국의 대학원에서 역사를 전공한 사람으로서 이미 울산반구대 암각화를 비롯한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암각화를 현지 탐방을 통하여 다양한 암각화에 대한 남다른 새로운 해석을 해 온 사람이다.
'한국형 암각화'란 검파형, 방패형 등으로 해석되기도 하지만, 아직도 '한국형 암각화' 문양은 아직 이렇다 할 주목받을 만한 해석이 보이지 않는다. 이른바 '한국형 암각화'라고 규정짓고 있는 그 카테고리의 암각화들이 서로 같은 의미를 가진 암각화인지도 의문이 든다.
그 중에 한국형 암각화들을 일괄하여 검의 손잡이를 의미하는 검파형(劍把形) 암각화로 해석한 것은 검파 모양과 '검파형 암각화'라고 판단하는 암각화의 모양이 일부만 유사하게는 보이지만, 무기의 손잡이를 암각화로 새긴다는 것은 모순이 있다고 생각된다. "성적인 권위와 힘"의 상징으로 본다 해도 '검파형 문양'을 바위에 새긴 동기는 약해 보인다. 고령 양전동, 포항 칠포리, 남원 대곡리 등 한반도 남부 일대에 퍼져 있는 '한국형 암각화들'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한국형 암각화 분포도. 도면/이하우 한국선사미술연구소장
고래문화는 해안가에만 존재했던 것이 아니다. 광복 이전까지도 장생포에서 잡은 고래고리를 도보로 걸어서 대구에까지 와서 고래 고기를 팔았다는 기록이 있다.
"고래싸움에 새우 등 터진다"는 말은 <조선왕조실록>에도 여러번 인용될 정도이며, "칭찬은 고래도 춤춘다" 또는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이라는 말은 내륙지방을 포함한 전국적으로 이어져온 오랜 우리의 언어생활에 포함되어 있다. 고함지르는 것도 바다에서 고래를 보았을 때 고래가 나타났다는 것을 알리면 또 감탄하는 큰 소리의 '고래! 고래!' 외치는 소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따라서 고래토템 문화가 바닷가에서만 국한된다고 볼 수 없는 것처럼 한국형 암각화는 내륙연안까지 퍼져 있을 수 있는 고래토템 문화적인 영역의 넓이에서 이해되어야 하는 것이다.
내가 주목하는 것은 '한국형 암각화들'로 인식되고 있는 영일만 칠포리 암각화, 고령 양전동 암각화 그리고 남원 대곡리 암각화들이 서로 같은 형상을 묘사한 것은 아니라고 보여진다는 점이다. 추상형이라고 해서 같은 것으로 해석하기에는 차이가 많이 나기 때문이다.
우선 선사시대 암각화 해석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는 그 시대 사람들이 바위에 새길 수 있는 종교적 정신세계에 보다 중요한 의미를 두고 해석이 되어야 한다. 선사시대 암각화의 대부분은 동물토템숭배와 관련이 있고 점성술에 일부 연관이 있다. 그러나 인간의 도구나 무기 등의 생활사는 아주 드문 경우이다.
선사시대 암각화는 지배자에 대한 숭배나 무기에 대한 숭배보다 동물토템 숭배에 그 중요한 의미를 두는 한 편으로는 조상에 대한 환생의 신앙을 바탕으로 바위에 암각화를 새긴다는 점이 간과되어서는 안된다.
다시 말하면 암각화의 기본 패턴은 죽은 조상이 믿는 동물토템으로 다시 환생하기를 기원하는 마음이 가장 강한 배경이 된다는 점이다. 이런 기본 인식을 바탕으로 나는 한국형 암각화들을 해석해 보이고자 한다.
특히 지적하고자 하는 것은 흔히 남녀 생식기를 암각화에 표현하는 것을 단순히 "다산을 위한 기원"이라고 해석하는 것에 대한 문제이다. 순수한 다산 기원보다는 유감주술에 의한 산신 또는 해신과의 무속적인 성적 교감의 의미라는 것이 필자의 해석이다. 바위에 새겨진 여성 생식기는 특히 대지지모의 성적인 심볼로서 기원하는 자와 대지지모의 무속적인 성적 교감의 의미로 새겨졌다고 해석되어야 한다.
