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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그립바 왕 앞에 선 바울.
(사도행전 25장)
지팡이가 무겁다고
맹인이 지팡이를 버리고 가겠습니까?
좀 힘들어도 믿음을 버리고 가는 어리석은 인생이 되지 맙시다.
-- * --
교회에서의
신앙생활보다는 세상 속에서
믿는자로 존재한다는 것이 무척 힘든 문제가 아니겠습니까?
오늘을 사는 우리의 문제는
모르는데 있는 것이 아니라
알면서도 아는 바대로 행동하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즉 나의 행동이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지배
받는 것이 아니라 주위 여건과 상황에 의해 지배받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에 대해 불안하게 되고 결국 스스로의 힘과
노력으로 자신을 지키려고 하기 때문에 주변 세력의
눈치를 보게 되고 마음과는 다른 행동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알면서도 행동하지 못하는
자신의 모습을 많이 발견할 것입니다.
그것은 자신에게 닥칠 결과에 대해 계산을 하기 때문입니다. ‘
이렇게 하면 이런 결과가 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아는 바대로 옳다고 생각되는 쪽으로 행동하지
못하고 때로 벨릭스와 베스도처럼 타협을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가야할 길이 분명히 정해져있습니다.
나의 유익이냐? 그리스도의 유익이냐?‘세상에 내 생존기반을
만드느냐? 천국을 내 기반으로 삼고 살아가는 것이냐?’입니다.
1.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오라는 종교지도자들.
"베스도가 도임한 지 삼일 후에 가이사랴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니 대제사장들과 유대인 중 높은 사람들이 바울을 고소할새"
(사도행전 25 :1-2)
벨릭스 후임으로
부임한 베스도 총독은 부임한
다음 날 하루를 쉬고 사흘째 되는 날에 예루살렘을 방문한 것입니다.
새로운 곳에 처음 부임한 베스도로서는
자기 관할 구역의 실태를 하루라도 빨리 파악
하는 것과 지역의 유지들과 친밀한 관계를 여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예루살렘이 유대의 수도이자 종교적
중심지였으므로 그곳부터 방문한 것입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가자 예루살렘에 대제사장들과 유력한 자들은 바울을 고소하였습니다.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이때의 대제사장은 파비의 아들
이스마엘이었습니다. 헤롯 아그립바 2세가 벨릭스 통치 말기에
이스마엘로 하여금 아나니아의 대제사장직을 계승하게 하였습니다.
'대제사장들'이라는 복수형은 전임자들까지도
포함하여 나타내는 것입니다. 본래 대제사장은
한 명이고 종신제이며 자손에게 계승되었으나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면서부터는 권력자들에 의해 자주 바뀌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직 대제사장들도
동일한 명칭으로 불리었고 그 위치가 존중
되었으므로 통상 이들을 같이 부를 때는 대제사장들이라고 불렀습니다.
"베스도의 호의로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옮겨
보내기를 청하니 이는 길에 매복하였다가 그를 죽이고자 함이러라"
(사도행전 25 :3)
그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하기를 요청하였습니다. 그들은
가이샤라에서 예루살렘으로 호송하는 도중에 바울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들은 새로 부임한 베스도가
전후 사정을 모르는 것을 악용하여 다시 바울에
대한 재판을 청구하되 예루살렘에서 재판을 열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 요청이 받아들여져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데려올 경우 자객을
매복(埋伏)시켰다가 중간에서 바울을 죽이려는 음모를 꾸민 것입니다.
"베스도가 대답하여 바울이 가이사랴에 구류된 것과 자기도 미구에
떠나갈 것을 말하고 또 가로되 너희 중 유력한 자들은 나와 함께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만일 옳지 아니한 일이 있거든 송사하라 하니라"
(사도행전 25 :4-5)
베스도는 이들의 요청을 거절합니다.
바울이 가이샤라에 구류되어 있고 자신도
멀지 않아 가이샤라를 떠날 것이니 가이샤라에 와서 고소하라고 말합니다.
2. 가이사랴에서 바울에 대한 고소.
"베스도가 그들 가운데서 팔 일 혹 십 일을 지낸 후
가이사랴로 내려가서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고 바울을 데려
오라 명하니 그가 나오매 예루살렘에서 내려온 유대인들이 둘러
서서 여러가지 중대한 사건으로 송사하되 능히 증명하지 못한지라"
(사도행전 25 :6-7)
팔일 후에 베스도는
가이사랴에 가서 바울을 재판하고자 했습니다.
베스도가 재판장의 자리에 앉음으로써 공식적인 재판이 시작되었습니다.
