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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1월 20일 화요일
[(녹) 연중 제2주간 화요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홍] 성 파비아노 교황 순교자 또는
[홍] 성 세바스티아노 순교자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이사이의 아들 가운데 막내 다윗에게 기름을 붓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옛일을 언급하시며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라고 밝히신다(복음).
제1독서
<사무엘이 형들 한가운데에서 다윗에게 기름을 붓자 주님의 영이 그에게 들이닥쳤다.>
▥ 사무엘기 상권의 말씀입니다. 16,1-13
그 무렵 1 주님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하고만 있을 셈이냐?
나는 이미 사울을 이스라엘의 임금 자리에서 밀어냈다.
그러니 기름을 뿔에 채워 가지고 떠나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 사람 이사이에게 보낸다.
내가 친히 그의 아들 가운데에서 임금이 될 사람을 하나 보아 두었다.”
2 사무엘이 여쭈었다. “제가 어떻게 갑니까?
사울이 그 소식을 들으면 저를 죽이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암송아지 한 마리를 끌고 가서,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여라.
3 그러면서 이사이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다음에 네가 할 일을 내가 알려 주겠다.
너는 내가 일러 주는 이에게 나를 위하여 기름을 부어라.”
4 사무엘은 주님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그 성읍의 원로들이 떨면서 그를 맞았다.
그들은 “좋은 일로 오시는 겁니까?” 하고 물었다.
5 사무엘이 대답하였다.
“물론 좋은 일이지요. 나는 주님께 제사를 드리러 온 것이오.
그러니 몸을 거룩하게 하고 제사를 드리러 함께 갑시다.”
사무엘은 이사이와 그의 아들들을 거룩하게 한 다음
그들을 제사에 초청하였다.
6 그들이 왔을 때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가 바로 주님 앞에 서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주님께서는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겉모습이나 키 큰 것만 보아서는 안 된다.
나는 이미 그를 배척하였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8 다음으로 이사이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9 이사이가 다시 삼마를 지나가게 하였지만,
사무엘은 “이 아이도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아니오.” 하였다.
10 이렇게 이사이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으로 지나가게 하였으나,
사무엘은 이사이에게 “이들 가운데에는 주님께서 뽑으신 이가 없소.” 하였다.
11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아들들이 다 모인 겁니까?” 하고 묻자,
이사이는 “막내가 아직 남아 있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사무엘이 이사이에게 말하였다.
“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여기 올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12 그래서 이사이는 사람을 보내어 그를 데려왔다.
그는 볼이 불그레하고 눈매가 아름다운 잘생긴 아이였다.
주님께서 “바로 이 아이다.
일어나 이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3 사무엘은 기름이 담긴 뿔을 들고
형들 한가운데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주님의 영이 다윗에게 들이닥쳐 그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렀다.
사무엘은 그곳을 떠나 라마로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28
23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질러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길을 내고 가면서 밀 이삭을 뜯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저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 너희는 읽어 본 적이 없느냐?
26 에브야타르 대사제 때에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고
함께 있는 이들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28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오늘의 묵상
우리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형식적인 것은 영적 성숙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맞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형식을 갖추려는 노력까지 필요 없다는 말은 결코 아닙니다. 사람들은 흔히 형식을 불필요하거나 거추장스러운 것으로 여기고는 합니다. 그러나 공동체에서 어느 정도의 형식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성사나 기도의 형식이 없다면 어떨까요? 오직 마음만으로 우리의 신앙이 성숙해지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문제는 형식을 갖추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될 때입니다. 진심을 담지 않은 형식은 껍데기만 남은 허울이 되어 버립니다. 바리사이들은 ‘안식일’이라는 거룩한 형식을 철저히 지켰지만, 그 안에 담긴 ‘하느님의 사랑’이라는 참뜻은 잊었습니다. 안식일에 배고픈 제자들이 이삭을 뜯어 먹는 행동을 두고 그들은 ‘형식’을 어겼다며 비난하였습니다. 그들의 눈길은 형식에만 머물렀기에, 그 형식이 존재하게 된 이유는 생각하지 못하였습니다.