신라인들의 시조신화에는 계룡(鷄龍)이라 표현한 것은 하나의 동물토템이 아니라 태양신의 의미인 산신과 해신 고래토템을 의미하는 용신이 합한 鷄+龍의 음양신을 의미하는 것으로 해석되어야 한다. 그러한 바탕에는 신라의 대왕들과 바다의 해룡과의 성적 교감의 무속적인 의미가 숨어 있다.
지배자는 산신을 의미하고 해신과 성적 교감을 하는 구도가 동해안에 남아 있는 신당들에 전해오는 신화나 전설에서 볼 수 있으며 <삼국유사>의 신라인들의 신화의 구조에서도 파악된다. 특히 헌강왕이 개운포에서 만난 안개와 함께 바다의 용왕을 위한 '신방사(현재의 망해사)'의 경우도 같은 구조로서 산신의 현현의 위치인 헌강대왕과 바다의 해룡인 고래와의 신방에서의 만남의 의미가 <삼국유사>의 처용 스토리에 나타나 있는 것이다. 처용은 어쩌면 그러한 바다의 용왕과 헌강대왕 사이에 무속적으로 태어난 '용왕의 일곱째 아들'로서 묘사되었던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러한 선이해를 통하여 '한국형 암각화'들이 가지는 태양새(계룡의 天鷄 신)과 고래토템의 해신(계룡의 龍) 토템이 청동기시대이래 가야 및 삼국시대 전후에 한반도 남부 일대에 고래토템 문화권에서 암각화로 남아졌을 수가 있다는 것을 살펴보고자 한다.
1. 고령 양전동 암각화는 가야시대 전후 독수리토템의 비조형(飛鳥形) 암각화
고령 양전동 암각화지대는 가야시대 문화지역이다. 그렇게 볼 때 가야문화 또는 가야지역의 특성에 연관하여 양전동 암각화를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
고령의 대가야와 성산가야 일대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독수리 토템 숭배가 있었다. 그 증거를 나는 두 가지 사실에서 찾아낸다. 그 하나는 대가야 문화권에서 오래된 가야시대 산성 이름에 독수리가 신봉된 이름이 남아 있다는 것과 또 하나는 문헌적으로 <삼국유사>에 독수리 토템숭배의 내용이 들어 있다.
1) 가야산 기슭인 성주군 금수면에 남아 있는 독용산성(禿用山城)이 가야시대 산성으로 독수리 독(禿)자를 사용하고 있다.
2) <삼국유사> 가락국기 편에 석탈해가 가야에 먼저 와서 김수로가 둔갑 격투에서 독수리가 최고 위치에서 표현되어 있다.
俄頃之間. 解化爲鷹. 王化爲鷲. 又解化爲雀. 王化爲. 于此際也. 寸陰未移.
잠깐 동안에 탈해가 변해서 매가 되니 왕은 변해서 독수리가 되고, 또 탈해가 변해서 참새가 되니 왕은 새매로 화하는데 그 변하는 것이 조금도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삼국유사> 가락국기편
고령 양전동 암각화를 '검파형'으로 보는 것은 그 모양에서 전혀 일치하지 않는 점이 있다. 해당 암각화의 가장자리의 무늬가 검파의 그 어떤 부분으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이기 때문이다. 양전동 암각화의 문양이 검파 모양이 아니라 나는 비조형(飛鳥形) 문양으로 파악하고자 한다.
난생신화에서 날개를 단 새는 계룡이나 봉황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새에 대한 신화는 우리 민족 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원시 동물토템숭배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새를 암각화에 새길 때에 중요한 포인트는 그 머리 부분과 깃털 부분으로 표현된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에서 나는 새의 머리를 본다. 더불어 깃털을 가장자리에 보이도록 하는 것은 독수리의 날개 깃털들로 해석될 수 있다. 양전동 암각화의 사진들을 몇 가지를 비교하여 살펴보아도 그 머리가 보이며 깃털이 보인다.
