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의 에토스, 설교가 담고 있는 세계
설교자의 에토스(ethos)는 단순히 설교자가 착하게 행동하고 모범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뜻에 그치지 않습니다. 인간의 모든 말과 글은 그 안에서 말하고 있는 내용 뿐 아니라, 화자가 전제하고 있는 세계를 보여 줍니다.
설교에는 설교자 개인의 인격과 삶뿐 아니라 그가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사람을 대하는 방식, 무엇을 중요하게 여기고 무엇에 마음 아파하는지가 자연스럽게 배어 나옵니다. 누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지, 힘 있는 사람과 약한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무엇을 정의롭다고 생각하는지가 설교 곳곳에서 드러납니다.
지나치게 가부장적인 표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지 못하는 태도, 사회 정의에 둔감한 감성, 약한 이들의 자리에서 세상을 바라보지 못하는 설교는 아무리 좋은 성경 구절과 신앙의 언어를 사용하더라도 청중에게 전혀 다른 메시지로 전달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청중은 민감하게 알아챕니다. 설교자가 무엇을 말하는지만 듣는 것이 아니라, 그 말 속에 어떤 세계가 담겨 있는지를 묻습니다.
“이 설교자는 사람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가?”
“고통받는 사람의 마음을 알려고 하는가?”
“이 설교 안에서 나는 존중받고 있는가?”
설교자가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그 설교 안에 담긴 '도덕적 세계 (moral world)'에 동의하기 힘들다 느낄 때 마음의 문을 닫을 수 있습니다.
최근 어떤 분이 네팔 홍수에서 살아남은 한 집의 사진을 올리고, 그 사진을 바탕으로 ‘강력한 설교 예화’를 만들어 낸 것을 보았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도 무너지지 않는 집’이라는 주제를 전하기에는 효과적인 예화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진 속에는 설교의 재료로만 다루어서는 안 될 현실이 있습니다. 누군가는 집을 지켰지만 누군가는 집을 잃었고, 누군가는 가족과 삶의 터전을 잃었을 것입니다.
타인의 고통과 재난을 설교의 메시지를 강화하기 위한 재료로 소비하는 방식은, 좋은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하더라도 많은 이들의 귀를 닫게 하고 마음을 멀어지게 할 수 있습니다. 설교자는 그 예화를 통해 ‘무너지지 않는 집’이라는 교훈을 얻으려 하지만, 정작 그 사진 속에서 울고 있는 사람들의 현실을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설교자는 끊임없이 자신에게 물어야 합니다.
“나는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그것 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나는 어떤 세계를 보여주고 있는가?”
설교자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인 동시에,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세계를 보여주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박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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