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는 자신의 약점을 몰랐다(막14:27-31,66-72)2016.3.20 주낮
-혹시 요즘 이런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예전에는 종종 들리던 소리입니다. 닭 울음 소리
-새벽을 깨우는 닭울음소리입니다. 한 번 들어 보실까요?
(닭울음 소리-녹음)
-그러나 이 소리에 베드로는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닭울음 소리에 통곡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그렇게 의지하고 큰소리 쳤던 것들이 다 무너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아니 자신이 기대하던 욕망,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나는 한 자리 차지하려던 꿈도, 환상도 모조리 산산조각이 나는 순간이었습니다.
-내가 수제자라는 자존심도 다 날아가 버렸습니다. 자신이 붙잡고 있던 것들이 다 사라져 버렸습니다.
“아니? 어떻게 내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할 수 있는가? 내가? 이게 나 베드로란 말인가? 주님이 죽으시는 데까지 쫓아가겠다고 큰 소리를 쳤던 내가, 어떻게 저주하고 모른다고 맹세까지 할 수 있는가? 그런 말이 어떻게 거리낌없이 흘러 나올 수 있는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는가?”
-닭울음 소리에 좌절과 절망, 죄책감이 한꺼번에 휘몰아쳤습니다. 베드로의 모든 것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이 순간을 누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눅 22:61-62 61 주께서 돌이켜 베드로를 보시니 베드로가 주의 말씀 곧 오늘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생각나서 62 밖에 나가서 심히 통곡하니라
-베드로가 나는 예수를 모른다고,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고, 나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사람이라고, 그 순간에 ,그렇게 찬연덕스럽게 부인하고 맹세까지 하는 그 순간에, 주님은 고개를 돌려서 베드로를 보셨습니다. 베드로와 주님의 눈이 마주치고 말았습니다.
-주님의 그 눈빛은 무엇을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혹시? “시몬아, 정말이냐? 나하고 너는 아무런 상관도 없느냐? 내가 너의 발을 씻겨 줬잖아. 성찬식도 했잖아. 그런데 나하고 상관이 없을까? 그러나 내가 미리 말했잖아. 그래, 그래도 괜찮아. 그게 인생이야.”
-도대체 어느 것이 진짜 베드로일까요?
#막14:29 베드로가 여짜오되 다 버릴지라도 나는 그리하지 않겠나이다.
#막14: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사실은 둘 다 베드로일 것입니다.
-다 버릴지라도 나는 안 버리겠습니다. 죽는 데 까지 함께 가겠습니다, 큰소리 치던 모습도 베드로이고, 그럴 자신이 있었어요. 큰 소리 치던 그 순간만큼은 진실했을 것입니다. 자신이 있었어요.
-그러나 죽음 앞에서, 죽음이 왔다 갔다 하는 현장에 서 보니 베드로도 자신도 모르게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며 맹세까지 하고 말았어요. 이것도 역시 베드로였습니다.
-다만 중요한 것은 베드로는 자신에게 이런 약점을 있을 것이란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얼마나 비겁한 존재인지, 얼마나 허약한 존재인지, 큰소리 치면 안되는 존재인지, 몰랐어요.
(예)누구나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있을 때는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내 발등에 불이 떨어지면 장담할 수 없다는 사실을 모르고 사는 경우가 얼마나 많을까요?
-그래서 큰 소리 치는 이들을 보면 참 어리석다는 생각을 금할 수가 없어요. 몰라서 그러는 겁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정말 몰랐던 것은 십자가의 고통입니다. 십자가를 몰랐어요. 주님이 그렇게 말씀하시고 설명하시던 십자가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십자가의 길이 어떤 고난의 길인지를 베드로는 알 수가 없었어요.
-자신이 모른다는 사실을 알았다면 큰 소리 치지 못했을 것입니다. 교만할 수가 없어요. 인생은 교만하면 패망이요.
-어째튼 베드로는 닭울음 소리에 다 무너져 버렸습니다. 주님이 닭울음소리에 무너질 것을 이미 가르쳐 주셨어요.
-무엇 하나 자신의 인생에 기댈만한 것이 남지 않았어요. 내가 사라져 버렸어요. 그렇게 당당하고 그렇게 큰 소리 치던 베드로는 이제 사라져 버렸어요.
