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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www.youtube.com/watch?v=j2HwsO-BQtc&t=151s
https://www.youtube.com/watch?v=nb8DYvf-o0s&t=2s
소월의 시를 차용(借用)한,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동양방송 주최 제1회 해변가요제 앨범 앞면
’78 MBC 대학가요제 입상기념 활주로 앨범 앞면
발매일 1979년 1월 11일
태안 연포해변
배철수가 이끌던 한국항공대학교 캠퍼스 록 밴드인 활주로는 1978년 8월 연포해변에서 열린 제1회 동양방송 주최 제1회 해변 가요제에서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로 인기상을 수상했다. 같은 해 10월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탈춤'으로 은상을 받아 인기를 얻었다.
가요앨범사
1979년에 김종태와 박홍일이 학업에 전념하기 위해 활주로를 탈퇴했고, 배철수는 다시 구창모 등과 송골매를 결성해서 1980년대에 활발한 활동을 했다.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김소월의 시,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를 차용해서 만든 노래이다.
활주로의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는 김소월의 시, '나는 세상 모르고 사랏노라'를 차용해서 만든 노래라고 하네요. 저 아래 소월의 시도 함께 감상하세요.
‘만수산을 나서서/갈라선 그 내 님도/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그 내 님이 연상(年上)이었을까? 갈라선 님에게는 ‘놈’이나 ‘년’을 붙여도 시원치 않아 하며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나라고 악다구니를 퍼붓기도 하는 게 흔히 볼 수 있는 이별의 뒤끝 풍경인데, ‘뵈올 수 있었으면’이라니. 세월이 지나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말하게도’ 되었겠지만, 분명 그 님은 품격 있는 그리움의 말을 불러일으킬 만한 이였으리라. 대개 높임말은 감정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데, 이 시에서의 ‘뵈올 수 있었으면’에서는 영원히 훼손되지 않을
고결한 사랑의 마음과 지극한 그리움이 배어 있다. 이렇게 영원한 사랑의 감정은 이른 죽음으로 사랑을 매듭짓게 된 사람한테 하늘이 내리는 슬픈 보상 같다.
하필 만수산(萬壽山)일까. 필시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정인(情人)을 배웅한 곳이 말이다. 소월은 번번이, 사람을 참 울컥하게 만든다.
‘제석산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무덤엣 풀이라도 태웠으면!’
만수산이나 제석산은 실제 지명일지도 모르지만, 소월은 이 시에서 그만의 만수산이요 제석산을 만들어냈다. 정인을 앗아간 죽음의 냄새가 마른 풀 냄새처럼 아릿하게 풍기는 만수산과 제석산.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 ‘돌아서면 모심타’는 말, 세상모르고 살던 시절에는 무슨 뜻인 줄 모른다. 그 철없는 나이에는 ‘인연’의 소중함도 모르기 때문이다. 헤어지면 그걸로 아주 끝인 줄 안다. 하지만 제대로 나이 들면, 진정한 어른이 되면, 맺어진 모든 인연을 설혹 분란이 있어도 마치 부부싸움처럼 ‘칼로 물 베기’가 되도록 애쓰게 마련이다. 그렇게 관계를 긴히 이어나가려면 때로 엄청난 관용이 필요하리라. 고대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도 말했다. 철학의 으뜸목표는 사람들 속에서 사는 능력이라는 것. 그 능력이란 자비심과 사교성을 가리킨다.(여기서 사교성이라는 건 뭐
‘비즈니스 능력’, 이런 걸 말하는 게 아니다). 세상모르고 살면 편하기야 하겠지만,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무덤엣 풀이라도’ 태우고 싶은 애절함도 모르리. 하지만 소월, 오죽 ‘고락에 겨운’ 삶이었으면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호소할까!
이 시에서처럼 죽음이 원인이 아니어도, 소월은 이별을 참 아름답게 노래하는 시인이다. 세련되고 현대적인 감각의 시정신과 시어로 말이다. 그의 시는 죽음과 허무를 노래할 때도 리드미컬하고 통통 튄다. 그의 시들이 그 옛날 7080세대 가수들에 의해 발라드풍 포크송으로만이 아니라 록으로도 불린 건 거기 시대를 뛰어넘는, 삶과 죽음과 사랑과 뮤즈에 대한 순애와 열망이 절절하고 선연하게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 뮤지션들은 소월 시에 마음을 실어 그저
읊조리기만 하면 되었을 것이다. 그것은 이미 음악이었으니!
송골매 노래 세상모르고 살았노라
가고 오지 못한다는 말을
철없던 시절에 들었노라
만수산을 떠나간 그 내 님을
오늘 날 만날 수 있다면
고락에 겨운 내 입술로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 알았으랴
제석산 붙는 불이 그 내 님의
무덤의 풀이라도 태웠으면
고락에 겨운 내 입술로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에 겨운 내 입술로
모든 얘기 할 수도 있지만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나는 세상을 모르고 살았노라.
-金素月
'가고 오지 못한다' 하는 말을
철없던 내 귀로 들었노라.