이러한 양전동 암각화의 '깃털'은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전통 복장인 리갤리아(Regalia)의 복식을 닮아 있다. 필자가 조사한 미국 미네소타주 암각화나 위스칸신주 Bird Mound에서 새 머리가 옆으로 돌려진 모습을 묘사하고 있는 것에서 고령 양전동 암각화 형태를 연상하게 한다. 따라서 양전동 암각화는 독수리 토템 암각화로 해석하는데 무리가 없다고 생각된다.
삼국시대 난생신화를 바탕한 의상에는 절풍 소골 외에도 새모양의 조우관(鳥羽冠)과 조의(鳥衣) 복식은 발해 사신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도 기록하고 있다. 신라 시조신화는 알영부인이 계룡(鷄龍)의 부리를 달고 나왔다고 <삼국유사>에서 기록하고 있다. 인신조두의 신상은 지금도 동남아에 남아 있다. 부리를 새긴 모습을 하고 있는 깃털 뻗은 모습이 고령의 양전동 암각화는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소위 '한국형 암각화'의 하나로 일컬어지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
부리 형상을 한 새의 머리가 있고 검독수리처럼 깃털들이 사방에 새겨져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리갤리아 복식을 닮아 있다.
*독수리형 암각화로 보아야 한다.
*고령 양전동 '비조형 암각화' 새의 두상과 깃털이 강조되어 있다.
*아메리카 인디안 버슬(busltle)
고령 양전동 암각화를 닮아 있다.
*미네소타주 Jeffers Petroglyphs. 촬영/ 오두 2010년 10월 16일
인디안 Bird Mound의 새부리를 한 조두인신상.
팔이 지그재그인 것은 새의 깃털을 의미하려 한 것이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미네소타주 Jeffers Petroglyphs에서 보는 '연오랑과 세오녀...
*철원 지방에 지금도 날아오는 검독수리
*인신조두형 신상.
* 새부리 새 날개를 한 티베트의 인신조두(人身鳥頭) 가루다(Garuda)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리갤리아(regalia) 복식을 닮아 있다.
이러한 필자의 해석은 대가야 지역인 고령의 양전동에서 발견된 암각화가 가지는 그 가야시대의 독수리토템 문화에 이어져 있다는 면에서 타장성을 지닌다. 양전동 암각화에서 머리 부분이 생략되더라도 깃털을 돌린 것은 독수리의 깃털을 강조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깃털 머리는 아메리카 인디안 리갤리아에서도 머리 부분을 깃털로 덮어 새로 환신하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는 것에서도 볼 수 있다.
나는 이러한 깃털을 강조한 암각화를 비조형(飛鳥形) 또는 비익형(比翼形) 암각화라 칭해둔다. 한반도에서 일본으로 건너간 최초의 사찰 이름이 아스카 즉 飛鳥(비조)였다는 것은 초기 불교에서 인신조두형 난생신화가 존재하고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양전동 암각화에 여러 개의 같은 형식의 '깃털'을 강조한 비조형(飛鳥形) 암각화가 모여 있는 것은 그 바위가 하나의 지배 귀족 가문의 기원 비문 바위로 여겼기 때문으로 보인다. 새의 등에 점이 네 개가 찍힌 것은 하늘로 올라가 별이 된다는 태양새의 의미를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 네 개의 별이란 '일월성신(日月星辰)'으로 해석된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
한 가문의 조상들이 모두 독수리 날개를 달고
하늘의 일월성신으로 날아올라가 환생을 기원한 의미로 해석된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전통 깃털 복식.
고령 양전동 암각화를 닮아 있다.
