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홍일대사가 그가 이 <점찰선악업보경>을 대승이지 소승이 아니라고 생각했을까요?
일반 사회에서 하는 주역이나 점술이 아닙니다.
그것은 절대적으로 틀린 생각입니다.
그런 것하고는 다릅니다. 이것은 心法(심법)입니다. 心地(심지)법문입니다. 善用其心(선용기심)입니다.
지장보살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다시 미래세에 모든 중생들이 출가를 하고자 하면』
미래세에 중생이 발심하여 세속을 떠나서 출가하고자 하면
『혹은 이미 출가를 했으면 』
우리 비구 비구니를 말합니다.
『계를 구하고자 하나 말법 시대에 청정한 스승이 없으면 』
명나라 시대에 남섬부주에서, 우익대사 시대에 남섬부주에서 5명의 청정한 비구를 찾지 못해서 계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현재 말법 시대에 계를 전수할 때에 또한 부처님께서 제정하신 바대로 하지 않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20세가 되어야 계를 받을 수가 있다고 규정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선교 방편으로 빌릴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내가 16세에 출가했는데 비구계를 받았습니다.
어떻게 했는가 하면 득계화상에게 1살을 빌렸습니다.
나한테 1살을 빌려주셨습니다. 전계화상에게 1살을 빌렸습니다.
큰 스님에게 1살을 빌렸습니다. 그래서 20살을 만들었습니다. 이것이 빌릴 수 있는 것입니까?
이것을 코를 비틀어서 눈을 돌린다고 합니다.
눈으로 보면 안 되는 일이지만 코를 비틀어 막아서 냄새를 못 맡게 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실제로는 계를 얻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섬부주에서는 5명의 청정한 비구를 찾지 못합니다.
그래서 우익대사가 청정한 계를 받고자 해서 대장경에서 <점찰선악업보경>을 찾았습니다.
<점찰선악업보경>에 의거해서 위없는 최상의 도심(道心)을 발하고 점찰윤상을 사용해서 점찰을 하고 삼업이 청정함을 얻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지장보살님이 득계화상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 님이 또한 인례사입니다.
지장보살 님이 또한 세분의 화상이 되십니다.
삼사칠증(三師七證), 인례사(引禮師)가 지장보살 님 한 분이 다 하시는 것입니다.
한 분이 다 하시는 것은 바로 여러분이 지장보살 님을 염하고 점찰윤상을 사용해서 점찰윤상의 삼업이 청정하면 바로 계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은 지장보살께서 설하신 것입니다.
여법하게 계를 받을 수 없을 것 같으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먼저 최상의 도심(道心)을 발하기를 배워야 합니다.
최상의 도심을 간단히 말하면 바로 발보리심입니다.
마치고 나면 신구의가 청정함을 얻게 됩니다.
보리심을 발하고 나면 이때 신구의가 청정해집니다.
출가를 안 한 사람은 삭발하고 출가를 하게 됩니다.
이미 출가한 사람은 발원하게 됩니다.
무슨 발원을 하게 되는가 하면 스스로 서원을 세우고 보살계를 받게 됩니다. 보살의 삼취정계를 받게 됩니다.
이때 바라제목차의 출가계를 구족하게 됩니다. 바로 비구 비구니가 되는 것입니다.
마치고 나서 계를 받고 나서는 비니율장을 배웁니다.
<보살마더륵가장>을 수지독송하고 관찰 수행합니다. 바로 비구 비구니계는 청정한 승가
에 속하는 것입니다.
수계를 할 때에 가장 존귀하고 최고이고 무상(無上)입니다.
어느 정도에 도달하는가 하면 인간과 천상계의 스승이 되는 것입니다.
※ 보살마득륵가장이란 대승보살계에서 말하는 보살의 수다라장(대승의 경장), 보살의 마득륵가장(대승의 율장)을 의미하는 것같습니다.
<마더륵가장>이 오기이고 菩薩摩得勒伽藏보살마득륵가장(대승의 율장)입니다.(설오스님)
여러분들이 청정한 윤상을 점찰하고 기다릴 때에 청정한 윤상을 얻게 되면 지장보살께서 삼단대계를 수계하신 겁니다. 사미계, 비구계, 보살계입니다.
그러나 이 문제에 대해서 <유가론>에서, <유가사지론>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상법 시대가 지나고 말법 시대가 되면, 이때에는 계를 받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청정한 계사가 없습니다. 무작무율(無作無律)의 수계를 해야 합니다.
무작:인연에 의한 작용이 없다는 뜻으로, ‘열반(타고 있는 불을 바람이 불어와 꺼 버리듯이, 타오르는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번뇌나 고뇌가 소멸된 상태)’을 달리 이르는 말.
무작(無作)이라는 율의(律儀)로 수계를 합니다.