-이렇게 처참하게 무너진 베드로의 심정을 품고 닭울음 소리를 들어 보실까요?
-여기서 베드로는 다 끝났어요. 이 소리에 베드로는 죽었어요. 그래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난 뒤에도 고기 잡으러 갔던 것입니다. 버틸 힘이 없어요. 주님 얼굴을 볼 수 있는 힘이 없어요. 죄책감 때문에요.
-만약에 주님이 쫓아가시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끝난 인생이었습니다. 그런데 주님이 쫓아가세요. 회복시키세요. 배신한 베드로를 쫓아가셔서 회복시키세요.
-도망친 베드로를 쫓아가시는 주님은 우리를 쫓아오시는 주님이십니다.
-주님이 먹을 것을 차려 놓으시고,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묻지 않으셨다면, 3번이나 묻지 않으셨다면, 3번 부인했으니 3번 물으신 것입니다. 그 사랑을 쏟아 주시지 않았다면 베드로는 없어요. 베드로는 죽었으니까요.
-성도 여러분, 3번 부인해도 베드로를 쫓아가신 주님이 우리를 쫓아 오신다는 사실 만큼은 잊지 말 것입니다.
-우리가 혹시 우리 자신의 허약함 때문에 좌절하고 죄책감으로 일어설 힘 조차 없더라도 주님이 나를 쫓아 오셔서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심 그 물음으로 우리에게 물으신다는 사실을 잊지는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약점은 무엇이었을까요?
1-비교하는 일입니다. 자신도 모르게 그냥 비교해요. 체질화
“다 버릴지라도 나는 버리지 않겠습니다.”
-비교란 저 사람을 보고 나를 보는 일입니다. 나를 보고 저 사람을 보는 일입니다. 그러면 둘 중에 하나의 함정에 빠져요. 내가 저 사람보다 괜찮다면 우월감에 빠지고, 내가 저 사람보다 못났다면 열등감에 빠지고,
-그런데 곰곰이 살펴 보면, 인간들만 비교해요. 그리고 불행해져요.
#들판이 아름다운 이유
들판이 저렇게 아름다운 것은/아무데서나 살지만/아무렇게나 살지 않는/들풀이 있기 때문이다 /쑥은 정하신 때에 쑥잎을 내고/씀바귀는 뜻에 따라
쓰디쓴 씀바귀 잎을 내고/냉이는 명령대로 냉이꽃을 피워 낸다/
작은 꽃일 망정 정성껏 피우고서/있는 힘을 다하여 향기를 발하며 산다/
우리는 이름 모를 들풀을 싸잡아/잡초라고 부르지만/
자기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고/벌과 나비들이 외면할지라도/서러워하지 않고/그냥 더불어 있음을 감사하며/장미나 백합의 자리를 시기하지 않고/들풀은 들풀대로
아무데서나 들풀로 살아간다
(예)신문에서 웃지 못한 기사를 읽었어요. 노산 클럽이 있대요. 계 모임이예요. 초등학교 자녀를 두었는데 44-45세, 학부모들이래요. 학교에 갈 일이 있으면, 회비를 걷어서 10만원- 20만원을 주고 젊은 엄마들이 들고 다니는 핸드백을 대여 받아서 학교엘 간대요.
-자신들이 가진 핸드백은 다 아주머니 분위기가 나서, 아이가 창피하게 생각할까봐. 온라인 쇼핑몰, 쥐 마켓에 의하면, 20, 30대 여성들이 입는 블라우스를 40, 50대 여성이 구입한 건수가 2배 넘게 증가 했대요.
-머리도 젊은 스타일로 바꾸고, 참 피곤하게 살아요.
-초등학교 3학년 짜리 딸을 둔 김 모씨 42살인데, 주름살 제거 수술을 받았대요. 엄마 얼굴에 주름이 많으면, 아이들이 할머니가 키우는 애라고 놀린다나요?
-어찌 보면 들풀 만도 못해요. 인생이, 자부심이 없어요. 프라이드가 없어요.
-아이들에게 좀 나는 나대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거다. 가르칠 필요가 있어요. 나는 있는 그대로 가치 있는 존재인데, 저 사람을 보고 나를 보다가, 비교하다가 망쳐요.