만수산(萬壽山)을 나서서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도
오늘날 뵈올 수 있었으면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고락(苦樂)에 겨운 입술로는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怜悧)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었건만.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돌아서면 무심타'고 하는 말이
그 무슨 뜻인 줄을 알았으랴.
제석산(帝釋山) 붙는 불은
옛날에 갈라선 그 내 님의
무덤에 풀이라도 태웠으면!
철든다는 것은 죽음이나 이별처럼 '가고 오지 못'하는 것들을 겪는 일, 가까운 이들과 갈라져서 뼛속 깊이 그 슬픔의 맛을 새기는 일인가. 따뜻하고 살갑던 관계도 "돌아서면 무심"해지고 냉랭해지는 일을 소름 돋도록 겪는 일인가.
잔머리 굴리는 데 능숙해지고 능글능글해지고 뻔뻔스러워져서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말하는 자신을 서글프게 바라보는 일인가.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 소월의 내면에도 끝내 철들지 않으려는 아이가 있었나 보다. 이 소박한 갈망을 세상은 매몰차게 차 버렸다. 김소월 시인은 32세로 세상을 마감할 때까지 세상과 자신으로부터 들볶이고 시달리도록 되어 있었나보다.
몸과 마음이 많이 망가질수록, 자연과 절망적으로 단절될수록, 잃어버린 것들이 간절히 그리워질수록, 시는 아름다워지고 절절해지는 것인가.
- 김기택, 시인, 경희사이버대 교수
화자는 말투로 보아 남성적이고 지금 님을 그리워하고 있다.
맨끝 행의 ‘무덤’이란 말로 보아 님이 죽었음을 알 수 있다.
제목의 의미는 옛날에 철없는 마음으로 님을 진정으로 순수하게 사랑했었다는 것이다.
2연 5행의 ‘오히려 세상 모르고 살았으면’은 철없던 옛날이 더 그립다는 표현이다.
2연 2행의 ‘고락’은 고통과 즐거움이다.
님(여자)이 가고 오지 못한다고' 다시말해 이별하자라고 말했다.
만수산(개성의 송악산)에서 님과 나는 이별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나는 옛사랑이 그리워진다.
나는 옛날에 님을 진정으로 순수하게' 이것 저것(경제력'능력...) 따지지 않고 사랑했었다. 지금은 세월이 많이 흘렀고' 수많은 고통과 즐거움을 겪었으며' 같은 말도 조금 더 영리하게 할 수가 있다.
옛날에 님이 이별하자라고 했을 때' 나는 화가 너무 나서 크게 싸우고 헤어졌다.
지금이라면 님의 그 말에 “왜 그래' 우리 권태기인가봐. 조금 더 생각해보자”라는 식으로 말했을 것이다.
이것 저것 따지지 않고 사랑했던' 죽은 님과의 사랑이 정말로 그립다.
돌아서면 무심타는 말이 있듯이' 헤어진 후 나는 님의 소식을 까맣게 몰랐다. 그런데 얼마전에 님이 세상을 떴다는
말을 들었고' 나는 님의 무덤을 찾아 간다. 제석산의 붉은 단풍이 님의 무덤을 아름답게 해주지만' 내 마음은 슬프기 그지없다.
개성의 만수산과 제석산은 아주 먼 거리인데' 시간의 흐름을 암시하고 있다.
이 시의 주된 생각은 순수했던 옛사랑을 그리워하는 마음이다.
지금 우리 사회에 시의 화자가 경험했던 순수한 사랑이 있을까. 거의 없어 보인다.
로미오와 줄리엣의 사랑도 춘향과 이도령의 사랑도 10대 중후반에 있었던 이야기이다. 우리 사회는 청소년들에게 사랑할 권리를 빼앗고 있고 미래를 위해 현재의 행복은 무시하라고 하고 있다. 허지만 우리의 청소년들의 미래는 ‘88만원세대’이다.
사무친 그리움으로 너를 보내며
나는 세상 모르고 살았노라
‘후회’는
지나간 뒤에 하는 것이라
되돌릴 길이 없다.
그럼에도 ‘후회’하면서 질척대는 것은
내 가슴속에
너의 흔적이 사라지지 않는 까닭이다.
두 개의 산이 등장한다.
만수산과 제석산
둘 다 그의 고향인 평안북도에 있는 산인데
만수산은 한자로 ‘萬壽山’이다
영원한 생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곳곳 묘지, 릉 등이 있는 산을
‘만수산’이라 이름 붙이곤 했다.
제석산(啼昔山) 역시 묘지가 있는 산이
아닌가 생각 된다.
사실 소월시인의 고향인 평북 정주의 제석산은
‘ 帝釋山’ 생사를 가름하는 제석천의 ‘제석‘이다.
예전에는 산이름도 중복 혼용해서 쓰고
그 한자들도 혼용해서 쓰이는 경우가 많았다.
어찌됐든 시인은 ‘눈물 흘려 울 제’에 ‘옛날 석’
자를 쓴 제석산이라고 했다.
확실한 것은
이 제석도 저 제석도 묘지가 있는 이름이다.
