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류--문학(시)
프엉꽃이 데려온 여름
박경자 지음|푸른사상 시선 138|128×205×9 mm|148쪽|9,500원
ISBN 979-11-308-1752-1 03810 | 2020.12.28
■ 도서 소개
프엉꽃처럼 피어난 베트남을 향한 애정
박경자 시인의 첫 시집 『프엉꽃이 데려온 여름』이 <푸른사상 시선 138>로 출간되었다. 시인은 베트남 사람들과 더불어 생활하며 음식, 가족, 혼례, 제례 등 그들의 문화와 역사에 대한 깊이 있는 이해를 구체적이고 진정성 있게 한 편 한 편의 시에 담아냈다. 과거 전쟁으로 인한 베트남 사람들의 상처를 기억하면서 사죄하는 마음으로 연대하는 시인의 인간애는 양국의 교류가 긴밀하게 이루어지고 있는 요즘 더욱 의미가 크다.
■ 시인 소개
박경자
부산에서 태어났다. 국문학을 전공하고 전업 작가가 꿈이었다. 밥을 짓는 것처럼 시를 짓는다. 2019년 『푸른사상』 신인문학상 수상으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E-mail : cp1005@hanmail.net)
■ 목차
■ 시인의 말
제1부 프엉꽃이 피기 시작하면 여름이 왔다
우기의 빈대떡 / 쌀국수를 먹는 아침 / 비 오는 날의 오토바이 패션 / 바나나 꽃 / 빨간 구두 타오 / 점심시간의 회식 / 자수를 놓는 여인 / 프엉꽃 / 안부 / 두리안 / 나(Na) / 6월 / 오토바이를 탄 거북이들 / 조용한 악사
제2부 디엡의 감
디엡의 감 / 10월 20일 / 신들의 집 / 고기고기 하우스 / 조안의 가족들 / 그녀가 웃는다 / 바람이 길들인 아이의 옷이 두껍다 / 한국 남자 영식 씨 / 갓비 공항에서 / 잠옷과 꽃 자전거 / 분짜 거리 / 바우 뉴 띠엔? / 단단한 집 / 사파에서 / 카페67
제3부 겨울에는 황금열매가 있다
김치 있어요? / 황금열매 / 박항서 매직 / 모자와 간호사 / 반뗏을 먹다 / 화다오 / 미역국과 루억 / 국보 1호 / 하노이 여성 박물관 / 쎄옴 / 바나나 잎의 변신 / 호암끼엠의 거북이 / 하노이 군사 박물관에서 / 하롱베이에서 / 리엔의 시아버지
제4부 봄날
죽순과 여자 / 생일 선물 / 봄날 / 응우옌 씨네 마을의 피로연 / 로이의 집 / 꽝가인 / 두 번째 만남 / 안녕, 버나인 / 장쯔에 공단 / 군복 입는 아버지 / 히엔과 흐엉 / 부엌신 옹따오 / 노란 매화가 된 소녀 / COVID-19
■ 작품 해설:베트남 문화의 전도사 - 맹문재
■ 시인의 말
베트남에도 가을이 왔고
겨울이 있었고
봄을 기다리니 봄이 되었다
그리고 여름은 뜨겁고 끈질기고 더디게 갈 뿐이었다
■ 작품 세계
박경자는 한국 시문학사에서 베트남의 문화를 집중적으로 담아낸 시인으로 평가될 것이다. 시인은 베트남의 음식, 시장, 가족, 혼례, 제례, 직장 생활 등을 관광객처럼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현지인들과 함께하면서 이해하고 습득하고 있다. 시인이 베트남 사람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생활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과 같은 문화의 뿌리를 갖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최대한 동질감을 가지고 수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하여 체험에 의한 시인의 시편들은 구체적이고 진정성을 갖는다.
1992년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에 합의한 이후 경제 분야뿐만 아니라 산업기술, 관광, 교육, 결혼, 스포츠 등 다양한 분야의 교류가 증대하고 있다. 베트남에 있는 한국인 수와 한국에 있는 베트남인 수가 각각 10만 명이 넘는다는 사실은 양국의 교류가 얼마나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증명해준다. 1998년 김대중 정부가 베트남전쟁에 대해 공식적으로 ‘유감’을 표명한 뒤 역사 문제도 개선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시민단체의 노력으로 양국 관계가 진전되고 있는데, 국가 차원에서 좀 더 적극적으로 사과하고 보상체계를 마련하는 것이 필요하다. 시인을 비롯한 예술가들의 동참 역시 요구된다. 베트남을 동남아시아의 한 시장이나 관광지로 여기는 편협되고 표피적인 자세를 극복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중략)
베트남의 역사와 문화를 구체적으로 담아낸 박경자 시인의 작품들은 연대의식을 추구하고 있기에 의미가 크다. 시인은 박항서 감독과 함께 “천 년을 참았던 열기가/한꺼번에 뜨거워져 밤을 흔들어놓”(「박항서 매직」)는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한다. “한국말을 좋아하고 한국 음식을 좋아하는” 베트남 여성들이 “방탄소년단의 ‘봄날’을 부”(「봄날」)르자 함께 부른다. “하노이 대학에서 한국어를 전공한 히엔은 교수가 꿈이”고 “경영학을 전공한 흐엉은 한국 회사에 취직하”(「히엔과 흐엉」)는 것이 꿈인데 기꺼이 응원한다. “쓸모없이 버려지던 바나나 잎을/포장지로 사용하는”(「바나나 잎의 변신」) 지혜를 베트남 시민들에게 배우고, 생일 축하 행사를 점심시간에 가져 근무 시간을 아끼고, “초코파이”, “치약과 칫솔”, “샴푸”(「생일 선물」) 등을 선물로 전하는 실용성을 베트남 회사원들에게 배운다. 궁극적으로 한국 사람들이 베트남 사람들과 함께 지향해야 할 “사랑을”(「COVID-19」) 인식하고 제시하는 것이다.
