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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사리의 맛과 향
김선구
고사리! 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이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로 시작하는 성삼문의 시 한수이다. 중국의 상나라가 망하자 백이와 숙제가 망국의 한을 품고 수양산에 들어가 고사리를 캐어 먹고 살았다는 고사가 전해 내려오기 때문이다. 깊은 산속에서 불사이군(不事二君)의 충신들에게 양식이 되어주었던 고사리의 존재가 사뭇 정답게 느껴진다. 박지원의 열하일기에 따르면 조선시대 관리들이 중국에 사신으로 갔다가 백이숙제의 묘를 지나게 될 때면 한 끼 식사는 반드시 고사리를 찬으로 삼아 먹었다고 했으니 충의를 숭상했던 우리 조상들의 얼을 되새겨 보게 한다.
고사리는 산야에 널리 자생하는 식물이다. 홀씨로 번식하고 자생력이 강하여 주변에 널리 산재해 있어서 일찍부터 식재료로 개발하여 이용하여왔다. 중국에서는 어떤지 모르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산채로서 가장 친숙한 음식물이이 아닌가 생각한다. 백이와 숙제의 고사가 아니더라도 산 속 휴양지에서 산채비빔밥을 시켜서 먹다보면 고사리에 대하여 정갈스러움과 남모를 정취를 느끼게 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예부터 고사리를 많이 먹었다. 북한지방에서는 “고사리는 귀신도 좋아 한다”는 속담이 있다고 하였다. 그만큼 고사리를 많이 애용했다는 뜻이리라. 추운지방일수록 고사리를 말려서 저장해 두면 그 효용가치가 더 컸을 것이다. 때문에 고사리는 조상의 제사상에 반드시 빼놓을 수 없는 음식으로 정착 되었다. 우리가 제사를 지낼 때면 향을 피워 조상의 혼령을 불러들인 후 모사접시에 얹은 고사리에 술을 부어 지하의 혼백에게 알리는 순서로 진행된다. 고사리가 흙을 대신하는 전령인 셈이다. 이러한 예법이 고사리를 상용했던 습관에서 유래 되었지 않았나? 생각해보게 된다.
초등학교 시절 나는 고사리를 꺾으러 산야를 누볐다. 학교에서 야외수업삼아 단체로 고사리를 꺾으러 가기도 하였다. 배고프고 춥던 시절이라 점심을 굶는 학생들에게 고사리라도 꺾어다가 식량에 보태라는 처사였는지 모르겠다. 제주도 한라산 중산간지 산야에는 온통 고사리 군락지였다. 마대 하나씩 울러 메고 고사리 밭을 향하여 행진하였다. 고사리 꺾는 날은 날씨가 포근한 시절이어서 야외소풍이나 마찬가지였다. 밟히는 것이 고사리지만은 먹을 수 있는 고사리는 눈여겨보아야 발견할 수 있었다. 고사리가 커서 잎이 펼쳐져 버리면 세어서 먹을 수 없다. 아직 덜 세어서 먹을 수 있는 개체만 채취해야하니 눈을 부릎뜨고 열심히 찾아 헤매었다.
고사리를 한 포대 짊어지고 집에 와서 펼쳐 놓으면 대청마루가 그득하였다. 비가 내려서 밖에 내다널지 못하면 집안 전체가 고사리로 이불을 펴놓은 듯하였다. 이 때 고사리반찬을 참 많이 먹었다. 말리기 전 푸른색의 고사리를 삶으면 아주 부드러워진다. 색깔도 푸른빛을 띄우고 있어 매우 정갈하게 보인다. 이것을 나물로 무쳐 먹으면 맛이 별미였다.
그러나 반찬이 있다 해도 주식인 밥이 없으면 무슨 맛이겠는가? 쌀이 모자라면 고사리의 맛도 반감하였다. 이 때 고사리 범벅이란 것을 먹어보았다. 범벅이란 가루로 풀죽을 쑤어서 거기에 야채를 넣어 비빈 것이다. 제주 아낙네들이 밭에서 종일 일하고 와서 저녁 늦게 저녁밥을 준비하려니 힘들고 피곤하였다. 그래서 단시간 내에 요기할 수 있도록 개발한 음식이다. 보통 보릿가루를 이용하였으며 메밀가루를 사용하여 된 죽을 만들었다. 여기에 뭉근히 삶은 고사리를 섞어 넣어 비비면 고사리 범벅이 되었다. 맛은 별로여서 특별한 기억이 없다. 가난했던 시절에 먹던 음식으로 기억될 뿐이다.