*고령 양전동 암각화의 전체 도형
'일월성신(日月星辰)' 의미를 가진 점이 네 개 찍힌 암각화 점박이 문양에서 '성신(星辰)'의 의미는 다음과 같이 네 가지 하늘의 천신 가운데 별에 해당하는 두 가지 별을 의미한다. 성신의 星은 붙박이 별을 말하고 辰(신)은 십이지신의 용을 의미하는 진(辰)으로도 발음하는 별로서 천자문에도 나오는 '별 진(辰)'자로서 혜성과 같은 꼬리가 있는 별을 의미한다. 해가 같은 모양이되 달은 변하고 별(星)은 같은 모양이되 혜성(辰)은 나타나는 시기가 용과 같이 가끔 보인다는 의미의 별이다. 그래서 일월성신(日月星辰)은 하늘의 네 가지 천신을 의미하여 네 개의 점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감응해 내려왔다는 의미가 되는 것이다. 한국형 암각화에서 점이 네 개 찍힌 것은 북두칠성별과는 달리 일월성신의 '무당 고래' 의미가 있는 것이다.
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의 인디안들의 토템폴은 독수리 등의 태양새와 고래토템을 기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선사시대 동해안 고래잡이들의 고래토템에서도 마찬가지로 독수리 또는 까마귀 등의 태양새 암각화와 더불어 고래토템 암각화가 함께 새겨졌을 수가 있다.
독수리는 부리는 물론 그 다리의 발톱이 강력한 힘이 되기 때문에 경주 보성리 암각화처럼 아래쪽의 두 다리가 양쪽으로 벌어져 나온 모양을 하고 있다고 볼 수도 있다. 경주 보성리 암각화는 깃털 달린 비조형 암각화와 함께 아래에서 다시 다루겠지만, V자 형태의 '고래꼬리'를 형상화한 경미형(鯨尾形) 암각화가 함께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비조형 암각화'과는 또 다른 형태로 한국형 암각화로 거론되는 '검파형 암각화'는 동해안에 가까운 영일만 칠포리 암각화에서 볼 수 있다 .그 형태는 전혀 위에 설명한 고령 양전동 암각화와는 다르게 보인다. 특히 가장 자리에 전혀 깃털이 없다는 점이다. 오히려 그 모양은 고래 꼬리를 닮아 있다는데서 주목된다.
2. 포항 칠포리 암각화는 '검파형' 아닌 고래꼬리 형상의 경미형(鯨尾形) 암각화
칠포리는 영일만에서 강을 따라 올라온 바다와 가까운 마을로 울산반구대 고래암각화와 같은 고래문화권에 속한다.
칠포리 암각화를 전주대 송화섭교수는 검의 손잡이 즉 '검파형' 암각화라고 해석했다. 그러나 필자에게는 앞서 언급한대로 선사시대 토템숭배시대에 인간이 무기를 새기는 것은 어딘가 격이 맞지 않은 상정으로 보인다. 특히 고래토템 문화 지역인 영일만 동해안 고래바다 지역에서는 고래와 연관한 암각화로 해석되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칠포리 암각화 역시 동물토템 특히 고래토템 숭배의 흔적으로 해석하고자 한다.
고래꼬리처럼 V자 형태의 칠포리 암각화는 울산반구대와 천전리 고래암각화에 더하여 또 하나의 고래토템 숭배의 문양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고 생각된다.
울산과 영일만 일대의 동해안은 경해(鯨海)로 불려왔을 만큼 전통적인 고래토템 숭배지대였다. 일제강점기때까지도 고래를 모신 고래사당이 있어서 신명신사(神明神祠)라는 고래사당의 주춧돌이 남아 있는 곳이다. 인근 지역인 포항 칠포리에서 발견된 암각화는 고래토템과 연관하여 해석할 수 있다는 것은 충분한 환경적인 타당성을 지니는 것이다.
그것은 동해안 영일만이 고래가 찾아오는 주요 거점지라는 면에서 나는 이것을 고래의 꼬리 지느러미로 해석하고자 한다. 칠포리 암각화 바위의 오른편 쪽 그림은 보다 더 고래 꼬리를 닮아 있다. 나는 칠포리 암각화를 그런 면에서 경미형(鯨尾形) 암각화(whale tail petroglyphs)라 칭해둔다.
