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 11년(1429년) 어느 날, 세종이 윤회를 불렀다. 윤회는 10세 때 이미 《통감강목 : 중국의 주희가 지은 사서》 을 외웠을 정도로 총명한 인물로 문장에 뛰어나고 성품이 어진 신하였지만 술을 많이 마시는 것이 흠이었다. 그 날도 그는 초저녁부터 집에서 술을 마시고 기분 좋게 취해 시조를 읊고 있었다.
“대감, 빨리 입궐하시라는 전하의 분부이옵니다.”
내관이 말하자 윤회는 당황하지 않고 아내에게 말했다.
“부인, 내 의관을 가져다주시오.”
“대감, 괜찮으시겠습니까?”
내관과 가족들이 걱정스러워하는 가운데 윤회는 비틀거리는 몸을 가누며 가마에 탔다. 그런데 세종 앞에 이른 윤회는 자세를 흐트러뜨리지 않으며 똑바로 앉았다. 얼굴은 약간 불그레했지만 술기운 때문인지 바삐 오느라고 달아올랐기 때문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였다.
“명나라에 보낼 편지를 쓰게 하려고 그대를 불렀소.”
“예, 전하”
내관이 붓과 벼루, 종이를 가져오자 윤회가 물었다.
“어떤 내용을 적어야 하는지요?”
“우리나라에서는 금이나 은을 구하기 어려운데 그것을 조공으로 바치라고 하니 백성들의 고생이 매우 크다고 하시오. 그리고 명나라에서 우리의 입장을 이해한다면 조선에서 나는 몸에 좋은 인삼을 대신 받으라고 청하시오.”
이윽고 윤회가 편지를 쓰게 되었는데 내관은 크게 걱정되었다. 마음이 조금만 흐트러져도 제대로 써지지 않는 것이 글인데 윤회가 술에 취했으니 어찌 제대로 쓸 수 있을까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내관의 그런 생각은 공연한 걱정에 불과했다. 윤회는 종이를 펴고 붓을 들더니 한달음에 글을 써내려갔다. 윤회가 쓴 글을 받아서 읽은 세종은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과연 그대의 글은 훌륭하오. 하지만 술을 너무 많이 마시는 것은 큰 걱정거리요.”
세종은 윤회가 술에 취해 있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대의 건강이 걱정되어서 하는 말이오. 앞으로 경은 하루에 술을 석 잔 이상 마시지 마시오.”
“예, 그렇게 하겠사옵니다.”
윤회는 자리에서 일어나 세종에게 큰절을 했다. 자기의 건강에 신경을 써 주는 세종이 너무나도 고마웠기 때문이다. 그날 밤, 중국 사신을 접대하기 위한 연회가 열렸다. 그 자리에는 세종은 물론 문무 대신들이 모두 참석했다. 세종은 중국 사신 일행에게 술을 권한 뒤 조선의 신하들에게도 술을 권했다. 그런데 세종은 윤회의 술잔을 보며 크게 놀라는 얼굴이 되었다. 윤회의 술잔이 다른 술잔들에 비해 두세 배는 컸기 때문이었다.