형식 그 자체는 목적지가 아닌, 목적지로 이끄는 표지판과 같습니다. 표지판 앞에만 머무른다면 가고자 하는 곳에 다다를 수 없습니다. 신앙의 모든 형식은 우리의 영혼이 충만해지고, 하느님과 더 깊은 관계를 맺도록 도와줍니다. 형식 안에 담긴 의미를 알고 진심으로 따르면서 구원의 목적지인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갑시다.(이철구 요셉 신부)
그 어떤 법이든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아직도 정통 유다인들에게 있어 안식일은 만사 제쳐놓아야 하는 날입니다. 금요일 해가 떨어지면 안식일이 시작됩니다. 따라서 금요일은 안식일 이브, 토요일은 안식일 당일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안식일에 모든 외적인 행위를 멈추는 기원은 창세기와 탈출기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2장에 따르면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일곱째 날을 거룩하게 하셨으니, 그분의 모상인 인간들도 안식을 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한 탈출기 20장에서는 십계명 중 네 번째 계명으로 안식일을 기억하고 거룩하게 지낼 것을 명령하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금요일 저녁, 일몰 18분 전에 촛대 위에 놓여있는 초에 불을 켜는 의식으로 안식일을 시작합니다. 이어서 찬미가를 부르고, 포도주잔을 들고 기도문을 바칩니다. 만나를 기억하는 빵을 나누고, 토라를 낭독합니다.
안식일 해서는 안 되는 창조와 관련된 39가지의 금지된 활동들이 있습니다. 이는 탈무드에 명시되어 있으며, 모든 금지된 활동은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행하신 일들을 반영합니다. 금지된 활동 중에 대표적인 것은 불 피우기, 물건 나르기, 요리하기, 글쓰기, 건축 활동이나 리모델링 작업 등입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그냥 빈둥빈둥 쉬는 날, 단순한 휴식의 날이 아닙니다. 외적인 활동을 중지하면서 하느님과의 언약을 기념하고 그분의 이 세상 창조와 인류 구속 사업을 감사하는 날입니다. 동시에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해방시킨 출애굽 사건을 기억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보십시오. 이토록 좋은 의미에서 제정된 안식일 규정이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너무 지나치게 해석되고 과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사람을 살리기 위한 규정이 사람을 꼼짝달싹 못하게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 어떤 법이든 예외가 있기 마련입니다. 특히 사람 목숨이 달린 문제인 경우가 그렇습니다. 초대형 사고로 인해 여기저기 온몸이 망가져 시시각각 생명의 위협을 느끼고 있다면, 안식일 규정이든 뭐든 다 뒤로하고 응급실로 달려가야 마땅한 것입니다. 사흘을 굶어 정신이 뱃가죽이 등이 붙고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라면, 제단에 올려진 빵이든 그 어떤 빵이든 일단 먹고 봐야 하는 것입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다윗 일행이 겪은 예를 드시면서 율법이나 규정보다 사람이 우선임을 강조하십니다. 며칠을 굶은 다윗이 얼마나 배고팠던지 사제에게 청합니다. “지금 사제님 수중에 무엇이 좀 없습니까? 빵 다섯 덩이라도 좋습니다. 아니면 아무 것이나 있는 대로 저에게 주십시오.”
사제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보통 빵은 내 수중에 없고, 있는 것이라고는 거룩한 빵뿐입니다.” 사제는 거룩한 빵을 다윗에게 주었습니다. 주님 앞에 바친 제사 빵 말고는 다른 빵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 빵은 마침 그날 제단에 따끈한 빵을 올려놓고 교체한 빵이었습니다.
율법의 최종적인 목적은 사람을 살리는 것,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 사람을 행복하게 하는 것입니다. 모든 유다인들이 흠모하고 존경하는 다윗이 사울의 추적을 피해 도망가던 중, 그 거룩한 빵으로 영양을 보충하지 못했다면 분명 후퇴하던 도중에 기진맥진해서 죽었을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예를 드시면서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아주 살짝 거스른 행위, 밀알을 잘라 손으로 비벼서 먹은 행위를 적극적으로 변호하십니다. 동시에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의 개념을 더욱 크게 확장시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 27-28)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줌 신앙 특강팀’의 이사회를 탬파에서 하였습니다. 3년 전에 저는 미운 오리 새끼와 같은 분들을 만났습니다. 