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 드나드는 카페에 어느 분이 이런 글을 올렸다.
글을 잘 쓰든 못 쓰든 글을 올려놓고
독자의 반응을 살피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노래하는 가수가 관객이 쳐주는 박수에 힘이 나는 것처럼
글도 독자의 반응에 따라 힘이 나기도 하고 빠지기도 한다.
… (중략) …
내 댓글을 읽고 반기며 고마워하는 답글을 보면,
누군가가 나로 인해 기분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기분 좋은 일인가?
오늘도 내가 올려놓은 댓글에 누군가가 기분 좋은 답글이 올려 지기를 은근히 기다려본다 …
이분 말씀이 맞다. 글이란 작가와 독자 간의 의사소통이고, 특히 수필은 때로는 독자를 향한 작가의 문학적 고백이기도 하다. 소통이란 주고받음이 있어야 한다. 듣기 좋은 말이나 거북한 말이나, 정다운 말이나 서운함을 비추는 말이나 다 같다. 대통령의 연설처럼, 목사의 설교처럼, 군 지휘관의 연설처럼 일방적이면 참 멋없고 감흥도 없을 것이다. 물론, 글이 글다워야 하겠지만. 소귀에 경 읽기 식이라면 참으로 무정한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빈말은 찬밥 한 덩이만도 못하다'란 말이 있긴 하지만, 짧은 말이나 댓글 한 마디는 글쓴이에게는 힘이 되고 글을 쓴 보람이 된다. 최소한 카페에선 그렇다. 비판이라면 다르지만, 비평이라면 더욱 값지다. 글을 써 단 한 사람의 독자라도 소통에 성공했다면 글을 쓴 보람이 있다고 저명한 작가들이 한목소리로 말하니 말이다.
내가 수필을 흉내 내며 글을 쓰기 시작한 것은 지천명을 넘은 어느 날부터였고, 근교에서 어설픈 농부 노릇하기 시작한 이후이니 십 수 년은 족히 되었다. 그러나 본격적으로 쓰기 시작한 것은 정년퇴직 즈음이다. 그간 쓴 것이 제법 많다. 수필이 칠 할 정도이고 나머지는 시적(詩的) 낙서와 추모편지 등이다.
처음에는 무척 많이 썼다. 내 주변의 소재에 나름의 주제를 담아 거침없이 써 내려갔다. 세월이 제법 흐른 지금에 와서 돌이켜보면 수필이나 시라 평하기가 부끄럽거나, 퇴고가 부족한 것도 퍽 많다. 특히 수필에서 가장 경계해야할 불만표출과 되지못한 설교적 표현이 적지 않으니 부끄럽기도 하다. 그러나 시나 소설과는 다르게 수필이란 내 삶의 한 부분과 경험을 진솔하게 표현한 것이니 내 사고의 단면을 드러내는 것 같기도 하다. 이런 글을 문학지나 카페 또는 공모전에 과감히 공개하는 것은 부족한 나를 공개하는 것 같아 부끄러울 때도 많다. 더욱이 책으로 내놓는 것은 벌거벗은 채로 광장에 나앉는 것 같다. 그러나 저명한 수필가들이 그러했듯이 나 또한 그 길을 가고 있다. 이 또한 문학이기를 바라기 때문이다.
글은 누차의 퇴고를 거듭한 후에 일부는 선별하여 내가 드나드는 몇몇 문학카페에 올리기도 하지만, 이글처럼 써놓고는 잊고 있는 경우도 있다. 대체로 서정문학, 경기수필, 성남문학 등 문예지에 올리기도 하지만, 문학카페에 올리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물론, 공모전에도 올려보지만, 메아리가 없어 서운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내 작품이 부실하기 때문이란 것을 모르지 않지만, ‘피카소의 말 발자국’ 같은 평가도 있다는 것을 안다. 카페 회원들은 곧바로 반응을 보인다. 어떤 것은 하루 만에 조회 수가 수십 회에 이르는 경우도 있고, 며칠 사이에 수백 번에 이르는 경우도 있어 나도 놀란다.
