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06월 15일 (토)
제목 : 겸손과 평화의 왕
오늘의 말씀 : 마가복음 11:1-18 찬송가: 21장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2 이르시되 너희는 맞은편 마을로 가라 그리로 들어가면 곧 아직 아무도 타 보지 않은 나귀 새끼가 매여 있는 것을 보리니 풀어 끌고 오라
3 만일 누가 너희에게 왜 이렇게 하느냐 묻거든 주가 쓰시겠다 하라 그리하면 즉시 이리로 보내리라 하시니
4 제자들이 가서 본즉 나귀 새끼가 문 앞 거리에 매여 있는지라 그것을 푸니
5 거기 서 있는 사람 중 어떤 이들이 이르되 나귀 새끼를 풀어 무엇 하려느냐 하매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7 나귀 새끼를 예수께로 끌고 와서 자기들의 겉옷을 그 위에 얹어 놓으매 예수께서 타시니
8 많은 사람들은 자기들의 겉옷을, 또 다른 이들은 들에서 벤 나뭇가지를 길에 펴며
9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자들이 소리 지르되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10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
11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이르러 성전에 들어가사 모든 것을 둘러 보시고 때가 이미 저물매 열두 제자를 데리시고 베다니에 나가시니라
12 이튿날 그들이 베다니에서 나왔을 때에 예수께서 시장하신지라
13 멀리서 잎사귀 있는 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혹 그 나무에 무엇이 있을까 하여 가셨더니 가서 보신즉 잎사귀 외에 아무 것도 없더라 이는 무화과의 때가 아님이라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15 그들이 예루살렘에 들어가니라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며
16 아무나 물건을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17 이에 가르쳐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칭함을 받으리라고 하지 아니하였느냐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들었도다 하시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중심 단어: 예수, 나귀 새끼, 호산나, 성전, 기도하는 집
주제별 목록 작성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
1-2절: 제자 둘을 보내심/ 나귀 새끼를 끌고 오라고 명하심
7절: 제자들이 끌고 온 나귀 새끼에 타심
8-10절: 사람들이 겉옷과 나뭇가지를 길에 펴고 호산나 찬송하는 소리를 들으심
15-17절: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자들을 내쫓으심/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다고 책망하심
도움말
1. 베다니(1절): ‘빈민의 집’이라는 뜻이다. 예루살렘 동쪽 3.2km 지점으로, 감람산 동편 기슭에 위치한 성읍이다.
2.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펴며(7-8절): 당시 옷을 펴는 것은 왕에 대한 존경의 표시였다(왕하 9:13). 나뭇가지는 종려나무로(요 12:13), 이 나무는 승리의 상징이었다(계 7:9).
3. 호산나(9절): ‘이제 구원하소서’라는 뜻의 히브리어다(시 118:25). 나중에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외치는 말이 됐다.
말씀묵상
나귀 새끼를 타신 예수님
제자들은 자기 겉옷을 나귀 새끼 위에 걸쳤습니다(7절). 예수님은 그 위에 앉으셔서, 예루살렘 성으로 들어가셨습니다. 전쟁에서 승리한 옛 왕들은 높은 말이나 병거를 타고, 칼과 활을 차고 입성했습니다. 그 뒤에는 수많은 신하와 전쟁 포로가 따라갔고, 백성은 환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다리가 땅에 닿을 정도로 볼품없는 나귀 새끼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전쟁의 왕, 군림하는 왕이 아니라 겸손의 왕, 평화의 왕이심을 분명히 보여 주고 있습니다(슥 9:9-10; 눅 2:14). 이스라엘 백성은 정치적인 왕으로서 메시야의 도래를 기대했지만, 예수님은 우리를 섬기고 참 평화를 주시는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셨습니다.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
시장하신 예수님은 멀리서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가까이 가셨지만, 잎사귀 외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13절). 그러자 예수님은 그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셨습니다(14절). 무화과열매는 잎사귀와 함께 열리기 때문에 때가 아니라 할지라도 덜 익은 열매라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잎사귀만 있고 열매가 없는 무화과나무는 더이상 가치가 없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시대 종교지도자들의 모습도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와 같았습니다. 그들은 멀리서 보면 푸른 잎사귀가 무성했지만, 자세히 보면 있어야 할 열매가 없었고 더이상 열매를 맺을 희망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도움질문
본문 관찰
1. 본문에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에 대한 내용을 살펴보십시오(주제별 목록 작성 참조).
