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만납시다 - 리경숙
백두산 종주를 마치고 통화에서 일박을 하고
집안의 고구려유적지를 관람한 후 꿈에 그리던 압록강으로 갔다.
압록강가에 도달한 첫느낌은 그저 평범한 강이었다.
압록강은 중국과 북한과의 국경선을 이루지만 강가에는
경비대원 한명 보이지 않고 국경이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
선착장에서 쾌속정을 타고 북한땅까지 근접해 갔다.
집안은 시가지가 깨끗하고 정비가 잘되었지만 강건너 북한땅은 급경사의 산간지대이고
아주 허름한 스레이트 형태의 집몇채만이 보였고 지나 다니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다만 강가에 어린아이 한명이 보이길래 “야 뭐하니”하고
큰소리로 불러 봤지만 대꾸가 없었다.
순간 울컥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랐다.
이 강건너 남쪽으로 조금만 내려가면 아버지가 평생 그리워 하셨던
고향땅이 있건만 더이상 갈 수가 없었다.
압록강 유람을 마치고 강가에 북한에서 운영하는 식당 묘향산으로 들어갔다.
실내는 생각보다는 좁았고 전면 작은 무대위에는 제복을 입은 아리따운 여성들이
합창으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그노래는 내가 이곳에 오기 전에 일부러 배워 가지고 온 노래였는데
이곳 압록강가에서 북한 여성의 목소리로 직접 들으니
감회가 남달랐다.
“꿈과 같이 만났다 우리 헤어져 가도
해와 별이 찬란한 통일의 날 다시 만나자
잘있으라 다시 만나요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어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이 나는 걸 억지로 참았다.
한 여성의 명찰을 보니 나와 성이 같았다..
북쪽에는 아버지 형제 오남매가 남아 있고 고향을 물으니
같은 평안도라서 어쩌면 친척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관람을 마치고 나와 성이 같으니 오빠라고 생각하고
한장 찍자고 했더니 흔쾌히 응해줬다.
우리끼리는 이렇게 금방 가까와 지건만
왜 육십년이 되도록 우리는 통일을 이루지 못할까
노랫말처럼 다시 만나자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지만
답답한 마음을 안고 압록강가를 떠나 졸본성이 있는 환인으로 향했다.
첫댓글 저도 가슴이 아픕니다 어찌 같은 동포인데 저런 애절하고 갸날픈 소리로 노래하는지
저번 주 행정법 시간에 교수님께서 아직 대한민국을 온전한 국가로 인정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는 말에 아! 분단이란게 이렇게 국가적 불이익도 생기는구나 했습니다 언젠가 통일은 되겠지요
꾀꼬리같이 애절한 저 작별 노래도 망각에 묻히는 그런 날이 말예요
반갑습니다. 북한 노래들의 특징은 가냘프고 꾀꼬리같은 민요창법을 사용하는것 같습니다
분단이 남과 북의 대중가요까지 확연히 다르게 만들어 놓았습니다
말씀하신대로 이노래가 애절하게 들리지 않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오늘도 즐거운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우리 민족의
슬픈 현실입니다
우리는 이런 역사를
한번도 원한적 없는데
왜 이러고 살아야
할까요
그나마 남은
남쪽이라도
ᆢ
에고 또
슬퍼짐니다
반갑습니다. 평소에는 잊고 살지만 너무나 슬픈 현실입니다
오늘 뉴스에 보니 비무장지대내에 북한측 초소가 다시 지어졌더군요
전쟁의 광풍이 다시 이땅에 몰아치는것 같아 불안하고 안타깝습니다
옛적에 한 나라이지...지금은 그곳은 완전히 딴나라 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제 젊은 층은 통일을 원하지 않는다 합니다
지금은 딴나라지만 같은 조상을 두고 같은 역사와 언어를 사용하고 있는 같은 민족입니다
언젠가는 아니 기필코 남과 북이 자유왕래할수 있는 날이 와야 된다고 봅니다
휴전ㅡ전쟁 중 잠시 멈춘 상태에서
분단ㅡ갈라진 나라의 아픔을
안고 사는 우리들
정말 정신 바짝 차려야겠단 생각이
들어요
지난번 라오스여행에서
금강산이라는 북한 식당에서
공연을 보면서 저녁을 먹었는데
즐겁다기 보다는
아릿한 슬픔에 가슴을 쓸어내리며
독한 북한산 술을 한 잔 했었지요
오ㆍ솔로미오를 불렀던
복사꽃처럼
곱디 고운 북한아가씨의
그 청아한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하여
내가 힘이 있다면
딸을 삼고 싶었다는 ᆢ
서울 가는 케텍스 안이라서
노래를 못 들어 아쉽네요
반갑습니다. ktx타고 서울 올라가시는가 봅니다
동남아나 중국에는 북한 식당이 많고 주로 우리나라 여행객이 주고객인데
지금은 한국사람을 안받는다는 기사를 본적이 있습니다
한국총각들이 그녀들에게 반하여 자꾸 탈출시키려 한답니다
빨리 장벽이 무너지고 분단의 비극이 끝났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잘가시라 다시 만나요
목메여 소리 칩니다
안녕히 다시 만나요
부모 형제 애타게 서로 찾고 부르면 통일을 못이뤄 ....
