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1-9
돌들은 무슨 뜻이냐? 묻거든 / 김완중 목사
물이 철철 흘러넘치는 요단강에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걸어 들어가 물이 발목에 잠기게 되었을 때 요단강은 위에서 흘러내리던 물이 멈추어 서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요?
물이 멈추어 서서 벽을 이루다니요?
아마 그 장면을 처음에 보았던 이스라엘 사람들은 건너기를 망설였을지 모릅니다.
저 같으면, 혹시나 그 물이 그냥 쏟아져 내릴까봐 겁이 났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당당하게 그 강을 건너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여호수아의 능력이 아니라, 그들을 인도하는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여러분이 실제로 그 일을 경험했다면 어떠했을지 상상해 보기 바랍니다.
그 감동과 흥분을 감추기가 어려웠을 것입니다.
너무나 흥분해서 그 경험을 떠벌리고 다니느라 바빴을 것입니다.
만나는 사람마다 침을 튀기면서, ‘내 얘기 좀 들어달라’고 사정을 할 것입니다.
듣는 사람들이 안 믿는 것 같으면 더욱 큰 소리를 지르면서 사실이라고 할 겁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감동스런 경험을 했으면서도 시간이 지나면 점차로 잊어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런 원리는 영적인 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경제적인 어려움과 육신적인 질병으로 고통 속에 있을 때, 절망하고 좌절합니다.
삶의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고, 차라리 죽어버릴까 하는 유혹까지 받습니다.
그러다가 전도를 받고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다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놀라운 영적인 체험을 하게 됩니다.
눈물, 콧물 흘리면서 회개하고 새로운 삶을 결단합니다.
이제 온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습니다. 그렇게 기쁠 수가 없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새로운 삶을 시작하니, 건강도 회복하고 경제적 어려움도 극복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제 살만해 지면, 그 구원의 기쁨은 온데 간데 없어 지고 예전의 생활로 되돌아가 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어쩌면 이것은 자연스런 인간의 모습인지 모르겠습니다.
요한계시록2장에 보면 에베소 교회에 대한 내용이 나옵니다.
이들은 신앙의 박해를 잘 참고 견뎠고,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으며,모든 거짓된 것들을 드러내었으며, 나름대로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샌가 그들은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책망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예전에 받았던 그 은혜를 잘 간직하고 있습니까?
아니면, 아주 까마득한 옛날 일처럼 다 잊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육지처럼 건너게 된 것을 잊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길갈에 기념 돌을 세우도록 명령하고 계십니다.
5절-7절을 읽습니다.
5절 “그들에게 이르되 요단 가운데로 들어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의 궤 앞으로 가서이스라엘의 지파 수대로 각기 돌 한 개씩 가져다가 어깨에 메라.
6절 이것이 너희 중에 표징이 되리라 후일에 너희의 자손들이 물어 이르되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 하거든
7절 그들에게 이르기를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나니 곧 언약궤가 요단을 건널 때에 요단 물이 끊어졌으므로 이 돌들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영원히 기념이 되리라 하라 하니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사건을 경험하지 않은 후대에 자손들이 ‘이 돌들은 무슨 뜻이냐?’고 묻거든 요단 물이 여호와의 언약궤 앞에서 끊어졌던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려주어 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하게 하라고 하십니다.
기억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신명기를 읽어보면 수도 없이 기억하라는 말씀이 나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신5:15 “너는 기억하라. 네가 애굽 땅에서 종이 되었더니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강한 손과 편 팔로 너를 거기서 인도하여 내었느니라.”
신8:2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년 동안에 너로 광야의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아니 지키는지 알려 하심이라.”
신24: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하노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를 기억하기 위해서 매년 유월절을 철저하게 지킵니다.
하나님의 역사와 그 은혜를 기억할 때, 늘 감사할 수 있고 찬양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일제 36년간의 치욕스런 역사적 경험과 8.15광복절의 감격 그리고 6.25전쟁의 참화 그리고 4.19와 5.16, 12.12와 5.18 등 숫자만 보아도 그 역사적 사건이 무엇인지 알 수 있는 사건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이런 것들을 통해서 우리는 너무나 뼈저린 경험들을 했었습니다.
우리가 만일 이런 경험들을 잘 기억하고 그 역사적 교훈을 마음에 새긴다면 우리는 훨씬 더 겸손하고 풍성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의미와 교훈을 너무나 쉽게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념일을 지키는 이유는 어디에 있습니까?
잊어버리기 쉽기에 그것을 잘 기억하고 마음에 새기자는데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목양교회는 47년 전에 노량진에 세워졌는데, 대치동 시대를 넘어, 수지시대를 열기까지 감격스런 일만 아니라 생각만 해도 눈물이 나는 일들을 경험해 왔습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그러한 과거를 그냥 잊어버리고 만다면 그 소중한 경험들이 무슨 유익이 되겠습니까?