댓글도 많이 올라온다. 나의 뜻을 제대로 간파하지 못하고 겉보기로 얘기하는 경우도 있고, 엉뚱한 오해도 있어 서운할 때도 가끔 있다. 나도 남의 시작품에 대하여는 그리 실수하는 경우도 없지 않다. 시는 은유와 함축이 태생이니 나뿐 아니라 그런 독자가 많다. 때론 작가와 독자가 다투는 경우도 본다. 그러나 대부분의 독자는 주제를 바로 보고 적극 공감하며, 칭찬하거나 부족한 면을 충고하기도 하니, 어느 댓글이나 대단히 감사한 일이다. 나는 댓글을 통하여 독자의 생각을 읽으며 답글을 쓰고, 나를 반성하는 계기로 삼기도 한다.
그러나 특별한 사람도 있다. 우리 동네에 와서 놀면서도 무리에 끼지 않으려 하는 사람이 몇몇 있다. 누구의 글에도 댓글을 달지 않음은 물론, 자신의 글에 누군가가 댓글을 달아 공감을 표해도 여간해서는 본체도 안 한다. 군계일학. 자신의 고고함이 훼손될까 염려함인지, 댓글의 순기능을 오해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작품의 수준이 높건만, 조회도 댓글도 매우 적다. 당연한 결과다. 반면교사. 내가 남의 작품을 읽을 때는 겉으로 읽지 말자. 작가의 속마음을 놓치지 않도록 조심할 일이다. 그리고 정성들여 비평적 감상 댓글을 쓰자. 반면에 저명한 문인이지만, 회원들의 글에 빠짐 없이 정성스레 댓글을 달고, 답글을 주시는 분도 있다. 감사한 일이다.
여하튼 이리하니 한 번 발을 들여 놓은 몇 몇 문학단체와 문인들과의 끈끈한 정은 참 귀한 노년의 인연이다. 이들과의 인연이 소중한 만큼 보다 많은 글을 쓰며 문학성을 계발하고자 함이 나의 희망이고, 초로에 이루어 가는 보람이다. 내 글은 여러 문학단체로부터 호평을 받은 것도 어쩌다 있지만, 대체로 만족스럽지 못한 부실한 것이 많다. 그래도 최근엔 한국문인협회 등으로부터 두어 건의 원고청탁을 받고는 어떤 작품을 써 보낼까 고민 중이니 희망은 있다. 보다 큰 보람을 위해서도 매일 남의 글을 읽고 나름대로 쓰고 쓴다. 수필을 쓰고, 종종 어렵기만 한 시에 도전도 해 본다.
첫댓글 매우 자랑스럽습니다~~^^
같은 위치는 못되지만 주고 받을 답글이 있다는데 영광입니다^^
좋은 글 많이 쓰시고 오래도록 건강하시기 바랍니다^^
과찬에 부끄럽습니다.
그리고 고맙습니다.선생님.
공감이 가는 말씀입니다. 사실 글을 발표했는데도 독자의 반응이 없다면 맥이 빠지는 일입니다. 메아리가 없는 산속에 사는 기분이 되겠지요. 정암의 글은 늘 정곡을 찌르는 빼어난 문장이라 댓글을 달지 않을 수 없을 정도입니다. 감사합니다.
이해해 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선생님.
그러나 과한 칭찬을 곁들이시니 부끄럽습니다. 댓글이 과연 순기능이 있습니다만,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습니다.
서정에 서너 분은 참 무뚝뚝합니다. 허허
주말 편히 보내세요.
글을 읽고 개인의 가치관과 문해력의 이해도에 따라 해석도 다양한 댓글을
공들여 쓰신 작품에 대한 작가의 글을 읽은 글 갋이라고도 하지요
작가와 독자가 소통 할수 있고 정이 흐르는 댓글들이 많을수록 좋으며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해해 주셔서 매우 고맙습니다.
부족한 제 글에 빠지지 않고 댓글을 주시는 선생님께는 늘 감사하고 있습니다.
건강하고 따뜻한 주말 보내세요.
글도 중독성이 있어서 끊기가 쉽지않아요. 그리고 글을 올려놓고 댓글이 없으면 서운함의 말로 표현하기 힘들어요.
글 잘읽었습니다.
글쓰기 중독이라면 반갑기 그지 없는 일입니다. 끊기는 왜 끊어요? 허 허
사실 이글은 모 회원의 글을 읽다 제 글을 썼지만, 카페회원 두세 분의 묘한 자세가 서운해 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