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우문가의 패퇴.
을지근오와 천강선 우문청아가 구원병을 지원받으려 헨티산맥으로 떠난 얼마 후,
곧바로 남 흉노와 한 군의 연합공격이 시작되었다.
남 흉노의 선봉대는 흘해 연 紇奚 烟 천부장이 선두에서 지휘하였고,
북 흉노에서는 하단보 원화단 단주가 선봉대를 자임하여 대결하였다.
일진일퇴의 전투가 계속되었으나,
북 흉노측은 서둘지 않았다.
배후 背後에 항가이산맥이란 높은 산을 의지한 높은 지대의 지리적인 이점이 있었고,
상대적으로 병력이 부족하니 헨티산맥 우문 소왕의 구원병이 합세 合勢할 때까지 전력을 다하지 않고,
시간을 벌자는 나름의 계산이 서 있었다.
열흘을 그렇게 소규모의 전투만 있었다.
그런데 북 흉노가 간과 看過한 부분이 있었다.
헨티산맥의 우문무특 소왕은 선우 측에 구원병을 지원하지 않은 것이 아니라,
자신이 도리어 구원병을 지원받아야 할, 바람 앞의 촛불처럼 위급한 지경 地境에 처해있었다.
한 군의 반초 대장군은 항가이산맥으로 출격하기 전, 이미 헨티산맥으로 남 흉노와 연합하여
3만 명을 토벌군 討伐軍으로 먼저 보낸 것이었다.
후한의 반초 장군은 각개격파 各個擊破 전술로 북 흉노의 주력부대를 두 곳으로 나누어 공략하고 있었다.
서로 간 정보교환과 지원을 할 수 없게끔 분산 압박하고 있는 것이었다.
우문사로는 사부 기혁린 소왕과 함께 악전고투 惡戰苦鬪를 겪고 있었다.
을지근오가 우문청아와 헨티산맥의 본영 本營에 도착할 무렵, 우문소왕의 병력 2만 명 중,
일만 5천 명이 전사하였고, 천여 명은 포로로 잡혀가고, 현재는 4천여 명밖에 남아 있질 않았다.
일주야 전의 서로간 사생결단 死生決斷의 대전 大戰에서 선봉대와 중군은 적의 매복 작전에
걸려들어 전멸하다시피 하였고, 후군 後軍 만이 겨우 남아 있었다.
후군은 대부분 나이가 많은 연로 年老한 병사 아니면 갓 입대한 어린 병사들이다.
정예병들은 이미 궤멸 潰滅되고 없었다.
우문사로는 왼쪽 얼굴에 검상 劍傷을 입은 상태로 어머니를 만나 피눈물을 흘린다.
위급한 처지에 처한 자신의 무너진 모습을 어머니에게 보여드리기에 부끄러운 생각에 앞서,
위급한 장소에 어머니가 온 것에 대하여 안타깝고 죄송한 마음이 먼저 든 것이다.
스스로 자신의 능력치에 대한 회의감이 새삼스럽게 든다.
우문무특 소왕은 백발이 성성한 몸으로 시녀의 도움으로 의자에 겨우 의지하여 있으나,
말투도 어눌하고 느리며, 목소리에 힘이 없다.
드넓은 초원을 거침없이 내달리던 기개 높던 영웅도 흐르는 세월 앞에서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기혁린 소왕도 이제 백발 白髮의 노장이다.
그래도 부녀와 모자, 형제, 사제 간이 오랜만에 모이니 서로 위로가 된다.
우문사로와 을지근오 형제도 서로 손을 잡고 의기투합 意氣投合하였다.
을지근오는 우문사로를 보고 처음으로 ‘형님’이라고 정중하게 호칭하였다.
이를 본 우문청아의 눈가 주름이 펴지고, 입가에는 미소가 피어오른다.
공동의 큰 적을 앞에 두니 자연스럽게 붉은 피가 뭉쳐진다.
그러나 앞쪽의 전장 터, 적병의 대군을 보니 답이 없다.
암울한 상황이다.
적 병력은 아군의 일곱 배를 넘고, 전투 물자나 군세 軍勢, 군의 사기 士氣는 그 이상의 격차를 보인다.
지원 나올 구원병은 없고 사면초가 四面楚歌다.
저녁에 우문청아는 우문사로와 을지근오를 불러 ‘조선세법’의 구결을 외어 보라 하자,
둘 다 오차 없이 완벽하게 암기 暗記하고 있었다.
서로 목검으로 시전을 해 보인다.
우문사로는 완벽히 전개하나, 을지사로는 미비한 점 두어 곳을 시정 是正받는다.
아직은 둘 다 내공이 약해 ‘조선세법’의 위력이 약하다.
우문청아는 두 아들에게 은밀히 당부하였다.
“조선세법은 그 위력이 엄청나니 함부로 사용해서는 아니 된다.
자신이 위급한 사태나, 최고의 직위에 오를 중요한 경우에만 사용해야 한다.”
“넵, 명심하겠습니다.”