경미형 암각화에 점들을 네 개 정도 찍은 것은 별과 관련하여 해신으로 믿은 고래가 천신의 현현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박이 현상은 무속적으로 '무당벌레'에서 보듯이 하늘의 별이 하강한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며, 점박이가 많은 상어고래에서 그 의미가 강하게 남아 있다. '무당벌레'는 '무당고래'로서 하늘 천신의 점술과 해신의 교호로 무속의 무당들이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서는 <코리안 신대륙발견> 점박이 무당벌레와 점박이 고래상어의 무속적 배경 에서 논한대로 고래상어는 특별히 '무당고래'의 의미로 여겨졌을 수가 있는 것은 그 꼬리가 상어인데 행동은 무섭지 않은 고래와 같은 모습으로 순하기 때문에 선사시대 '중간형태 동물숭배'의 경향과 함께 하늘의 일월성신이 강림한 것으로 보아 '무당고래'로 여겨졌을 것이다.
동해안의 울산반구대 암각화처럼 선사시대 고래토템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스칸디나비아의 이로 오티오(
영일 칠포리 '경미형 암각화. 오른쪽에는 더 명확히 고래꼬리를 보여주고 있다.
경북 유형문화재 249호
'검파형' 암각화로 알려져 있으나 영일만 일대는 고래토템 지역으로 고래꼬리형 암각화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89년 발견. 인근에서 고인돌이 발견되고 청동기시대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점이 꼬리까지 있는 고래상어. 포항 칠포리 암각화의 '고래꼬리' 이미지를 닮아 있다.
특히 점박이가 있는 고래상어는 '무당고래'로 인식하였을 것이라는 점에서 점이 강조되기도 했을 것이다. 동물의 점은 하늘의 별이 내려온 것으로 인식하였던 원시 무속에서 고래상어는 '고래' 카테고리에 들어 있었을 것은 물론이다. 일반적으로 고래가 꼬리를 들어올릴 때는 기분이 좋은 표현이기 때문에 사람과의 교신의 그 어떤 신호로 해석했을 것이다.
*혹등고래 꼬리
고래꼬리의 특별한 모양은 선사시대 사람들에게 조상의 그 어떤 멧시지로 보였을 것이다.
이로 오티오의 벨루가 암각화
Eero Autio’s original interpretation of the beluga glyph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처용탈춤의 역신과 고래 작살잡이의 성적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
이로 오티오 암각화의 고래 낳는 여인의 모습은 조상으로 여긴 바다의 해신인 고래가 육지의 산신과 유감주술에 의한 성적 교감에서 새로운 후손으로 고래가 태어난다고 믿은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코리안 신대륙발견> 처용탈춤의 역신과 고래 작살잡이의 성적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에서 그리고 <코리안 신대륙발견> 삼척 해신당 (海神堂) '오줌 누는 남자'는 울산반구대암각화의 '오줌누는 남자.에서 논하였다.
경미형(鯨尾形) 암각화는 고래토템 숭배자들에게 고래가 물밖으로 몸을 솟구쳤다가 다시 물 속으로 들어갈 때 그 어떤 멧시지를 전해주기라도 하듯이 고래의 꼬리를 멋지게 포즈를 취하면서 들어가는 것에서 그 어떤 의미가 있다고 여겨졌기 때문으로 보인다. 칼없는 칼자루(검파) 모양보다는 몸뚱이 없는 고래꼬리 모양이 고래가 바다에 들어갈 때의 이미지를 설명하기에 더 타당성이 있는 것이다.
나는 앞선 글에서 울산 반구대 암각화 인근의 천전리 암각화 해석에서도 추상화로 표현된 고래 암각화로 해석한 바 있다. 천전리 암각화에는 반구대 암각화의 고래떼를 추상적으로 표현하여 그려서 그 꼬리 부분이 V자를 옆으로 눕혀 표현하고 있다. 천전리 암각화의 마름모꼴 연속의 암각화는 마름모 + 옆으로 된 V자 형태 꼬리가 합하여져 고래가 왼편을 향한 모습이 삼층으로 그려진 것으로 보아야 제대로 고래 모습이 보인다. 마름모가 겹쳐진 것이 아니라 고래 세 마리가 왼쪽을 향하여 나란하게 헤엄쳐 가는 장면이 되는 것이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
복판 문양의 경우 꼬리를 오른쪽으로 그 머리는 왼쪽으로 그린 세 마리의 고래가 그려져 있다.