그러나 의심을 가지면 안 됩니다. 만약 계사를 의심해서 진계하는 스님이 청정하지 않다고 의심을 하면, 수계를 할 때에 함께 수계하는 대중이 청정하지 않다고 의심을 하면, 계체를 얻지 못합니다.
그래서 지장보살께서 선교방편을 행하셔서 그분이 또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계를 받고자 하면, 계를 전해줄 스님이 없으면 그럼 어찌해야 하는가 하면, 지장보살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십니다.
부처님 전에 무릎 꿇고 점찰참법을 수행하면, 이때 점찰참법은 다른 것은 구하지 않고 오로지 계를 얻기만을 구합니다.
이것을 계를 얻기 위해 절한다고 합니다. 오로지 계를 얻는 것을 구하는 것입니다.
이때 위없는 도의 마음을 발해야 합니다.
위없는 도의 마음은 발보리심입니다. 성불하겠다는 마음을 발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신구의 삼업의 윤상을 던져야 합니다.
만약 삼업의 윤상이 다 청정해지면 그러면 수계를 해주신다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께서 말씀하시기를 절을 해서 삼업의 윤상이 다 청정해지면 이미 계체를 얻었다는 것입니다.
아직 출가를 안한 사람은 삭발하고 법복을 입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장보살께서 제자로 받아주시는 것입니다. 삼단대계를 전수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윤상이 반드시 청정해야 합니다. 이것은 속일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절대로 절을 해서 삼업이 청정해져야 합니다. 이것을 자서수계(自誓受戒:스스로 받는 계)라고 합니다. 우익대사가 바로 이렇게 받은 계입니다.
그래서 우익대사는 <점찰선악업보경>을 제창하셨습니다. 이것이 우익대사가 계를 받은 인연입니다.
만약에 이미 출가를 했더라도 나이가 20살이 아직 안 찼으면 이때는 마땅히 발원만 해야 됩니다.
계를 받을 수는 없습니다. 먼저 받기를 발원합니다.
사미 10계를 받거나 10가지 근본계를 받겠다
고 사미니는 특별히 이야기했습니다.
사미니의 별계(別戒)도 마찬가지입니다. 점찰윤상을 던져서 사미 사미니계도 받습니다.
점찰경을 의지해서 계를 받은 사람은 사미, 사미니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땅히 출가하지 오랜 스님을 시봉하고 공양해야 하는데 대승심을 배운 구족계를 갖춘 스님이어야 합니다.
분명히 대승심을 배우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소승을 배우는 사람들과는 함께 하면 안 됩니다.
대승심을 배운 사람과 무엇을 하는가 하면 그러한 스님만을 의지해서 그를 의지사로 모시고 의지해야 합니다.
출가하려면 반드시 의지사가 있어야 합니다. 처음 5년 동안은 반드시 의지사를 의지해야 합니다.
스님을 떠나서는 안 됩니다. 수시로 스님께 가르침을 청해야 합니다.
어떻게 수행할 것인지, 어떻게 사미 사미니계를 지녀야 하는지, 스님께서 수시로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지장보살을 의지해서 받지만 20살이 안 되었으면 지장보살을 의지해서 받을 수가 없습니다.
비구, 비구니로 인정할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20살이 차야만 합니다.
10가지 근본계나 사미니 별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보살계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미, 사미니는 될 수가 있습니다.
만약 보살계만 받겠다고 하면 재가 거사만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출가자는 안됩니다. 비구계를 받지 않고 보살계만 받겠다고 하면 출가자로는 인정이 안 됩니다.
비구, 비구니계를 받아야만 출가자로 인정이 됩니다. 비구, 비구니계로 인정이 됩니다. 내가 이미 출가했지만, 나이가 20살이 차지 않았으면 계를 받을 수가 없습니다.
계를 받더라도 계체를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이 출가수계의 위의상 우익대사는 이 문제를 아주 중시했습니다.
동시에 경전과 율장에 의거해서 이 방식으로 수계를 했습니다.
수계를 하고 나서는 먼저 삼보님께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먼저 도심(道心)을 발해야 됩니다.
반드시 대승을 배운 구족계를 받은 스님을 찾아야 합니다.
친근하게 모시고 공양을 올려야 합니다. 자신보다 일찍 출가했고 출가한 지 10년이 차야 합니다.
출가한 지 10년이 반드시 차야 합니다. 대승을 배운 이런 스님을 스승으로 모셔야 합니다.
친근하게 모시고 공양을 하며 그분을 의지해서 출가해야 합니다. 소승계를 받은 스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출가하면 안 됩니다.
그러나 항상 신구의 삼업으로 스승님을 공경해야 합니다.
이 안에는 발심에는 아주 큰 차별이 있습니다.
발심에는 큰 도심(道心)이 있고 도심(道心)을 발하지 않은 사람이 있습니다. 두 가지가 차별이 있습니다.
설오스님 통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