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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신 8:1-10)
'찰스 코우만' 여사는 재미있는 체험담을 글로 소개합니다. 그녀는 1년 동안 애벌레가 나방이 되어 나오는 것을 관찰했습니다. 번데기에서 나방이 기어 나오는 구멍을 너무 작았습니다. 그 작은 구멍으로 큰 몸집이 빠져 나오려고 오랫동안 몸부림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안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도와주고 싶은 충동을 느꼈습니다. 급히 가서 가위를 가져다가 그 구멍을 옆으로 조금 따주었습니다.
그랬더니 그 나방이 고맙다는 듯이 퉁퉁 불은 몸집을 기우뚱거리면서 쉽게 꼬치를 빠져 나왔습니다. 그녀는 큰 선심이나 쓴 것 같은 만족감에 젖어 있으면서 이제 그 나방이 오색찬란한 날개를 펴고 창공을 나는 순간만을 기다리며 지켜보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녀는 얼마 안 가서 자기가 나방의 신세를 망쳐 놓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 나방은 자기의 몸을 질질 꿇고 다니면서 날지 못하는 달싹둥이가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작은 구멍을 빠져나오는 긴 시간의 몸부림' 이것은 나방이 꽃을 찾아 이산 저 산으로 날아다닐 행복한 나비로 만드는데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과정이었습니다. 여러분, 고난을 당할 때 너무 낙심하지 마십시오. 고난 속에 담겨진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다 알수 없습니다. 또한 고난당하는 자에게 너무 값싸게 동정하지 마십시오, 경제적으로, 건강으로, 사회의 여건으로 형제가 진통을 겪고 고통을 당할 때, 가위를 들고 가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그를 더 큰 위험에서 막아 주시고 믿음의 날개로 세상을 날며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허락하신 시험인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벧전1:7절에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
본문은 모세가 요단강 앞에서 가나안 땅 진입을 앞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들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에 대해서 가르치신 말씀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은 얼마 있지 않으면 그토록 고대했던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그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축복의 땅으로서 지금의 광야와는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본문 7-9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아름다운 땅에 이르게 하시나니 그 곳은 골짜기든지 산지든지 시내와 분천과 샘이 흐르고 [8] 밀과 보리의 소산지요 포도와 무화과와 석류와 감람나무와 꿀의 소산지라 [9] 네가 먹을 것에 모자람이 없고 네게 아무 부족함이 없는 땅이며 그 땅의 돌은 철이요 산에서는 동을 캘 것이라.”
정말 대단한 땅이요, 축복의 땅, 낙원입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렇게 좋은 땅에 들어가게 될 때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저들이 40년동안 광야에서 훈련받을 때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는 사실을 잊지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광야 생활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셨습니다.
저들의 목자가 되어주시고 공급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사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 생활을 거치지 않고서도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홍해를 건너 가나안 땅에 걸어 들어가는 거리가 직선거리면 십일이면 들어갈 수 있는 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광야를 거치지 않고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 그것은 하나님의 계획이 아닙니다.
우리도 무슨 일을 할 때 광야의 고생없이 곧바로 만사형통하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를 원하지만, 그것은 참 위험한 일입니다. 무엇보다도 주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뜻이 있어서 우리로 하여금 광야 생활을 일부러 경험하게 만드십니다.
여러분, 광야가 어떤 곳입니까? 본문 15절 말씀을 보세요.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여기 이 짧은 말씀을 보면, 광야가 어떤 곳인지 금방 알 수 있습니다. 먼저 광야는 광대한 땅입니다. 넓고 황량해서 막막하기 이를 데 없는 땅이 바로 광야입니다. 그 다음에 광야는 위험한 땅입니다. 사람이 살지 못하니 야생 동물인,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위험지역입니다.
게다가 광야는 물이 없는 사막지역입니다. 사람이 생활하는데 가장 필수적인 것이 물이 아닙니까? 그런데 이와 같은 물을 구할 수 없는 사막 황무지가 바로 광야인 것입니다. 이와같이 광야는 막막하고 황량하고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위험지역이며 물을 구하기 어려운 사막 지대였을 뿐 아니라 낮과 밤의 기온 차가 극심해서 사람 살기가 힘든 곳입니다. 낮에는 지독하게 뜨겁고 밤에는 엄청나게 추운 곳이 광야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하셨다는 말씀은 낮에는 구름이 뜨거운 태양을 가려 이스라엘 백성들이 뜨겁지 않도록 도와주셨으며, 밤에는 뜨거운 불기둥으로 추위를 느끼지 않도록 지켜주셨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이렇게 살기 어려운 광야를 농사지을 수 있는 가나안 땅과 비교 해 보면 이것은 그야말로 지옥과 천당의 차이입니다.