따라서 이것은 고래가족을 그린 것으로 나는 해석한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울주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과 겹마름모 문양에 대한 새 해석
이러한 경미형 암각화는 칠포리 암각화 인근의 고인돌에도 새겨져 있는 것이다. 다만 V자를 위로 하고 그 아래에 잘록한 고래 꼬리 부분이 물 속으로 들어가 있는 상태를 하고 있다는데서 칠포리 암각화의 V자 형태와 일치한다.
고래는 해신으로서 산신과 유감주술로 교감하여 대지지모에게서 새로운 후손이 태어난다고 보아 고인돌을 세웠을 것이며, 그 고인돌에 고래꼬리를 새긴 경미형((鯨尾形)) 암각화를 새긴 것이다. 그래서 칠포리 경미형 암각화를 그린 바위 바로 인근에서 발견된 고인돌에서도 V자형 경미형(鯨尾形) 암각화가 새겨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특히 그 고인돌이 마주 하는 산세의 모양은 대지지모의 성적인 심볼인 '여근곡'을 닮아 있다는데서 이로 오티오 암각화의 '고래낳는 여신'과 그 구조적인 일치점을 보여준다. 칠포리 암각화 옆의 고인돌에서 바라본 건너편 산세는 대지지모의 심볼로서 '여근곡'을 닮아 있다.
*칠포리 암각화 인근의 고인돌에 그려진 암각화
V자의 고래꼬리를 닮은 경미형(鯨尾形) 암각화라고 해석된다.
*V자를 가진 경미형(鯨尾形) 암각화가 고인돌에서 바라본 '여근곡' 형상의 대지지모의 심볼 골짜기.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삼척 해신당 (海神堂) '오줌 누는 남자'는 울산반구대암각화의 '오줌누는 남자.
앞서 설명한대로 고래토템은 태양새와 짝이 되는 토템이다. 고래해신은 태양신과 함께 숭배되어진 것이다. 그런 면에서 태양을 그릴 때에 주변의 V자 연속의 문양을 새기는 것은 고래꼬리와 연관하여 해석할 수 있다.
신라인들의 태양새는 계룡의 닭 벼슬 모양과 연견하여 닭볏관(정자관)의 모양에 지그재그의 왕관의 모습으로 남아 있다. 태양의 여신처럼 새겨진 신라시대 망와 범고래는 꼬리의 V자 형태를 비롯하여 등지느러미를 포함하여 여러 지느러미들이 태양의 여신을 그릴 때에 그 '지느러미들'의 지그재그 문양을 두르는 것은 태양+고래지느러미 이미지에서 해석될 수 있다.
망와에서 닭볏과 고래지느러니가 동시에 교합되어 표시되어 있는 것은 다음 장에서 설명하겠지만, 산신으로서 고령 양전동 암각화의 비조형 암각화의 깃털과 해신으로서 칠포리 암각화의 고래 꼬리지느러미의 교합형태로 융합시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명와는 "고래등 같은 기와지붕" 위에 올리는 망와라는 면과 초상을 치를 때에 지붕 위에 올라가 '초혼 의식'을 행하는 것 또한 망자의 혼을 만나도록 바다의 고래 해신의 혼을 부르는 의식으로 보아야 하는 것이다.
*고래 꼬리지느러미와 닭볏을 형상화한 오봉산 배경의 망와
산신인 천계의 닭볏과 해신인 고래 꼬리지느러미가 조합된 이미지.
3. 남원 대곡리 암각화는 비조형과 경미형 상형의 교합적 암각화
나는 한국형 암각화에 포함시키는 남원 대곡리 암각화는 고령 양전동 암각화와 영일만 칠포리 암각화와는 다른 계통으로 보인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떤 면에서는 양전동의 비조형 암각화와 칠포리의 경미형 암각화의 조합인 '태양새+고래토템'의 형태로 해석하고자 한다.