이로써 바울은 이번 사건으로 인하여 산헤드린, 벨릭스 총독,
베스드 총독의 세 번째 재판을 받게 되었습니다. 바울은 증거도
없는 억지 주장에 대해 자신의 무죄함을 또다시 증명해 보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여러 가지 중한 죄목으로 송사(訟事)하였으나
단 한 가지도 능히 증명하지 못하였습니다. 터무니없는
사실로써 모함하려 하니 증인이 없는 것은 더 말할 나위가 없었습니다.
3. 예루살렘에서 재판 받을 것인가를 묻는 베스도 총독.
"바울이 변명하여 가로되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내가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아니하였노라
하니 베스도가 유대인의 마음을 얻고자 하여 바울더러 묻되 네가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사건에 대하여 내 앞에서 심문을 받으려느냐"
(사도행전 25 :8-9)
바울은 유대인의 율법이나 성전이나 가이사에게나
도무지 죄를 범하지 않았다고 자신의 무죄를 증거합니다. 바울은
지금까지 자기에게 제기된 모든 고발을 종합하여 반박하고 있습니다
.
바울이 '가이사에게' 대하여 죄가
없다는 말은 유대인들이 바울을 가리켜
반란자, 또는 소요를 일으키는 자라고 말한 것에 대해 죄가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까지
진행된 재판 과정에서
소송을 제기했던 유대인들의 고소가 사실이 아닌 것으로 증명되었습니다.
이제 베스도는 바울에게 무죄
선언을 한 후 즉시 석방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베스도는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다시 심문을 받겠느냐고 묻습니다.
베스도가 이런 제의를
하는 것은, 만약 그가 바울을
석방할 경우 유대 지도자들의 반감을 살 가능성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부임 초부터
유대의 지도자들과 부딪쳐 그들의 협조를
기대할 수 없게 된다면 그의 통치는 상당한 어려움에 직면하게 될 것입니다.
더구나 당시에는 총독 관할 지역의 주민들이
총독에 대한 불평을 황제에게 고할 수 있었습니다. 그럴 경우
고발을 당한 총독은 정치적으로 치명타를 입게 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바울이 가로되 내가 가이사의 재판 자리 앞에 섰으니 마땅
히 거기서 심문을 받을 것이라 당신도 잘 아시는 바에 내가
유대인들에게 불의를 행한 일이 없나이다 만일 내가 불의를
행하여 무슨 사죄를 범하였으면 죽기를 사양치 아니할 것이나
만일 이 사람들의 나를 송사하는 것이 다 사실이 아니면 누구든지
나를 그들에게 내어 줄 수 없삽나이다 내가 가이사께 호소하노라 한대"
(사도행전 25 :10-11)
바울이 자신은 지금 로마 황제의
법정에 서 있지 예루살렘 법정에
있지 않다고 합니다. 자신은 로마 법정에서 재판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각하께서도 잘 아시는 대로, 자신은 유대 사람에게
조금도 잘못한 것이 없다고 합니다. 만일 자신이 나쁜 짓을 저질러서,
사형을 받을 만한 무슨 일을 하였으면, 죽는 것을 마다하지 않겠다고 합니다.
자신을 고발하는 이 사람들의
고발 내용에 아무런 근거가 없으면,
어느 누구도 자신을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에게 넘겨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의 재판을 로마황제에게
상소합니다. 바울은, 베스도가 자신을 예루살렘의 법정에 세우려
하는 의도를 보이자 즉시 가이사에게 항소(抗訴)하기로 마음을 먹었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심각한 음모가 기다리고 있음을 능히 알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스도가 배석자들과 상의하고
가로되 네가 가이사에게 호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 하니라"
(사도행전 25 :12)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에 호소하는 내용을 배석자들과
상의하였습니다. 베스도가 무죄한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바울의 항소를 받아
들인 것은 유대인들과의 관계 문제가 그에게 많이 작용하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이 불편한 재판에 대한 판결을 황제에게 넘김으로써
자신이 정치적으로 손상을 입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그는 바울이 가이사에게 항소하였으니 가이사에게 갈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4. 가이사랴를 방문한 아그립바 왕.
"수일 후에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가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 날을 있더니 베스도가 바울의 일로 왕에게 고하여 가로되
벨릭스가 한 사람을 구류하여 두었는데 내가 예루살렘에 있을 때에
유대인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소하여 정죄하기를 청하기에
내가 대답하되 무릇 피고가 원고들 앞에서 고소 사건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가 있기 전에 내어 주는 것이 로마 사람의 법이 아니라 하였노라"
(사도행전 25 :13-16)
수일 후에 아그립바왕과 버니게가
베스도 총독에게 문안하러 가이샤라로 왔습니다.아그립바는 매우
친로마적이어서 유대인들이 반로마 감정을 가지지 않도록 공작을 했습니다.