사람이 집을 짓고, 농작물을 기르고, 꽃이 피며, 물을 길어 먹을 수 있는 가나안 땅, 이 땅은 확실히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생했던 광야와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렇게 고통스러운 광야 생활을 하루 이틀도 아니고 장장 40년 동안을 허락하셨습니다. 40이라는 숫자가 히브리인들에게는 완전 숫자요 충족 숫자이니 인간이 고생할 수 있는 최고치까지 고생을 시켰다는 말씀이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왜 40년 동안의 광야 생활을 허락하셨습니까? 홍해를 육지처럼 건너게 하신 하나님은 얼마든지 광야없이 가나안 땅에 직통하도록 하실 수 있었을 텐데 굳이 광야를 허락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요즈음 우리는 코로나로 인하여 광야생활같이 어렵고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뿐 만 아닙니다. 삶의 현장은 그렇게 넉넉하지 않습니다. 산넘어 산이라고, 한 문제를 넘어서면 또 다른 문제가 우리 앞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언제 어떻게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르는 위험과 두려움이 있는 곳이 바로 우리가 살고 있는 광야와 같은 세상입니다.
그러면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뜻은 무엇입니까? 우리 다함께 본문 2절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2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1. 우리를 낮추시고 우리를 겸손케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거치지 않고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면 옛사람의 모습 그대로였을 것입니다. 옛사람의 특징은 교만입니다. 교만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자기가 전부입니다. 자기가 주인인냥 자기를 과시하고 자기생각에 사로잡혀서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살아가는 것입니다. 나를 창조하시고 나를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없는 것입니다. 나의 주권자 하나님이 없는 사람입니다. 불신앙자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우리가 자연 그대로 변화되지 않은 모습 그대로는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그래서 광야를 허락하신 것입니다. 광야를 통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알게 하시고 내가 누구인가를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백성들은 광야하면 “하나님을 만나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광야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하나님앞에 내 자신의 죄성을 인정하고 하나님앞에 무릎을 꿇는 것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하나님이 나의 창조자이십니다. 나를 죄에서 구원하신 사랑의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주인이십니다.
그런데 이것을 깨닫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여러분 중에 지금 이 사실을 모르는 분들이 어디있겠습니까? 그러나 이론과 삶은 다른 것입니다. 이것을 진정으로 알려면 광야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자기 한계를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내 호흡까지도 허락하시지 않으면 나는 살수 없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사도바울의 고백을 다시 고백하는 것처럼 나의 나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실, 광야생활이라는 것이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한 준비와 훈련의 과정이 아닙니까? 광야라고 하는 것이 사방팔방 갑갑하고 막막하기 때문에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라는 곳이 아닙니까? 만일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해서 곧바로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면 엄청나게 교만해졌을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다 자기 힘으로 된 것인 줄로 착각하고 엄청나게 마음이 높아졌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추시기 위하여 일부러 광야의 길을 걷게 하셨습니다. 오늘 고통스럽고 막막한 광야의 길을 걷고 계신 분들은 기억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더욱 더 하나님만 의지하도록 낮추기 위하여 광야를 허락하십니다. 고난이나 실패없이 모든 일이 승승장구하는 사람들은 교만하기 쉽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보다는 자기 잘 나서 자기 능력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라고 착각하기 쉽습니다.
그런 까닭에 본문 17-18절에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이렇게 경고하십니다. “그러나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말할 것이라 [18]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여기에 보면, 사람들은 재물을 많이 얻을 때 이것이 다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된 것이라고 착각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착각해서는 안됩니다. 재물도 사람의 힘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재물 얻을 능력을 하나님께서 주셔야만 됩니다. 우리는 광야생활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더 귀하게 쓰시기 위하여 더욱 더 낮아지도록 하려는 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물이 늦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하나님의 은혜는 낮은 곳에 쏟아집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더 낮아져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의 고백처럼 여기까지 낮아져야 합니다. (갈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이렇게 낮아져서 오직 내 안에 주님이 사시는 것을 체험하고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안에서 살아가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지 안지키는지 우리를 시험하시려는 뜻이 있습니다.
어떤 성도는 자기 원하는 대로 척척 이루어질 때 하나님을 인정하고 잘 믿습니다. 그러나 기도한 것마다 좌절되고 또 원치 않은 고난이 찾아올 때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기 쉽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갖가지 기적을 체험하고서도 조금만 불편해지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과 불평을 쏟아놓았습니다.
그러므로 광야생활은 모든 인간적인 기대와 소망이 끊어진 자리에서도 하나님만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지를 시험한 자리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방의 희망이 다 끊어진 막막한 그 자리에서도 변함없이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주신 계명을 다 지키는 사람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고진감래(苦盡甘來)라는 말도 있는 것처럼, 광야의 시련 한 가운데에서도 하나님만 바라보는 사람은 결국 가나안의 축복을 얻게 될 것입니다.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겪는 광야생활은 모든 인간적인 희망이 끊어진 그 자리에서도 끝까지 하나님만 의지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시험하는 자리임을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광야의 시련이 찾아올 때마다, "아. 이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믿음을 테스트해보려고 하시는 과정이구나." 하고 깨닫게 되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광야생활 한 가운데에도 믿음의 줄을 놓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뜻과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고 실천하는데 조금도 주저하지 마십시오.