“더구나 내력 內力이 많이 소모되는 무공이니, 체내 體內의 기 氣를 순환 운기 運氣 시키는 호흡법을
아침저녁으로 쉬지 않고 수련하여, 단전 丹田에 깊은 내공을 쌓도록 하라”
“넵”
다음 날 아침, 적군은 대대적인 총공세를 펼친다.
우문소왕 진영은 죽기로 싸우며 버티었으나, 중과부적 衆寡不敵이다.
천강선 우문청아와 기혁린 소왕이 선두에서 노혼 老魂을 발휘하여 군사를 지휘하던 도중,
사제 師弟가 함께 장렬하게 전사 하고 말았다. 우문무특 소왕은 딸이 적병의 창에 찔려
그 자리에서 절명 絶命하는 것을 보고는 비분 悲憤을 참지 못하고, 심장이 터져 즉사하고 말았다.
후군을 지휘하던 우문사로와 을지근오는 밀려오는 적병과 싸우다,
수적인 열세로 헨티산맥의 깊은 산속으로 도주하게 되었다.
연합군과 대결전을 앞둔 하루 전날, 천강선은 자식들에게
“전투에서 패배하거나, 전황 戰況이 불리하게 되면 말갈족 걸걸호루 천부장과 나의 제자인 부여 예족 출신
서누리, 거란족 출신 하루빈 천부장이 대흥안령산맥에 있을 것이니, 그곳으로 도피하라”고 일러두었다.
사실 우문청아도 전황이 불리하여 별다른 방법이 없으니, 물에 빠진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는
다급한 심정으로 그렇게 이야기했을 뿐이다.
사전 事前 약속을 해 둔 것도 아니고, 그 넓은 대흥안령산맥에서 무슨 방법으로 서로가 만날 수 있을까?
이는 전투에서 패배하였을 때, 목표나 희망이 없다면 극단적 極端的인 선택을 할 수도 있으니 이를 염려하여,
막연하지만 ‘안전한 곳으로 피하라’는 어머니로서 자식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의 유언이었다.
이제는 사방이 적군인 한 군과 남 흉노의 연합군으로 뒤덮여 있다.
두 형제는 뒤따르는 수하 병사 십여 명과 헨티산맥 동쪽에서 대흥안령산맥 방향으로 도주하였다. 도중에 한과 남 흉노 연합군의 추격병을 따돌리려고, 각자 흩어져 달아나다가 서로가 길이 엇갈려 헤어지게 된다.
대흥안령산맥은 우문사로에게는 낯설지 않다.
우문사로는 이전에도 맹수 등 큰 짐승을 사냥하러 대흥안령산맥으로 몇 차례 가본 적이 있었다.
인근 지리 地理에 밝은 우문사로는 추격병들을 따돌리고, 본래 목적지로 정한 대흥안령산맥의 북쪽 선비산으로
무사히 갔으나, 을지근오는 추격병을 피하려다 길을 잃고 헤매다, 어두운 밤에 절벽에서 떨어져 다리까지 다쳐
운신 運身하기가 어려워졌다. 그 와중에 마침, 대흥안령산맥의 남쪽, 상곡 부근에서 역시 도피 중이던
걸걸호루와 서누리를 만나게 되었다.
일황 하루빈은 도중에 헤어져 고향인 조양 (후일의 영주)의 거란족으로 갔다고 하였다.
을지근오의 뒤를 추격하던 한의 추격병 백여 명은 마침, 순시 중이던 고구려군에게 발각되어 추살 追殺 당하였다.
을지근오는 걸걸호루와 함께 고구려군을 따라 요동으로 가게 되었다.
우문청아가 마지막으로 바라던 미약 微弱했던 조그만 희망은 이루어졌다 할 것이다.
한편,
항가이 산맥의 전황 戰況도 북 흉노측에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김성형 우현왕은 한의 반초 대장군의 유인책에 속아 병력의 절반을 잃었고, 설상가상 雪上加霜으로
용장 설태누차 소왕도 전투 도중에 유시 流矢를 맞아 왼눈을 잃었다.
병력 손실이 상당하다.
그런 와중에 적 진영에서는 송골매가 그려진 찢어진 깃발을 높이 쳐든다.
묵황야차 이중부는 그것이 처가 妻家인 우문가를 상징하는 깃발인 것을 알아보고는 낙심 落心한다.
첫사랑 우문청아와 두 아들의 생사마저 불투명하다.
이제, 구원병 지원은 이미 물 건너간 것이다.
고립무원 孤立無援의 암울 暗鬱한 처지다.
이제는 죽으나 사나 오직, 자신들의 힘만으로 이 난국 亂局을 타개 打開하여야 한다.
소규모 전투에서 계속 밀리니 이제 병사가 2만 5천 명도 채 되지 않았다.
반면에 적병은 헨티산맥의 토벌 병의 일부까지 가세하니 8만 명이 넘었다.
하는 수 없이 북 흉노측은 항가이산맥 남쪽 기슭을 타고 흉노의 본향 本鄕인 알타이산맥으로 이동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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