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대승(1527-1572)의 본관은 행주. 자는 명언(明彦), 호는 고봉(高峯)·존재(存齋). 아버지는 진(進)이다. 조선 유학의 전개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 주자학자이며, 지치주의적 이념으로 왕도정치를 펼치려 했다. 그의 주자학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사단칠정론은 이황·정지운·이항 등과의 논쟁을 통하여 체계가 이루어졌다. 그는 조광조의 지치주의 사상을 이어받아, 전제주의 정치를 배격하고 민의에 따르고 민리를 쫓는 유교주의적 민본정치·왕도정치를 이상으로 삼았다.
1558년 이황과의 만남은 사상 형성의 커다란 계기가 되었다. 그뒤 이황과 13년 동안 학문과 처세에 관한 편지를 주고받았다. 그 가운데 1559년에서 1566년까지 8년 동안에 이루어진 사칠논변은 조선유학사상 깊은 영향을 끼친 논쟁이다. 기대승은 정몽주(鄭夢周)·길재(吉再)·김숙자(金叔滋)·김종직(金宗直)·김굉필(金宏弼)·정여창(鄭汝昌)·조광조(趙光祖)·이언적(李彦迪)·기준 등으로 이어지는 학통을 계승하고 있다. 그의 주자학설 가운데 중요한 위치를 점하는 사단칠정론은 이황·정지운·이항 등과의 논쟁을 통하여 체계가 이루어졌다. 제자로는 정운룡(鄭雲龍)·고경명(高敬命)·최경회(崔景會)·최시망(崔時望) 등이 있다. 1590년(선조 23) 종계변무의 주문(奏文)을 쓴 공으로 광국공신(光國功臣) 3등에 덕원군(德原君)으로 추봉되고, 이조판서로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