그는 66-70년에 걸쳐
있었던 전쟁기간에는 더욱
철저히 로마에 충성했던 관계로 전쟁 후 더 많은 영토를 부여받았습니다.
이처럼 아그립바 왕은 로마와의 밀착된
관계 속에서 특혜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새로운 로마
총독이 부임할 때마다 예방(禮訪)하여 경의를 표하는 것을 잊지 않았습니다.
버니게 여인은 아그립바 2세의 한 살 아래 누이이자 벨릭스
전(前) 총독의 처인 드루실라의 언니입니다. 그녀는 일찍이 철학자
필로의 조카인 마르쿠스와 약혼한 적이 있었으나 결혼을 하지는 못했습니다.
아그립바 왕은 아그립바 2세를 말합니다.
그는 예수님 출생 당시의 왕이었던 헤롯 대왕의
증손이며 야고보를 죽인 헤롯 왕 곧 헤롯 아그립바 1세의 아들입니다.
그리고 아그립바 왕과 함께 온
버니게란 여인은 왕과 친 남매지간으로 서로
부부관계를 맺고 있는 처지로써 도덕적으로 지탄 받을 만한 인물인 것입니다.
이 자가 아버지 아그립바 1세가 죽은 후,
약 10년 뒤인 주후 53년경부터 그의 숙부가 되는 칼시스의
헤롯이 다스렸던 칼시스 지방과 팔레스틴의 북부쪽을 다스려 왔습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벨릭스가 가두어 둔 사람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베스도가 예루살렘에 갔을 때에, 유대 사람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그를 고발해, 총독에게 유죄판결을 청했다고 합니다.
베스도는 자기가 겪은 사건의 줄거리를 아그립바에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단지 바울을 고소만
한 것이 아니라 재판도 시작하기 전에 유죄 판결을 요구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들에게 로마 사람의 관례로서는,
피고가 원고를 직접 대면해서, 그 고발한 내용에 대하여 변명할 기회를
가지기 전에는, 그 사람을 넘겨 주는 일이 없다고 대답하였다고 말합니다.
유대 지도자들의 억지 주장과 총독 베스도의 법적 공정성이
대조됩니다. 로마의 사법 관행은 법을 철저히 준수하는 것이며,
피고는 법정에서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부여받을 수 있도록 규정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저희가 나와 함게 여기 오매 내가 지체하지
아니하고 이튿날 재판 자리에 앉아 명하여 그 사람을 데려 왔으나
원고들이 서서 나의 짐작하던 것같은 악행의 사건은 하나도 제출치
아니하고 오직 자기들의 종교와 또는 예수라 하는 이의 죽은 것을
살았다 고 바울이 주장하는 그 일에 관한 문제로 송사하는 것뿐이라"
(사도행전 25 :17-19)
그래서 고소한 자들이
가이샤라에 같이 왔으므로, 베스도는 조금도
지체하지 않고, 그 다음날 재판석에 앉아서,바울을 불러오게 하였습니다.
원고들이 일어나서
그를 고발할 죄목을
늘어놓았지만, 베스도가 짐작한 그런 악한 일은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들이 바울과 맞서서 싸우는 몇몇
문제점은, 자기네의 종교와 또 예수라는 어떤
죽은 이에 관한 일인데, 바울은 그가 살아 있다고 주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5. 가이사의 판결 받기를 호소한 바울.
"내가 이 일을 어떻게 사실할는지 의심이 있어서 바울
에게 묻되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이 일에 심문을 받으려느냐
한즉 바울은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자기를 지켜 주기를 호소
하므로 내가 그를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지켜 두라 명하였노라 하니"
(사도행전 25 :20-21)
베스도는 이 문제를 어떻게
심리해야 할지 몰라서, 바울에게, 예루살렘으로 가서
이 사건으로 거기에서 재판을 받기를 원하는지를 물어 보았다고합니다.
그가 바울을 석방하지 않고
머뭇거린 것은 무지탓도 있었겠지만 그 배후에는
고소자들 앞에서 바울을 무죄로 선언하기를 원치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바울이 황제의 판결을 받도록,
그대로 갇혀 있게 하여 달라고 호소하므로, 베스도가
그를 황제에게 보낼 때까지, 그를 가두어 두라고 명령하였다고 합니다.
6. 바울의 말을 듣고자 하는 아그립바 왕.