코로나 팬데믹이라는 큰 파도를 맞으면서 신앙인들의 영적인 갈증을 ‘줌’이라는 도구를 통해서 채워주려는 분들입니다. 그분들은 프로그램을 만들고, 기획하였지만 ‘둥지’가 없었습니다. 당시 저는 ‘가톨릭평화신문’에서 사목하였습니다. 그분들은 저를 찾아왔고, 저는 기꺼이 그분들의 ‘둥지’가 되어 주었습니다. 그분들은 미운 오리 새끼가 아니라 우아한 백조가 되었습니다. 3년 동안 그분들은 6천 명이 넘는 분들에게 줌을 통해서 영적인 갈증을 채워주었습니다. 월 신앙 강좌를 통해서 갈증을 채워주었고, 기획 강좌를 통해서 영적인 풍요로움을 주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면서는 대면으로 만나는 ‘피정’도 하였습니다. 작년 5월 저는 ‘북미주 한인 사제 사목 협의회’ 대표를 맡게 되었습니다. 줌 신앙 특강팀에게 새로운 ‘둥지’를 제안하였습니다. 북미주 한인 사제 사목 협의회는 이사회를 하였고 줌 신앙 특강팀을 받아들였습니다. 이로써 줌 신앙 특강팀의 주체는 북미주 한인 사제 사목 협의회가 되었고, 가톨릭평화신문은 후원을 하기로 했습니다. 2026년에도 줌 신앙 특강이 북미주에 있는 교우들에게 영적인 위로와 용기를 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탬파에는 바다와 강을 걸을 수 있는 ‘River Walk’ 길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그 길을 걸었습니다. 달라스에서는 숲속의 길을 걸었는데, 탬파의 길은 또 다른 매력이 있었습니다. 길을 걸으면서 탬파의 발전과 성장에 이바지했던 분들의 흉상을 보았습니다. 역사는 고독한 마라톤이 아니라, 이어달리기라는 생각을 다시금 하였습니다. 탬파에는 ‘달리 미술관’이 있습니다. 달리의 작품이 좋아서 수집했던 분이 기꺼이 작품을 기증하였고, 미술관을 건립하였습니다. 미술관에는 많은 달리의 작품이 있었습니다. 저는 그중에 ‘링컨’이라는 작품을 인상 깊게 감상했습니다. 가까이에서 보면 아내 갈라가 창가에 서서 지중해를 바라보는 평범한 장면입니다. 그런데 조금 멀리 떨어져 보면, 에이브러햄 링컨의 얼굴이 드러납니다. 그리고 더 깊이 바라보면, 그 안에는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이 숨어 있습니다. 같은 그림인데, 어디서 어떻게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얼굴이 나타납니다.
먼저, 갈라의 모습입니다. 가까이서 보이는 갈라는 우리의 일상을 닮았습니다. 오늘 하루를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먹고, 일하고, 고민하고, 걱정하며 살아가는 평범한 삶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이 거리에서 살아갑니다. 너무 가깝기에, 삶은 종종 버겁고 의미 없어 보입니다. 고통은 고통으로만 보이고, 십자가는 십자가로만 보입니다. 그런데 조금 떨어져 보면, 링컨의 얼굴이 보입니다. 링컨은 분열된 나라를 하나로 묶은 인물입니다. 갈등과 전쟁 속에서 통합을 선택한 사람입니다. 부분만 보면 갈라일 뿐이지만, 전체를 보면 링컨이라는 ‘얼굴’이 됩니다. 우리 삶도 그렇습니다. 지금은 흩어진 사건처럼 보이지만, 시간과 거리를 두고 보면 그 안에 하나의 방향과 의미가 드러납니다. 그리고 그 모든 얼굴의 깊은 바탕에는, 십자가가 있습니다. 달리는 이 그림 안에, 십자가에 매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숨겨 놓았습니다. 가까이서 보면 실패처럼 보였던 십자가, 멀리서 보면 분열처럼 보였던 역사, 그 모든 것의 중심에는 그리스도의 희생과 사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가까이서 보면 고통이고, 멀리서 보면 구원입니다.
오늘 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사무엘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 하느님께서는 다윗을 선택하셨고, 사무엘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주었습니다. 다윗은 하느님의 마음에 드는 ‘왕’이 되었습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 안식일은 사람을 구속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은 사람들에게 죄책감을 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안식일은 하느님의 뜻을 따르는 이들에게는 희망의 등대와 같습니다. 안식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는 부활의 표징입니다. 신앙이란 현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거리에서 현실을 바라보는 일입니다. 너무 가까이서만 보면 우리는 갈라의 뒷모습만 봅니다. 조금 떨어져 보면 역사의 얼굴이 보이고, 믿음의 눈으로 보면 그 중심에 십자가의 그리스도가 계십니다.
“주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어 눈앞의 현실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신의 시선으로 삶을 바라보게 하소서. 고통 속에서도 십자가의 사랑을 알아보고 그 사랑 안에서 희망을 선택하게 하소서.”