2.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과 메시야 왕국에 대해 어떻게 이해했습니까(7-10절, 메시지 참조)?
3. 본문의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깊은 묵상
1. 여러분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열매를 맺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2. 겸손과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의 모습을 묵상해 보십시오.
3. 오늘 여러분에게 주시는 특별한 말씀(깨달은 점, 느낀 점, 적용점 등)은 무엇입니까?
제공:프리셉트
<오늘의 묵상>
예수님은 왜 총독 빌라도와 분봉왕 헤롯이 인정할 수밖에 없는 왕으로 등극하시지 않으셨을까?
예수님은 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인정하고 믿을 수밖에 없는 메시아로 오지 않으셨을까?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으로 나귀 타고 들어오실 때 많은 무리들이 “호산나 찬송하리로다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송하리로다 오는 우리 조상 다윗의 나라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라고 찬양한다.
그렇다면 그들은 금요일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외쳤던 것일까
그런데 예수님은 세상이 예수님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은 것 때문에 분노하지 않고 열매 없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시고 거룩한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굴혈로 만들어 버린 자들을 보고 진노하신다.
무화과나무의 역할은 무화과 열매를 맺어야 하고, 성전의 역할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어야 한다. 그런데 무화과나무에 무화과 열매가 없다면? 하나님의 집이 강도의 굴혈이 되었다면?
‘14 예수께서 나무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이제부터 영원토록 사람이 네게서 열매를 따 먹지 못하리라 하시니 제자들이 이를 듣더라’
‘마24: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보지 못하느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돌 하나도 돌 위에 남지 않고 다 무너뜨려지리라’
예수님은 세상의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지 못하면 아무 쓸 데 없어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히게 된다고 말씀하셨다.
‘마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잘 알았던 사람들이다. 하지만 기득권을 빼앗기고 싶지 않아서 맛을 잃어버린 소금이 되기를 결단하고 예수를 죽이려고 한다.
‘18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듣고 예수를 어떻게 죽일까 하고 꾀하니 이는 무리가 다 그의 교훈을 놀랍게 여기므로 그를 두려워함일러라’
하지만 아직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이 예수님을 잡지 못한다. 왜 무리들은 그저 교훈에 놀라고 두려워하기만 하고 예수를 ‘주는 그리스도시오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하지 않는 것일까?
‘막14:49 내가 날마다 너희와 함께 성전에 있으면서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그러나 이는 성경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나는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 존재인가?
주님이 나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있고 어떤 역할을 감당해야 하는지 잘 알기 때문에 오히려 두렵다.
때로는 나도 두려운 존재가 되었으면 할 때가 있다. 그렇다면 내가 말하는 것이 내 생각에서 말하는 것이 아니요, 성령께서 주신 감동으로 말씀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알텐데...
주님은 오늘 이 말씀을 묵상이 아니라 보게 하신다.
‘1 그들이 예루살렘에 가까이 와서 감람 산 벳바게와 베다니에 이르렀을 때에 예수께서 제자 중 둘을 보내시며 6 제자들이 예수께서 이르신 대로 말한대 이에 허락하는지라’
내 역할은 주님이 보내시면 보내시는 곳으로 가는 것이고, 끌고 오라고 하면 끌고 오는 것이고, 왜 이렇게 하느냐 물으면 주가 쓰시겠다고 말하라고 했으니 말하면 되는 것이다.
주님은 또 내 안에 인정받고 싶은 욕구가 있음을 보게 하신다. 그 욕구가 바로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이 버리지 못했던 기득권에 대한 욕심임을 보게 하신다.
말씀하신 대로 이루시는 주님. 말씀이 곧 예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 말씀을 전할 때 말씀대로 이루실 것을 믿는 믿음으로 전하게 하옵소서. 그 말씀에 먼저 순종하므로 저에게 맡겨주신 역할을 충실히 감당하는 종이 되게 하옵소서. 말씀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 말씀이 지식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교훈에 놀라고 두려워하는 마음이 생기게 하옵소서. 다시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 주심에 감사드리며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