남원시 대산면 대곡리 상대마을의 봉황대(鳳凰臺) 바위산에 암각화가 있다는 것부터가 봉황(태양새)과 어딘가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우리의 고대 태양새는 계룡의 천계와 주작 등의 표현들이 봉황으로 습합되어 왔다.
대곡리 암각화는 1991년 국사편찬위원회에 근무하는 김광 연구사가 처음으로 발견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그 모양은 깃털이 있는 고령 양전동 비조형 암각화와 V자가 강조된 영일 칠포리 경미형 암각화의 조합형태로 나타나는 특징이 있다. 여기에서는 4개가 아닌 6개 또는 8개의 점으로 보다 많은 점박이가 있다는 것은 두 가지 암각화가 조합되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남원 대곡리 암각화
양쪽은 경미형 암각화인 반면에 복판의 암각화는
V자 형태의 경미형 암각화에 깃털을 그은 태양새 비조형 암각화의 조합된 모양.
앞서 언급한대로 산신과 해신의 유감주술적인 교감이라는 의미는 태양새와 고래토템이 함께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토템폴의 기본 구조를 이루고 있다. 그처럼 고래꼬리와 새의 깃털의 조합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암각화 형태를 이루는 남원 대곡리 암각화는 V자 형태의 경미형 암각화의 가장자리에 비조형 암각화의 깃털을 새기는 것이다. 산신과 해신의 조합적인 표현인 것이다.
남원 대곡리 암각화에서 깃털이 없는 것도 있는데 V자를 서로 맞댄듯한 암각화도 있다. 이것은 고령 양전동 암각화와 포항 칠포리 암각화와는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일면 영향을 받았다면, 그 모양은 해신인 고래와 산신인 독수리의 교합의 상징으로 새의 부리와 고래 꼬리의 조합의 모습으로 해석할 수 있다. 비조형과 경미형의 두 다른 양면을 위아래로 조합시킨 암각화로 이루어졌을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남원 대곡리 암각화. 위쪽 사진 암각화와는 그 계보가 다른 것으로 보이지만,
해신(고래) 꼬리 V와 산신(독수리) 부리 V의 조합된 이미지.
깃털이 없으나 V자를 위 아래로 포개고 있다. 위에는 남성적이고
아래는 여성적인 심볼을 그려넣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른바 '한국형 암각화'라는 것에서 유추해 낼 수 있는 것은 생활상의 도구가 아닌 동물토템 숭배를 배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는 점을 여러 가지 면에서 조건을 충족시켜 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반도 남부 특히 고래잡이 문화가 강력하게 자리잡은 지역을 중심으로 확대되어 있는 비조형 암각화와 경미형 암각화는 선사시대 코리안들의 토템폴 암각화라 할 만한 것이다.
울산 반구대 암각화는 사실적으로 고래와 사람 그림을 새겨넣고 있다. 그보다 시대적으로 늦은 후대의 것으로 해석되는 그 인근의 천전리 암각화는 보다 추상화된 모습을 하고 있다. 그러나 고래토템 암각화를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은 부족의 대표적인 고래종류를 암각화에 새기다가 통합적인 '고래' 이미지로 추상화시킨 결과라는 사실을 나는 <코리안 신대륙발견> 울주 천전리 암각화의 동심원과 겹마름모 문양에 대한 새 해석에서 밝혔다.
따라서 결론적으로 말하여 동해안 고래토템과 가야지역의 독수리 토템은 결국 '한국형 암각화'로 구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선사시대 암각화 해석에는 문헌적인 설명도 없고 그 시대의 다른 내용들이 입체적으로 증명되지 않으면 결정적인 해답을 찾기가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암각화 해석은 그 발견되는 지역뿐 아니라 그 전체적인 그 시대의 신화적인 토템숭배 특히 동물토템과 연관하여 산신과 해신숭배의 유기적인 조합적 이해에서 보다 근접한 해석을 할 수 있다.