<사람에게 달렸다>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아들은 또한 안식일의 주인이다.”(마르 2,27)
사람을
위해
사람을
위한 것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위한 것을
위해
사람을
희생시키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다
사람을
위한 것으로
사람을
살리는
사람이 있고
사람을
위한 것으로
사람을
죽이는
사람이 있으니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달렸다
오늘의 성인
성 세바스티아노(Sebastian)
신분 : 군인, 순교자
활동지역 : 로마(Roma)
활동연도 : +288년경
같은이름 : 세바스띠아노, 세바스띠아누스, 세바스찬, 세바스챤, 세바스티아누스, 쎄바스띠아노, 쎄바스띠아누스
프랑스 남부 나르본(Narbonne) 태생인 성 세바스티아누스(Sebastianus, 또는 세바스티아노)는 283년경에 로마에서 군인이 되었고, 성 마르첼리아누스(Marcellianus, 6월 18일)와 성 마르쿠스(Marcus, 6월 18일) 부제를 격려하여 죽음으로써 신앙을 지키도록 했던 열렬한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는 수많은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재판장인 성 니코스트라투스(Nicostratus, 7월 7일)가 있었고, 그의 아내 성녀 조아(Zoa, 7월 5일)도 포함되어 있다. 특히 성녀 조아는 벙어리였으나 그의 기도로 완쾌되었다고 한다. 이외에도 간수 성 클라우디우스(Claudius, 7월 7일), 로마의 집정관 크로마티우스(Chromatius)와 그의 아들 티부르티우스(Tiburtius) 등이 있다.
그는 또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로부터 친위대 대장으로 임명되었는데, 황제는 그가 그리스도인인줄 몰랐다고 한다. 성 세바스티아누스가 신자임이 드러난 것은 막시미아누스 황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절정에 이르렀을 때였다. 그는 즉시 처형될 입장이 되었다. 그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으나 성 카스툴루스(Castulus, 3월 26일)의 미망인인 성녀 이레네(Irene)가 그의 시신을 찾으러 가서 보니 아직 살아있음을 보고 극진히 간호하여 회복시켰다. 그 후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황제에게 정면으로 도전하여 그리스도인에 대한 그의 잔인성을 고발하자 황제는 화가 나서 그를 몽둥이로 때려죽이도록 한 다음 로마의 하수구인 '클로아카 막시마'(Cloaca Maxima)에 던져 버렸다. 그의 죽음과 용기는 신자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다.
한편 순교한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는 로마에 사는 루치나(Lucina)라는 부인의 꿈에 나타나 하수구에서 자신의 시신을 찾아서 지금의 성 세바스티아누스 성당이 있는 자리 근처의 지하 묘지에 매장해 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그의 시신은 루치나 부인에 의해 아피아(Appia) 가도에 있는 지하묘지에 묻혔다. 그는 군인, 운동선수 그리고 궁술가의 수호성인이자 전염병의 수호성인으로서 공경을 받고 있다.
그가 전염병의 수호성인이 된 것은 680년 로마에 페스트가 발병했을 때 로마인들이 페스트가 멈추기를 기원하며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유해를 모시고 장엄한 행렬을 거행하자 그 뒤로 페스트가 사라졌다고 한다. 또 1575년에 밀라노(Milano), 1599년에는 리스본(Lisbon)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성 세바스티아누스의 보호를 기원하는 예식이 거행되었었다. 이러한 이유로 사람들은 점차 성 세바스티아누스를 전염병 희생자들의 수호성인으로 공경하게 되었다.
성 파비아노 (Fabian)
신분: 교황,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250년
같은이름: 빠비아노, 빠비아누스, 파비아누스, 파비안
로마의 평신도이던 성 파비아노는 236년 1월 10일에 교황으로 선출되었는데, 선거를 실시하는 동안 비둘기 한 마리가 그의 머리 위에 내려앉았다.
그러자 신자들은 그 모습이 예수님이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을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나타났던 모습(마태 3,16)과 유사하다고 생각하였고, 이를 교황 선출에 관한 하느님의 의지가 드러난 것이라 여겨 그 자리에서 안수를 통해 성 파비아노를 교황으로 선출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온다.
그러나 그의 재임 기간의 업적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이단 문제로 인하여 누미디아(Numidia, 오늘날 북아프리카 지역의 고대 지명)의 람베시스의 주교인 프리바투스(Privatus)를 단죄하였고, 로마의 칼리스투스 카타콤바 내에 주교들을 위한 묘역을 건설하였다.