(예)뉴욕 퀸즈 한인교회, 한진관 목사님, 김태열 사모님, 마마자국, 얼굴이 다 얽었어요. 그러나 누가 골려도 끄떡하지 않았어요. 그 어머니가, 이건 하나님이 너를 살려주신 축복 자국이다, 얼마나 확인했는지, 김태열 사모님은 하나님을 보고 나를 봤어요.
-문제는 비교하는 마음을 어떻게 할 것이냐? 이건 극복할 문제가 아니고 순간마다 싸워서 처리해야할 문제입니다.
(예)저도 마찬가지입니다. 건축 멋있게 한 교회를 가면 부러워요. 건축하려고 땅을 몇 천 평 산 교회를 보면, 부러워요. 그 순간 평안이 무너져요. 그래서 싸우지요. 주님을 보고 나를 봐요. 주님을 보고 우리교회를 봐요.
-보이는 성전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성전을 봐요.
-결국 좌절과 죄책감으로 도망친 베드로를 회복시키시는 방법도 -주님을 보고 자신을 보게 만드셨어요.
-베드로는 자신이 특별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자신이 굉장한 사람인 줄 알았어요. 교만했던 겁니다.
-그런데 나중에 은혜 받은 후에 이걸 고쳤어요. 다 같은 사람
#행 10: 25-26 25 마침 베드로가 들어올 때에 고넬료가 맞아 발 앞에 엎드리어 절하니 26 베드로가 일으켜 이르되 일어서라 나도 사람이라 하고
-은혜 받으면, 하나님을 보고 나를 보면, 나도 사람이오, 저도 사람이오, 예수 믿고 구원 받아야할 죄인이예요.
-성도 여러분, 우리 같은 것을 자꾸 생각할 필요가 있어요. 다른 걸 찾으면 함정에 빠져요. 같아요. 인생은 평등. 적어도 시간 앞에서, 죽음 앞에서
2-베드로는 자신의 생각을 말씀 속으로 이동 시킬 줄 몰랐어요.
-예수님이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 하셨어요. 그리고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
-그렇게 말씀하시면, 자신의 생각을 그 말씀 속으로 이동시켜야지요.
-내 생각을 고쳐야지요. 그럼 어떻게 할까요?
-고집을 부려요. 다 버려도 나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또 말씀하시잖아요. 네게 이르노니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막10:31 베드로가 힘있게 말하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 하고 모든 제자도 이와 같이 말하니라
-힘있게 말하되, 고집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데 안 믿어요. 신앙인의 불신앙이라고 불러요. 믿는 데 안 믿어요.
-내 생각이 있어요. 그런데 주님이 말씀하세요. 틀렸어요. 그럼 내 생각을 수정하고 말씀 속으로 이동시켜야지요.
-영적인 고집처럼 무서운 고집이 없어요.
(예)이단들의 특징은 자기들이 제일 잘 믿는대요?
-50-60년전 이단이나 지금 이단이나 똑같아요.
-전도관 박태선, 1950년대 70만 명이었어요. 휩쓸었어요.
-부산 친구 목사님 안내를 받았는 대요. 부산 해안가, 기가막힌 절경을 가는 데 수십 킬로 미터, 그게 전부 박태선 씨 땅, 성도들을 속여서, 헌금하게 만들어서
(예)카페-오늘도 주님과 함께 눈부셔라.
-자꾸만 내 생각을 말씀 속으로 이동시키셔야 해요. 어느 새 또 오염됐어요. 어느 새 우리 입 속에 가시가 돋았어요. 어느 새 우리 마음 속에 더러움 들어와 버렸어요.
(예)우리교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분들에 관심이 가요.
-오늘 저녁에 이광국 선교사님이 오십니다. 아주 건장한 목사님입니다. 우간다에서 선교하다가 한 밤 중에 침입한 괴한의 총에 다리를 관통했어요. 오랫 동안 투병 생활을 했어요. 지원하던 교회에서도 지원이 끊겼어요.
-그러나 우리교회는 끊을 수가 없었어요.
-사모님은 알바하시고, 아무래도 쓸쓸할 것 같아서요.
-제가 전화하다가 울컥해서 빨리 끊어 버렸어요. 신대원 동기 목사님이거든요.
-다시 말씀 속으로 이동시킵니다.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한 것이 주님께 한 것이다.”
-보복 운전? 욱하고 화가 올라오면,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차지할 것이요. 이동시키셔야 해요.
