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에 대한 오해
인생을 좋게 보는 것을 ‘긍정’이라 하는데, 학문적으로는 틀린 것이다. 인생에 ‘극단적인 긍정(Positive Pole)’과 ‘극단적인 부정(Negative Pole)’은 없으며, 그냥 삶이 있을 뿐이다. 삶은 긍정과 부정으로 양분할 수 없는데, 살아간다는 것 자체가 긍정이기 때문에 부정적인 삶은 존재하지 않는다. 행복하지 않은 삶은 부정적인 것이 아니고, 삶 자체가 없는 것이다.
고통 속에 신음하는 환자의 ‘살아 있는데 살아 있는 것 같지 않다’는 말이 그런 뜻이다. 기질과 태도가 밝지 않더라도 ‘잘 살아야겠다. 의미 있고 가치 있게 살아야겠다’라는 마음을 갖는다면 긍정적인 삶을 살지는 않더라도 긍정적인 사람이 되어 간다. 사는 것이 힘들어 죽을 것만 같거나, 가진 것이 없어서 힘들더라도 어떻게든 버텨야 행복을 이야기할 수 있다. 죽고 나면 행복이고 뭐고 다 소용이 없다.
베트남전에서 포로로 잡힌 사람 가운데 곧 풀려날 거라고 믿었던 긍정적인 사람들은 상심해서 죽어갔고, 팔굽혀펴기 하며 묵묵히 상황을 받아들였던 사람들은 살아남았다. 삶에는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이 있지만, 긍정한다는 것은 수용한다는 것이다. 긍정적으로 보지 않더라도 사실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고 받아들이면 삶이 나아진다. 포로수용소에서 가장 먼저 죽은 사람은 비관적인 사람들이고, 그 다음은 낙관적인 사람들이고, 끝까지 살아남은 사람은 현실을 냉정하게 직시하고 희망을 버리지 않은 채 대책을 모색하던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지나치게 긍정만을 추구하거나, 긍정만이 해결책이라고 믿어서는 안 된다.
긍정과 부정은 저울에 올려놓고 균형 잡을 수 있는 물건 아니기 때문에 절묘한 감각을 발휘하며 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에게 삶은 이미 그 자체로 너무 무겁다. 삶 자체는 부정적이지 않은데도 자신의 삶을 부정적으로 보면 고통을 받는다. 우울증은 비교적 재발률이 높은데, 얼마나 심한 우울증에 걸렸느냐가 재발의 척도는 아니다. 긍정적인 요소가 적거나 사고의 틀이 부정적이면 재발률이 높고, 치료 기간도 길다. 부처님은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중생은 결과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지나치게 성취만을 강조하지 않고, 부처님처럼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면 힘든 일들이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대한민국 헌법 전문에 보면, 국가가 하는 일은 ‘국민의 안전’, ‘국민의 자유’, ‘국민의 행복’ 등 3가지이다. 우리나라는 비교적 안전하면서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행복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주변 사람들에게 긍정주의를 전파하기 위해 행복한 삶을 지향하며 행동하는 긍정주의자들의 모임인 '옵티미스트 클럽(www.optimistclub.co.kr)‘이 있다. 옵티미스트는 다른 목적 없이 긍정 활동만 하는 사람들을 말하는데, 매달 만나서 클럽의 핵심 가치 ABC를 실천한 뒤 이야기를 나눈다. A는 ‘어프리시에이트(Appreciate)’의 앞 자로 감사하고 수용하는 것을 말하고, B는 ‘배러 앤드 배러(Better & Better)’의 앞 자로 발전하고 나아지는 것을 말하며, C는 ‘케어(Care)’의 앞 자로 남을 돕는 것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