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치(Kitsch)
(*문화용어는 어렵습니다. 예술이란 것을 하려면 어렵더라도 조금 알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올립니다. 우리는 수필을 쓰는 사람이기 때문에 지식인이고, 그래서 읽어보야 합니다.)
키치의 일반적인 정의를 미학 용어로 알아보자.
“형태갸 기이하고(우리에게 익숙하지 않고) 저속한 ‘나쁜 예술’의 미적 기교를 뜻한다. 보기로는 하찮은 모조품, 저급한 것, 나쁜 취미, 싸구려 문화 상품을 말하며, 키치라는 말은 부정적으로 이해한 말이다.”
말하자면, 유치하고, 느끼하며(일반적인 미의 개념으로는 받아들이기에 거부감이 느껴지는) , 촌스러운 것들이다.
이렇게도 말할 수 있다. B급 에술인데도 당당하게 B급이라 말하지 않고 A급처럼 포장한 예술을 말하기도 한다. 고급을 흉내내는 저급(문화라기 보다는 작품 자체를 의미한다. 저급 작품이면서도 고급인체 하는)으로서, 작품 자체에 담겨 있는 사유의 깊이를 말한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키치의 의미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위의 잡다한 설명을 한 마디로 요약하여) ‘이발소 그림’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 키치라고 말할 때는 이 말 속에 자본주의의 속성이 그대로 들어있다.
요약하면, 가벼움, 무의미, 통속적이라는 의미이다.
그러나 1870년 대에 독일 뮌헨의 예술시장에서 이 말이 처음으로 나타낸 이래로, 키치라는 말의 의미가 꾸준히 변해왔다. 즉 키치의 의미는 고정되어 있지 않고, 변화를 거듭한 역사성을 지녔다.
1938년 경에 이르면 대중문화 전반을 ‘키치’로 보았다.
이제는 키치라는 말은 저급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가장 밀착되어 있는 특수한 장르화일 뿐아니라, 자본주의 문화 일반을 일컫는 말이 되었다. 더 나아가서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태도를 가르키는 말이 되었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이발소 그림, 졸부, 유명 예술품의 모조품 등등이다.
키치라는 말이 변화해온 역사를 보자.
키치라는 말이 처음 나타났을 때는 고급 문화로 취급한 아방가르드에 대립적인 의미였다.
아방가르드가 모더니즘이라고 할 때, 자본주의 사회에서 예술작품을 잘 팔릴 수 있는 상품으로 만들어서 시장에 내놓는 것을 말했다. 원색화보를 곁들인 문학 작품, 광고, 댑탠스, 할리우드 영화 등등을 키치라고 하였다.
무분별하고, 무비판적이고, 예술이 오로지 유쾌하고, 담콤한 느낌만을 산출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 즉 노력없이 향유하는 사람을 ’키치맨‘이라 부르는 신조어도 탄생했다.
이런 사람은 비싸고, 고급인 미술작품을 단지 자신을 과시하는 목적으로 사용한다.
따라서 키치에는 나쁜. ㅆ레기, 저질, 등의 부정적인 가치를 나타내는 개념어였다.
그러나 현대에 와서는
좋은 예술로서의 아방가르드, 나쁜 예술로서의 키치라는 이붑법이 존재하지 않는다.
키치라는 말이 나타나는 역사적 배경에는 부르주아지 등장과 궤를 같이 한다.
관강객이 기념품을 사간 그 지방의 예술작품의 모조품을 두고 키치라는 의미가 탄생한다.
산업화를 겪으면서, 겨우 글자 해독만을 하는 시골의 농부들이 도시의 변두리 지역에 정착하면서, 귀족의 전유물이엇던 예술에, 겨우 문자 해독력으로 접근하면서 생겨난 말이다. 나아가서 도시 하층민을 만족시키는 오락 문화를 키치로 일컬었다. 프로렐타리아를 대상으로 하는 예술작품은 예술품이 아니고, 상품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예술품이 아니고, 상품이었다.
키치 생산자는 판매가 목적이다. 구매자의 욕구를 만족시키려 혈안이 되어 있었다.
진정한 예술푸마저도 키치로 바꿀 수 있는 능력은 자본주이가 가지고 있는 힘이다. 자본주의는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상품화(소비재화)하는 마이다스의 손이다.
산업화 사회에 나타나는 에술품의 양태는 두 가지 방식을 취하였다.
하나는 아방가르드이고(전위 예술이고, 순수예술이며, 모더니즘이며, 고급 예술이라 한다.
다른 하나는 키치화이다.(상품화됨으로 저급한 것이다.)
이 둘은 서로 대립적이다.
1930년 대에 유럽이 파시즘으로 물들어 가면서
순수 예술을 옹호하고,
그 반대편에 키치를 두고, 예술의 타락이라고 비판하였다.
===> 이것은 파시즘의 프로파간다(선전구호)가 되었다.
(이런 주장을 한 학자는 그린버그, 헤르만 브로흐, 아도르노 등이다.)
이들이 주장을 들어보자.
“키치는 누구나 모두가 이해하기 쉬운 판에 박은 듯한 공식을 갖고 있고, 거짓말로 이루어져 있다.(가장 대표적인 장르가 서부영화이다.) 키치는 삶의 무의미함과 진부함을 벗어나 환상의 도피처를 찾으려는 도시 대중의 정서에 호소한다. 키치는 시간 떼우기에 적당하다. 간결하고 단순하여 이해하기 쉽다. ”
브로흐는 소설에 대해서는 이렇게 말했다.
“키치 소설은 세상을 있는 그대로가 아니라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의 모습으로, 또는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세상의 모습을 그려낸다.”
키치를 달콤한 키치와 시큼한 키치로 분류하여 한 말이다.
키치를 본격적으로 해부한 소설로, 밀란 쿤데라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꼽는다.(이 소설은 ’프라하의 봄‘으로 영화로 만들어서, 우리나라에서도 인기리에 상영되었다.)
그러나 키치의 미적 기만성을 이용하여 이득을 보는 계층은 키치를 즐기는 하층민이 아니라 지배 계층이라고 한다. 지배 계층은 예술을 문화산업화하여 하층민을 지배한다는 것이다.
밀란 쿤데라는 이렇게 말했다.’딱 하나의 정치적 움직임이 권력을 독점하고 있을 때는 언제이건 우리는 전체주의적 키치의 영역 안에서 살게 된다.‘
그러나 키치가 하층민을 지배한다는 논리에 반대하는 이론도 있다. 키치는 하층민과 상층민 도두를 만족시키는 현대사회 전체의 생활 양식이라는 것이다.
어쨌거나 분명한 것은, 키치=자본주의 사회라는 것이다. 이 둘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이후에, 캠프라는 용어가 등장한다. 키치를 설명하기 위해서 캠프라는 용어를 많이 이용하지만, 우리는 ’캠프‘를 따로 분리하여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