‘나는 세상모르고 살았노라’는
생사길이 나뉘어 돌아 올 길 없이
아주 떠나간 사람을 애절하게 보내며 쓰는 글이다.
돌아서면 끝이라는데
그땐 왜 바보같이 그 말이 실감이
나질 않았던지...
이젠 조물 조물 더 잘해줄 수 있으려니와
다 부질없는 속세의 미련이다.
제석산에 붙이라도 난 것일까?
그님의 무덤풀도 함께 태워
부정한 것들로부터 정(淨)하여 졌으면 한다.
그리고 내 가슴도 조용해 졌으면 한다.
이 애절한 시는 1978년도 해변가요제에서
록 그룹 ‘활주로’에 의해 노래로 부활하여
상을 타면서
세상에 새삼 널리 알려지게 된다.
나는 세상 모르고 사랏노라
김소월
『가고 오지못한다』는 말을
쳘업든 내귀로 드렷노라.
萬壽山[만수산]올나서서
옛날에 갈나선 그내님도
오늘날 뵈올수잇섯스면.
나는 세상모르고 사랏노라,
苦樂[고락]에 겨운 입술로는
갓튼말도 죠곰더 怜悧[영리]하게
말하게도 지금은 되엿건만.
오히려 세상모르고 사랏스면!
『도라서면 모심타』는 말이
그무슨 뜻인줄을 아랏스랴.
啼昔山[제석산]붓는불은 옛날에 갈나선 그내님의
무덤엣 풀이라도 태왓스면!
'진달래꽃' pp. 221~222
만수산: 개성 송악산의 다른 이름. 오래도록 살 수 있는 산.
영리하게: 이해득실을 잘 따져 자신에게 유리하게.
도라서면 모심타: 무심하고 쌀쌀하다
啼昔山: 帝釋山(제석산)의 오기일 듯. 무덤에 불을 태움은 더욱 잘 자라게 하는 뜻이 있음. 시인이 아는 북녘산 중의 하나일 듯도 하다.
제1연은 불로장생한다는 만수산에 올라서라도 떠난 님을 다시 보고 싶음. 제2연은 세상사 얄팍한 처세술일랑 먹고 살자고 익히기도 했지만, 오히려 순수하게 살았으면 좋았을 것임. 제3연은 돌아서서 헤어지면 영영이별인 줄 알았다면, 이제라도 제석산 무덤에 붙이는 불이 그대 무덤의 풀도 태울 정도로 다시 사랑의 불이 타올랐으면 함.
특히 제2연을 중심하여 전체적으로 살피면 옛님을 만나 이 험한 세상 만사 잊고서 순수하고 불같이 뜨겁게 살고
싶다는 엉뚱한 체념의 바람(현실도피 심리)이 진하게 표출되었다 여겨진다.
김소월은 오산학교 때 세 살 위인 오순이 누나를 사랑했다고 전한다. 소월은 아버지가 정신이상자가 되자 할아버지 밑에서 살았다. 옛날엔 오늘처럼 연애결혼이 거의 없었고 부모가 정해주는 대로 혼인을 했던 것이다. 소월도
할아버지 친구의 손녀인 홍단실과 14세에 강제 결혼하게 된다. 하지만 오순을 늘 잊을 수 없었다고 한다. 오순이
19세 때 다른 남자와 결혼하게 되었다. 그러나 오순의 남자는 의처증 환자로서 불행하게도 얻어맞아 죽었다고
전한다. 오순의 죽음을 애도한 시가 '초혼'이라 전하지만 또 다른 일화도 있었다. '가고 오지 못한다'라는
첫 구절이다.
모르기는 하지만 죽은 오순이를 말하는지도 모를 일이다. 커서 영리하게 되었지만 옛날에 갈라선 님을 다시 만날 수 있었으면 하고 추억한다. 그러나 부질없는 일. 세상모르고 사는 게 좋겠다는 다짐도 해본다. '돌아서면 무심 터'라는 말도 한다. 그게 어릴 때 무슨 뜻인지를 몰랐던 것은 당연한 일. 여기에 또 옛님의 무덤이 등장한다. 산불이라도
나서 무덤의 풀을 태워주길 바라는 심사가 애달프다.
옛적엔 사랑한다고 사랑이 이뤄지지 않았다. 부모의 허락이 있어야 했다. 김소월은 할아버지의 친구 홍명희 손녀
홍단실과 결혼했다. 홍명희는 '임꺽정' 소설을 쓴 일제시대 3대 천재의 하나. 홍명희는 북한으로 가서 부수상이
되었다 한다. 홍명희의 둘째 딸이 김일성의 후처가 되었다 한다. 그렇다면 김소월과 김일성은 동서 간이 된다.
김소월은 홍단실과 결혼했고 오순이는 다른 남자와 결혼했으나 그 남자는 의처증 환자였다. 아. 이럴 수가 있나
오순이는 의처증 환자인 남자에게 맞아 죽었다는 설이 있다. '초혼'의 시가 오순이를 두고 쓴 시로 사료된다.
옮겨온 글 편집
첫댓글 좋은 노래와 얽힌 정보를 잘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시인 중에서 김소월 시가 가장 많이 가요에 차용되었다고 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