애절 합니다
분하고 원통 합니다
어쩌다 한민족이 갈기갈기 찢어져서
통일의 길은 갈수록 멀고 험한 꼴이 되었으니 ~
그산님의 이북여행에서
우리 아부지 생각에 목이 메입니다
가리나무님 반갑습니다. 가리나무님도 저처럼 압록강가에 서면 감회가 남다르시라 생각됩니다
한줌도 안되는 무리들이 우리민족 사이를 갈라놓고 있습니다
분단을 이용하고 분단에서 이득을 취하는 무리들이 빨리 사라져서
아버님이 꿈에도 그리시던 고향땅을 밟게 되는 날이 오기를 바랍니다
그날이 올때까지 건강하게 잘살아가야 되겠습니다 !
아부지가 실향민이셔서 그런곳에 가면 울컥하면서 눈물이라도 쏟아낼 것 같은 그산님은
살아 생전 고향을 그리워만 하시다가 결국 못가보고 돌아가신 아부지 심정 알아주는 효자아들입니다
반갑습니다. 실향민 2세대들은 모두 저처럼 고향을 그리워하시는 아버지를
보고 자랐을겁니다. 그러나 3세대 이하는 더이상 자신의 기원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가 친척이 많고 찾아갈 고향이 있는 몸부림님은 행복한 어린시절을 보내셨으리라 봅니다
추석이나 명절이 되도 우리는 찾아갈 곳도 찾아오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댓글 감사드리며 오눌도 즐거운 허루되시기 바랍니다 !
통일을 위해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더딘 걸음일지라도 전진 또 전진을 거듭해도 모자랄 판에..
남과 북의 대결에 더해 첨예한 이해관계가 얽힌 강대국들까지 끼어들어 있는 이 살얼음판이
근자에는 더욱 위태로운 상황으로 가고 있으니...
그저 날마다의 뉴스가 무섭고 답답하고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 갈라져 산지 팔십 년이 아직 안 되었고 하나로 살아온 것은 수천 년입니다.
통일을 반드시 해야 합니다. 반드시...
가슴 뭉클한 글 감사히 읽었습니다.
달항아리님 반갑습니다. 요즘 뉴스를 보면 참 답답합니다
말씀대로 수천년동안 이땅에서 같은 민족 같은 역사로 살아왔는데
분단된지는 80년에 불과합니다. 언젠가는 꼭 다시 하나가 되야 하기에
그날을 준비하며 살아가야 되겠지요. 날이 많이 추워졌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고 오늘도 행복한 하루 되시기 바랍니다 !
남북분단.
정치적 사상이 뭔가를 생각하게 하는 우리민족의 아픔입니다.
반갑습니다. 우리민족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강대국들이 분단하고
또 북쪽일당이 전쟁을 일으켜 지금까지 분단의 아픔에 허덕이고 있습니다
에고 아버님고향이 지척인데
저또한 황해도 아부지 고향 가려고 했다가
자기들이 우리아부지 고향에 신원파악되면 같이가자 했는데
지존님은 북한까지 갔다가 그쪽에서 신원파악되면 같이 가자 해놓고
못갔으니 더 안타깝겠네요. 나는 압록강에서 브로커통해서 아버지 형제들
만나시게 해주려 했는데 병환이 깊어서 결국 못해드리고 돌아가셨지요
아 가슴 아픈 추억이 있어요. 빨리 통일 ~~
네 최대한 빨리 통일이 되야 합니다
통일이 되긴 할까요?
모두가 염원하는 일인데 ㅜㅜ
아버지고향을 지척에 두고
얼마나 아쉬움이 크셨을까요.
반갑습니다. 실향민 아버지의한을 보고 자라서 그런지
북한과 분단상황에 대해 관심이 참 많습니다
예전에 이북사투리를 쓰는 노인들 보면 참 반가웠는데
이젠 1세대들은 거의 다 돌아가셔서 이북말을 쓰는 노인들을
만나기도 힘듭니다. 통일은 우리의 노력만으론 어렵고 모든 여건이 조성되야
이루어질것 같고 또한 어느날 벼락같이 올수도 있다 봅니다
@그산
통일전망대에서
바라본 북한땅에
인공기가 펄럭이고 있더군요.
세상에나~
눈에 보이는 그 땅을
밟을 수가 없으니
실향민들의 아픔은
말로할 수 없을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제라 제아버지는 해방전 14세의 나이로 서울에 유학왔다가 분단이 되어 고향에 가지 못하셨고
저에게 통일되면 할아버지묘소에 술한잔 올리라는 유언을 남기고 돌아가셨습니다
제가 실향민은 아니지만 아버지 생각에 압록강에서 한참 서있다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