기쁜 일은 기쁜 일대로, 고통스런 일들은 고통스런 일대로 우리는 잘 기억하면서 거기에서 좋은 역사적 교훈을 얻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데 좋은 밑거름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프로 바둑기사와 아마추어가 다른 점은 복기(復棋)하는 능력에 있다고 합니다.
프로 기사가 두는 바둑 한 판은 보통 400여수에 이릅니다.
그런데 프로기사들은 시합이 끝나고 나면
자기가 두었던 바둑을 처음부터 끝까지 정확하게 복기할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상대방이 둔 바둑알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복기를 합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프로기사들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프로기사들은 바둑을 둘 때 결코 의미 없는 돌은 놓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그 의미를 따라가다 보면 복기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에도 고스란히 적용이 됩니다.
우리가 몇 년을 살아왔든지, 의미 있게 살았던 시간들은 복기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런 생각 없이, 의미 없이 살았던 시간들은 복기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복기할 수 있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수도사에게 물었습니다.
“수도사에게 제일 중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저는 수도사가 될 때 하나님께 서약한 것을 매일 다짐하고 지키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성희, [수도원 영성의 향기] 100-101쪽)
서원이란 하나님과 하는 약속입니다.
수도사들은 자신을 하나님께 바칩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이 수도 서원은 깨지게 되거나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래서 수도사들은 수도 서원을 매일 아침 기도회 때마다 되풀이 한다고 합니다.
평생 동안 가난하게 살겠다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가난하게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평생 동안 순결하게 살겠다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순결하게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평생 동안 순종하며 살겠다가 아니라 오늘 하루를 순종하며 살겠다고 다짐합니다.
한 번의 회심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의 서원은 누구에게나 어렵습니다.
한 번의 다짐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생의 다짐은 누구에게나 짐이 됩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날마다 하는 다짐은 평생을 지킬 수 있게 합니다.
우리는 모두 한계를 가지고 있는 인간이기에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는 습성이 있습니다.
또 어떤 것은 잊어버려야 할 것들도 있습니다.
아픈 기억들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지게 됩니다.
원한도 시간이 지나면 조금씩 사그러들게 됩니다.
그런 점에서 잊을 수 있다는 것은 또 다른 축복입니다.
그런 것들은 잊어버려야 살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 교훈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잊어야 할 것은 잊지 못하고, 잊지 말아야 할 것을 잊는 것입니다.
원한은 마음속에 꼭꼭 간직하고 있으면서 은혜는 헌신짝처럼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그 반대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원한, 상처, 슬픔을 주님께 말씀드리고 잊어버리기 바랍니다.
그리고 은혜는 꼭꼭 기억하고 마음속에 간직하시기 바랍니다.
자기의 옛 경험을 오늘의 교훈으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은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러나 자기 부모님의 경험을 자기의 교훈으로 삼을 수 있다면 위대한 사람입니다.
역사를 통해서 배우는 사람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요단강을 건넌 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능력이었습니다.
기념 돌을 세우게 하신 것은 그 후손들까지도 그것을 기억하게 하려는 것입니다.
비록 자기의 경험은 아니지만 교육을 통해 후손들을 가르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식들에게 신앙교육을 잘 시키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잊었기에 우상을 섬기는 죄를 범하게 됐습니다.
그 결과는 나라가 멸망을 당하였고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신명기 30:1-3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네게 진술한 모든 복과 저주가 네게 임하므로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께 쫓겨 간 모든 나라 가운데서 이 일이 마음에서 기억이 나거든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날 네게 명한 것을 온전히 따라서,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당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마음을 돌이키시고 너를 긍휼히 여기사 네 포로를 돌리시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흩으신 그 모든 백성 중에서 너를 모으시리라.”
무슨 말씀입니까?
혹시나 은혜를 잊어버려 저주를 받게 되었다고 할지라도 다시 기억하고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마음을 돌이키시고 포로를 돌리신답니다.
아직도 마음으로부터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한 분들이 계십니까?
이 시간 주님이 돌아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은혜를 기억하고,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시기 바랍니다.
은혜를 잊어버리는 사람은 배은망덕한 사람이 됩니다.
그러나 그 은혜를 잊지 않고 잘 기억한다면 그 사람은 보다 영원한 가치를 누리며 살게 될 것입니다.
우선 부모님의 은혜, 선생님의 은혜 등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우리 하나님이 베풀어주신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람은 늘 감사하고, 찬송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이러한 삶을 살게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길갈에 영원한 기념이 될 돌을 세우라고 하십니다.
이제 우리 자손들에게 그 돌의 의미를 잘 전달해야 하겠습니다.
우리의 경험이 자손들에게 교훈이 되도록 말입니다.
그래서 대대손손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위대한 믿음의 가문을 세우길 바랍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