― 맹문재(문학평론가·안양대 교수) 작품 해설 중에서
■ 추천의 글
박경자 시인의 시에서는 비유의 묘미가 양식 먹다가 한식을 만난 듯, 눈에 번쩍 들어온다. 직유를 다루다 은유의 묘미를 담아 붓는가 하면, 때로는 메타적 표현을 동원하여 독자의 감동선에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 더구나 한 시인이 잡아주는 사랑의 손길에 감사하는 대상의 눈길을 섞어낼 수 있는 몸짓과 눈짓, 그들의 사랑에 발효됨을 읽는 즐거움, 이것이 곧 시가 말하는 꽃이면서, 시가 암묵적으로 담고 있는 조국애에 다름 아닐 터, 별난 수식이 없는 시어가 마음의 소리로 독자의 가슴에 울려온다. 다듬은 말이 아름답다면, 자연스런 말은 가슴을 울려오는 말, 입을 막고 웃는 웃음의 참맛을 보게 한다. 그러면서 그의 시 편편이 조국애와 인간애를 바탕에 깔고 있음은 볼수록 사랑홉다. 사람과 자연을 사랑하고 아끼는 시인의 가슴과 인간적 진정성이 작품을 통해서 형상화되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가 시의 명징성을 통해 보여주는 시인의 당당함은 현대라는 변화를 자연스럽게 교감시켜 마찰을 피하게 하는 시적 저력이며 곧 매력이다. 시를 통해서 독자로 하여금 새로운 세계의 존재를 구체적으로 체험하게 하는가 하면, 그 세계를 보아내어 시인의 진정성에 공감을 불러오기도 한다. 결국 공감은 감동으로 연결되는 것. 눈으로 읽으면 귀에 리듬이 울려오고, 귀로 들어도 눈에 모습과 빛이 떠오르는 시를 시인들은 시의 이상으로 삼게 된 것이라는 조지훈 선생의 말을 떠올려 되새기게 하는데 박 시인의 시에 그만한 이유가 있을 터다.
― 홍진기(시인)
■ 시집 속으로
프엉꽃
프엉꽃이 피기 시작하면 여름이 왔다
까멜라에서도
땀박 호수 주변에서도
여자들은 붉은색 아오자이를 입고
꽃구경을 하고 사진을 찍었다
사돈지간인 흥 씨와 응우옌 씨도 함께 꽃구경을 나섰다
나란히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는다
손자를 돌보는 그녀들의 육아는 잊고
어느 때보다 다정해 보였다
예순에도 몸매가 좋은 사돈을 부러워하는가 하면
새로 산 아오자이를 자랑하기도 했다
프엉꽃 아래에서 그녀들은 꽃보다 붉었다
일하는 딸을 대신하여 육아에 지친 마음도
남편의 외도에 상처 난 자국도 보이지 않는다
초록 잎을 덮고
꼭대기에서 피어오른 프엉꽃
부드럽고 섬세함이 하늘거리는 오후
청춘을 지나 붉게 무르익은 그녀들을 찍으며
내 마음속에도 불꽃이 번져 함께 타올랐다
분짜 거리
재래시장이 가까운 곳이었다
나와 지엠은 노상에 앉아 분짜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면을 말하는 분과 고기를 말하는 짜가 합쳐져서
이름이 분짜라고 했다
팔꿈치가 닿을 듯이 모여 앉은
우리의 옆자리에도 그 옆자리에도
푸른 향신채와 소스가 담긴 그릇이 먼저 나오는 사이
즐비한 플라스틱 의자와 테이블이 채워지고
거리가 주방인 그곳은
마치 커다란 광장 같았다
이마를 맞댄 동료들이 있고 아이의 손을 잡은 아빠가 있다
그릇을 나르는 남자의 표정은 넉넉하고
달콤 짭짤한 양념을 부채질하는 숯불 앞의 여자는
더위 먹은 입맛을 부추겼다
아무리 더워도 먹고 싶다는 눈빛 때문인지
거리를 메운 고기 냄새 때문인지
가로수는 그늘을 늘리고
오토바이는 경적을 멈춘다
나는 옆에 앉은 지엠을 따라
소스가 담긴 그릇에 고기와 고수를 담그고
쌀로 만든 면을 넣었다
젓가락을 휘휘 저어
고기와 면과 고수를 감아올리면
하늘하늘 늘어선 꽃들이 웃고 새들도 떠드는
잊을 수 없는 거리가 된다
하노이 군사 박물관에서
전쟁을 기억하려는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은 탱크에 올라가서 총을 겨누어보기도 하고
탄알 없는 대포를 쏘기도 하고
헬리콥터에 앉아보기도 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미국과 프랑스와 싸웠던 생생한 흔적의 박물관 야외에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다
수천 대의 살상 무기를 상대로
여자들은 아이를 안고 총을 들었다
산골짜기 위로 무기를 나르고 식량을 제공하는 민간인들이 있었다
적군을 포위한 군인들은 물러서지 않았다
산산조각이 난 미 전투기의 잔해를 모아
탑을 세운 국민들
남편을 잃고 자식을 잃었지만
전쟁은 비극에서 끝나지 않았다
비 오듯 퍼부었을 포탄을 잊지 않고 있는 국민들이 있다
추락한 미국의 폭격기를 끌어내고 있는 소녀의 사진이
끈적한 열대의 바람을 일으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