내가 대학생시절이었다. 소의 고사리 중독에 대하여 연구하는 프로젝트를 접한 일이 있었다. 소가 고사리를 먹고 사고를 당한다는 것은 처음 듣는 일이었다. 그 후 고사리에 독성이 있어서 생으로 섭취하면 빈혈증을 일으켜 심하면 죽을 수도 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나 야생동물은 독성이 있는 식물을 기피하는 예지능력이 있다. 신토불이의 개념은 사람보다 동물세계에 더 발달하였다. 우리나라 토종 한우들도 이러한 예지능력이 있어서 고사리를 먹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에서 도입한 소들이 고사리를 먹고 탈을 일으켰다.
겨울철이 지나면 봄비가 촉촉이 내려 대지를 적셔준다. 그 중 가장 먼저 내리는 비가 고사리마이다. 비가 내린 후 가장 먼저 돋아나는 것이 고사리 순이다. 특히 불 탄 자리에 뾰족하게 솟아오르는 고사리의 새 순은 그 모습이 어린애의 여린 손모습과 비슷하다. 이른 봄 방목지에서 풀이 모자라 허기진 소들은 이 어린 순을 뜯어먹고 사고를 당하였다. 그러므로 고사리는 독성을 제거하고 먹어야한다. 고사리를 푹 삶아 줌으로써 이러한 독성들이 파괴되고 쓴맛이 빠져나간다. 이러한 지혜를 우리 선친들이 일찍 터득했으니 감탄할 일이다.
고사리는 그 독성 때문인지 모르겠으나 한방에서는 성질이 차가운 음식으로 분류하였다. 찬 음식은 양기를 빼앗아 간다. 그래서 고사리를 먹으면 정력이 감퇴된다는 속설이 있다. 「본초습유」라는 고서에서 “고사리를 많이 먹으면 양기가 사라지고, 백이와 숙제는고사리를 먹고 요절하였다”라고 적고 있으니 빈 말은 아닌 모양이다. 그래서 절집에서 수행하는 스님들에게는 고사리가 안성맞춤인 음식이 되었다. 스님들에게 정력이 왕성해지면 수행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요새는 고사리가 강장식품으로 등장하였다. 내재한 영양소가 소개되고 각종 요리법이 개발되었다. 또한 고사리를 인위적으로 재배하여 생산하고 판매한다. 이제 고사리는 좀 더 가까이 우리 곁에 다가와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아직도 한라산 기슭에는 고사리가 산재해있어 아낙내들이 고사리를 꺾으러 간다고 들었다. 봄나물은 처녀들이 나서서 캐어야 제 맛이 나는지 모르지만 한라산 고사리는 할머니들이 손을 거쳐야 진가가 난다. 고사리를 삶고 말려서 정성으로 잘 다듬어 두었다가 조상님 제사상에 올리라고 도시에 사는 자녀들에게 전해준다. 나의 어머니도 살아계셨을 때 그랬다. 요새는 연로하신 장모님이 말린 고사리를 보내준다. 말린 고사리를 물에 불리면 열배정도는 부풀어 오른다. 받을 때는 하찮게 보이지만 먹을 때 더 큰 고마움을 갖게 해준다. 얼마 전 고향집을 방문하였다. 이웃 할머니가 말린 고사리를 한 움쿰 비닐에 싸서 주었다. 귀한 선물이었다. 사실 고사리에 특별한 맛이나 독특한 향을 기대할 수는 없다. 그러나 거기에서 고향의 맛과 인정의 향을 느낄 수 있었다. (2015. 3. 20)
첫댓글 고사리- 저도 많이 생각하고 있었던 산채 봄나물입니다. 담백한 맛으로 젯상에 빼놓을 수 없는 나물이지요. 백이 숙제의 충절을 표상하는 나물로도 알려진 고사리야말로 산채중 몇 손가락안에 들 정도로 소비가 많은 편이지요. 요즘은 고사리도 인공으로 노지에서 재배하는 이들이 많아졌습니다. 화학비료를 써 그런지 야생의 진미를 따르지 못합니다. 많이 드면 양기가 부족해진다는 의학적 근거가 있다면 이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고사리에대한 몇 가지 새로운 공부를 하였습니다. 잘 읽고 갑니다.
고사리는 푹삶아서 먹으면 독성도 없고 섬유질이 많아서 든든한 느낌이 듭니다. 요즘 산림이 울창하여 귀한 산나물 입니다. 우리 고향에서는 제배도 합니다.제사가 많아서 많이 구입하여 보관하고 있습니다.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어쩌다가 지리산쪽으로는 고사리채취했지만 한라산은 경험이 없습니다.
4월초에 석염님 제보에 따라 숨어있는 제주도 고사리수색을 하고 오겠습니다.
기대는 하지마십시오.
어쩌다 재수좋으면
사진 한장 구할려나...~~~
고사리에 대해서 상세하게 알게 되었네요. 감사합니다
고사리를 잘 알게되었습니다,,감사합니다. 최상순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