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자는 착해서 도와주는 게 아니다. 강자가 착해서 강자가 된 게 아니듯.
사회엔 기본적으로 불평등이 내재되어 있으니까 약간의 재조정을 하는 게 복지일 뿐.
복지에 고마워하라는 인간들아,
어디 전 인류 태어날 때부터 똑같은 출발선에서 한번 시작해보자.
너희가 그런 소리 할 위치에 갈 수 있나.
노동자 없이 굴러가는 기업이 없고, 바닥노동 없이 굴러가는 사회가 없으며,
부국이 혜택 본 산업으로 촉발된 기후위기로 빈국이 더 고통 받고
우리의 쓰레기를 가난한 나라에 갖다버리고 있는
기가 막히게 부조리한 세상에서 살고 있으면서,
어디 감히 도와주면 고마워하란 소리를.
'선한 약자를 악한 강자로부터 지키는 것이 아니라
시시한 약자를 위해 시시한 강자와 싸우는 거란 말이요'
'노동운동 10년 해도 사장 되면, 노조 깰 생각부터 하게 되는 게 인간이란 말이요'
'당신들은 안 그럴 거라고 장담하지 마, 서는 데가 바뀌면 풍경도 달라지는 거야'
'1800년대 유럽에서 노동자 두명이 술집에 모이는 것도 불법이던 시절.
7살짜리를 하루 14시간씩 일을 시켜도 그게 계약의 자유이던 시절.
그런 시절부터 피흘려가며 만든 법이야. 노동법이'
나이가 들면 단단한 여유가 생기는 줄 알았다. 세월과 함께 피부에서 물기가 빠져나가듯이 내 몸에서 헛되거나 들뜬 것들 이 쫓겨나고, 눈앞의 저 바깥은 여전히 멀더라도 명징할 줄 알았 다. 제대로 묻는 것만으로도 온갖 것이 용서되는 시절을 건너, 그 물음에 차분히 답할 수 있을 줄 알았다.
이제는 안다. 시간의 힘을 믿는 것은 그저 미망일 뿐이다. 시 간이 당신을 숙성시키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시간을 숙성시켜 서 글로 썼고 여기저기에 흔적을 남겼다. 그 흔적들을 다시 모 아서 이렇게 책으로 낸다. 부끄럽다, 부족하다는 말은 하지 않겠 다. 누군가 그랬다. 부끄럽고 부족하다면서 왜 굳이 그 일을 하 냐고. 옳다. 글로 말한 만큼 감당하고 책임지면 된다.
조지 버나드 쇼가 이런 말을 했다. "인간이 사자를 죽이면 그걸 스포츠라고 부른다. 하지만 사자가 인간을 죽이면 그걸 포
악함이라 한다. 범죄와 정의의차이라는 것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혁명가를 위한 격연Maxims for a Rerolutionary)이라는 책에 실려 있는 구절인데, 처음 읽었을 때는 무심하게 넘겼다. "혁명 가의 치기 정도로 생각했다. 하지만 요즘은 이 구절이 부쩍 새 롭다. 혁명의 계절이 가고 없는데 말이다.
가끔, 나는 '노동자'는 '인간'이 아니라 '사자'라는 생각을 한 다. 원형 경기장에서 가망 없는 싸움을 벌이면서도 삶의 희망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사자. 생산이라는 거대한 경기에서 피 흘리 며 죽어나가는 슬픈 운명에 처한 사자. 살인 같은 죽음에 범죄' 를 따질 수 없는 사자, 죽음 판을 벌인 인간에 대항하여 온몸으 로 맞서 싸우면 포악하다고 불리는 사자, 인간이 싸우라고 만든 경기장에서 그에 따라 치열하게 싸우면 형벌을 받는 사자. 죽음, 박봉, 과로, 해고는 경제성장이라는 거대한 게임에 필연적으로 따르는 법칙이고, 거친 바닥에 무뎌진 발톱을 내보이면 당장 포 악함의 죄를 물어 간히거나 칼을 받게 된다. 더러 있지 않았나.
기업이 노동을 죽이는 것은 불가피함이고, 노동이 기업에 죽을 _ 듯 달려드는 것은 곧 범죄다.
어그러진 현실을 정당화하는 것은 늘 언어다. 언어 뒤에 숨 은 권력이다. '자유'라는 말을 보라. 독재 시대를 거치면서 이 말 은 치유 불능의 상태에 이를 정도로 오용되었으나, 요즘 들어 그 뜻은 더욱 현란하게 변하고 있다. 오늘날, 자유란 각자도생의 다 른 이름이다. 삶이 부박하고 어려운 사람들은 오로지 제힘으로
살아야 한다. 사회의 도움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그래서 자유롭 다. 삶이 넘칠 정도로 부유하고 힘 있는 사람들은 오로지 제 뜻 대로 거침없이 살아야 한다. 모든 사회가 그 뜻에 복종해야 한 다. 그래서 자유롭다. 이런 이중적 자유는 현실에 은밀하고 치밀 하게 적용된다. '노동의 자유'를 내세우며 목소리를 높이고 행동 하면 타인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금지한다. 하지만 기업 의 잘못을 바로잡으려 하면 '기업의 자유'를 억압한다는 이유로 금지한다.
정의와 범죄 간의 차이는 과연 멀지 않고, 우린 여전히 로마 원형 경기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오로지 몸으로만 싸우는 사 자가 칼날에 휘청거릴 때, 경기장에 빽빽이 들어선 인간은 환호 한다. 죽여라, 죽여라. 그렇게 죽은 사자에게 인간은 잠시 미안해 할 뿐, 곧 다음 사자를 찾아 나선다.
이 모든 것에도 불구하고, 나는 사자가 무리를 지어 경기장 을 무너뜨리고 나오길 꿈꾼다. 경기장 안에 길을 열고 바깥길도 내는 방법을 고민한다. 거친 발톱끼리 손잡는 기적을 기다린다.
공감과 연대의 힘도 믿는다. 인간과의 연대도 기대한다. 여럿이 같이 가면 길이 된다. 그렇게 믿는다. 그런 믿음으로 글을 썼고, 그 글들을 이 책에 모아두었다
이태원참사 유가족들의 요구사항
꼭 다 이뤄졌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