"아그립바가 베스도더러 이르되 나도 이
사람의 말을 듣고자 하노라 베스도가 가로되 내일 들으시리이다 하더라"
(사도행전 25 :22)
아그립바가 베스도에게 자신도 그 사람의
말을 직접 들어 보고 싶다고 말합니다. 아그립바가 바울에
관하여 자세히 알고 있지는 못하지만 상당한 호기심을가지고 있었습니다.
베스도가 내일, 그의 말을 들어 보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크게 위의를 베풀고 와서 천부장들과 성중의 높은
사람들과 함께 신문소에 들어오고 베스도의 명으로 바울을 데려오니"
(사도행전 25 :23)
이튿날, 아그립바와 버니게가 위엄을
갖추고 나와서, 고급 장교들과 그 도시의 요인들과 함께
공청실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베스도의 명령으로 바울을 끌어냈습니다.
아그립바 남매를 필두로 하여 천부장을
비롯하여 성중의 유력 인사들이 뒤따라 들어오는
화려한 행렬은 이 날의 청문회가 얼마나 비중있는 것인가를 말해줍니다.
"베스도가 말하되 아그립바 왕과 여기 같이 있는
여러분이여 당신들이 보는 이 사람은 유대의 모든 무리가
크게 외치되 살려 두지 못할 사람이라고 하여 예루살렘에서와
여기서도 내게 청원하였으나 나는 살피건대 죽일 죄를 범한일이
없더이다 그러나 저가 황제에게 호소한고로 보내기를 작정하였나이다"
(사도행전 25 :24-25)
그 때에 베스도가 아그립바 왕, 그리고
여기 우리와 함께 계신 여러분에게 말합니다. 이 사람은
예루살렘에서나 여기에서나, 모든 유대 사람이 그를 이 이상 더 살려
두어서는 안 된다고 소리치면서, 자신에게 청원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베스도는 그가 사형을
받을 만한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습니다. 베스도가 바울의 무죄를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판결의 지연이 바울을 로마로 향하도록 하는 원인이 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며 예수님이
바울은 로마에서 증언해야한다고 하신 말씀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스스로 황제께 상소하였으므로,
자신은 바울을 황제에게 보내기로 작정하였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바울을 사도로 부르신 주님의 섭리임에 틀림없는 것입니다.
6. 황제에게 보낼 죄목을 찾는 베스도.
"그에게 대하여 황제께 확실한 사실을 아뢸 것이
없으므로 심문한 후 상소할 재료가 있을까 하여 당신들 앞 특히
아그립바 왕 당신 앞에 그를 내어 세웠나이다 그 죄목을 베풀지
아니하고 죄수를 보내는 것이 무리한 일인 줄 아나이다 하였더라"
(사도행전 25 :26-27)
베스도는 그와 관계되어 있는 일을 황제께
써 올릴 만한 확실한 자료가 없으므로, 여기에서
그를 심문해서, 내가 써 올릴 자료를 얻을까 하는 생각으로 그를
여러분 앞에, 특히 아그립바 왕 전하 앞에 끌어다가 세웠다고 합니다.
베스도의 난처한 입장이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는 바울의 무죄를 알고 있으면서도 유대인들의
비위를 거스리지 않기 위해 엉뚱한 제의를 하였다가
바울의 항소를 받았고 그것을 수락하지 않을 수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울을 최고 법정인 로마에 보낼 때
함께 보내야 할 혐의 사실이 확실치 않다는 것입니다. 황제가
보아서 재판의 필요성을 인정할 만한 상소 재료도 없이 바울을
올려 보낸다면 그에게는 무능력자라는 낙인과 문책이 있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그는 상소(上訴)
재료를 찾기 위하여 이 청문회를
열기로 한 것이며 아그립바의 심문에 기대를 걸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아버지 하나님
정당한 사유가 있어도 합법적인 절차를 밟아야 할 터인데
하물며 정당한 이유도 없이 하나님의 귀한 종을 살해 하려는
음모를 꾸미고 있는 유대 지도자들의 악행을 봅니다.
이방인 총독 마저도 죄 없다고 판단한 사도 바울을
살려두지 못할 자라고 외쳐대는 유대인들을 보면서
우리의 남은 생애는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나 사람 앞에서
양심에 꺼리낌이 없는 삶을 살아야 되겠다는 다짐을
하게 하심을 감사드립니다.죄수의 몸으로 법정에서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진리를 증거할 기회를 열어주시고
죽음의 위기로부터 사도 바울을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고 남은 생애를 담대한 믿음으로 승리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2024. 8. 10. -샬롬- 예수님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