-말씀 속으로
3-베드로의 약점은 십자가 앞에서 기도하지 않았어요. 자신을 의지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간절히 부탁하셨습니다.
-나와 함께 깨어 기도하라.
-그러나 베드로는 기도 없이도 십자가의 길을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자신의 힘으로 자신의 능력으로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갈 수 있을 줄 알았어요.
-주님이 친히 말씀하셨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
-믿는 만큼 기도합니다. 기도한 만큼 믿는 겁니다.
-기도는 힘쓰지 않으면 할 수 없어요. 기도는 노동이니까요. 기도는 몸을 옮기셔야 해요.
-어렵고 힘들고 이해되지 않을 때의 중요한 기도의 방법은?
-질문하는 일입니다. 주님 왜 이런 일이 있습니까? 왜 이러십니까? 무엇 때문에 이러십니까? 해결책이 무엇일까요?
-다윗이 쓴 시편을 봐도 그렇고
-엄청난 고난을 당한 욥기를 봐도 그래요. 질문 하셔야
-하나님 앞에 질문해야 하나님의 답이 나오지요.
(예)어느 중진 연극 배우의 간증을 들었습니다.
-젊은 시절에 연극이 너무 하고 싶어서 기웃 거렸습니다. 그러다가 어느 극단에 들어가게 됐고 처음엔 허드렛일만 해야 했습니다. 언제나 역할 하나를 맡나 하다가 드디어 역할을 맡았습니다.
-그게 죽은 사람 역할입니다. 시체 역할입니다. 하루 종일 죽은 사람 흉내를 내야 했습니다. 답답하기도 하고 그래서 눈을 떴는데, 마침 지나가는 감독에게 들키고 말았습니다. 감독의 불호령이 떨어졌습니다.
“쟤는 어째 죽은 모습이 어색하냐? 다른 애로 바꿔 버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습니다. 이러다가 이것도 못하는 것 아닌가 했습니다. 조감독이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한마디 들어야 했습니다.
“야, 너는 죽는 연기도 못하냐? 그러면서 어떻게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고 그래? 그냥 죽어, 그냥, 콱 죽으란 말이야, 그래야 살지, 이 바닥에서 살아남으려면 그냥 콱 죽어.”
-그 날 밤 집에 와서 기도했답니다.
“하나님, 저 잘 좀 죽게 해 주세요. 연극하고 싶어요.”
-그리고 죽는 연습을 밤새도록 하는데, 거울 앞에서 이렇게 죽은 척 하고 저렇게 죽은 척하고, 그런데 이게 잘 안 되는 겁니다. 죽어 본 적이 있어야지요. 죽어본 경험이 없잖아요. 살려고만 했지, 밤새 연극하고 싶은 마음 때문에 이렇게 죽은 척 해 보고 저렇게 죽은 척해 보다가,
-어느 순간 눈물이 왈칵 쏟아지기 시작하는데, 이런 음성이
“나는 너를 위해서 십자가 위에서 피 흘려 죽었는데 너는 나를 위해 이렇게 죽으려고 몸부림 친 적이 있었느냐?”
-얼마나 회개하면서 울었던지, 그래서 신앙을 회복했다는 간증이었습니다.
-고난 주간입니다. 우리의 약점은 무엇일까요?
-십자가에 못박아야할 약점은 무엇일까요?
-아직도 죽지 않아서 은혜 가운데 거하지 못하는 건 아닐까요?
1-사람을 보고 나를 보지 말 것입니다. 하나님을 보고 나를 봐야지요. 비교하는 마음이 들어올 때마다 싸워서 처리해 버릴 것입니다.
2-말씀과 내 생각이 충돌할 때마다 내 생각을 고치고 말씀 속으로 나를 이동시킬 것입니다.
3-정말 주님 앞에 절박한 마음으로 기도할 것입니다.
#벧전 5:8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예)사진- 예배당 꼭대기에 십자가 대신 닭모양을 새겨
-베드로는 그 이후로 닭울음 소리가 들릴 때마다 벌떡 벌떡 일어나 기도했다고 합니다.
-닭울음 소리 한 번 듣겠습니다.
-약점 때문에 주님께 더 가까이 가고
-더 기도하고 더 겸손해졌던 베드로처럼
-우리도 우리의 부족함과 약점을 살피고 그 약점 때문에 주님 앞에 더 가까이 가는 고난 주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