천전리 암각화에 고래 암각화가 새겨져 있으면서 그 옆을 보면 여신의 성적 심볼을 아울러 그리고 있다. 이것을 필자가 현지 답사하여 촬영한 미국 시애틀의 태평양 연안의 마카 인디안 고래암각화에서도 고래암각화와 함께 여성의 심볼이 함께 새겨진 것에서도 크로스 입증을 할 수 있었다. 아메리카 인디안들의 고래 암각화에는 사람의 얼굴과 고래가 짝으로 그려져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의미는 해신과 산신의 혼인을 의미하는 것이다.
*아메리카 태평양 연안에 있는 마카 인디안들의 'wedding rock(혼인 바위)'
두 마리의 고래암각화와 함께 두 개의 사람 얼굴 암각화가 함께 새겨져 있다.
또 한 마리의 고래는 아래쪽 필자의 무름 가까이에 새겨져 있다.
고래해신과 산신여인의 혼인으로 해석된다. 2010년 7월 24일 필자의 모습.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처용탈춤의 역신과 고래 작살잡이의 성적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
*아메리카 태평양 연안 마카 인디안들의 웨딩락 옆의 여성 심볼 암각화. 2010년 7월 24일 필자 촬영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여성심볼 암각화가 고래암각화에 이어진 것과 같은 맥락이다.
*울산 천전리 암각화의 여성 심볼 암각화(우측 상단)
고래해신과 대지지모 여신의 심볼을 함께 새기고 있는 것이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삼척 해신당 (海神堂) '오줌 누는 남자'는 울산반구대암각화의 '오줌누는 남자.
*울산 반구대 암각화.
새끼를 등에 업은 암고래와 그 옆의 생식기를 노출한 남성상은
해신과 산신의 유감주술의 한 세트로 보아야 한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처용탈춤의 역신과 고래 작살잡이의 성적 유감주술(Sympathetic Magic)
*암고래와 남성상의 확대부분.
산신과 해신의 유감주술적인 교감을 의미하고 있다.
관련글: <코리안 신대륙발견> 삼척 해신당 (海神堂) '오줌 누는 남자'는 울산반구대암각화의 '오줌누는 남자.
바닷가의 원시 고래토템숭배는 그 암각화에서 고래만이 새겨지는 것이 아니라 지상의 인간의 얼굴로 표현된 산신(또는 지배자 대왕임금) 얼굴과 함께 새겨지기도 한다. 시애틀 인근 태평양 해안가에 있는 마카 인디안들의 Wedding Rock(혼인바위) 고래 암각화에 이어져 있다는 면에서 울산반구대의 생식기를 노출한 남성상과 함께 새겨진 암고래 암각화를 특별히 나는 '반구대 혼인바위'라는 별칭을 붙이고 있다.
고래 암각화에서 고래의 성별은 고래가 여신으로 표현되기도 하고 남신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대지지모의 성적 심볼 및 그 얼굴이 고래와 함께 암각화로 새겨지는 것은 해신인 고래와 산신인 대지지모의 유감주술적인 교합의 의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울산 반구대 고래암각화 옆에 생식기를 노출한 남성의 옆에는 새끼를 등에 업은 암고래가 새겨져 있는 것은 서로 음양의 산신과 해신의 성적 유감주술의 교감을 의미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반구대 암각화의 산신과 해신의 교감 암각화가 추상적으로 표현된 경우가 포항 칠포리 암각화와 고령 양전동 암각화로 각가 표현되어 있으며 그 교합적인 모습이 남원 대곡리 암각화라 할 수 있다.
'코리안들이 아메리카 신대륙을 발견했다(The Koreans Discovered the New World)'는 주창을 하여 이제 전국적으로 그리고 미국 동포사회에서도 많이 알려진 필자의 주창은 고래토템숭배의 여러 신화적인 그리고 암각화 해석에서도 뒷받침이 되고 있는 것이다.
(03/27/11 오두 김성규 odunamsan@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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