광야의 시험을 잘 통과할 때 여러분의 믿음은 더욱더 정금과 같이 빛나게 될 것입니다. 본문
5-6절, “너는 사람이 그 아들을 징계함 같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징계하시는 줄 마음에 생각하고 [6]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의 길을 따라가며 그를 경외할지니라” 부모가 자녀를 징계함같이 하나님께서 나를 징계하시는 줄 알고 참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참으셨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인내하는 것입니다. 그냥 참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잘 지키는 것이 믿음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면 환란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광야의 시련가운데 있을 때 우리의 믿음의 실제가 드러나는 것입니다. 바람이 불 때 쭉정이는 멀리 날아가고 알곡은 가까이 머무는 것처럼 시련을 통해 참 믿음의 사람은 오히려 하나님을 붙잡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입니다. 요즘 묵상하는 여호수아의 군대를 보십시오. 광야의 훈련을 다 마치고 이제 가나안 땅에 들어가 정복전쟁을 치루어야 했습니다. 전쟁은 무서운 것입니다.
죽고 죽이는 전쟁을 치루어야 하는데 얼마나 두려운 일입니까? 그런데 여호수아의 군대는 하나님의 명령을 잘 듣고 그 명령이 떨어지면 즉각적으로 순종합니다. 왜 이렇게 순종하는 사람으로 변화되었습니까? 광야의 훈련을 통해서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은 진리입니다. 천지는 변하여도 하나님의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이것을 깨달은 여호수아의 군대는 그저 말씀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그대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믿음이요, 지혜인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데서부터 믿음이 시작됩니다. 그 믿음이 역사로 나타나려면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시험에 한분도 빠짐없이 통과하시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게 하려는 뜻이 있습니다.
본문 3절,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마귀에게 돌이 변하여 떡덩이가 되게 하라는 시험을 받으셨을 때 물리치신 아주 유명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할 때 늘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걱정했지만 하나님께서 다 책임져주셨습니다. 너무나 신비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 자신은 물론이고 그 조상들도 알지 못했던 만나를 날마다 내려 주셨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4절을 보세요.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엄청난 고생을 했지만 신기하게도 지난 40년 동안 몸에 걸친 옷이 해어진 일도 없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 먹여주시고 입혀주셨다는 말씀입니다..
그렇습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만 붙들고 살면 광야 한가운데에서도 하나님께서 지켜주십니다. 우리의 먹을 것 입을 것 잠잘 것 정확하게 아시고 다 허락해주십니다. 이것을 예수님은 마 6장에서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먼저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붙들기만 하면 이 모든 것은 더해주시겠다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셨습니다.
(신 8:1)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너희는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살고 번성하고 여호와께서 너희의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서 그것을 차지하리라 하나님께서 오늘 명하는 모든 명령을 잘 지켜행하면 너희는 살고 번성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에 들어가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오늘 내게 주시는 명령을 잘 듣고 있습니까?
여러분, 가나안땅 정복을 앞두고 있던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수 1:7,8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8]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묵상한다는 것은 영혼의 양식으로 먹는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만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곧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고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면 길이 평탄하고 행사가 다 형통하리라고 약속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한다는 것은 특별한 사람들만이 일이 아닙니다.
양문교회 성도라면 누구나 우리가 묵상하는 생명의 샘가를 펴서 매일양식으로 하늘의 만나를 날마다 먹는 것처럼 이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여 영혼의 양식으로 먹는 것이 신앙생활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그 가운데 기록된 말씀대로 행하면 평탄하고 형통한 복을 주시겠다고 분명하게 약속한 것입니다. 왜 광야의 길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셨습니까?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산다는 것을 깨우쳐 주시기 위함입니다.
이제 결론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번도 가보지 못한 어렵고 힘든 광야 길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광야는 인생의 목적지가 아닙니다. 과정입니다. 이 광야의 끝에는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준비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지명하여 부르셨으며 우리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시기에 우리가 어떤 시련을 만나도 함께 하시고 지켜주실 것을 약속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다 뜻이 있어서 우리에게 광야의 시련을 허락하고 계십니다.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이유는 1)마음을 낮추어 더욱 겸손해지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범사에 인정하고 그 앞에 무릎을 꿇으십시오. 2)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는 이 시련기를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순종하는 사람으로 세우시기 위함입니다. 3)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사는 것을 깨닫게 해주시기 위함입니다. 오늘 여러분 모두 광야의 길에서 머뭇거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여 영광스러운 가나안 땅에 다 들어가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