데키우스 황제 치하의 박해로 수많은 신자들이 순교하였는데, 성 파비아노 교황도 이때 순교하였다. 교황의 시신은 칼리스투스 카타콤바에 안장되었다가 후에 성 세바스티아누스 대성전으로 옮겨졌으며, 1915년에 그의 이름이 적힌 무덤이 발견되었다
성녀 에우스토키아 스메랄도 칼라파토(Eustochia Smeraldo Calafato)
신분 : 수녀, 설립자
활동지역 : 메시나(Messina)
활동연도 : 1434-1485년
같은이름 : 깔라파또, 스메랄다, 에우스또끼아, 에우스토끼아, 에우스토치움, 에우스토키움
시칠리아(Sicilia) 섬 지르젠티(Girgenti, 오늘날의 아그리젠토)의 마태오(Matthaeus, 2월 3일)가 메시나에서 설교할 때 칼라파토(Calafato)의 젊은 백작 부인인 마틸다(Matilda)가 그의 지도를 받게 되었다.
그녀는 그 후 자신의 재산을 모두 포기하고 작은 형제회의 재속 3회원이 되었다.
얼마 동안 그녀에게는 자식이 없었으나 하느님께 열렬히 기도드린 응답인지 딸 아이 하나를 갖게 되었는데, 어떤 행인이 백작 부인을 만나서 그 아이는 구유에서 낳아야 한다고 일러 주었다. 그렇게 해서 아이 를 낳고 보니 너무나 귀엽고 아름다운지라 이름을 스메랄도(Smeraldo)로 짓고 세례를 주었다.
스메랄도는 에메랄드를 뜻하는 시칠리아 말이다.
어릴 때부터 열심이던 이 아이는 아버지 베르나르두스(Bernardus)가 적임자를 골라 결혼 서명 까지 하였으나 그녀 자신은 동정서원을 발하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결혼 상대자는 결혼식을 올리기 전에 사망하고 말았다. 그 후 부친이 사망하자 스메랄도는 오빠들의 반대를 물리치고 바시코(Basico)에 있는 산타 마리아(Santa Maria)의 클라라회에 입회하여 수도복을 받고 수도명 을 에우스토키아(Eustochia)라고 하였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귀족 출신이면서도 가난 정신이 뛰어났고, 우리 주님의 수난에 대한 신심 과 통회 정신이 극히 열렬하여 전 수녀회의 귀감이 되었다고 한다.
바시코에서 11년을 살고난 뒤 그녀는 더욱 엄격한 규칙을 원하였는데, 교황 칼리스투스 3세(Callistus III)가 성 프란치스코 (Franciscus)의 규칙을 따르는 수도회 설립을 인가하였다.
그래서 그녀는 메시나의 몬테 베르지 네(Monte Vergine)에 수도원을 세우고 회원을 모집하였으나 초창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있었다.
성녀 에우스토키아는 1485년 1월 몬테 베르지네 수도원에서 선종하였다.
그녀는 1782년 9월 14일 교황 비오 6세(Pius VI)에 의해 복자품에 올랐고, 1988년 6월 11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Joannes Paulus II)에 의해 메시나에서 시성되었다.
그녀는 에우스토키움(Eustochium)으로도 불리며 메시나 사람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다.
성 에우티미오(대) (Euthymius the Great)
활동년도 : 378-473년
신분 : 수도원장
지역 :
같은 이름 : 에우띠미오, 에우띠미우스, 에우티미우스
아르메니아(Armenia)의 밀리테네(Militene)에서 어느 부유한 집안의 아들로 태어난 성 대 에우티미우스(또는 에우티미오)는 그곳의 주교 밑에서 공부하고 사제로 서품되었다. 그 후 그는 교구 내의 수도원 책임자로 활동하다가 29세 되던 해에 자신도 예루살렘 교외의 파란(Pharan) 수도원에서 수도자가 되었다. 411년경에 그는 그곳을 떠나 동료들과 함께 예리코(Jericho) 근교의 어느 동굴에서 은수자 생활을 시작하였는데, 수많은 제자들이 몰려오므로 그는 이곳의 원장으로 테옥티스투스(Theoctistus)를 임명하고 자신은 더 한적한 곳으로 물러났다.
이곳에서도 많은 제자들이 생겼고 또 수많은 아랍인들이 포함된 개종자를 얻었다. 이리하여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인 유베날리스(Juvenalis)는 그를 주교로 축성하여 아랍 개종자들을 사목토록 배려하였고,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가는 길목에 그를 위한 수도원을 세워주었다. 그는 수많은 군중들에게 설교하여 개종자를 얻었는데, 그들 중에는 황제 테오도시우스 2세의 미망인인 에우독시아(Eudoxia)도 포함되어 있다. 그녀는 에우티미우스의 권고를 듣고 아리우스파(Arianism)에서 물러나 459년에 정통 가톨릭으로 되돌아왔다. 그는 사막에서 66년을 살다가 운명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